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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한 인생 10강

7월 15, 2011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여성의 아픈 삶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에서이다.

수많은 특강으로 단단하게 다져진, 그러나 결코 다그치지 않는 신달자 시인의 철학이 담뿍 담겼다.

 책의 키워드는 ‘도전’ ‘소통’ ‘행복’ ‘결혼’ ‘가족’ ‘아름다움’ 등이다.

 책이 독자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거창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대신 매우 진솔하다. 시인 자신의 이야기를 책 곳곳에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젊은 날 겪었던 시인의 고뇌와 좌절, 아픔, 연민, 그리고 성찰의 흔적이 위로와 희망이 되어 다가온다.

시인은 너무나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자꾸만 뒤처져 한없이 약해지는 여성들에게

“과연 할 수 있을까 의심하지 말고 절대 포기하지 마라”고 강조한다.

또한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아들의 기를 살리려면 먼저 남편의 기를 살려야 한다는 메시지도 전달한다.

책을 통해 시인은 모든 여성들이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으로 씩씩하게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저자는 우선, 인생에서 정해진 답은 없다고 조언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 무너지고 도무지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되겠느냐고 묻는 여성들이 가득했다.

사실은 나도 그렇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 그는 늙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질 때까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돌보다가

세상을 떠난 오드리 햅번의 일화를 설명하며 “절대 포기만 하지 마라”고 강조한다.

“여성들이 가장 자신과 약속해야만 하는 일은 열정이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없다.

언제나 그렇다. 열정만 있으면 무얼 해도 잘 할 수 있다.

 열정과 성실만 있다면 세상은 좋은 학교요, 놀이터다.”

신달자 지음 /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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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고통 | 아픔 | 행복 | 에세이 | 여자 | 열정 | 인생 | 좌절 | | 철학 | 치유

전신 마비 의사 이승복!!

9월 24, 2010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h.gif37살의 청년 의사 이승복은 떡 벌어진 어깨와 커다란 얼굴과는 대조적인 면을 여럿 가진 사람입니다. 우선 커다란 얼굴 한가운데서 수줍게 반짝이는 작은 눈매가 그렇습니다. 쉬임 없이 흘러 나오는 눈웃음이 마주 보는 이를 부지불식 중에 미소 짓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이승복씨는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커다란 체격이 주는 선입관이 무색하게 맑고 어린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신마비 장애인입니다.
장애는 지난 88년에 얻었습니다. 8살 때 미국에 이민 온 뒤 외로움을 견디는 버팀목 노릇을 해준 체조선수 생활이 화근이 됐습니다. 서울 올림픽 한국 체조 대표팀에 합류 하려고 연습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공중제비를 돌다가 머리부터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승복씨가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를 알게 해주는 회고담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여러 날에 걸친 치료 시도 끝에 결국 전신마비가 불가피하다는 판정을 받은 순간을 물어봤습니다. “부모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제가 집안의 맏아들인데 얼마나 실망하실까. 이렇게 이민 와서 온갖 고생 다 하신 것도 다 나 잘되라고 그러신 일인데 이젠 어떻게 살아 가실지…” 몸 다쳐 인생 망가진 사람은 난데 두 번 째, 세 번 째 생각이면 몰라도 장애를 깨닫고 떠오른 첫 감상이 부모님 걱정이라니.

부모님에 대한 바로 그 미안함 덕분에 이 씨는 좌절을 극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체조에 쏟던 정열을 고스란히 학업으로 돌렸습니다. 콜럼비아대 보건학 석사과정에 이어 명문 다트머스대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됐습니다.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재활의학과를 지원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최고의 병원으로 알려진 존스홉킨스 병원 재활의학과의 수석 전공의입니다.

환자들에게 이씨는 주치의이자 고통을 이겨내는 디딤돌입니다. 몇몇 환자들을 만나봤더니 대답이 한결같습니다. 당뇨로 한 다리를 잃은 한국인 임 모 할머니가 환자들의 기분을 잘 요약해 줬습니다. “이 선생님을 보면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겠다는 결심이 저절로 우러 나와요. 나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저 이는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내가 실망하면 안되지.”

전공의 생활이라는 게 사지가 멀쩡한 사람도 헉헉 거릴 만큼 분주한 일과일 수 밖에 없는데 이 씨는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닌 몸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다른 일에 바빴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잊혀진 옛 꿈을 다시 이뤄내는 일입니다. 그는 지난 해 여름 아테네로 달려 갔습니다. 아테네 올림픽 한국 체조 대표팀을 위한 전담 의사를 자원한 것입니다. “한국이 제 조국이잖아요. 88 올림픽 때도 조국을 위해 메달을 따고 싶었어요. 이제는 메달은 따지 못하지만 선수들을 도울 수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도운 선수들이 경쟁자들을 한 명씩 물리칠 때마다 이 씨의 뿌듯함은 몇 배로 불어 갔습니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저 선수들이 나를 위해 이겨주고 있구나. 어찌나 고맙던지…”

이 씨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입니다. 뭘 물어 봐도 예의 수줍은 눈웃음이 흘러나오며 얼굴이 분홍빛으로 변합니다. 의사 이승복의 미래는 어떤 것이냐고 묻자 역시 부끄러움이 가득 한 표정으로 머뭇거립니다. 한참 만에 들릴 듯 말 듯 나온 대답은 역시 그 다웠습니다. “부모님을 위해, 조국을 위해 살고 싶어요. 뭐든지 열심히, 1등으로” 그리고는 자기 말이 어색했던지 또다시 눈웃음이 쏟아집니다.

이승복씨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부모님과 조국을 위해 인생을 산다고 말하는 사람 본지 얼마나 됐지?” 곰곰이 셈을 해보니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던 권투선수 홍수환이 마지막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변한 모양입니다. 기자 생활 15년 동안 인생의 목표를 묻는 인터뷰를 수 없이 해 봤지만 부모님과 조국 얘기를 하는 사람 본 기억이 없다니 말입니다. 아마 누가 그런 대답을 했어도 거꾸로 제가 이런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그거 참, 좀 더 반짝 반짝하는 얘기 없나. 진부하게 부모님과 조국이 뭐야.”

하지만 이승복씨가 말하는 부모님과 조국은 전혀 진부하지 않았다고 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한 몇 시간을 통해 이 청년의 가슴 속에 담겨 있는 애정의 대상이 실제로 부모님과 조국 뿐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국이라는 단어에 별 감정을 느끼지 못한지 벌써 오래된 제가 머쓱해질 만큼 그랬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체조협회 분들에게 부탁 말씀 한마디 전합니다. 이 씨가 아테네 때 경험을 되살려 다음 올림픽에도 자원 봉사를 하려고 하는데 협회에 이메일을 보내도 반응이 신통찮다는 겁니다. “아마 협회가 바쁘기도 하고 이런 몸에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하겠지요”라는 이 씨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한 젊은이의 꿈도 이루고 협회 활동을 홍보하는데도 좋은 일이니 얼른 답장 주시기 바랍니다. 존스 홉킨스 병원에 물어봤더니 아주 훌륭한 의사라고 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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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올림픽 | 의사 | 이승복 | 장애 | 재활의학 | 전신마비 | 체조선수

승무!! (지조의 시인 조지훈)

9월 22, 2010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승무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피리1.JPG 이 시의 주제는 인간 번뇌의 종교적 승화로 전통적, 회고적, 선적(禪的), 심미적 성격을 보여 준다. 삶의 번뇌에서 해탈하여 마음의 평온을 얻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염원일 것이다. 이 시는 승무를 통해 이러한 기원을 표현한 것이다. 이 시에서는 화자가 등장하지도 않고 함축적으로도 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의 어조는 감정이 절제되어 있지 않다. 즉 첫째 연은 감탄형 종결어미로 감정이 직접적으로 노출되었고 둘째 연 역시 그렇다. 화자가 갑자기 개입하여 의미상의 모순을 범하면서 감정의 과잉상태를 보여준다.

