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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칸 (프랑스) 세계의명소
May 20, 2011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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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에 비낀 바다는 쪽빛이다. 빛바랜 열차 안에는 세련된 프랑스어가 빠르게 흐른다. 1년 중 300일가량 햇살이 비친다는 리비에라의 지중해는 강렬하다. 니스, 칸을 품은 코트다쥐르 지방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그 도시들에 반해 샤갈, 마티스가 여생을 보냈고, 해마다 5월이면 전 세계 스타들이 영화제가 열리는 칸(칸느, Cannes)으로 모여든다. 열차에서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가슴은 빠르게 요동친다. 니스, 칸은 여행자들에게는 ‘본능의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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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의 해변은 운치 있는 호텔들과 여유로운 산책을 하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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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해변 '프롬나드 데 장글레'

본능은 테제베(TGV)보다 빠르게 전이된다. 파리를 두세 번 배회할 때쯤이면 니스, 칸은 또 다른 열망이 되고 마음은 벌써 코트다쥐르행 열차에 실려 있다. 니스역에서 해변이 가까운 것은 그래서 고맙다. 새로 생긴 매끈한 트램과 다운타운을 채운 가게들도 성급한 마음을 다독이지는 못한다.
골목을 달려 마주친 니스의 바다는 아득하다. 빼곡히 도열한 낮은 건물들의 꼬리와 파도의 포말이 수평선까지 맞닿아 있다. 이 해변을 사람들은 애완견을 끌고 더딘 산책으로 걷고, 자전거를 끌고 여유롭게 지난다.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 프랑스 남동쪽 끝 해변의 이름이 '영국인의 산책로'다. 예전 영국 왕족이 길을 가꾸고, 100여 세대의 영국인이 이곳에 정착해 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먼 영국에서도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니스의 해변은 휴양을 위한 안식처였다.
봄의 문턱을 넘어섰을 뿐인데 해변은 햇살에 몸을 맡긴 이방인들로 채워진다. 파리의 골목에서 오랜 건물을 응시하며 카페를 메우던 파리지앵들의 단상과는 또 다르다. 이들은 해변 위 의자에 나란히 몸을 기댄 채 햇살에 부서지는 코발트블루의 바다를 본다. 그리고 바다만큼 깊은 상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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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의 산책로인 ‘프롬나드 데 장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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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 구시가 골목골목에서 향기로운 카페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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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유혹에서 헤어날 쯤이면 니스가 간직한 다른 매력들에 시선이 담긴다. 니스의 구시가는 해변과 맞닿아 있다. 구시가 살레야 광장(Cours Saleya)에는 꽃시장과 벼룩시장이 들어서고, 골목마다 앙증맞은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수줍게 얼굴을 내민다. 낯선 가게에서 기울인 커피 한잔에는 바다향과 퀴퀴한 건물향이 녹아들어 있다. 힘겹게 오른 구시가 꼭대기의 콜린성(La Colline du Château) 공원은 니스 최고의 전망으로 화답한다.
니스는 발걸음을 뗄수록 다채롭다. 구시가와 신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장 메드생 거리(Avenue Jean Médecin)는 지척거리다. 분수와 높게 솟은 동상이 인상적인 마세나 광장(Place Masséna)은 이국적인 풍경으로 니스의 중심이자 경계가 된다. 마세나 광장은 매년 니스 카니발이 열리는 화려한 공간이다. 샤갈, 마티스의 흔적도 도시에 묻어난다. 해변 대신 고즈넉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미술관에 서면 그들이 이 도시에 머물며 느꼈을 상념이 전해진다. 마티스는 ‘모든 게 거짓말 같고 참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이다'며 니스를 묘사하기도 했다.
