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7, 2010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코스타리카(Costa Rica)는 화산, 커피, 생태관광(에코투어)의 낙원이다. 니카라과와 파나마 사이에 위치한 중미의 작은 나라는 국토의 25%가 국립공원과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도시를 벗어나면 녹색 지대이고 그 자연의 보고에서 화산마저 생생하게 숨을 쉰다. 화산재로 다져진 기름진 땅에는 향 좋은 커피가 자라난다.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코스타리카’는 풍요로운 해변이라는 의미를 지녔지만, 녹음도 그에 못지않게 풍요롭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땅 깊숙이 들어서면 가는 길목마다 울창한 산림으로 뒤덮여 있다. 식물 종수는 아프리카 대륙보다 많고 온갖 새와 나비를 보는 프로그램도 인기가 높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주요 촬영무대 역시 코스타리카였다.
숲속에서 요동치는 활화산
원시의 땅에는 화산이 무려 11개이고, 활화산은 4개나 요동치고 있다. 서북쪽에 위치한 활화산 아레날은 상처를 딛고 코스타리카 최고의 여행지로 떠올랐다. 1968년 화산 폭발로 8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마을은 관광지로 꽃을 피웠다. 화산 주변에는 특급리조트들이 들어섰으며 이색 투어를 즐기는 청춘들은 화산 근처 온천지대로 허니문을 오기도 한다.
아레날 화산 인근에서 즐기는 천연 온천욕.
화산과의 하룻밤은 또렷하고 스릴 넘친다. 뽀얀 연기를 내며 숨 고르기를 하던 화산은 밤만 되면 기이한 괴성을 낸다. 운이 좋다면 화산이 솟구치고 마그마가 붉게 흘러내리는 광경을 코앞에서 목격할 수 있다. 아레날 인근의 열대지역에는 드물게 온천이 조성돼 있는데 마그마에 물이 데워져 흐르는 시냇물이 바로 온천수다. 육감적인 중미의 여인들을 해변이 아닌 온천계곡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묘한 일이다.
아레날이 정열적이라면 수도 산호세에서 1시간 거리인 포아스 화산은 영험하고 웅장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활화산으로 분화구의 크기가 1.5km, 깊이만 300m다. 해발 2,700m 높이에 위치한 분화구는 태고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정상으로 다가설수록 유황냄새는 가득하고 맑은 날에도 분화구 근처는 구름이 자욱하다. 찰나에 드러나는 화산의 속살은 세월의 더께가 쌓인 듯 깊고 인상적이다.
코스타리카는 국토의 25%가 광활한 국립공원과 보호지역으로 구성돼 있다.
때묻지 않은 밀림 속을 거니는 생태관광은 이방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화산재가 빚어낸 ‘커피의 땅’
코스타리카에서 또 하나 명성 높은 것이 커피다. 마치 유럽에라도 온 듯 주민들은 식후에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신다. 오래된 재래시장에 들어서서 만나는 커피를 갈러 온 사람들은 세련된 인텔리층이 아닌 촌부들이다. 이곳 커피는 나라에서 고급 품종만 재배하도록 엄격하게 규제한 탓에 최상급 품질을 자랑한다. 투박한 망에 걸러낸 전통방식의 커피는 진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풍겨온다. 화산재가 빚어낸 비옥한 토양은 커피가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만들어냈는데 화산재가 스쳤던 산자락에는 으레 커피농장이 들어서 있다. 커피 포장에도 포아스 등 화산 그림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다.
아레날 화산으로 인해 만들어진 천연 온천 시냇물.
코스타리카 커피는 화산재가 만든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난다.
코스타리카는 다양한 새와 곤충을 만날 수 있는 생태관광의 천국이다.
커피뿐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식생활을 보면 주변 경치만 에코가 아니라 먹는 음식도 친환경이다. 쌀과 검정콩을 섞은 현지식과 고기 대신 푹 쪄낸 야채를 즐겨 먹는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달리 호리호리한 체구를 지닌 데는 이유가 있다.
