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 아주재미없고,밋밋한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웃음이 나오네요..예전에는 멋진사람이라고,무지 잘난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많이 모자라는 나를 발견하고,자아도취형인 나에게..사랑을 보냅니다..부족해야 노력하니까~나를 인식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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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을 위해 꿈을 안고 미국행을 택한 일부 기러기엄마들이 노래방 도우미를 넘어 매춘에까지 뛰어들면서 결국 가정파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교민들은 “툭하면 터지는 한인 성매매 사건에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지경인데 이제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미국에 온 평범한 가정주부들까지 빈번하게 성매매에 적발된다”라며 “미국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교민방송 라디오 코리아는 최근 8년 전 9살, 12살 된 남매를 데리고 LA 행을 택한 주부 P모씨의 경우를 소개했다.
P씨는 20대 초반에 대학교수 남편을 만나 결혼생활을 하던 중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기러기 엄마의 길을 택했다.
영어구사가 힘들었던 P씨는 학부모회 나가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사춘기에 접어드는 남매와의 대화도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중 P씨는 인터넷을 통해 기러기엄마들의 모임에 가입하게 됐다.
P씨는 골프나 수영 등 여가생활을 즐기며 무료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기러기엄마 모임에서 소개해준 각종 파트타임일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자신의 평소 어려움을 잘 들어주고 친언니와 다름없이 속내를 터놓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노래방 도우미 일자리를 소개 받았다.
남편 부담을 덜어주고 스스로 돈을 벌어 자녀들의 교육비로 쓸 생각에 일을 시작했고 그러던 중 업소 사장과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장기간 남편과 떨어져 있으면서 알 수 없는 벽이 생긴 P씨는 교육비에 생활비까지 자신이 힘으로 해결하려다보니 또 다른 일자리가 필요했고 남자친구에게 마사지 팔러를 소개 받았다
P씨는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날 것이 두려워 한인 타운보다 차이나타운이나 롱비치 등 외곽지역을 주로 택해 외국인들을 상대해왔다”고 고백했다.
P 씨와 같은 업소에서 일했던 또 다른 한인주부는 젊은 여성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미혼행세를 하기위해 다이어트는 물론 성형까지 할 수 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2000달러 이상씩 쉽게 벌 수 있다 보니 잘못인 줄은 알지만 마약과 같이 멈출 수 없었다”는 P씨는 결국 윤락녀로 전락해버렸고 가정파탄으로까지 이어진 뒤에서야 후회를 했지만 이미 모든 걸 잃은 뒤였다.
미국내 교민언론들은 일부 기러기 엄마들의 갑작스런 연락두절이나 이혼 요청으로 한국에 있는 남편들이 사설탐정까지 고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LA에서 활동하는 한 사설탐정은 최근 들어 한국에서 남편들로부터 떨어져 살고 있는 부인을 미행해 달라는 의뢰 건수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라디오코리아는 최악의 경우 부인이 성병에 감염된 사실이 드러나 이혼을 하게 된 사례까지 있다며 그 심각성을 지적했다.
주부들 의 탈선이 비단 이들 뿐 이겠는가??
참으로 한심하다
얌전한 고양이 가 많은데 정작 본인은 남이 모른 다고 생각 한다는 사실이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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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살의 청년 의사 이승복은 떡 벌어진 어깨와 커다란 얼굴과는 대조적인 면을 여럿 가진 사람입니다. 우선 커다란 얼굴 한가운데서 수줍게 반짝이는 작은 눈매가 그렇습니다. 쉬임 없이 흘러 나오는 눈웃음이 마주 보는 이를 부지불식 중에 미소 짓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이승복씨는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커다란 체격이 주는 선입관이 무색하게 맑고 어린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신마비 장애인입니다.
장애는 지난 88년에 얻었습니다. 8살 때 미국에 이민 온 뒤 외로움을 견디는 버팀목 노릇을 해준 체조선수 생활이 화근이 됐습니다. 서울 올림픽 한국 체조 대표팀에 합류 하려고 연습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공중제비를 돌다가 머리부터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승복씨가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를 알게 해주는 회고담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여러 날에 걸친 치료 시도 끝에 결국 전신마비가 불가피하다는 판정을 받은 순간을 물어봤습니다. “부모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제가 집안의 맏아들인데 얼마나 실망하실까. 이렇게 이민 와서 온갖 고생 다 하신 것도 다 나 잘되라고 그러신 일인데 이젠 어떻게 살아 가실지…” 몸 다쳐 인생 망가진 사람은 난데 두 번 째, 세 번 째 생각이면 몰라도 장애를 깨닫고 떠오른 첫 감상이 부모님 걱정이라니.