스타들의 숨결이 담긴 ‘욕망의 칸’

니스에서 칸으로 이동하면 호흡은 더욱 빨라진다. 니스에서 칸까지는 열차로 불과 30분. 칸은 영화제의 도시답게 기차역부터 이질적이다. 플랫폼에는 영화 포스터들이 즐비하게 붙어 있고, 최초로 영화를 만든 뤼미에르 형제의 대형 사진도 그려져 있다. 임권택, 전도연, 박찬욱 등 한국 영화인들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칸은 어느새 친숙한 도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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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련 각종 포스터가 붙어 있는 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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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도심을 오가는 꼬마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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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도로에는 영화제의 상징인 종려나무가 늘어서 있어 운치를 더한다. 가로수들은 붉은 꽃들로 단장 됐고 그 아래로 꼬마열차가 지난다. 부티크 숍들로 채워진 바닷가 크루아제트 거리는 니스의 해변보다는 북적임이 강하다. 그 해변 끝에 들어선 국제회의장에는 레드카펫이 깔려 있어 감정이입을 부추긴다. 이방인들은 과한 포즈와 길 한편에서 유명스타들의 핸드프린팅을 찾는 것으로 욕망을 대신한다. 칸에서는 쉐케르 전망대에 오르거나 생트 마르그리트 섬(Île Sainte-Marguerite)으로 향하는 유람선에 기대 숨 가쁜 도시의 정취를 여유롭게 음미할 수도 있다.
가는 길
프랑스 파리를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파리에서 니스까지 테제베(TGV)로 5~6시간이 소요된다. 니스에서 칸은 열차가 수시로 오간다. 칸 보다 니스지역의 숙소나 물가가 저렴한 편이다. 니스역 인근에 숙소를 마련하고 칸까지 당일치기 투어를 하는 게 편리하다. 프랑스 관광청을 통해 다양한 현지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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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반도 (캐나다)
December 16, 2010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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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에 닿는 이끼의 느낌이 보드랍다. 호수 옆으로 숲길은 아득하게 이어진다. 땀에 젖은 몸이 바위 해안에서의 다이빙으로 순간 정갈해진다. 고개를 돌리면 호숫가 마을에는 단아한 포구가 담겨 있다. 캐나다 오대호의 숨은 보물 브루스 반도(Bruce Peninsula)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이다. |

브루스 반도 북쪽 끝에 위치한 토버모리의 전경. 아늑한 포구마을은 따사롭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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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가 거대한 자연으로만 채색되는 것은 아니다. 살갑고 정겨운 정취도 여행자의 가슴을 적신다. 캐나다 오대호의 브루스 반도는 짙푸른 호숫가 마을과 두 곳의 국립공원을 품은 땅이다. 최근 설문에서 '캐나다의 숨겨진 보물 같은 여행지'로 최상위에 꼽힌 곳이기도 하다.
낯선 여행지라고 해서 대륙의 외딴 모퉁이에 위치한 것은 아니다. 토론토 북쪽, 자동차로 3~4시간 달리면 만나는 반도는 동쪽으로는 조지안 베이(georgian bay), 서쪽으로는 휴런 호수(Lake Huron)를 끼고 있다. 점 같은 섬들을 넘어서 수평선 위를 단장한 크리스탈 물빛은 예상과 달리 바다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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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어튼 상공에서 내려다본 조지안 베이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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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국립공원

브루스 반도의 귀한 보석은 브루스 국립공원이다. 로키산맥처럼 높은 산세나,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스펙터클한 장면이 아니더라도 잔잔한 감동이다. 길 위를 걷다 보면 그 전율에 낮고 묵직한 힘이 실린다. 국립공원 내의 숲길은 호수를 따라 20여 km 이어진다. 호숫가에는 1만 년 세월 동안 치이고 패였다는 절벽과 바위가 늘어서 있다. | |
조지안 베이의 푸른 호수를 오가는 카약들. |
브루스 국립공원은 브루스 트레일의 핵심 루트다. |
하이킹과 다이빙이 가능한 그로토 지역은 브루스 국립공원 내에서 인기가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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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는 해안동굴이 위치한 '그로토'(Grotto)로 향하는 루트다. 숲을 지나 해안절벽을 내려서면 해식동굴이 나타나고 동굴 밑바닥은 호수와 연결돼 있다. 빛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동굴 인근에서 사람들은 다이빙을 즐긴다. 호수에서 이뤄지는 생소한 다이빙은 마니아들에게도 꽤 인기가 높다.