주민들은 유럽계, 아르헨티나계 백인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반군이 활동하는 니카라과와 인접하고 있지만 별도의 군대는 없다. 대신 그 예산을 복지에 쓴다. 미성년자의 병원치료가 무료인 복지 선진국이다. 공기도 쾌적하고 치안도 안전해 미국인들에게 은퇴 이민 우선순위로 꼽히는 곳이 코스타리카다. 한국에는 변변한 가이드북 하나 없지만 미국판 코스타리카 여행 안내책자는 웬만한 유럽국가보다 두껍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춤과 노래를 사랑하는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다.
고기 대신 친환경 채식을 즐긴다.
옹기종기 들어선 마을을 둘러보면 흔하게 눈에 띄는 게 축구장이다. 이곳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예전에는 마을이 생기기 전 성당이 먼저 들어섰는데 요즘은 축구장부터 마련한다고 한다. 축구장은 천연잔디가 수북하게 깔려 있다.
도로를 달리면 가로수 위에는 꽃망울이 가득하다. 코스타리카에서는 1년 내내 꽃이 핀다. 밀림으로 들어서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는 생태관광 코스가 펼쳐져 있다. 커피농장과 소를 키울 목초지를 위한 무분별한 벌목 때문에 한때 숲은 황폐해졌고 그에 대한 경각심으로 70년대부터 보호구역이 조성됐다. 숲이 되살아 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렸고 돌아온 숲은 중미 최고의 생태관광 아지트로 사랑받고 있다.
가는 길
수도 산호세까지는 미국 LA나 멕시코시티에서 코스타리카 국적기인 TACA항공이 운행을 한다. 수도인 산호세 중앙 터미널에서 아레날 화산 등 각종 휴양지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코스타리카 입국에 별도의 비자는 필요 없으나 출국 시에는 공항세를 내야 한다. 열대지역에 속하나 주요 관광지들이 대부분 고산지대에 위치해 날씨는 상대적으로 선선하다.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치안은 안전한 편이다.
그곳에도 아픈 전쟁이 있었다. 크로아티아(Croatia) 스플리트(Split)는 외관으로는 아드리아해의 훈풍이 닿는 휴양도시다. 포구에는 한가롭게 배가 드나들고 헝가리에서 출발한 열차의 종착역이 되는 아득한 곳이다. 대리석으로 치장된 산책로에는 야자수들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밤이면 노천 바에 이방인들이 흥청대는 낭만의 항구다.
아드리아해와 접한 스플리트의 해 질 녘 풍경은 고즈넉하다.
푸른 바다를 드리운 발칸 반도의 휴양지는 긴 질곡의 세월을 겪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차 대전 후에는 문화, 언어가 다른 민족과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으로 통합됐다. 90년대 5년 동안이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전쟁과 그 상흔은 도시에 자욱하게 쌓여 있다.
스플리트가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런 생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크로아티아의 제2도시로 달마티안 지방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이곳은 완연한 관광지인 두브로브니크와는 모습이 또 다르다. 보듬고 가려도 북적대는 도시의 뒷골목에는 슬픈 얼굴이 담겨 있다. 지중해의 짙은 바다가 더욱 푸르게 다가서는 것도 도시의 과거가 투영된 탓이다.
전쟁의 상흔을 걷어낸 구시가
황제가 행사를 주최했던 궁전 안뜰 주변의 건물들.
궁전 위에서 내려다보면 붉은색 지붕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스플리트의 상흔을 붉고 단아하게 치장하는 것은 구시가 그라드 지역이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은퇴 후 노년을 보내기 위해 아드리아의 햇살 가득한 땅에 AD 300년경 궁전을 지었다. 그리스의 대리석과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가져다가 꾸밀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 궁전은 동서남북 200m 남짓의 아담한 규모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는 궁전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뻗어 있다. 신하와 하인들이 거주하던 궁전 안 200여 개 집터는 그 잔재가 남아 상점, 카페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황제가 행사를 열었던 안뜰은 석회암 기둥이 가지런하게 도열된 채 여행자들의 쉼터와 이정표가 됐다.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인 스플리트는 구시가지 신시가지가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그라드 지역 어느 곳으로 나서든 발걸음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동문은 재래시장과 연결되고 남문은 바다, 서문은 쇼핑가와 이어진다. 북문을 나서면 녹음이 우거진 공원이다. 궁이 지어질 때만 해도 남쪽 문과 담벼락이 바다와 접한 요새 같은 형국이었지만 성벽 밖을 메운 뒤 바닷가 산책로가 조성됐다.