부모님에 대한 바로 그 미안함 덕분에 이 씨는 좌절을 극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체조에 쏟던 정열을 고스란히 학업으로 돌렸습니다. 콜럼비아대 보건학 석사과정에 이어 명문 다트머스대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됐습니다.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재활의학과를 지원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최고의 병원으로 알려진 존스홉킨스 병원 재활의학과의 수석 전공의입니다.
환자들에게 이씨는 주치의이자 고통을 이겨내는 디딤돌입니다. 몇몇 환자들을 만나봤더니 대답이 한결같습니다. 당뇨로 한 다리를 잃은 한국인 임 모 할머니가 환자들의 기분을 잘 요약해 줬습니다. “이 선생님을 보면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겠다는 결심이 저절로 우러 나와요. 나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저 이는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내가 실망하면 안되지.”
전공의 생활이라는 게 사지가 멀쩡한 사람도 헉헉 거릴 만큼 분주한 일과일 수 밖에 없는데 이 씨는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닌 몸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다른 일에 바빴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잊혀진 옛 꿈을 다시 이뤄내는 일입니다. 그는 지난 해 여름 아테네로 달려 갔습니다. 아테네 올림픽 한국 체조 대표팀을 위한 전담 의사를 자원한 것입니다. “한국이 제 조국이잖아요. 88 올림픽 때도 조국을 위해 메달을 따고 싶었어요. 이제는 메달은 따지 못하지만 선수들을 도울 수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도운 선수들이 경쟁자들을 한 명씩 물리칠 때마다 이 씨의 뿌듯함은 몇 배로 불어 갔습니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저 선수들이 나를 위해 이겨주고 있구나. 어찌나 고맙던지…”
이 씨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입니다. 뭘 물어 봐도 예의 수줍은 눈웃음이 흘러나오며 얼굴이 분홍빛으로 변합니다. 의사 이승복의 미래는 어떤 것이냐고 묻자 역시 부끄러움이 가득 한 표정으로 머뭇거립니다. 한참 만에 들릴 듯 말 듯 나온 대답은 역시 그 다웠습니다. “부모님을 위해, 조국을 위해 살고 싶어요. 뭐든지 열심히, 1등으로” 그리고는 자기 말이 어색했던지 또다시 눈웃음이 쏟아집니다.
이승복씨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부모님과 조국을 위해 인생을 산다고 말하는 사람 본지 얼마나 됐지?” 곰곰이 셈을 해보니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던 권투선수 홍수환이 마지막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변한 모양입니다. 기자 생활 15년 동안 인생의 목표를 묻는 인터뷰를 수 없이 해 봤지만 부모님과 조국 얘기를 하는 사람 본 기억이 없다니 말입니다. 아마 누가 그런 대답을 했어도 거꾸로 제가 이런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그거 참, 좀 더 반짝 반짝하는 얘기 없나. 진부하게 부모님과 조국이 뭐야.”
하지만 이승복씨가 말하는 부모님과 조국은 전혀 진부하지 않았다고 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한 몇 시간을 통해 이 청년의 가슴 속에 담겨 있는 애정의 대상이 실제로 부모님과 조국 뿐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국이라는 단어에 별 감정을 느끼지 못한지 벌써 오래된 제가 머쓱해질 만큼 그랬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체조협회 분들에게 부탁 말씀 한마디 전합니다. 이 씨가 아테네 때 경험을 되살려 다음 올림픽에도 자원 봉사를 하려고 하는데 협회에 이메일을 보내도 반응이 신통찮다는 겁니다. “아마 협회가 바쁘기도 하고 이런 몸에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하겠지요”라는 이 씨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한 젊은이의 꿈도 이루고 협회 활동을 홍보하는데도 좋은 일이니 얼른 답장 주시기 바랍니다. 존스 홉킨스 병원에 물어봤더니 아주 훌륭한 의사라고 합디다.