브루스 국립공원의 호숫가 숲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이킹 코스인 브루스 트레일의 연장선이다. 캐나다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걷기 여행 루트는 반도 북쪽 끝에서 나이아가라까지 800여km 이어진다. 브루스 반도에 속한 코스만 450여km에 해당한다. 반도의 관문인 위어튼(Wiarton)을 시작으로 조지안 베이 쪽에 위치한 라이온스 헤드, 토버모리 등의 해안마을이 하이킹 코스에 기대 있다. 브루스 트레일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생태보존 지역이기도 하다. 반도 일대는 'Dark Sky'(검은 하늘) 지역으로도 지정돼 있다. 생명이 숨쉬는 땅에 등을 대고 누우면 '빛의 공해'에 찌들지 않는 어둠 속의 에코투어가 실현된다. | |
화분섬은 패덤 파이브 국립공원의 상징적인 이정표다. |
브루스 트레일은 호숫가 절벽을 따라 수십km 이어지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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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는 캐나다 최초의 수중 국립공원도 품에 안았다. 광활한 동서해안을 지닌 캐나다의 첫 번째 수중 국립공원이 호수와 닿아 있는 것도 이례적이다. 패덤 파이브(Fathom Five) 수중 국립공원은 호숫속 침식지형뿐 아니라 이색 섬들, 섬들의 식생, 호수에 잠겨 있는 배들까지 모두 소중한 자산이다. 꽃이 심어진 화분 모양을 닮은 화분섬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로 투박한 이곳 지형의 특색을 엿볼 수 있다. 이방인들은 다이빙이나 트래킹으로 호수, 해안과 은밀한 소통을 한다.
행복하고 아늑한 포구 '토버모리'

반도 북쪽 끝에 매달린 호수마을 토버모리(Tobermory)는 두 국립공원과 맞닿은 아늑한 포구다. 호수로 나서는 어선과 요트들은 이곳에서 아련하게 숨을 돌린다. 1850년대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에 의해 콜린즈 포구에서 명칭이 바뀌었지만 한적하게 고기잡이배들이 드나드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 |

포구마을 토버모리는 브루스 국립공원, 패덤 파이브 국립공원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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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서 바라보는 포구 풍경은 평화롭다. 낮게 드리운 포구 양쪽으로는 앙증맞은 노천바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호수의 잔물결에 맞춰 행복이 가슴까지 밀려드는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피겨스타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지난 여름 휴가차 방문한 곳도 바로 토버모리와 브루스 국립공원 일대였다. 그녀는 아늑한 포구와 바위 해안에 머물며 지난한 마음을 다독이고 앳된 미소를 되찾았다. | |
호수마을 토버모리는 800km가 넘는 브루스 트레일의 출발점이다. |
브루스 국립공원에서는 울창한 숲을 벗어나면 아득한 수평선의 호수가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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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버모리에서 서남쪽으로 내려서면 소블 비치(Sauble Beach)다. 길이가 12km로 담수호 모래사장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며 캐나다의 10대 비치로도 선정돼 있다.
해가 지면 숲과 호수가 만나는 아늑한 숙소에 짐을 푼다. 모닥불 사이로 세상 사는 얘기는 두런두런 쏟아진다. 이곳 주민들이 최고로 꼽는 '화이트피시(흰 살 생선)' 냄새가 구수하다. 호수와 숲만큼이나 브루스 반도에서 인상적인 것은 자연의 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대도시를 벗어나 서너 시간 달려왔을 뿐인데 만나는 낯선 이들은 모두 구수하고 다정다감한 얼굴이다.
가는 길 에어캐나다 등이 밴쿠버를 경유해 토론토에 닿는다. 토론토가 반도 여행의 출발 기점으로 북쪽으로 향하면 관문인 위어튼(Wiarton)을 시작으로 라이언스 헤드, 브루스국립공원, 토버모리 등이 늘어서 있다. 중간 중간 호수의 정경과 조우할 수 있다. 브루스 트레일 인근은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드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곳곳에 산악자전거용 코스도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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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의 도시 '아테네'
November 2, 2010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1아고라, 너를 드러내어, 너 자신을 알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고, 자기자신이 누구인가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옛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 “너 자신을 알라”는 그 철학적 대화의 효용성에 대해서 말해준다.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하다보면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알몸으로 드러난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것. 그것이 철학의 기본이라고, 그는 말한다.
아테네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죽은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가 주로 출몰한 곳은 아고라였다. 아고라는 그리스식 민주주의가 직접 이루어진 공간이다. 아테네의 시민들은 이곳에서 재판도 열고, 시장도 보고, 모여서 공동체에 관한 여러 가지 결정도 내렸다. 직접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철학이 실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기도 했다.