 이는 감각적인 묘사로 일관되기보다는 매 순간순간마다 감정을 노출시킴으로써 승무를 취하고 있는 여승의 위기를 절감하게 하고 있다. 이는 제재인 승무와 화자와의 거리가 부족한 거리임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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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번뇌 | 고깔 | 복사꽃 | 승무 | 승화 | 해탈 | 여승

파가니니,바이올린 협주곡(PAGANINI,VIOLIN CONCERTO NO1)

8월 7, 2010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Allegro (2005 film)

Image via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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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5월 27일 오후 5시 20분, 파가니니가 니스에서 사망했다. 쉰 여덟 살의 나이였는데, 죽기 몇 년 전에도 이미 많은 조짐들이 보였었다. 아무튼 그의 때이른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가니니의 유산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테크닉 그 자체에 대한 몰입이었다. 만약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리스트가 그의 연주를 듣고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바를 비로소 이해한 것처럼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파가니니는 영감을 던져주었다. 심지어 슈베르트처럼 파가니니와 멀어 보이는 작곡가까지 파가니니의 연주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no 아티스트/연주  
1 1악장 Allegro maestoso / 우토 우기 [바이올린, 지휘] 산타 체칠리아 카메라 오케스트라 듣기
2 2악장 Adagio 듣기
3 3악장 Rondo. Allegro spiritoso 듣기

8월 20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극한의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인 최고의 테크니션

도대체 파가니니의 무엇에 그들이 그토록 진하게 감동받았던 것일까.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이 도달할 수 있는 테크닉의 극한을 보여줬다. 그때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효과들을 바이올린을 통해서 보여줬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대중의 호기심은 매우 강력했고, 어떤 관객은 파가니니에게 직접 그의 바이올린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물어볼 정도였다. 파가니니가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 넘겼고 그 대가로 마술 같은 바이올린 솜씨를 갖추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등장했으며, 지극히 매혹적인 음색의 네 번째 현(G선)의 비밀은 파가니니가 목을 졸라 살해한 애인의 창자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감옥에 갇혀 있던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이에 감동한 간수가 자신도 모르게 감옥문을 열어줘서 파가니니의 탈옥을 도와줬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도 많은 사람이 믿을 정도였다.

 

1820년의 베를린 콘서트에서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었단 아돌프 막스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바이올린이 홀로 울려 퍼지며 마치 달콤한 사랑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듯 절망에 휩싸여 탄식했다. 마치 웃음과 눈물, 호통과 위로, 사랑의 맹세와 배반의 모욕이 뒤죽박죽 뒤섞인 황망한 노파를 눈 앞에서 보는 듯하다. 이건 바이올린 연주가 아니었다. 음악이 아니라 마술이었다." 카를 폰 홀타이는 "파가니니는 사람들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대고 흐느꼈다. 듣는 이의 가슴과 영혼을 자신의 고통으로 휘감았다. 하나의 현으로만으로도 모든 이들을 함께 울게 만들었다."고 묘사했다.


19세기 파가니니의 연주회를 알리는 포스터. 파가니니의 현란한 연주회는
언제나 성황을 이루었다. <출처: paganini at en.wikipedia>

 

파가니니는 연주회 개런티를 다른 사람들의 곱절 이상으로 받았고,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사람들은 파가니니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미치게 증오하는 사람들로 양분되었고, 그들 모두가 파가니니의 자장 안에 있었다. 그로 인해 파가니니가 연주한 악기인 '과르네리'도 새롭게 주목받을 수 있었다. 요컨대 파가니니의 등장으로 음악계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뀐 것이다.

 

 


바이올린 한 대로 유럽을 정복하다

파가니니 전설의 시작은 제노바였지만 그 완성은 파리였다. 19세기 예술의 수도는 파리였고, 만약 파리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부와 명성을 모두 거머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831년 3월 9일에 열렸던 파리 데뷔 연주회는 파가니니에게 운명을 건 콘서트였다. 이미 빈, 프라하, 바르샤바, 베를린 등의 도시를 몇 년 동안 거치면서 파가니니에 대한 소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파가니니의 파리 연주회는 즉각 엄청난 반응을 몰고왔다.

 

테오필 고티에, 조르주 상드, 알프레드 드 뮈세, 프란츠 리스트, 생트-뵈브, 루이지 케루비니, 자코모 마이어베어 등 동시대의 주요한 문화계 인사들이 파가니니의 파리 데뷔를 충격과 경악 속에서 지켜보았다. 그 다음날 신문에는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으며,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조차 귀에 거슬렸다. 그것은 신성하고도 악마적인 열기였다."는 문구가 쓰일 정도였다. 파가니니는 파리의 대성공 이후, 런던으로 진출했다. 1831년 6월 3일, 런던 오페라 극장에서 열린 독주회는 두 배 이상 오른 표값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그로인해 원래 예정되어 있던 5월 21일에서 10일 이상 미뤄져서 개최되었다.


병상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파가니니. <출처: paganini at en. wikipedia>

 

파가니니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 앙리 비외탕은 "파가니니의 연주는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온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고, 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는 말로 그날의 연주회를 증언했다. 또다른 이는 "이 놀라운 음악가의 출현으로 얼마나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자살하고픈 유혹에 시달렸을지 상상하기 두렵다"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런던에서 석 달 동안 서른 번 정도 연주회가 연속으로 있었고 파가니니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자신의 말대로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한 대로 세상을 정복한 것이다.

 

 

 

테크닉의 불꽃튀는 향연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파가니니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6곡 정도 되었으나, 그 중에 인쇄된 곡은 그 중 2곡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이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다. 그가 1811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그야말로 테크닉의 불꽃 튀는 향연이며 이탈리아의 벨칸토 오페라 스타일의 서정적이고 달콤한 선율이 풍부하게 흐르고 있다. 1악장은 베이스 드럼, 심벌즈가 포함된 오케스트라의 서주가 시작되고 기교적인 카덴차가 시작된다. 행진곡 스타일의 리듬은 장대하게 울려 펴진다. 아르페지오, 3중 4중 스톱 등이 난무하고 스타카토로 된 중복3도가 등장한다. 병행8도나 병행10도의 악구는 파가니니가 즐겨 사용한 것들이며, 비정상적인 스코르다투라(조율 방법)를 통해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다. 2악장은 서정적이며 오페라의 벨칸토 스타일의 선율이 흐른다. 대단히 풍부하고 다채로운 감정이 흘러넘치고 부드러운 선율 속에서 서정적인 감정을 고양시킨다. 3악장의 론도는 스타카토 주법이 강한 인상을 남기며, 리코세처럼 지극히 화려한 주법을 통해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는 뜨거움을 표현한다.