'행복한 결혼' 안내서 낸 엄정희 교수 부부
"우리오리 어디 있나."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64)은 도곡동 집으로 퇴근하자마자 '오리'를 찾았다. "오늘은 별일 없으셨어요?" '오리'의 대답에 이 회장 얼굴이 환해진다. '오리'는 아내 엄정희(60) 교수다. 신혼 초, 뾰로통해질 때마다 입술을 내미는 모습이 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준 별명이 30년 애칭이 됐다. 이 회장은 '도기'(doggy). 개띠라서 붙여준 애칭이다.
남들이 들으면 낯간지러운 애칭으로 부르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는 이들은 유명한 '닭살' 부부다. 엄 교수는 36년 결혼생활과 가정학 연구결과를 담은 책 '17일간의 부부항해 내비게이터'(대성닷컴)를 최근 펴냈다. 책에는 '결혼이라는 항해 길에 행복의 항구에 닿을 수 있는 방법' 17가지가 들어 있다.

"이제는 100세까지 사는 시대가 됐죠. 30세에 결혼한다면 70년을 함께 살아야 합니다. 긴 세월 행복한 부부로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 26일 자택에서 만난 엄 교수는 "사랑은 노력과 의지로 가꾸어지는 것"이라며 "결혼 36년째지만 아직도 매일 아침이면 노력해야 하는 하루가 시작된다"고 했다. 엄 교수는 50세가 넘어 석사 공부를 마치고 부부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들의 결혼 생활에 햇빛만 비쳤던 것은 아니다. 5년 넘도록 불임으로 고생하다 어렵게 아들을 얻었다. 그 아들이 어느 날 체육시간에 넘어져 머리를 다쳤다. 아들은 1년간 투병하다 먼저 하늘로 갔다. 그 와중에 엄 교수는 위암 선고를 받았다. "위 절제 수술을 받고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딸이 저를 붙잡고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라며 울더라고요. 아, 살아야겠구나 싶었어요."
엄 교수는 행복한 부부의 첫째 수칙으로 '방심하지 마라'고 조언했다. 상대편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다 보면 마음이 달아날 틈이 생긴다. 이 회장은 "예전에 아내에게 '꿀밤'을 먹였다가 아내가 집을 뛰쳐나간 적이 있다"고 했다. 존중받기를 원하는 아내의 마음을 잠시 잊었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다.
엄 교수는 "산책할 때는 손을 잡고 걷고, TV 볼 때도 손 붙잡고 보고, 잘 때도 손을 잡아 보라"고 권했다." 이 회장은 "침대를 반드시 같이 쓰는 것도 중요하다"고 거들었다.
이벤트를 챙겨야 돈독해진다. 엄 교수는 10년 전 남편이 손수 카드를 만들어 준 것을 최고의 이벤트로 꼽는다. 이 회장은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때 꼬박꼬박 카드를 쓴다. 카드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오리, 세상에서 제일 착한 오리를 항상 사랑하겠다"는 맹세가 적혀 있다.
혹시 화가 나거나 섭섭한 마음이 들면 처음 사랑에 빠졌던 기억을 되살려 보라고 했다. 엄 교수는 남편이 "변치 않는 내 마음"이라며 덕수궁 앞에서 사줬던 첫 선물, 차돌 두 개를 간직하고 있다. 미워졌다가도 돌을 보면서 마음을 푼다.
앞으로의 부동산 방향을 진단하고 예측하는 전망도 쏟아진다. 나에게 아파트와 DTI는 듣고 싶지 않은 용어 중의 하나다. 아픈 기억에 머무를 수 없어 잊고 살자며 고쳐 잡은 마음을 다시 엉망으로 만든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면역력이 생겨 괜찮겠지 했지만 쉽지 않다. 만성이다. 현실이고 삶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어 더욱 그렇다.
나에게 잘못된 만남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다. 어찌 보면 '잘못된 만남'이라기보다는 '잘못한 만남'이 맞을 것 같다. 우연히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내가 결정한 선택이라 누구를 탓 할 수도 없다. 내 결정이기 때문에 운명적(?) 만남이기도 하다. 욕심과 판단 미스였다. 결국 60세가 되어서야 온전히 내 집이 될 아파트와의 인연 이야기를 풀어 본다.
