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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바이올린 협주곡(PAGANINI,VIOLIN CONCERTO NO1)

8월 7, 2010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Allegro (2005 film)

Image via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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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5월 27일 오후 5시 20분, 파가니니가 니스에서 사망했다. 쉰 여덟 살의 나이였는데, 죽기 몇 년 전에도 이미 많은 조짐들이 보였었다. 아무튼 그의 때이른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가니니의 유산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테크닉 그 자체에 대한 몰입이었다. 만약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리스트가 그의 연주를 듣고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바를 비로소 이해한 것처럼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파가니니는 영감을 던져주었다. 심지어 슈베르트처럼 파가니니와 멀어 보이는 작곡가까지 파가니니의 연주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no 아티스트/연주  
1 1악장 Allegro maestoso / 우토 우기 [바이올린, 지휘] 산타 체칠리아 카메라 오케스트라 듣기
2 2악장 Adagio 듣기
3 3악장 Rondo. Allegro spiritoso 듣기

8월 20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극한의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인 최고의 테크니션

도대체 파가니니의 무엇에 그들이 그토록 진하게 감동받았던 것일까.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이 도달할 수 있는 테크닉의 극한을 보여줬다. 그때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효과들을 바이올린을 통해서 보여줬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대중의 호기심은 매우 강력했고, 어떤 관객은 파가니니에게 직접 그의 바이올린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물어볼 정도였다. 파가니니가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 넘겼고 그 대가로 마술 같은 바이올린 솜씨를 갖추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등장했으며, 지극히 매혹적인 음색의 네 번째 현(G선)의 비밀은 파가니니가 목을 졸라 살해한 애인의 창자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감옥에 갇혀 있던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이에 감동한 간수가 자신도 모르게 감옥문을 열어줘서 파가니니의 탈옥을 도와줬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도 많은 사람이 믿을 정도였다.

 

1820년의 베를린 콘서트에서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었단 아돌프 막스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바이올린이 홀로 울려 퍼지며 마치 달콤한 사랑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듯 절망에 휩싸여 탄식했다. 마치 웃음과 눈물, 호통과 위로, 사랑의 맹세와 배반의 모욕이 뒤죽박죽 뒤섞인 황망한 노파를 눈 앞에서 보는 듯하다. 이건 바이올린 연주가 아니었다. 음악이 아니라 마술이었다." 카를 폰 홀타이는 "파가니니는 사람들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대고 흐느꼈다. 듣는 이의 가슴과 영혼을 자신의 고통으로 휘감았다. 하나의 현으로만으로도 모든 이들을 함께 울게 만들었다."고 묘사했다.


19세기 파가니니의 연주회를 알리는 포스터. 파가니니의 현란한 연주회는
언제나 성황을 이루었다. <출처: paganini at en.wikipedia>

 

파가니니는 연주회 개런티를 다른 사람들의 곱절 이상으로 받았고,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사람들은 파가니니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미치게 증오하는 사람들로 양분되었고, 그들 모두가 파가니니의 자장 안에 있었다. 그로 인해 파가니니가 연주한 악기인 '과르네리'도 새롭게 주목받을 수 있었다. 요컨대 파가니니의 등장으로 음악계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뀐 것이다.

 

 


바이올린 한 대로 유럽을 정복하다

파가니니 전설의 시작은 제노바였지만 그 완성은 파리였다. 19세기 예술의 수도는 파리였고, 만약 파리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부와 명성을 모두 거머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831년 3월 9일에 열렸던 파리 데뷔 연주회는 파가니니에게 운명을 건 콘서트였다. 이미 빈, 프라하, 바르샤바, 베를린 등의 도시를 몇 년 동안 거치면서 파가니니에 대한 소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파가니니의 파리 연주회는 즉각 엄청난 반응을 몰고왔다.

 

테오필 고티에, 조르주 상드, 알프레드 드 뮈세, 프란츠 리스트, 생트-뵈브, 루이지 케루비니, 자코모 마이어베어 등 동시대의 주요한 문화계 인사들이 파가니니의 파리 데뷔를 충격과 경악 속에서 지켜보았다. 그 다음날 신문에는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으며,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조차 귀에 거슬렸다. 그것은 신성하고도 악마적인 열기였다."는 문구가 쓰일 정도였다. 파가니니는 파리의 대성공 이후, 런던으로 진출했다. 1831년 6월 3일, 런던 오페라 극장에서 열린 독주회는 두 배 이상 오른 표값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그로인해 원래 예정되어 있던 5월 21일에서 10일 이상 미뤄져서 개최되었다.