 

 

추천음반

우선 유진 오먼디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한 지노 프란체스카티(Sony)를 언급해야겠다. 이 녹음은 수 십년 동안 레퍼런스가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음반으로 프란체스카티의 테크닉이 지금 기준으로는 조금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대단히 훌륭한 연주이다. 음색의 호소력이란 측면에서 프란체스카티는 우리시대에도 여전히 독보적이다. 마이클 래빈(EMI)이 유진 구센스/필하모니아와 협연한 연주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연주인데, 동시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이름을 날리던 래빈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살바토레 아카르도(DG)가 샤를 뒤투아/런던 필과 협연한 음반은 1970년대에 등장한 그 즉시 [파가니니 협주곡 1번]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현대적인 테크닉으로 무장한 아카르도는 마치 저격수처럼 정밀하게 테크닉을 구사하고 있다. 이 음반으로 아카르도는 '파가니니의 재래'라는 평을 들었을 정도로 최상급의 파가니니 음반이다. 마시코 콰르타(Dynamic)가 카를로 펠리체 디 제노바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앨범은 파가니니가 원래 지정한 E플랫 장조로 연주한 보기 드문 앨범이다(대부분의 앨범들은 D장조로 연주한다). 파가니니가 생각한 협주곡의 원형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음반으로 콰르타는 이 앨범으로 파가니니 스페셜리스트로 자리매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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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남자 보다 오래 사는 이유

8월 6, 2010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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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신지식에 올라온 글이 이슈가 되었길래 나도 거기에 관해 한마디 하려고 포스팅을 시작했다.

아주 많은 의견들이 올라와 있었는데 사실 정답인 것들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기에 약간은 요약정리를 해보기로 했다.

남자든 여자든 오래사는 사람들의 조건을 리스트로 만들어보자.


1. 스트레스를 배출하는 방법이 건전하고 건강에 피해가 덜가는 행동을 즐겨한다.

2. 여자가 조금 더 유리한 점은 성적인 이유가 내재되어 있다.

3.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오래산다.

4. 식사는 제때 제때 조금씩 먹는다.

5. 체구가 작은 사람은 오래 살 확률이 높다.


뭐 좀 더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아는 수준으로 근거 있는 답변은 저정도가 전부라 할 수 있겠다.

1번에 대해서는 상당히 구체적인 이유가 필요할 것 같다. 스트레스는 누구나 많이 쌓인다. 그러나 보통 남자들은 술이나 담배, 또는 각종 성문화를 통해서 그것을 해소한다. 게다가 스트레스 해소의 결정적 요소인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다. 잘 흘리는 남자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잘 용납이 되지않는게 문제다. 그런 이유에서 확실히 남자들이 오래살기 어려운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하겠다.

2번은 남성과 여성의 성행위시 생리적 매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남성은 고환을 통해서 정액을 생산하고 배출한다. 이건 뭐랄까... 인간으로 태어나면 종족 번식의 기본적 장치를 달고 태어나는 셈인데, 여자에겐 받아서 키우는 매커니즘이고 남자에겐 생성하고 소모하는 매커니즘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남성의 정액은 엄청난 영양성분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영양분을 소모해서 만들어지고 양도 많지만 또 많이 만들어진 만큼 소모해야하는, 그러나 지나치게 소모하면 정말로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물질인 것이다. 그럼 결국 여자들은 그런 소모가 없으니 상대적으로 이런 부분에서 오래 살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다고 볼 수 있겠다. 월경으로 피를 쏟는 것도 힘들다고 반박하는 여성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부분은 난 잘 모르니 넘어가도록 하겠다. 월경이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소리는 들어본적이 없으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적으로 느끼는 절정을 여성만 느낄 수 있고 남성은 그런게 없어서 불리하다고 하는데 그것도 솔직히 근거가 있는건지 모르겠다. 성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여성들은 호르몬 작용도 좋아서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은적은 있다. 하지만 그게 전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수명과 많은 관련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오감중에서 만지는 부분인 손가락의 감각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자식들과 손자들을 많이 만지고 키우고 하면서 그런 부분이 많이 충족되는데 반해서 남성들은 그런 부분이 부족하기에 아내가 죽으면 만질 대상이 없어져 더 빨리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적도 있다만 믿거나 말거나다;;;

3번은 내가 경험으로 느낀 사항이다. 나의 친 할머니 께서는 아직도 살아계신다. 80이 넘으신 나이에도 정정하실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근면함이다. 없는 일도 만들어서 하신다. 그리고 언제나 바쁘게 돌아다니시며 뭐든 하시고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난다. 취침과 기상시간이 언제나 빠르고 동일한 사람들이 오래산다. 그런의미에서 난 글렀다... -_-;

4번도 역시 할머니를 보면 할 수 있다. 정말 제때 조금씩만 드시고 많이 움직이니 건강하지 않은게 이상하다. 많이 먹고 제때 안먹고 이런 생활은 위에 많은 부담을 주니 건강에 좋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5번 역시 마찬가지다. 체구가 큰 사람은 먹는양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뭐랄까... 이건 좀 근거가 없는 소리겠지만 아무래도 소모하고 생산하는 양의 차이가 사람의 수명과 관련을 지어놓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오래사시는 우리 할머니는 상당히 체구가 작다. 아마 관련이 없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글을 다 써놓고 보니 참 우울하다 -_-;

나는 남자다.
체구도 큰편이다.
저렇게 부지런하지 않으며(일상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식사와 취침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일찍 죽을 조건은 두루 갖춘듯 ㅎ_ㅎ;;;;;


그리고 저 글에서 누군가 올려주신 남자가 일찍 죽는 이유 사진들이 참 재미있어서 올려본다.

역시 여자 때문에 남자가 일찍 죽는 경우도 있긴 있나보다 이렇게 특이한 경우는 드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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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7월 31, 2010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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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ana de Trevi

Image by David Durán Trejo via Flickr

이탈리아 영화를 영광스런 자리로 올려놓은 네오리얼리즘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극심한 가난 속에서 탄생한 보석 같은 영화운동이다.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연민의 정을 느낀다. 단지 생존하고자 몸부림치는 그들은 결코 고상하지는 않지만, 인간성을 상실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악전고투를 보며 선진국 이탈리아도 저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되고 모더니즘을 이끄는 주역 국가로 발돋움한다. 그러자 1960년대 제작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영화들의 등장인물들은 네오리얼리즘의 인물들과는 정반대의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불과 15년 정도가 흘렀을 뿐인데 말이다.

 

1960년에 개봉된 [달콤한 인생]의 인물들은 페데리코 펠리니가 그 전에 찍었던 영화들, [청춘군상] [] [카리비아의 밤] 속의 인물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하다. 물론 영화의 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이 영화에는 옛날이든 지금이든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클럽의 매혹적인 아가씨들, 두 사람만 탈 수 있는 깜찍한 컨버터블 자동차, 멋진 선글라스와 섹시한 의상들, 노천카페, 고급 클럽의 흥겨운 춤과 노래, 환상적인 쇼걸들, 노출이 심한 패션의 여배우, 최신식 고급 가구들, 그리고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놀아대는 밤샘 파티까지. 이 이미지들은 이 영화 속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달콤한 쾌락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하룻밤 쾌락은 새벽에 찾아오는 허무를 낳는다.

 

여기 소개된 포스터는 미국 개봉 버전이다. 극중에서 이탈리아로 온 미국의 스타 여배우 실비아(아니타 에크버그Anita Ekberg 역)가 술에 취해 밤거리를 활보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들고 있는 장면이다. 그녀는 빅 스타지만 머리보다 몸으로 말하는 여배우로 그려진다. 이 여배우를 취재하는 주인공 마르첼로(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Marcello Mastroianni 역)는 쾌락에 몸을 맡기고 덧없는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기자다. 그는 실비아에게 반해 어떻게든 해보려고 들이대지만 실비아는 그의 관심에 초연하다.