좁고 구불구불한 구시가를 조망하려면 황제의 묘였던 성 도미니우스(돔니우스) 대성당에 오른다. 숨 가쁜 계단 꼭대기에 서면 구시가의 붉은 지붕과 아드리아해의 탁 트인 푸른 바다가 나란히 늘어선다. 궁전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도 이곳에서는 구식 슬라이드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황제의 궁전과 서민의 삶터
서문 밖 ‘나로드니 트르그’ 거리는 궁전골목과는 달리 현대식 예술작품들과 다양한 럭셔리 숍들이 늘어서 있다. 치즈 빛으로 채색된 옛 거리와 도시의 미녀들이 활보하는 광장은 불과 5분 거리로 연결돼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7월이면 서머페스티벌이 열리고 9월이면 국제영화제의 막이 오른다.
크로아이타의 종교 지도자인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
구시가지의 골목들은 붉은색 지붕과 현대인의 삶이 조화를 이룬다.
구시가지 동문 초입에는 새벽이면 대규모 장터가 들어선다. 지중해의 해산물과 채소, 과일이 쏟아져 나온다. 소박한 물건들이 오가는 크로아티아의 장터 모습이 생생하다. ‘황금 문’으로 불리는 북문을 지나면 크로아티아 종교지도자였던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을 만난다. 동상의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풍문 때문에 유독 엄지만 반질반질하다.
스플리트의 구시가가 낭만을 더하는 데는 해변 노천 바들이 빼곡히 들어선 오바라 히르바트스코그(Obala hrvatskog) 거리가 한몫을 한다. 자정이 넘도록 관광객들과 이곳 청춘들이 뒤엉켜 맥주를 마시거나 벤치에 앉아 항구와 바다를 바라보며 데이트를 즐긴다. 이 거리를 찾을 때만은 모두들 한껏 멋쟁이가 된다. 매끈한 스포츠카들이 주차장으로 밀려들며 굉음을 내는 모터사이클이 오가기도 한다. 파란 하늘, 창가의 흰 빨래, 파스텔톤의 담벼락이 어우러진 한낮의 구시가지 골목들과는 또 다른 단상이다.
구시가지 동문 초입에는 새벽이면 대규모 장터가 들어서 장관을 이룬다.
해변 노천 바들이 빼곡히 들어선 오바라 히르바트스코그 거리는 관광객들과 이곳 청춘들이 뒤엉켜 항상 흥청거린다.
스플리트는 항구, 기차역, 버스터미널이 한 곳에 어우러져 있다. 밤 열차를 타고 새벽녘에 도착한 이방인들과 새벽 일찍 낯선 곳으로 버스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의 포근한 정경이 터미널 앞 카페테리아에서 펼쳐진다. 헝가리에서 열차를 타고 스플리트에 닿는 여정은 이국적이며,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로 이어지는 길도 해안 절벽과 지중해풍의 낯선 마을을 만나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스플리트에서의 만남과 이별은 모두 드라마틱하다.
스플리트의 해변 산책로는 마르얀 언덕으로 이어진다. 푸른 숲과 오래된 교회를 스쳐 지나면 항구와 바다와 구시가가 자맥질을 하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크로아티아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조각가 메슈트로비치 역시 노년의 안식처로 이곳 스플리트를 선택했다. 그 편안한 도시에 기대 있으면 전쟁의 아픔은 아련한 추억으로 다소곳하게 모습을 감춘다.
가는 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스플리트행 열차가 출발한다.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오는 장거리 버스도 스플리트를 경유한다. 이탈리아 안코나 에서 페리를 이용해 도착할 수도 있다. 스플리트는 다른 동유럽 국가와 달리 열차보다는 버스 교통이 발달한 편이다. 인근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버스는 매시간 출발한다. 4시간 30분 소요. 열차 역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는 ‘sobe'로 불리는 민박집을 알선해 준다.
로스앤젤레스의 북쪽, 그리피스 파크의 언덕에 우뚝 서 있는 9개의 거대한 알파벳 글자 'HOLLYWOOD'. 이 유명한 사인은 이곳이 미국, 아니 지구를 대표하는 영화의 도시임을 알리고 있다. 할리우드 사인은 1923년 지역의 주택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HOLLYWOODLAND' 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다. 이후 할리우드가 영화 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얻게 된다.