'빚 없이 살자'의 종언... 아파트를 샀다
나는 원래 시골 출신이라 조금 우습지만 '빚 없이 살자'가 삶의 지표였다. 빚 내 농사 짓고 수확해서 빚 갚고... 악순환의 연속인 부모님의 빠듯한 삶에서 난 자유롭고 싶었다.
결혼 초기 반지하 신혼방을 선택했던 것도 그런 연유였다(지금도 아내한테 미안하다). 열심히 맞벌이하면서 아이들 키웠다. 결혼 10년 동안 여섯 번을 이사했고, 이사에 지쳐 안착하고 싶을 즈음에 조그마한 아파트와 첫 인연을 맺었다.
2002년의 일이다. 그때는 잠실 재건축이 시작돼 전세 수요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동산마다 전세가 동이나 마땅한 전세를 구할 수 없었다. 층수나 구조, 방향, 수리 정도 등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최상층인 25층에 전세가 나왔다는 부동산의 전화를 받고 밤 늦은 시간에 뛰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계약하려 하는데, 내 뒤로 집을 본 사람이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고 한다.
이미 전에 살던 집 주인과 전세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상태. 정말 그때는 갈 곳이 없었다. 결국 아저씨의 제안으로 우리는 전세를 구하려던 송파구 가락동의 24평짜리 아파트를 사기로 했다. 괜한 오기까지 발동해 더했다. 거기에 이사 일정 때문에 살 수밖에 없었다. 가진 돈을 모두 모으니 그 아파트 값의 절반이 모자랐다.
그렇게 해서 '빚 없이 살자'는 삶의 지표가 한방에 나가 떨어졌다. 그것도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으로 말이다.
아내 월급은 빚털이에 올인... 그래도 고공행진에 "하하,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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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을까.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파트, 아파트 이야기만 나왔다. 얼마가 올랐느니, 재건축이 어떠니, 청약통장이 어떠니...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우리 아파트 시세를 보니 6개월 만에 많이 올랐다. 그리고 또 오르고...
아파트가 아니라 주식 시세판 같았다. 매주 주식 시세판 보듯 아파트 시세를 보며 "하하, 호호" 쾌재를 불렀다. 이자가 불어나는 것은 생각도 안 했다. 빚은 빚이 아니라 투자였다는 새로운 경제관(?)까지 생겼다. 거기에다 알 수 없는 배짱까지...
날개 단 아파트 값... 한 시간마다 올랐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빚은 제자리인 데다가 우리 아파트만 오르는 것도 아니고 갈 길만 더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커가고 방 하나가 더 필요해지니 흔히 '갈아타기'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큰 아파트를 보니 그 아파트는 더 올랐다. 갈아타기만 더 힘들어졌다. 당시 소형은 인기가 없었고 중대형이 날개를 달고 올랐다. 상대적 소외감까지 들었다. 소형은 잘 나가지도 않았다. 빚에 더 큰 빚을 내야 하는 상황. 과감하게 결단(?)할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쉽지 않아, 아파트를 보고도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중간에 두 번 정도 하락기가 있었다).
2006년 가을로 기억된다. 애들 때문에 조금 큰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 고민 끝에 일단 집을 내놓았다. 지금 갈아타지 않으면 영영 갈아탈 수 없다는 불안감도 엄습했다. 부동산에서 오랜만에 매수자가 나타났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갈 만한 곳은 더 오르고 해서, 일단 기다리려 했는데 아내의 성화에 할 수 없었다.
일요일 밤 늦은 시간, 결국 부동산의 전화 설득에 계약서를 썼다. 그때 아파트값에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건교부 장관이 신도시 건설로 아파트 고공행진을 잡아보겠다고 공언하던 시점이었다. 판교 분양에서 떨어진 실수요자들까지 가세했다.
매매 계약 다음날부터 집을 알아보는데,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마다 가격이 오를 만큼 급등세 시점이었다. 집을 팔았으니 살 집은 찾아야 하고... 암담했다. '팔고 사라'는 전문가들의 '룰'을 따랐다. 살 집을 보고 바로 내려와 부동산에서 계약서 쓰려고 기다리는데 집주인이 그 사이 2천만 원을 올려 달라고 해 접기도 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우리집은 더블 딥... 월급이 오르지 않는 한 회복 불가능

이판사판. 빨리 구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 지금 살고 있는 오금동의 31평 아파트에 가서 급하게 계약서를 썼다. 앞으로 지하철 연장선이 개통되면 '더블 역세권'이 되고 공원도 가까워 오를 일만 있다는 부동산 아저씨의 '강추'도 한 몫 했다. 지금 단지 내에 있는 부동산 아저씨는 요즘도 길에서 마주치면 나를 피하지만 내가 가서 인사한다. 내 결정인 것을 아저씨 잘못은 아니다.