 

결국 아침이 밝을 때까지 그는 그녀로부터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한다. 이 포스터는 젊은 남자들이 그토록 선망하는 대상이지만, 결국 남자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는 환상을 표현하고 있다. 넘실거리는 금발 머리, 짙은 눈썹과 속눈썹, 벌어진 입술, 어깨에 걸친 럭셔리한 옷, 이 얼마나 소유하고픈 피사체인가. 사진은 가까이에서 플래시를 터트려 찍은 듯 노출 과다 상태다. 마치 파파라치가 갑자기 나타난 스타를 급하게 찍은 사진 같다. 파파라치가 찍은 스타 사진이란 대개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이 사진은 파파라치 사진처럼 보이도록 의도한 '정제된' 사진이다.

 

이 영화에는 스캔들을 쫓아 닥치는 대로 셔터를 눌러대는 '파파라초(Paparazzo)'라는 이름의 사진기자가 등장한다. '파파라치(paparazzi)'라는 용어는 바로 이 파파라초라는 인물에서 유래했다. 이들이 찍는 여배우 사진은 스타의 환상을 쫓는 대중의 갈망을 대변한다. 욕망의 삶이 허무를 낳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콤한 인생]의 젊은이들은 또 다음날이 되면 그런 환상과 쾌락을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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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Anita Ekberg | Arts | Arts and Entertainment | Crime | Mafia | Marcello Mastroianni | New Orleans Family | Organized Crime

여름과일의 왕 수박

7월 20, 2010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수박.gif

 

수박은 아프리카가 원산지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재배하였고, 우리 땅에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박은 품종을 크게 나누면, 대과종과 소과종이 있다. 그냥 수박이라 하는 것이 대과종이고, 흔히 복수박이라 부르는 것이 소과종이다.(복수박은 소과종의 한 품종명이었는데 이 품종의 수박이 크게 번져 소과종 수박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국내 수박 품종은 180여 가지에 이른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기억하는 품종명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90년대에 '달고나'가 큰 인기를 끌어 품종명으로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2010년 현재 흔히 심는 품종은 '스피드꿀수박'과 '삼복꿀수박'이다. 어디에서 유래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수박 모양이 약간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면 '꿀수박'이라는 명칭이 붙는다. '스피드꿀수박'은 이름 그대로 다소 일찍 나오는 조생종이며 '삼복꿀수박'은 중만생종이다. 청과 상인들의 말로는 수박에도 모양과 맛에 유행이 있는데, 최근에는 '삼복꿀수박'이 강세라고 한다.

음성 맹동 지도보기

  • 1 맹동 수박은 하우스 수박이다. 여름수박은 6~7월, 가을수박은 추석 전후에 나온다.
  • 2 농협의 선별장의 수박들. 비파괴 당도 측정기를 거쳐 크기와 당도에 따라 나뉘어 시장에 나온다.
  • 3 수확을 하다가 깨진 수박이다. 하우스 수박은 껍질이 얇고 식감이 부드럽다.

 

 

맹동 수박의 명성이 오래된 것은 아니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 마을 입구에 '맹동 수박'의 유래에 관한 팻말이 서 있다. 1990년대 초 음성군농촌지도소(지금의 음성군농업기술센터)에서 지역에 맞는 소득 작목을 찾다가 지역 농가와 합심하여 하우스 수박 재배를 시작하였다고 적고 있다. 당시 수박은 노지에서 하우스로 그 재배 방법이 바뀌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수박은 노지에서 재배하면 장마에 농사를 망치는 일이 흔하며, 수박 껍질이 두꺼워 상품성이 떨어진다. 하우스 재배는 비 피해를 줄일 수 있고, 수확 시기를 조절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껍질이 얇고 당도가 충분하다. 맹동의 농민들은 이 하우스 수박으로 승부를 걸어 성공한 것이다. 1987년 개통된 중부고속도로 덕분에 수도권 소비시장과 가까워졌다는 것도 맹동 수박의 성공에 한 몫을 하였다. 맹동 수박의 성공은 음성군 전체로 번져 현재 군내 800여 농가가 수박 농사를 짓고 있다. 음성군 수박 브랜드는 '다올찬 수박'이다. 2009년에는 음성군에 수박연구소(충북도농업기술원 산하)가 세워져 10여 명의 연구원이 수박의 상품성을 올리는 연구를 하고 있다.

 

 

땅보다는 노하우

맹동 수박은 두 차례 수확기가 있다. 4월에 모종을 내어 6월 하순에서 7월 하순까지 여름수박을 내고, 7월에 모종을 하여 추석 전후에 가을수박을 낸다. 맹동 수박이 특별히 맛있는 까닭에 대해 농민들은 차진 땅을 들었다. 그러나 수박연구소의 연구원은 오랜 노하우와 정성이 더해진 덕이라고 말하였다. 땅이야 충북의 이웃 군과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우스 수박은 벌로 수정을 하는데, 이 수정 타이밍이 중요하다. 오전 11시를 넘기면 수박꽃에 습기가 있어 벌이 수정 작업을 할 수가 없고, 그렇게 하여 벌 수정 시기를 놓치면 사람이 일일이 붓으로 하여야 한다. 이로 인한 품질의 차이가 크다고 한다. 또 줄기에 달린 세 덩이의 어린 수박 중에 하나를 남기고 적과하는 시기, 수박이 다 익을 때까지 초세를 유지하는 방법 등에서도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재배'되었다기보다 '관리'된 수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수확된 수박은 농협의 선별장에서 비파괴 당도 측정기를 통하여 크기와 당도별로 나뉘게 된다. 이때 불량 수박은 걸러진다.

 

 

비합리적인 수박 꼭지 남기기

한여름 비닐 하우스 안은 찜통이어서 수박을 거두는 일이 고되다. 농민들은 수박을 거둘 때 수박이 상하지 않을까 조심하는 것보다 꼭지가 상하지 않을까 더 조심을 한다. 수박에 붙어 있는 꼭지의 줄기를 한 뼘 정도 남겨두고 잘라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이 수박 꼭지를 보고 싱싱한지 판단한다. 그래서 농민들은 "수박이 2만 원이면 꼭지가 1만 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남겨진 수박 꼭지가 수박의 맛을 떨어뜨린다. 수박에 남겨진 꼭지가 말라가면서 수박의 수분과 영양분을 빼앗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수박을 낼 때 꼭지를 다 자른다. 수박을 맛있게 오래 보관하는 방법이기도 하며 농가의 일손을 줄이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박에 꼭지를 남겨두는 것은 비합리적인 일이다. 선별 작업 후 붙이는 스티커에 출하 날짜와 유통 기한만 적어도 해결 가능한 일일 것이다. 꼭지를 남기지 않고 수확을 하면 일손이 크게 준다. 복더위 찜통 하우스 안에서 작업하는 농민들을 위해서라도 꼭 고쳐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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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하는 착각

7월 19, 2010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코엑스 지하 1층입니다. 이것 말고도 볼링이나 당구, 연못 풍경 등 많습니다. 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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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g.gif

 

남자는 여자가 시집오면 헌신적으로 남편 뒷바라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들이 많은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요.
 사실 예전에는 여자가 결혼하면, 헌신적으로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이제는 일방적인 헌신보다는 서로가 헌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자가 아내의 헌신을 당연하게 생각하여 헌신하기만 바란다면, 혼자만의 착각일 것입니다.
 남자들이 결혼한 후에 흔히 하는 착각 5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남자들이 결혼한 후에 흔히 하는 착각 5가지


 1. 아내가 헌신하면 자기처럼 잘난 남자와 결혼해서 그런 것이라고 착각한다.