소크라테스가 방문하기 전, 아고라를 휘어잡고 있는 이들은 소피스트들이었다.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목숨이 걸린 재판에 이르기까지 대화와 설득으로 해결하려했던 이들에게 있어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재능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사람들에게 말 잘하는 법, 즉 웅변술을 돈 받고 가르쳤다. '현자'를 뜻하던 ‘소피스트’라는 단어는 '궤변가'를 뜻하는 말로 추락했다. 중요한 건 말재주가 아니라는 것을 집요한 문답으로 밝혀낸 소크라테스가 결국 아테네 시민들의 손에 의해 죽은 것은, 스스로를 안다는 것이 사실은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까?
디오게네스의 등불에 나를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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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왕 알렉산드로스다.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라며 위풍당당하게 그를 내려다보는 청년 앞에서 남루한 옷자락 속으로 손을 넣어 긁적거리며 “햇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주시오”라고 말했다는 철학자 디오게네스. 시노페에서 태어나 일명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라 불리는 그는 퀴닉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문명을 반대하고 원시적인 생활을 추구한 그는 가능한 한 욕망을 줄이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며 스스로 만족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두었다.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신에게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던 것. 그의 세계관에 맞게, 그의 외양은 초라했다. 한 벌의 옷, 한 개의 지팡이, 그리고 약간의 소지품이 든 자루. 그리고 그의 집은 통이었다. 그의 철학이 퀴닉학파라는 이름을 얻은 이유는 통속에 사는 그의 모습이 개(퀴온Kyon)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이나 잘 먹고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으며 불평없이 정직하게 살아가는 개에게 찬사를 보내며 개처럼 살고자 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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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는 헐벗고 다녔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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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에피소드만큼이나 알려진 그의 기행은, 환한 대낮에 등불을 켜서 들고 다녔다는 것이다. 진실한 사람, 정직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며 들고 다녔던 그 등불은 “디오게네스의 등불”이라는 이름으로 구전되었다.
현재 아테네에는 ‘디오게네스의 등불’ 기념비라고 알려진 것이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동쪽에 있는 리시크라테스 기념비(Lysikrates Monument)는 BC 335 년경 소년 합창대회의 스폰서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석이다. 그러나 그 생김새 때문인지 사람들은 이 비석을 디오게네스의 등불이라 부른다. 현재 이 비석이 자리하고 있는 수도원은 1810년 바이런 경이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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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신전, 매연에 노출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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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답지만 폐허에 가까운 파르테논 신전은 기구한 시절을 지나왔다.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지어진 이곳은 비잔틴 제국이 통치할 때는 동방정교의 교회가 되었다가, 십자군에 의해 점령당한 후 카톨릭 교회가 되기도 했다.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할 때는 모스크가 되기도 하였으나, 성격이야 어찌되었건 비교적 잘 보존된 셈이었다. 하지만 1687년 베네치아공화국이 아테네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를 공격했을 때 파르테논 신전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탄약고로 사용하던 파르테논 신전에 베네치아 군의 구포탄이 날아든 것이다. 이후 이어진 베네치아군의 약탈, 영국의 엘진의 유물 반출 등을 통해 파르테논 신전은 되돌릴 수 없는 폐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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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신전은 지금도 산성비에 노출되어 조금씩 부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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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파르테논 신전의 적은 ‘산성비’다. 파르테논 신전을 구성하고 있는 석회석, 대리석은 탄산칼슘을 주성분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또한 산에 녹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아테네가 대도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공해에 의한 그리스 고대유물들의 침식 현상이 본격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은 1970년대. 그리스 문화부에서는 에렉테이온의 여상주와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 등에서 심각한 훼손의 흔적을 발견했다.