병상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파가니니. <출처: paganini at en. wikipedia>

 

파가니니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 앙리 비외탕은 "파가니니의 연주는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온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고, 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는 말로 그날의 연주회를 증언했다. 또다른 이는 "이 놀라운 음악가의 출현으로 얼마나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자살하고픈 유혹에 시달렸을지 상상하기 두렵다"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런던에서 석 달 동안 서른 번 정도 연주회가 연속으로 있었고 파가니니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자신의 말대로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한 대로 세상을 정복한 것이다.

 

 

 

테크닉의 불꽃튀는 향연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파가니니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6곡 정도 되었으나, 그 중에 인쇄된 곡은 그 중 2곡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이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다. 그가 1811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그야말로 테크닉의 불꽃 튀는 향연이며 이탈리아의 벨칸토 오페라 스타일의 서정적이고 달콤한 선율이 풍부하게 흐르고 있다. 1악장은 베이스 드럼, 심벌즈가 포함된 오케스트라의 서주가 시작되고 기교적인 카덴차가 시작된다. 행진곡 스타일의 리듬은 장대하게 울려 펴진다. 아르페지오, 3중 4중 스톱 등이 난무하고 스타카토로 된 중복3도가 등장한다. 병행8도나 병행10도의 악구는 파가니니가 즐겨 사용한 것들이며, 비정상적인 스코르다투라(조율 방법)를 통해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다. 2악장은 서정적이며 오페라의 벨칸토 스타일의 선율이 흐른다. 대단히 풍부하고 다채로운 감정이 흘러넘치고 부드러운 선율 속에서 서정적인 감정을 고양시킨다. 3악장의 론도는 스타카토 주법이 강한 인상을 남기며, 리코세처럼 지극히 화려한 주법을 통해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는 뜨거움을 표현한다.

 

 

추천음반

우선 유진 오먼디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한 지노 프란체스카티(Sony)를 언급해야겠다. 이 녹음은 수 십년 동안 레퍼런스가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음반으로 프란체스카티의 테크닉이 지금 기준으로는 조금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대단히 훌륭한 연주이다. 음색의 호소력이란 측면에서 프란체스카티는 우리시대에도 여전히 독보적이다. 마이클 래빈(EMI)이 유진 구센스/필하모니아와 협연한 연주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연주인데, 동시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이름을 날리던 래빈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살바토레 아카르도(DG)가 샤를 뒤투아/런던 필과 협연한 음반은 1970년대에 등장한 그 즉시 [파가니니 협주곡 1번]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현대적인 테크닉으로 무장한 아카르도는 마치 저격수처럼 정밀하게 테크닉을 구사하고 있다. 이 음반으로 아카르도는 '파가니니의 재래'라는 평을 들었을 정도로 최상급의 파가니니 음반이다. 마시코 콰르타(Dynamic)가 카를로 펠리체 디 제노바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앨범은 파가니니가 원래 지정한 E플랫 장조로 연주한 보기 드문 앨범이다(대부분의 앨범들은 D장조로 연주한다). 파가니니가 생각한 협주곡의 원형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음반으로 콰르타는 이 앨범으로 파가니니 스페셜리스트로 자리매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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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영화의 기념비적 작품

8월 3, 2010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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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 MARCH 27:  Army Sgt. First Class 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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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존 A. 럿소 의 원작을, CM 감독 출신인 조지 A. 로메로가 감독한 역사적인 작품이다. 다큐멘타리를 보는 듯한 촬영기법으로, 9개월에 걸쳐 모노크로 16mm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전편에 흐르는 카니발리즘과 비도덕적인 마지막 장면 등, 당시에 터부시되던 것들에 대해 도전장을 내민 내용이다. 밑바탕에 흐르는 독자적인 휴머니즘은 당시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어서, 찬반 논란이 있었으나 롱런을 거듭해 나갔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뉴욕근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에 소장되는 컬트·클래식의 대표적인 작품이 되었다.

본 작품은 그 후 다수의 영화들의 초석이 되어, 《바탈리안》(1985년)은 이것을 패러디화한 속편(원제 Return of the Living Dead), 《나이트 오브 더 리빙 데드》(1990년)은 톰 사비니에 의해 만들어진 정통적인 리메이크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영화에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 1979년), 《시체들의 낮》(Day Of The Dead, 1985년)을 합하여 '조지 로메로 좀비영화 시체3부작'이라고 불린다. (그 후, 2005년에는 《랜드 오브 더 데드》(Land Of The Dead), 2007년에는 《다이어리 오브 더 데드》(Diary Of The Dead)를 제작하였다.) 하지만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에선 괴물은 살아있는 시체(Living Dead)들이였고, 좀비라는 단어는 다음 작품인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2006년에는 입체 영화로도 리메이크되었다.

본 작품에서의 '시체들에게 외딴집이 포위되어 습격당한다'는 설정은, 리차드 머시슨의 《지구최후의 남자》라는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은것으로 전해진다.