 착각 : 아내는 나처럼 매럭적인 남자와 결혼했으니 헌신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실 : 여자가 남편에게 헌신하는 것은 모성애 때문이거나 사랑받는 아내가 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해설 : 남편에 대한 아내의 헌신은 모성애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는 남편에게 헌신하는 이유는 남편에게 모성애를 느꼈을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가 되고 싶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남편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지 않으면 서운한 감정이 생겨 사랑이 식게 되지요.



 2. 아내보다 예쁜 여자와 결혼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

 

 착각 : 아내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면 자기처럼 매력적인 남자가 결혼을 너무 서둘러 평범한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착각한다.


 사실 : 그때 결혼을 안했다고 해도 아내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나기는 힘들다.

 

 해설 : 아내가 청혼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했거나 아직도 혼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지요.
 아내가 자신에게 정이 들어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자신이 잘났기 때문이라고 착각하여 결혼한 것을 후회하게 될 때가 많지만, 남자는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공들여 청혼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아내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3. 다른 여자에게 한눈 팔아 아내에게 상처주거나 잘못한 것이 있어도 사과하면 된다.

 

 착각 :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한눈 팔 수도 있다.

 사실 : 남자가 한눈팔면, 여자도 한눈 팔 수도 있고, 이혼당할 수도 있다.


 해설 : 여자는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한눈 팔면 이혼을 생각하지만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가 몰래 바람피우다가 걸리면 여자는 평생 상처가 되고 자식 때문에 이혼은 안해도 시간이 지나도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지요.



 4. 자신이 바람핀 적이 없는 것을 대단한 희생으로 착각한다.

 
 
착각 : 결혼한 이후로 한번도 바람피운 적이 없는 나는 정말 모범적인 남편이다.


 사실 : 바람피우지 않았다고 모범적인 남편은 아니다.
 

 해설 : 남자가 바람피우지 않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바람피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바람피우지 않았다고 모범적인 남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남자가 결혼한 후에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해야 모범적인 남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자기처럼 멋진 남자와 결혼한 아내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착각 : 나처럼 매력적인 남자와 결혼한 아내는 복이 터진 것이다. 

 사실 : 남편이 아내에게 잘해주지 않으면, 여자는 행복하기 어렵다.


 남편이 잘해주지 않으면, 아내는 결혼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와 결혼할 때는 자신이 잘해주면 남편도 잘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결혼하는 경우가 많지만, 남자는 아내가 자신에게 잘해주면 자신이 잘났기 때문에 아내가 잘해주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아내에게 소흘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가 결혼생활에서 남편에게 상처를 많이 받으면 마음이 돌아서 나중에 잘해주어도 소용없을 때가 많지만, 남자는 이러한 여자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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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Eclipse | gtd | Hip hop | Hype Nation | Jay Park | Korea | Music | Yi Sang

박해일 추천 나의 취향을 넓혀준 영화

7월 15, 2010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MELBOURNE, AUSTRALIA - DECEMBER 05:  Jockey Da...

Image by Getty Images via @daylife

박해일.gif

기쿠지로의 여름,타인의 삶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이긴 한데 어떤 거창한 테마로 포장하진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건 별로 안 좋아해요." 고르느라 밤에 3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고 말하며 다섯 편의 영화 목록을 건네주던 박해일은 특유의 낮은 목소리 그대로 담담하게 부탁했다. 조곤조곤한 태도와 손에 들린 수첩에 적힌 정말 하나의 테마로 모으는 게 불가능한 스펙트럼의 영화들. 이 일회적 풍경은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충무로에서 다양한 역할로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어떤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사실 외모적으로만 따진다면 박해일에겐 과거 아이스크림 CF에서 학생들을 향해 어색하게 미소 짓는 순박한 총각 선생님이 가장 어울려 보인다. 밝지만 눈부시지 않고, 순박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하지만 결코 드라마틱하지 않은 그 이미지 덕분에 그는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함을 획득하게 됐다. 그리고 임순례, 봉준호, 한재림 등의 개성 있는 감독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캐릭터를 박해일의 백지처럼 희고 모호한 얼굴에 덧입히며 [와이키키 브라더스], [살인의 추억], [연애의 목적]처럼 흥미로운 텍스트를 완성시켰다. 말하자면 그는 뚜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자신만이 가능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토록 해맑은 얼굴로 취조실 조명에 얼굴을 비추는 연쇄살인 용의자 박현규([살인의 추억])를 떠올려 보라. 차분한 외모 뒤에 느껴지는 희미한 섬뜩함은 오직 박해일이기에 표현 가능한 영역이다.

원작 웹툰의 팬들에게 싱크로율 백퍼센트라는 찬사와 함께 영화 [이끼]의 유해국 역할로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그에게 있어 하나의 전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일한 이미지로 수렴되지 않는 모호함 가운데 다양한 역할을 자신 안에 담아냈던 이 배우는 그 모든 걸 "아주 조금씩이라도 축적하며" 자기만의 얼굴을 조금씩 새겨갔고, 이제 모두가 그의 역이라 말하는 옷을 입고 [이끼]라는 대형 프로젝트의 타이틀롤을 맡았다. 하여, 이제 다시 그가 담담한 태도로 건네주던 영화 목록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이 배우가 서서히 축적하며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온 경험의 조각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이긴 한데 어떤 거창한 테마로 포장하진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건 별로 안 좋아해요." 고르느라 밤에 3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고 말하며 다섯 편의 영화 목록을 건네주던 박해일은 특유의 낮은 목소리 그대로 담담하게 부탁했다. 조곤조곤한 태도와 손에 들린 수첩에 적힌 정말 하나의 테마로 모으는 게 불가능한 스펙트럼의 영화들. 이 일회적 풍경은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충무로에서 다양한 역할로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어떤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박해일의 첫 번째 추천 :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박해일:  [파니핑크]로 유명한 도니스 도리가 찍은 작품이에요. 비록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독일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도 따로 찾아서 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영화죠. 영화 속 노부부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아내 트루디(한넬로르 엘스너)는 사실 아픈 몸을 숨기고 있어요. 남편 루디(엘마 웨퍼)는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트루디가 바라는 여행과 모험에 인색하고요. 하지만 결국 아내와 사별하게 되자 루디가 직접 아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하던 일본에 가 그녀의 바람을 대신 이뤄주는 이야기에요.

 

영화설명: 원제와는 거리가 멀지만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이란 제목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기막히게 표현한다. 얼마 허락되지 않은 시간 동안 남편 루디(엘마 웨퍼)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하는 트루디(한넬로르 엘스너)와 그런 사실을 모르다 트루디의 죽음 앞에서 후회하는 루디에게 얼핏 남은 것은 후회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루디는 아내와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직접 일본에 가서 일본 전통 무용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이 설명적이지 않게, 하지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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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Conditions and Diseases | Cystic fibrosis | Gene | Genetic disorder | Health | High school | Libraries | Programming | Support Groups | Wikipedia

우린 늘 모자를 쓴다,쪽팔리니까

7월 14, 2010 | Article Posted By - 초록빛 바다~*,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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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 Sport North America - Audi R10

Image by Dave Hamster via Flickr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나 만남에 대한 설렘 따위는 없다. 산뜻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살갑게 인사를 건네지만,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 금빛 명찰을 단 매니저가 직원을 타박한다. "아저씨 지나가시잖아, 길 좀 비켜줘라." 파란색 물통을 들고 주방에 들어선 나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지만 청소복을 입은 '아저씨'일 뿐이다.