1990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아테네 시가 본격적인 오염 규제정책을 발표하면서 피해는 줄어들고 있지만, 공해에 노출된 파르테논 신전으로서는 공해자체를 현격히 줄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보호방책이 없다. 다행히 시끄럽고 공해로 가득차 있기로 유명한 아테네도 최근들어 상당한 개선을 보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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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경기장, 벌거벗고 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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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776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 4년마다 한번씩 열렸던 이 경기는 시민권이 있고, 범법행위를 한 적이 없으며, 제우스에 대해 불경한 행동을 한 적이 없던 남자만 참가할 수 있었다. 여성의 경우는 관전조차도 금지되어 있었는데, 이 경기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이 벌거벗은 채였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까? 색다른 것은, 당시 고대 올림픽에는 운동선수만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시인, 철학자, 예술가들도 참가해 문학, 예술, 연극 등을 겨루었다는데 현재에는 그 전통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
서기 393년 로마제국의 데오도시우스 1세가 반 기독교행사라고 규정하면서 제293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고대 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역사 속에 묻힌 올림픽을 1896년 되살린 이는 프랑스의 쿠베르탕 남작. 빈곤한 그리스를 대신하여 돈을 쾌척한 그리스의 대부호 아베로프 덕분에, 아테네는 고대 경기장을 복원하여 제 1회 근대올림픽 개최지에 걸맞는 대리석 좌석의 경기장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아베로프의 동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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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승전을 알리고 죽은 병사, 그도 누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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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리석으로만 된 이 경기장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고대경기장과 같이 말발굽 모양의 구조라는 것.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로마시대에는 투기장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에도 각종 육상경기와 행사 등에 사용되고 있다. 28회 2004 아테네 올림픽 당시에는 개막식과 폐막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이곳은 또한 마라톤의 도착지점이기도 하다. BC490년, 아테네를 공격한 10만의 페르시아군을 1/5밖에 안 되는 2만의 아테네시민군이 물리친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42.195km를 달려온 병사의 죽음을 기리는 이 뜻깊은 경기는 올림픽의 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나저나, 그 병사도 누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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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우스 항구, 가식과 위선을 벗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자유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만난 남자,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실존인물. 그는 거침없는 삶의 에너지를 발산하여 그가 ‘두목’이라 부르던 소설 속의 ‘나’를 감명시켰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가식을 벗은 자유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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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둘이 만나는 곳이 바로 피레우스 항이다. 피레우스 항은 아테네의 외항으로, 기원전 490년에 테미스토클레스에 의해 건설되었다. 아테네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10km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곳으로, 유럽 각국으로 오가는 배들은 모두 이곳에서 출발하고, 또 도착한다. 에게해의 크루즈선들도 모두 이곳으로 온다. 크레타 섬, 키클라데스 제도, 사모스, 낙소스, 파로스, 미코노스, 사로니코스 제도, 도데카니사 제도 등. 지중해를 여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될 항구다.
그곳의 카페에서 크레타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나’는 눈빛이 강렬한 한 남자를 만난다. 둘은 함께 크레타로 건너가고, 그곳에서 ‘나’는 조르바의 삶의 철학을 두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인. 그의 삶은 어설픈 철학들을 가차없이 부순다.
크레타섬에 있는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 쓰여있는 말은, 그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이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할법한 말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인간이니까”. ‘나’가 묻는다. “인간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요 조르바?” 다시, 그가 대답한다. "글쎄, 자유라는 거지” 그렇다. 모든 가식과 위선을 벗어버렸을 때, 인간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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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 누드조각상들이 가득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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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옛 그리스인들을 보고싶다면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가면 된다. 물론 당시의 그리스인들이 이토록 멋진 몸매를 하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사실적으로 묘사된 나체의 조각상들이 박물관을 꽉꽉 채우고 있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기원전 4세기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가 만든 자신의 조각상을 보고 놀라 "도대체 프락시텔레스는 어디서 내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는가?"라 했다는 이야기는 물론 지어낸 에피소드이겠지만, 당시 그리스인들이 그 조각상을 보고 놀라 “도대체 프락시텔레스는 언제 아프로디테 여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는가?”라며 수근거렸을 법하다.
1891년에 문을 연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은 고대 그리스의 건축을 본떠 지어졌다. 조각상뿐 아니라 선사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만들어진 조각, 회화, 공예품들이 한곳에 모였다. 조각상은 대부분 그리스의 신들을 모델로 하고 있는데, 입고 있는 옷이 없다보니 소지품으로 정체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BC46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포세이돈 청동상은 멋진 자세로 뭔가를 던지기 위해 팔을 뻗고 있는데, 그 손에 든 것이 삼지창인지 번개인지 알 수 없어 “제우스 또는 포세이돈 청동상”이라 표기해놓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리 포세이돈 청동상이라 알려진 이유는 아마도 바닷 속에 빠져있던 것을 건져올렸기 때문인 게 아닐까. 1928년 아르테미시온의 바닷속에서 건졌기에, 아르테미시온의 포세이돈상이라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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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조각들은 사실적인 미를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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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베투스, 아테네를 굽어보는 민둥산

아테네는 벌거벗은 산에 둘러싸여있다. 큰 강이 없는 아테네는 늘 물 부족에 시달린다. 그 이유는 “아테네”라는 도시 이름의 유래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어느날 포세이돈과 아테네는 이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달겠다며 다투었다. 결국 이들은 시민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준 신의 이름을 도시에 달겠다고 제안했다.