엄마의 묘를 찾던 중에, 바바라와 오빠인 죠니는 좀비들로부터 갑작스러운 습격을 당한다. 여동생을 지키려던 오빠는 죽고, 공포와 비탄에 잠긴 바바라는 근처의 민가로 피해 들어간다. 민가엔 흑인청년 '벤'과 젊은 남녀, 중년 부부와 큰 부상을 입은 그들의 딸이 모여 있었으나, 외부와 연락을 취할 수 없던 중에 주변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무리들로 둘러싸인다. 바바라 일행은 TV를 통해 다시 살아난 시체들이 인간들을 습격하여 죽인 후 먹는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든 탈출을 시도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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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의 거장 "라훈아"

7월 28, 2010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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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 Volume 1:  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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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침묵을 깨고 기자회견을 자청한 나훈아는 그동안 나돌던 모든 괴소문들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라 훈아 동영상"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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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 추천 나의 취향을 넓혀준 영화

7월 15, 2010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MELBOURNE, AUSTRALIA - DECEMBER 05:  Jockey Da...

Image by Getty Images via @day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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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지로의 여름,타인의 삶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이긴 한데 어떤 거창한 테마로 포장하진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건 별로 안 좋아해요." 고르느라 밤에 3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고 말하며 다섯 편의 영화 목록을 건네주던 박해일은 특유의 낮은 목소리 그대로 담담하게 부탁했다. 조곤조곤한 태도와 손에 들린 수첩에 적힌 정말 하나의 테마로 모으는 게 불가능한 스펙트럼의 영화들. 이 일회적 풍경은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충무로에서 다양한 역할로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어떤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사실 외모적으로만 따진다면 박해일에겐 과거 아이스크림 CF에서 학생들을 향해 어색하게 미소 짓는 순박한 총각 선생님이 가장 어울려 보인다. 밝지만 눈부시지 않고, 순박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하지만 결코 드라마틱하지 않은 그 이미지 덕분에 그는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함을 획득하게 됐다. 그리고 임순례, 봉준호, 한재림 등의 개성 있는 감독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캐릭터를 박해일의 백지처럼 희고 모호한 얼굴에 덧입히며 [와이키키 브라더스], [살인의 추억], [연애의 목적]처럼 흥미로운 텍스트를 완성시켰다. 말하자면 그는 뚜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자신만이 가능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토록 해맑은 얼굴로 취조실 조명에 얼굴을 비추는 연쇄살인 용의자 박현규([살인의 추억])를 떠올려 보라. 차분한 외모 뒤에 느껴지는 희미한 섬뜩함은 오직 박해일이기에 표현 가능한 영역이다.

원작 웹툰의 팬들에게 싱크로율 백퍼센트라는 찬사와 함께 영화 [이끼]의 유해국 역할로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그에게 있어 하나의 전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일한 이미지로 수렴되지 않는 모호함 가운데 다양한 역할을 자신 안에 담아냈던 이 배우는 그 모든 걸 "아주 조금씩이라도 축적하며" 자기만의 얼굴을 조금씩 새겨갔고, 이제 모두가 그의 역이라 말하는 옷을 입고 [이끼]라는 대형 프로젝트의 타이틀롤을 맡았다. 하여, 이제 다시 그가 담담한 태도로 건네주던 영화 목록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이 배우가 서서히 축적하며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온 경험의 조각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이긴 한데 어떤 거창한 테마로 포장하진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건 별로 안 좋아해요." 고르느라 밤에 3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고 말하며 다섯 편의 영화 목록을 건네주던 박해일은 특유의 낮은 목소리 그대로 담담하게 부탁했다. 조곤조곤한 태도와 손에 들린 수첩에 적힌 정말 하나의 테마로 모으는 게 불가능한 스펙트럼의 영화들. 이 일회적 풍경은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충무로에서 다양한 역할로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어떤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박해일의 첫 번째 추천 :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박해일:  [파니핑크]로 유명한 도니스 도리가 찍은 작품이에요. 비록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독일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도 따로 찾아서 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영화죠. 영화 속 노부부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아내 트루디(한넬로르 엘스너)는 사실 아픈 몸을 숨기고 있어요. 남편 루디(엘마 웨퍼)는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트루디가 바라는 여행과 모험에 인색하고요. 하지만 결국 아내와 사별하게 되자 루디가 직접 아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하던 일본에 가 그녀의 바람을 대신 이뤄주는 이야기에요.

 

영화설명: 원제와는 거리가 멀지만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이란 제목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기막히게 표현한다. 얼마 허락되지 않은 시간 동안 남편 루디(엘마 웨퍼)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하는 트루디(한넬로르 엘스너)와 그런 사실을 모르다 트루디의 죽음 앞에서 후회하는 루디에게 얼핏 남은 것은 후회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루디는 아내와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직접 일본에 가서 일본 전통 무용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이 설명적이지 않게, 하지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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