우리는 청소 유목민이다. 수원, 안양 등 수도권과 청주, 천안, 춘천까지 전국 어디든 부르면 달려간다. 전문화와 외주화가 우리를 낳았다. 꽤 규모가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들이 우리가 달려가는 '초원'이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는 시간, 오후 11시. 현장 책임자 최 과장이 매장에 올라가 완전히 비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차 트렁크에서 장비를 내린다. 주방으로 올라가는 화물칸 승강기에 장비를 싣는다. 한 손엔 대걸레를 움켜쥐고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없는 비상계단을 오른다. 오후 11시 13분, 청소 시작이다!





바닥 청소를 하기 전 테이블 위에 의자를 올린 모습.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3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사 먹는 대신 밤마다 3만5000원짜리 출장청소를 한다.




청소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 다만 규칙은 있다. 작업 동선을 지켜야 한다. 홀 청소는 의자를 테이블 위로 올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테이블 안쪽 의자를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린다. 다음 바깥 쪽 의자를 그 위에 뒤집어엎는다. "안 쪽 것부터 올리라고요!" 이 과장이 스무 살이나 많은 오 반장에게 짜증을 낸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 반장은 실수가 많다. 이 과장은 이 일을 한 지 6년째다. 그 전에는 외국 담배 납품 일을 했는데 잘 안 풀렸다고 한다.

70cm가 넘는 긴 빗자루로 쓰레기를 쓸어 담는다. 허리를 숙이지 않고 '슥' 쓸어야 몸이 덜 힘들다. 따뜻한 물에 세제를 푼다. 축구공 3개 만한 솔이 달려 있는 청소기 '스윙 머신'에 희석한 세제를 넣고 돌린다. 바닥이 많이 더러우면 대걸레에 세제를 묻힌 뒤 바닥에 초벌칠을 한다. 거품 위를 지나가며 골고루 묻혀야 한다. 휘청휘청, 미끌미끌,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 왜 김연아의 금메달이 위대한지 이해할 수 있다.

식탁 다리에 이물질이 끼지 않도록 식탁을 밀지 않고 들어 옮긴다. 불빛이 밝지 않은 레스토랑 안이지만 바닥에 조그마한 이물질이라도 있으면 껌 칼로 떼어낸다. 일만큼은 확실하다. 어설프게 했다간 밥줄이 떨어진다. 다음날 청소한 가게에서 작업평가서를 보낸다. 주방 A, 홀 A+, 배수구 B... 낮은 평가가 쌓이면 재계약을 못한다.

가게의 평균 면적은 661m²이다. 이런 가게를 4명이 한 달에 25일 정도 청소한다. 한 달 동안 청소하는 면적을 합하면 월드컵 경기장의 2배가 넘는다.

독한 주방 세제 코와 입으로... 피부 벗겨지기도





기름끼가 잔뜩 낀 후드의 철망은 독한 세제를 뿌린 뒤 고압의 물로 벗겨내야 한다.





"컥컥...."
주방 세제는 독하다. 찌든 기름때를 벗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고무장갑 없이 세제를 만졌다간 피부가 벗겨지기 십상이다. 천장의 후드를 닦기 위해 머리 위로 세제를 뿌린다. 마스크가 없어 세제가 코와 입으로 들어간다.





음식찌꺼기가 가득한 배수로를 청소하다보면 구정물이 입에 튈 때가 많다.





후드를 닦는 일은 젊은 일꾼들 몫이다. 조리대 위에 올라가 작업을 해야 하니 유연성이 필요하다. 베테랑들도 종종 바닥으로 떨어지곤 한다. 어떤 후드는 식지 않은 튀김 기름 조리대 위에 있어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어설프게 덮인 철판을 밟았다간 기름에 빠져 중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먼저 후드에서 철망을 분리한다. 떼어낸 망에 알칼리성 세제를 묻히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 고압 분사기로 물을 쏘면 새것처럼 은빛 찬란해진다.

청소한 티는 벽타일에서 가장 확실히 난다. 광낸 구두처럼 반짝거려야 한다. 매미처럼 벽에 달라붙어 빛이 날 때까지 젖은 걸레와 마른걸레를 번갈아가며 닦는다. 이걸 '벽을 잡는다'고 표현한다.

주방 청소의 마침표는 배수로 세척이다. 배수로 뚜껑을 연다. 막힌 혈관처럼 콜레스테롤 같은 음식 찌꺼기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잠시 숨을 멈추고 그 안으로 손을 넣는다. 수세미로 닦아내는 것이지만 우선은 손으로 퍼 올려야 한다. 새우, 소시지, 조갯살, 파프리카, 양배추 같은 것들이 나온다. 악취는 '직속 타구'다. 맡는 순간 구역질이 난다. 격한 수세미질에 구정물이 입술에 튄다.

쉬는 시간은 한번, 오전 2시다. 20분 정도 쉰다. 그렇다고 '새참'같은 건 없다. 가끔 '센스' 있는 가게 직원이 퇴근 전에 과자나 음료수를 챙겨주고 가기도 한다. 5일에 한 번 꼴로 관리직 김 부장이 현장에 와 캔커피를 산다. 사장의 친동생인 김 부장은 낮에 근무하는데, 가끔 현장을 돌아보며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이따금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운동권 출신 아냐?", "스파이 아냐?"하고 묻곤 했다.

오전 5시 귀경길 시속 140km, 무사하기만 빈다

귀경길도 속도전이다. 계기판 속도가 올라가야 퇴근이 빨라지니 140km를 넘나든다. 앞 차선에 빈틈만 보이면 끼어든다. 운전수는 이 과장이거나 최 과장이다. 그 둘도 밤새 일했다. 워낙 숙련된 일꾼이어서 둘이 전체 일의 60% 이상을 해치운다.

최 과장은 현장 총책임자다. 15년 전 택배를 하며 부업으로 청소를 시작했는데, 8년 전 전업으로 바꿨다. 핸들을 잡은 그가 졸리는지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오전 4시 57분, 애국가가 흘러나온다. 클라이맥스의 심벌즈 소리까지 아득하게 들린다.

아찔한 순간이 많다. 지난해에도 대형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대전에서 올라오던 길, 무리하게 차선을 바꾸다가 1차선에서 가드레일을 받고 역방향으로 정지돼 있던 차량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차는 폐차됐다. 이 과장은 한 달간 병원신세를 졌고, 운전을 했던 최 부장도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보상 문제 등이 얽혀 그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우리가 하루 동안 이동한 최장거리는 왕복으로 398.6km였다. 한 달 평균 이동한 거리는 왕복으로 2310km. 서울과 부산을 3번 왕복하는 거리다. 밤샘 작업, 졸린 운전자, 장거리 운전, 과속 질주... 그저 무사하기만 빌 뿐이다.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기 위해 빨리 달리다보면 교통사고가 날 위험이 크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은 3평 남짓이다. 3인용 소파, 정수기, 원탁 테이블 하나, 옷걸이 몇 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이 비켜서지 않으면 서로 못 지나갈 정도로 좁다. 샤워시설은 없다. 한 평 남짓 화장실만 하나 있다. 곧장 옷을 갈아입고 퇴근한다. 특별히 불평하는 사람도 없다. 한시라도 빨리 퇴근하고픈 마음뿐이다.