리카베투스의 민머리에서 보는 아테네의 전경은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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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이돈이 준 선물은 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삼지창으로 바위를 내리쳐, 물이 솟아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물은 소금물이었다.
아테네는 방패로 땅을 내리쳐 올리브나무가 자라나게 하였다. 올리브 기름과 올리브 열매를 시민들에게 준 것이다. 이를 본 시민들은 아테네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에 화가 난 포세이돈은 아테네에 ‘물 부족’이라는 저주를 내렸다.
이토록 물이 부족한 아테네에 산에까지 물이 안 올라가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리카베투스가 민둥산인 이유는 신화에서 나온 바로 그 이유 때문일까? 하지만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바위는 물을 품기에 좋다. 그 덕분에, 리카베투스는 완전히 헐벗은 산은 면하게 되었다. 리카베투스는 ‘늑대들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산기슭에 우거진 소나무숲에 늑대들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리카베투스 산이 생기게 된 유래도 아테네 여신과 관계가 깊다. 아테네는 막 태어난 에리크토니오스를 바구니에 담아 케크롭스의 딸들에게 맡기며 “절대 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는 아크로폴리스를 만들 산을 가지러 팔레네로 갔는데, 그 사이를 참지 못한 케크롭스의 딸들이 바구니를 열어본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아테네는 화를 내며 들고오던 산을 집어던졌는데, 그것이 바로 리카베투스가 되었다고 한다. 리카베투스의 맨숭맨숭한 정상에는 아기오스 조르기오스라는 교회가 있는데, 이곳까지 오르면 아테네의 전망이 기다리고 있다. 민둥산이기에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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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여행 어때요?
October 20, 2010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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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밀라노 두우모 광장~~
October 13, 2010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유럽의 도시에서 제 아무리 아름답고 이름난 광장을 가보아도 와- 감탄사 한 번하고는 돌아서면 그만이었다.
머무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와닿는 공간인 적은 없었는데, 라퀼라의 광장에서는 어, 여기서 놀다 가고 싶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퀼라L'aquila는 이탈리아 아브루초Abruzzo 지방의 중심도시. 해발 2914미터의 그란 사소Gran Sasso 산악지대가 병풍처럼 깔려있는 곳이다. 여행지로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라 사전에 여행정보 얻기도 쉽지 않았는데, 론리 플래닛에서 아브루초 지방의 첫번째 '가봐야 할 도시'로 꼽았길래 냉큼 시외버스를 탔다.
도시 자체가 해발 720미터에 있고 멀리 눈 덮인 산이 보이는 곳이니 이탈리아의 온화한 기후와는 상관없이 기온이 낮다해서 단단히 챙겨입고 가야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13세기에 지어진 두오모 앞마당에 시장이 펼쳐졌다.
두오모 뒤로는 눈 덮인 산이 보이는데, 나중에 보니 도시 어디서나 눈 덮인 산이 보였다.
여행지에서 부딪치는 현지 사람들에 대한 인상이 어쩌면 그 동네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어느 지역이 특별히 좋았다거나 나빴다거나 하는 건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그간 만났던 이탈리아 사람들의 끈적함, 추근댐, 결국은 사기였나 하는 황당함 등이
라퀼라에서는, 설산에서 부는 칼바람 때문인지, 그 기세가 누그러져 보였다.
참아줄 수 있을 만큼 다정하게 친절하고, 참아줄 수 있을 만큼 은근하게 느껴졌다.
아마 관광객이 덜 찾는 지역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행안내소에서는 곱게 이탈리아식으로 화장한 중년여자가 영어 브로셔를 열심히 챙겨주며 두오모에서 시작하는 관광코스를 알려주었다. 오랫만에 영어를 맘껏 써보자는 요량인 것 같기도 하고, 라퀼라의 관광명소에 대한 자부심으로 넘쳐나는 것 같기도 했다. 시장의 아저씨들도 여전히 눈 마주치면 윙크를 기본으로 한 관심을 보여왔지만 마구잡이로 들이대지는 않았는데, 꼭 도시처녀를 구경하는 시골총각들 같아 귀여웠다.