DTI에 따라 최대한 담보 대출을 하고도 모자라 나와 아내 신용대출을 추가로 해야 할 만큼 벅찬 금액이었다. 30년 상환으로 하고 싶었는데 20년밖에 안 됐다. 당시 2006년 말 건교부 장관이 아파트값 잡겠다고 신도시 발표를 했다. 하지만 신도시로 발표된 검단 신도시가 강남권을 대체할 수 없다는 시장 반응으로 오히려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뛰는 아파트 값에 이미 집은 팔았고 경황이 없는 데다 부화뇌동하면서 선택한 잘못이었다. 주머니 사정은 잊고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무모함까지 거들었다. 일이 안 되려면 그렇듯이 착착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이사를 한 게 2006년 11월경의 일이었다. 아파트를 산 뒤 보름 정도까지 상승세를 이어가던 우리 아파트는 내가 산 가격에 2/3 수준까지 밀렸다가 지금도 내가 산 가격으로 돌아올 기미가 없다. 어차피 한 채. 올라도 팔 수 없고 내려도 팔 수 없는데, 팍팍 조여 오는 생활비는 그리 마음을 여유롭게 해주지 않았다.
저축하는 재미 잊은 지 오래... 금융통화위 열리는 날에 '콩당콩당'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때문에 "안 돼"가 많아졌다. 여행, 외식, 학원 모두 최소한의 범위에서 해결한다. 부부가 근처 공원을 저녁마다 한 바퀴 걷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애들이 커가면서 학원비도 만만치 않은데 상당 부분을 인터넷 강의로 대체하고 있다.
돈 벌어 저축하는 재미도 잊은 지 오래다. 금융통화위원회라도 열리는 날이면 금리 오를까 가슴이 쿵쾅쿵쾅~ 요즘은 '동결'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다행히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 감사할 따름이다. 가끔 아내에게 묻는다.
"이렇게 60까지 살아야 하는데, 사업해서 목돈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를 이고 살아야 하는데, 팔고 전세 갈까?"
아내는 아무 대답도 없다. 답을 듣자고 해서 묻는 말도 아니다. 답답해 혼자 독백하듯 떠들면서 60세의 우리 부부를 상상해본다. 지금 삶도 중요한데... 60세 이후를 생각해서 건강이나 챙겨야겠다. 그때는 다시 빚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아파트는 부부 공동 소유이지만, 공동 소유자가 또 하나 있는 것과 같다. 인심(?) 좋은 은행이다. 금리라도 올라가면 투잡을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못 버티면 무모한 결정이 빚은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부도 부동산 시장을 살리고 서민도 살려야 한다. 부동산 살리자고 서민을 빚의 구렁텅이로 유혹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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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황민국 기자] "여름 내내 연락이 전혀 안 됐다"(브라이언 오거짓말은 그만 하세요, B"(김연아).
'피겨퀸' 김연아(20, 고려대)와 브라이언 오서(49) 코치가 결별 과정에서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면서 아름다운 이별을 기대했던 피겨 팬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지난 24일(이하 한국시간) 보도 자료를 통해 결별 사실을 밝혔던 이들은 갈라선 원인이 상대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싸움은 언론을 통하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작은 오서 코치였다. 오서 코치는 25일 캐나다의 '더 스타'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연아가 그랑프리에 불참하는 것과 내년 3월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는 사실도 인터넷을 통해 알았다. 모욕을 당한 느낌이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오서 코치는 "여름 내내 연락이 전혀 안됐다. 셰린 본 코치에게 올 시즌 연아의 쇼트프로그램 안무를 맡게 됐다는 전화를 받았다"면서 "지난 7월 김연아와 에이전트에게 수 차례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언제 토론토로 돌아올 것이냐고 물었지만 답변이 없었다"면서 결별의 책임을 김연아 측으로 돌렸다.