지하철 첫차를 타고 퇴근한다.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청소 아주머니들이 어떤 도구, 어떤 자세로 일하는지 관찰한다. 저 자세로 계속 일하면 필시 허리가 휠 것이다. 걱정스럽게 보지만 눈 마주칠 일은 없다. 그들 대부분이 바닥만 보면서 일한다. 아침의 활기나 웃음기라곤 찾아 볼 수 없다.

산재와 구조조정의 희생자 오씨, 8천원으로 한달 버텨

"오 반장님, 일은 몸에 좀 붙었어요?"
책상에 앉아 김 부장이 묻는다. "으 헤헤헤, 그게 뭐..." 오 반장은 멋쩍은 웃음을 지을 뿐 똑 부러지게 대답하지 않는다.

오씨는 58년 개띠다. 28살에 고향에서 무일푼으로 상경했다. 공사장 막일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경마장에서 보일러 배관공 일을 8년 했다. 그 경력으로 이곳저곳 배관공사를 하러 다녔다. 그러다 6년 전 추락 사고를 당했다. 11m 높이에서 배관작업을 하다 동료 2명과 함께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왼쪽 갈비뼈가 부러지고 허리를 다쳤다. 동작이 느리다고 매번 핀잔 듣는 건 그때 다친 허리 때문이다.

퇴원 후 아는 사람 소개로 한 대형마트에서 지게차 일을 했다. "오후 10시부터 오전 3시까지 일했지, 그때는 월 270만 원은 벌었어." 그때도 마트 직원이 아닌 용역업체 소속이었다. 1천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지게차 사업권을 사서 들어갔다. 지난해 그 회사가 1500명의 인원을 감축하면서 그도 일자리를 잃었다.

오 반장에겐 3살 난 아들이 있다. 뒤늦게 필리핀 출신 아내 사이에 얻은 아이다. 아내는 필리핀 사람들끼리 알음알음해서 일자리를 얻었다. 어린이집 영어강사로 두 곳에서 60만 원을 받는다. "집사람이 벌지 않으면 무조건 적자야." 그가 가진 재산은 보증금 5500만 원짜리 전세집이 전부다.

보육비가 걱정이다. "아침에 집에 가자마자 기저귀를 사러갔어, 한 달 기저귀 값이 5만 원이야." 애가 태어나고 처음 석 달은 한 달에 10만 원 씩 정부에서 육아보조금을 받았다. 지금은 없다.

"돈 있으면, 만 원만 빌려주라."
땅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찾더니 결국 나에게 돈을 꾼다. 오 반장은 다음날 20여일치 봉급을 받았다. 70만 원 남짓이다. 한 달로 따지면 100만 원 조금 넘는다. "공과금 20여만 원 내고, 보험료, 생활비 등 주고 나니까 주머니에 만 원 들어오더라고, 담배 하나 사니까 8000원 남던데." 그는 다음 월급날까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밤새워 일한다고 집에서 걱정 안 하세요?"
"마누라? 우리 마누라는 돈만 세지! 자식 놈들도 코빼기도 안 비춰."
손아무개(59)씨는 자영업을 하다 접고 청소 일을 한다. "마누라가 들어오지 말래." 서아무개(53)씨도 개인 사업에 실패하고 이 일을 시작했다. 손씨는 자녀 둘을 출가시키고 아내와 살고 있고, 고씨는 아내와 고등학생인 아들이 있다.

서씨, 손씨가 받는 돈도 한 달에 100만 원 남짓이다. 열심히 일해서 직원으로 채용된다고 해도 130만~140만 원이다. 직원이라고 해봐야 2년 마다 재계약을 하는 비정규직을 말한다. 오 반장도 마찬가지다. 부양가족이 있는 50대의 세 사람에게 이 정도 수입은 '입에 풀칠하기도 부족할 정도'다. 노후준비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노후? 생각해 놓은 거 없어. 애와 엄마 보험금도 10만 원 정도씩 내니 나까지 하면 힘들지. 계속 일하다보면 어떻게 안 되겠어?"

오 반장은 큰 병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손씨나 서씨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겐 국민연금도 없고, 보험도 언감생심이다.

3만 원 스테이크· 5천 원 커피 메뉴에 울컥





파이프를 잡고 벽을 닦는다. 젖은 수건과 마른 수건을 번갈아가며 닦아야 반짝거린다.


ⓒ 황상호


"아유, 스테이크 하나에 3만 원이야. 나 같은 사람은 못 와."
손씨는 청소하다가 메뉴판을 보고 기겁한다. 그 식당에서는 보통 수준인 스테이크가 3만 원을 넘는다. "여기 오냐? 먹어봤어?" 최 과장이 내게 물었다. 서울 강남의 한 커피전문점을 청소 할 때다.

"미쳤어. 커피가 오천 원이 넘고. 세상이...."
나의 일당은 3만5500원이다. 쉬는 날은 빠지니 한 달 수입이 채 100만 원이 안 된다. 일인당 3만 원짜리 스테이크, 5천 원짜리 커피는 가당찮은 사치다. 만일 내가 혼자 살면서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는 처지라면, 이 돈으로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 따져봤다. 방값이 30만 원이라면 생활비로 70만 원 남는다. 이틀에 한 번만 아침을 챙겨먹는다고 했을 때 한 달 총 75끼를 먹는다. 한 끼 5000원을 기준으로 밥값만 37만5000원이 든다. 해장국에 소주 한 병을 곁들이는 게 부담스럽다.

매일 8~10시간씩 야간 일을 하면서 한 달에 100만 원은 아무리 따져도 너무 적다. 일반 기업이면 야간작업에 50%의 추가 수당을 줄 것이다. 이 회사에서 대기시간과 이동시간은 근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보통 오후 9시에 출근해 한 시간 대기하고 10시에 작업장으로 이동한다. 일을 시작하는 11시가 되기 전까지 2시간을 그냥 보낸다. 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멀리 갈 때는 편도만 199km를 달려가지만 특별 수당 같은 것은 없다. 일이 일찍 끝나서 오전 3~4시쯤 돌아와도 집까지 차를 태워주거나 택시비 같은 것을 챙겨주는 법이 없다. 대책 없이 지하철역에 앉아 있다가 첫 차를 타고 퇴근해야 한다.

지방에 일이 연이어 있으면 현지에서 숙식을 할 때도 있다. 청소하는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 자고 먹을까? 충청도 출장 첫 날, 일을 마치고 '24시간 고기집'에 갔다. 모두 6명이었다. 새벽까지 일했으니 배가 무척 고팠다.

"3300원 짜리 고기가 없네, 그게 맛있는데."
최 과장이 메뉴판을 보고 아쉬워하더니 삼겹살 5인분을 시켰다. "간단하게 먹고 자야하니까요, 그렇죠?" 억지 동의를 구했다. 고기가 불판에 오르기도 전에 빈속에 소주를 들이켰다. 밥을 같이 시킨다. "된장찌개는 서비스죠?" 최 과장이 아주머니에게 몇 차례나 묻는다. 남자 6명이서 삼겹살 5인분에 소주 7병을 마셨다.