할리우드 사인은 영화가 만들어내는 빛과 어둠을 동시에 보여준다. 수많은 스타 지망생들이 멋진 캐딜락을 끌고 그 사인 아래를 달리는 날을 꿈꾸지만, 그 'H' 글자 위에서 뛰어내려 죽은 영화배우도 있었다. 또한 영화인들은 이 글자들을 가지고 놀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 [투모로우]에서는 거대한 토네이도가 사인을 부수는 것으로 대재난이 벌어졌음을 알리고, [오스틴 파워 3 - 골드멤버]는 사인 아래 닥터 이블의 기지를 숨겨 두고 있다.
명예의 거리에 나의 별을 남기자
세계가 인정하는 셀레브리티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Hollywood Walk of Fame)에 입성해 자신의 별을 남기는 것이다. 영화, 텔레비전, 공연 예술 등의 분야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은 스타들의 이름을 새긴 황금의 타일이 이 대로의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1950년대부터 전통을 이어온 이 별의 숫자는 2400개를 넘기고 있는데, 할리우드 대로와 바인 스트리트에 걸쳐져 있는 거리의 길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찰리 채플린은 1956년에 별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지만 당시 매카시 선풍으로 인해 그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1972년에야 자신의 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5월에는 도날드 덕, 심슨 가족에 이어 슈렉이 가상의 캐릭터로서 이 거리에 들어서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명예의 거리는 매년 1천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시사회를 하려면 바로 이 극장들에서
그라우맨스 차이니즈 극장은 스타들의 손도장으로 유명하다.
황금기 할리우드를 가득 채웠던 영화 산업의 시설들 중 상당수는 시 외곽으로 빠져 나갔다. 그럼에도 아직 이 지역은 영화사의 면면을 기억하게 하는 역사적 유물들로 가득하다. 특히나 전통을 자랑하는 영화관들의 자태는 왜 할리우드가 할리우드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라우맨스차이니즈 극장(Grauman's Chinese Theatre)은 가장 유명한 곳 중의 하나인데, 아시아 스타일로 지어진 우아한 극장 건물은 멀티플렉스에 익숙해진 영화 관객들의 상식을 깨끗하게 깨어버린다. 또한 극장 앞바닥을 가득 채운 여러 스타들의 손과 발자국 때문에 유명세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손과 발뿐만 아니라 해롤드 로이드의 안경, 그라우초 막스의 담배, 해리 포터의 마법봉 등의 상징물들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 극장은 [스타워즈]를 비롯한 여러 영화들의 시사회장으로도 유명하지만, 종종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포레스트 검프]와 [스피드]에서는 이 영화관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상영되고 있는 모습이 나오고, [오스틴 파워]의 주인공들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으로 자신들이 방금 벌인 일들의 영화판을 보는 극장도 바로 이곳이다. 1940년대 중반에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개최장이기도 했는데, 현재는 근처에 있는 코닥 극장(Kodak Theatre)에서 열린다. 브로드웨이에 있는 극장가(Broadway Theater and Commercial District)는 1920~31년 사이에 지어진 12개의 궁전과도 같은 영화관들로 유명하다. 찰리 채플린의 [시티라이트]의 시사회로 문을 연 로스앤젤레스 극장(Los Angeles Theatre)은 [뉴욕뉴욕] [미녀 삼총사]에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기도 했다.
비벌리 힐스 아이들의 집은 어디에 있나요
2천 년대의 미드 열풍 이전에도 미국산 드라마 열기는 만만치 않았다. 1970~80년대 [기동순찰대(CHiPs)] [A 특공대(The A-Team)] [미녀 삼총사(Charlie's Angels)] 등 원조 미드 인기작들 중에는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드라마 제작 스튜디오가 이 지역에 몰려 있기도 했지만,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 빛나는 도시는 성공을 꿈꾸며 모여든 사람들이 액션 활극을 벌이기에도 적당한 장소였으리라.