그러나 김연아 측도 오서 코치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다. 결별의 원인이 아사다 마오의 코치직 제의 이후 냉랭해 진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김연아 측은 "6월부터 사실상 홀로 훈련했던 상황이었다. 결별 통보에 대한 사실 관계도 다르다. 공백기를 가지자는 제안이었다"고 반박했다.
또한 김연아도 결별의 결정을 김연아가 아닌 어머니 박미희 씨가 내렸다는 주장에 대해 자신의 트위터에서 "거짓말 그만하세요, B. 나는 지금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결정은 내가 내렸습니다"고 말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배우자의 외도로 상처난 부부관계 다시 회복 할 수 있을까 부부관계 상담전문가 권위자인 더글러스 스나이더 미국
A&M대 교수의 대답은 예스(yes)다
스나이더 교수는 21일 고려대 자연계캠퍼스에서 열린 고려대 부부상담연구소 워크숍에 참가해'외도 이후 부부관계 회복하기'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국내 부부상담 분야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는 '결혼만족도 검사'기법을 개발했으며 부부상담 분야의 독보적 연구로 미국심리학회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날 강연에는 임상심리전문가, 부부상담사, 교수 등 100여명이 경청했다. 8시간여 동안 진행된 강연에서 그는"외도로 받은 상처를 묻어두고 겉으로만 형식적 관계를 끌어가는 부부들이 많은데, 이들이 상처를 세심하게 치유하면 이전보다 더 깊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나이더 교수는 "미국을 기준으로 육체적 외도가 남성의 20%, 여성의 11%에서 발생하며, 남성의 이혼사유 3위, 여성의 이혼사유 2위에 해당한다"며 "이혼 여부와 상관없이 외도는 부부 두 사람 모두에게 우울증, 자살충동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유발하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말문을 뗐다. 그래서 부부가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다면 반드시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 등 적극적으로 심리적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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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폭우 피해가 컸던 전라북도에는 밤새 또 200mm가 넘는![]()
비가 와서 주택 침수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원 지역 피해가 컸습니다.
조영권 기자입니다.
[리포트]
170mm가 넘게 비가 온 전북 남원시 주생면 중랑마을.
중랑천
제방 40m가 무너지면서 중랑마을 등 주변 마을 3곳에서 주택 70여 채가 침수되는 피해를 봤습니다.
삽시간에 들이닥친 하천물로 마을은 온통 물바다로 변했습니다.
물난리를 겪게 된 주민들은 마을 앞에 수로만 제대로 냈어도 이런 고통은 없었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인터뷰:오준교, 전북 남원시 주생면 중동마을]
"수로 내달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법이 없으니 못 내주겠다고 하더니... 이 것 봐요, 우리집이 저수지예요? 여기가?"
한 시간에 60mm 폭우가 쏟아진 남원시내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수도가 역류한 물이 가게마다 들어차 손을 쓸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집안 구석까지 밀려든 물은 퍼내고 퍼내도 줄어들 줄 모릅니다.
주민들은 지대가 낮은 곳에 하천이 가까이 있는데도 별다른
수해 대책이 없어서 이 같은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인터뷰:박용철, 전북 남원시 쌍교동]
"마대만 쌓아주면 침수 피해는 그렇게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가 지금, 일단 기본적으로 낮아요. 여기가 워낙 낮아가지고 전부 다
물이예요, 여기가.
남원시내 물은 여기로 다 들어온 것이예요."
지난 주말에 이어 또 다시 2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전북 지역은 남원과 임실 순창 등지에서 100여 채가 넘는 주택이 물에
잠겼습니다.
농경지 침수 피해 역시 점점 더 불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300억 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본 전라북도는 이번에 또다시 쏟아진
폭우로 피해 규모가 크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직장인 김모씨(32)는 올초 생활정보지에 실린 '카드 대출'이란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100만원 남짓한 돈이 급하게 필요했으나 수중에 현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광고를 낸 업자는 "인터넷쇼핑몰에서 150만원짜리 LCD TV를 사서 우리 회사로 배송하면 현금을 지급하겠다"고 말했고 김씨는 그 말에 따라 TV를 신용카드로 구입했다. 업자는 할인료 명목으로 TV 값의 30%인 45만원을 제외하고 105만원을 김씨에게 보내줬다. 김씨는 당장 필요한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었지만 6개월 할부로 TV를 샀기 때문에 매달 25만원씩의 돈을 갚아 나가야만 했다.