숙소로 모텔 방 2개를 잡았다. 3명 씩 나뉘어 자기로 했다. 계산대에서 주인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5천 원 더 주셔야 돼요. 다섯 명이라고 하셨잖아요." 최 과장이 예약했던 이 과장을 쳐다본다. "이 과장, 6명이라고 예약 안 했어?" 이 과장은 엘리베이터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다섯 손가락을 쫙 폈다. "에이, 한 명 가지고 되게 그러네. 난 옥상 가서 자면 되지, 아니면 화장실에서 자면 될 거 아냐!" 술이 들어간 김씨가 소리를 높였다. 6만 원을 줘야 한다는 주인을 겨우 설득해 5만5천 원을 내고 6명이 잠을 잤다.

'일하며 공부'는 희망사항일 뿐, 시간도 돈도 없다

처음에 나는 밤에 일하고 낮에는 공부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오전 5시 40분, 지하철 첫 차를 타고 퇴근한다. 빠르면 7시 집에 도착한다. 작업이 길어지면 아침 9시 무렵에야 돌아오는 날도 있다. 씻고 밥 챙겨 먹은 뒤 잠을 청한다. 바로 잠들어도 햇빛 때문인지 생체리듬 때문인지 오후 1~2시가 되면 잠이 깬다. 멍한 상태로 한 시간 정도를 보내고 3시쯤 점심을 챙겨먹는다. 졸려서 다시 자다 깨다 하다가 오후 6시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밥 챙겨 먹고 8시에 집을 나선다. 시간을 잘 내봐야 신문 하나 정도 볼 수 있다.

주말도 없다. 기본적으로 주 6일, 한달 26일 근무다. 토요일엔 출근하지 않지만, 사실 그 날도 아침까지 일하다 돌아온 것이다. 어지간히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곤 자기계발이 어렵다. 의식주 외에 쓸 돈도 없다.

모두들 모자를 쓴다. 손씨, 서씨, 황씨, 그리고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최 과장도 쓴다.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다. 대부분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다. "쪽 팔려"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도 있다. 특히 독립 건물이나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따로 있는 가게가 아니라, 지하철역 등 사람 많은 곳을 거쳐 들어가야 하는 장소는 다들 싫어했다. 책임자급인 이 과장도 "더러운 일이지만", "쪽팔린 일이긴 하지만"을 심심찮게 내뱉는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일하러 나가는 길이 괴로웠다. 일찍 도착해도 빌딩 앞을 서성였다. 대기실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이 땀 뻘뻘 흘리며 일할 때보다 더 힘들었다. '시간을 죽이려고' 실없이 주고받는 야한 농담에 웃어주거나 대꾸하기도 싫었다. 진짜 직장이 아니고 잠시 일하는 것일 뿐인데도,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최 과장에게 그만 두겠다는 말을 꺼냈다. 15일간 일한 뒤였다. 그는 담배에 불을 댕겼다. 딸이 냄새난다고 뽀뽀를 안 해 준다며, 담배를 끊었다고 했던 그였다.

"어떡하냐, 저 영감들 데리고...."
7년 동안 나처럼 석 달 이하로 일하고 떠난 사람이 150명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하루 해보더니 다신 안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한 20명 쯤 돌아야 쓸 만한 사람 하나 정도 생기는 것 같다." 사장은 월급을 올려서 사람을 붙잡을 생각은 없고, 적은 인원으로 어떻게든 해내고 그 몫을 관리직들이 나눠 갖자고 했단다.

부장과 과장들은 돌아가며 조금 더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 부장은 어차피 취업도 잘 안 될 텐데 야간작업 좀 하다가 낮에 사무실 근무를 시켜주겠다고 나를 구슬렸다. 거절했다. 그러자 돈을 조금 더 줄 테니 예정돼 있는 지방 출장까지만 도와달라고 했다. 그렇게 총 21일을 일했다. 하지만 그가 챙겨 준 '웃돈'은 고작 5천 원이었다.

2000년 이후 6년간 청소용역업체 70% 증가





청소 노동자 덕분에 우리는 쾌적한 삶을 누린다. 고개를 숙이고 일해야 하는 그들의 근로 여건이 언제쯤 나아질까.

ⓒ 황상호


우리나라에서 청소직 노동자들이 대거 용역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라고 한다. 정부와 기업의 '노동 유연화' 정책에 전문화 바람이 겹치면서 청소 용역업체수가 급격히 늘었다. 민주노총의 2009년 '간접고용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0년에 3997개였던 위생관리용역업체수가 2006년에 6681개로 68% 늘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조사한 2006년 산업·직업별 고용구조조사에 따르면 '청소 및 파출부 관련직'으로 분류된 인원은 46만5000명 정도다. 여기에는 환경미화원, 건물청소원, 세차원뿐 아니라 가사도우미도 포함된다. 청소 노동자들 중에는 여성이 70.64%로 다수를 차지하고, 학력은 중졸 이하(74.8%)가 가장 많았다. 평균연령도 55.8세로 높았다

같은 조사에서 청소직 노동자들은 10명 중 8명이 비정규직(86.5%)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등 민간연구소들이 추정하는 우리나라 비정규직 비율 55%(845만 명)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임금도 낮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2006년 '청소용역 노동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이들의 평균 근로시간은 주 48.9시간이었고 월평균 임금 총액은 72만2586원이었다. 당시 전 산업 평균 임금인 240만원의 1/3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생계비도 안 되는 임금 때문에 직원 식당에서 밥을 사 먹기가 부담스러워, 청소 아주머니들이 건물 내 여자 화장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경우도 많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일한 야간 청소 용역은 그나마 평균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축에 속했다.

청소일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부업 삼아 하기 때문에 임금이 낮아도 괜찮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고용정보원 분석에 따르면 청소노동자 10명 중 6명이 가구주였다. 내가 일한 현장에서도 50대 근로자들에게 모두 부양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노동 강도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다.

청소부 없는 빌딩을 상상해 보라

우리가 다니는 학교, 회사, 공공기관 등에 청소부가 없다고 생각해 보자. 며칠 못 가 쓰레기통에선 쓰레기가 넘쳐나고 화장실에서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말 동덕여대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자 학교가 이틀만에 '쓰레기 하치장'을 방불케 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렇다. 청소는 너무나 필수적인 기능이고, 늘 필요한 서비스다. 지금도 필요하고, 내년에도 필요하고, 그 후년에도 없어선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필수적이고 지속적인 기능을 왜 하나같이 외부 용역에 맡기고, 근로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방치할까? 정말 전문적인 기계작업, 혹은 야간작업이 필요한 경우라면 몰라도 일상적 청소업무는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게 아닌가? 중간에서 용역업체가 떼 가는 수수료만 얹어 주어도 청소원들의 임금 수준은 꽤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전문 용역업체들도 근로자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 주고,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일이 몸에 익은 사람들이 중간에 떠나 버려서 전전긍긍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내가 일 했던 회사도 사람을 못 구해 그렇게 애를 태우면서도 근로 여건을 개선할 생각은 안 했다. 최저가 입찰 때문에 인건비를 억누를 수밖에 없는 용역구조, 대다수 업체들의 영세성, 4대 보험 등의 부담으로 정규직 고용을 꺼리는 현실 등이 그 배경에 있을 것이다.

오늘도 수십 만 명의 청소 노동자가 도시의 찌꺼기들을 쓸어내고 있다. 우리는 그 덕택에 조금 더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과 한숨, 고통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고개를 푹 숙이고 일하는 그들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밝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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