1990년대에 등장한 [비버리 힐스 아이들(Beverly Hills, 90210)]은 부유층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미드의 새로운 경향을 예고했다. 비버리 힐스는 로스앤젤레스 서쪽 고지대에 있는 세계적 부촌으로, 톰 크루즈,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초특급 스타들의 대저택이 모여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쇼핑가인 원조 로데오 거리(Rodeo Drive)에서 비버리 힐스가 어느 쪽인지 물어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신이 만약 리처드 기어라면 [프리티우먼]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 영화의 현장인 비벌리 윌셔 호텔(Beverly Wilshire Hotel)이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프리티 우먼]의 현장인 비벌리 윌셔 호텔에서 현대의 신데렐라를 꿈꾼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여기에서 공부해
조지 루카스의 기념비적인 SF 영화 [THX 1138]은 USC 재학 시절 만든 단편을 발전시킨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도시이니만큼 배우나 감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수학 천재들의 범죄 드라마 [넘버스]에 교정을 빌려주기도 하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는 대표적인 영화학도의 산실이다. 이 대학의 영상예술학교(School of Cinematic Arts)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영화학교로, 조지 루카스, 로버트 저메키스 등 명감독들을 배출해냈다. 1973년 이래 매해 한 명 이상의 졸업생이 아카데미와 에미상 후보로 뽑히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으며, 200개 가까운 수상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1960년대 초반 월트 디즈니의 주도로 설립된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는 애니메이션 분야의 인재들을 배출해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비틀쥬스]의 팀 버튼, [이온 플럭스]의 피터 정 등이 이 학교 출신이고, [라이온 킹] [토이 스토리]의 크레디트 곳곳에서 졸업생들의 이름을 볼 수 있다.
거대한 꿈의 공장의 실체를 확인하자
도시 북쪽, 할리우드 사인 근처에 있는 유니버설 시티는 이름 그대로 영화사 유니버설 픽처스의 터전이 되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 있는 거대한 영화 스튜디오이자 테마 파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스 할리우드(Universal Studios Hollywood)'는 할리우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생생히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20세기 초반 유니버설이 무성 영화를 찍을 때부터 영화 촬영장을 둘러볼 수 있는 투어는 존재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테마 파크형의 투어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이제 관람객들은 영화 촬영 세트만이 아니라 돌발적인 이벤트, 스턴트 시범, 라이브 퍼포먼스 쇼 등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백 투더 퓨처] [비틀쥬스] [킹콩] [심슨 가족] 등 여러 히트작들을 테마로 한 세트와 놀이 기구들이 인기를 모아왔는데, 2011년에 개장될 예정인 [트랜스포머]도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거대한 영화 세트장이자 놀이동산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스 할리우드'.
월트 디즈니의 흔적을 찾아라
음악 공연과 영화에서 꾸준히 이용되고 있는 디즈니 콘서트홀.
할리우드의 꿈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이름은 월트 디즈니다. 미국은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의 마음 속에 자라온 온갖 종류의 꿈이 뒤엉킨 땅이다. 할리우드의 영화는 바로 그 아메리칸 드림을 먹고 자라왔다. 그리고 디즈니의 꿈은 가장 꿈만 같은 꿈, 상상으로만 그릴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꿈이었다. 시카고 예술학교의 야간 과정을 다니던 디즈니는 학교 신문의 만화를 그리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카툰 스튜디오를 만들기 위해 할리우드로 온다. [증기선 윌리]로부터 본격화된 그의 모험은 1930~4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황금시대를 열게 된다.
지금도 이 도시 곳곳에서 월트 디즈니의 이름을 만날 수 있는데, 2003년에 문을 연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이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딱 보기만 해도 '프랭크 게리'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날렵하면서도 웅장한 건축물은, 금방이라도 아기 코끼리 덤보와 함께 하늘을 날아오를 듯하다. 이 건물은 그 유명세 덕분에 [심슨 가족]에 패러디되기도 했다.
스프링필드 마을이 프랭크 게리를 불러 새로운 콘서트홀을 만드는데, 번즈 사장은 이 건물을 교도소로 바꾸어 버린다. 범죄자 스네이크는 그 감옥에서 탈출하며 말한다.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감옥도 나를 붙잡아 둘 수는 없어."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음악 공연을 위해 주로 사용되지만, 2003년 [매트릭스 레볼루션]의 시사회장으로 사용되는 등 영화와도 꾸준히 인연을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