#2.식당을 운영하는 박모씨(41)는 물품 거래대금을 갚기 위해 500만원의 급전이 필요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온 대출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건 박씨는 "신용카드 번호 및 유효기간을 알려주면 필요한 돈을 보내주겠다"는 말을 듣고 카드 번호와 유효기간을 알려줬다. 며칠 뒤 500만원을 받을 수 있었으나 한 달 뒤 확인해 본 카드 내역서에는 600만원이 넘게 물건을 산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올해 상반기 신용카드 불법할인(카드깡)으로 제재를 받은 가맹점과 회원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 이후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워진 저신용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여신금융협회는 올해 상반기 중 카드깡으로 인한 가맹점 제재건수가 1만748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1%,회원 제재건수는 3만142건으로 30.1% 증가했다고 15일 발표했다.
카드깡을 한 가맹점에 대한 직접제재인 거래정지(1590건)와 계약해지(540건)는 각각 9.1%와,3.1% 늘었다. 간접제재인 한도축소(845건)와 경고(1만3183건)는 각각 4.8%와 75.4% 증가했다. 카드깡을 한 회원들에 대한 직접제재인 거래정지(6835건)는 22.7%,간접제재인 한도축소(2만3307건)는 77.3%가 늘었다.
카드깡 업자들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로 하여금 신용카드로 대형마트,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물건을 구매하도록 한 뒤 이를 되사주는 형식으로 돈을 빌려준다. 이때 카드결제 금액의 20~30%를 할인료 명목으로 수취한다.
신용카드 번호 및 유효기간을 알려주면 물품 판매를 가장한 신용카드 거래를 통해 자금을 융통해주는 경우도 있다. 아예 카드를 보내 달라고 하는 업자들도 있다. 실제 물품 거래가 일어나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거래가 일어난 것처럼 꾸미지만 이 때에도 업자들은 20~30%의 수수료를 받는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금융위기 이후 생활고로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자들의 현금 수요가 증가하고 이를 악용하는 가맹점의 불법할인 행위가 늘어나 카드깡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며 "카드깡 업자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며 현금 융통을 위해 카드를 타인에게 양도한 사람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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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의 상장사 주식지분 가치가 600억원대를 돌파하며 연예인 주식부자 1위를 차지했다.
11일 재벌닷컴이 유명 연예인들이 보유한 상장사 주식 지분가치를 평가한 결과 전날 종가 기준으로 SM엔터테인먼트 대주주인 이수만 회장이 617억6000만원을 기록했다. 이 회장의 지분가치는 연초(1월 4일) 204억3000만원에 비해 413억3000만원 늘어나면서 올 들어 202.3%가 급증했다.
이 회장은 현재 SM엔터테인먼트 지분 28.25%(454만1465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회사의 주가는 연초 4750원에서 이날 1만3600원으로 마감돼 186.3%가 상승했다.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 등의 가수들을 거느리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는 올 들어 해외 음반사업과 로열티 매출이 지난해보다 4배 이상 증가하면서 실적이 크게 호전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수만 회장에 이어 '한류스타' 배용준씨가 연초 대비 8.84% 증가한 132억1000만원을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코스닥 상장사인 키이스트 지분 34.6%(438만102주)를 보유 중인 배씨는 지난 2006년 4월 이 회사의 주가가 8만원대까지 오르면서 연예인 최초로 주식자산이 100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또 변두섭 예당컴퍼니 회장의 부인이자 가수 출신 양수경씨는 30억2000만원으로 3위에 올랐고 지난해 FCB투웰브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식 5만5000여주를 취득한 견미리씨는 28억5000만원으로 4위였다.
이어 일본에서 활동 중인 가수 보아씨가 13억6000만원, 견미리씨와 함께 FCB투웰브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식을 취득한 가수 태진아(본명 조방헌)씨가 3억2000만원을 기록했다.
유명 MC인 신동엽씨와 강호동씨는 주식을 보유 중인 디초콜릿이 실적 부진 등의 악재로 주가가 급락하는 바람에 지분가치가 이날 각각 1억1000만원과 1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MBA도 모바일로 공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