너무 가까이 가면 더 다가올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호의를 받아주면 그 이상 넘어오려는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한 개념이 완전 다른 이탈리아 사람들이지만, 여기서는 마음 놓고 눈 마주치는 사람마다 본죠르노~하고 인사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렇게 끈 안 묶인 채로 돌아다니는 개를 본 적이 없어서 얘들이 스윽 옆을 지날때면 오싹했는데, 저들은 지나가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제 볼일만 본다. 그리고 가끔 일어나 볕 잘드는 자리로 옮겨가며 낮잠을 잔다.
두오모 앞에는 장날 빠질 수 없는 먹거리 포장마차가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햇볕이 너무 따뜻해서,
길거리 음식으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A4 크기만한 피자가 1.5 유로였다.
떼르니에서 친구와 먹어 본 호박꽃과 멸치 토핑 피자도 먹고 싶고 매콤한 피망 토핑 피자도 먹고 싶건만 절대 둘 다 먹을 수는 없는 크기. 두오모 앞 계단은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져 있고, 피자는 너무 싸고 맛있고, 하루동안 이 작은 도시만 둘러볼 예정인, 특별히 서두를 것도 없는, 100%에 가까운 오후...
도시를 대충 둘러보고 나서 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다시 두오모로 왔다. (두오모 광장에서 버스터미널까지는 지하 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시장이 파하고 광장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뭔가 벌어지고 있는 공간이 아니라 보는 광장, 길로써의 광장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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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더미를 먹는 꽃강아지,빌바오!!
October 2, 2010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1'산티아고로 가는 길' 위에서 고민하라 - 산티아고 성당

빌바오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 위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산티아고다. 도시를 휘감아 도는 네르비온(Nervion) 강의 동쪽에 산티아고 성당이 있다. 동쪽과 북쪽에서 흘러와 서쪽 갈리시아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을 향해 지친 발걸음을 옮겨가던 순례객들이 잠시 숨을 돌리던 장소다. 이곳이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을 때부터 교회는 기독교인들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 왔다. 그 이름 때문에 성스러운 길의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착각에 빠지게도 했지만 말이다.
중세 때부터 바스크 민족의 중심 도시로 역사를 이어왔지만, 여행객들에게 빌바오는 그저 산티아고의 조개 표식을 따라 잠시 들르게 된 여관에 불과했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산티아고를 둘러싼 구시가(Casco Viejo)는 좋게 말해 '중세의 고풍스러운 거리'였지, 냉정하게 보자면 그저 칙칙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강변의 작은 구역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떤 결단이 이 도시를 변신시켰고, 이 '중세'는 진정 의미 있는 '현대'의 장식품이 되었다.
골칫덩이를 옮겨라 - 빌바오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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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산업혁명은 이 도시에 큰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인근에서 질 좋은 철광 광산이 발견되었고, 스페인 북부의 가장 큰 항구는 영국과 교역하는 데도 커다란 이점을 보였다. 빌바오는 철강 산업의 주요 운송 창구이자 선박 제조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았고,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의 하나였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강을 둘러싼 항구와 공장들은 보기에도 끔찍한 공해 산업이자 고철덩이가 되어 버렸다. 바스크 분리주의자의 테러 활동까지 겹쳐져, 이 도시는 스페인의 더러운 콧구멍 취급을 받았다.
1990년대 초반, 시민들은 머리를 모았다. 항구와 산업 시설을 멀리 바다로 보내고 새롭고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자. 누군들 그런 꿈을 꾸지 않을까? 그러나 진지하고 엄격한 설계,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시민들의 전통이 진짜 기적을 만들었다. 얼핏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게 된 것이 모든 마법의 원천으로 보이지만, 빌바오의 강변은 도시 자체를 진짜 예술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민들의 의지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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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항구를 만들기 위해 강변을 도크로 둘러싸는 작업은 환경운동가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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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강아지를 지켜라 - 구겐하임 미술관

[007 언리미티드]의 오프닝에서 피어스 브로스넌이 빌딩에서 탈출한 뒤 유유히 거리로 나설 때, 구겐하임의 꽃 강아지가 귀엽게 쳐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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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후의 도시 건축계에서는 '빌바오 효과'라는 말이 마법의 주문처럼 돌아다녔다. 시커먼 공해 도시 빌바오가 미술계 최고의 브랜드인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을 들여놓은 뒤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건물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걸작이며, 2010년 세계의 건축 전문가들에 의해 최근 30년간 세워진 것 중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뽑히기도 했다(World Architecture Survey). 온갖 잡지의 표지에 이 건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오직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작 빌바오가 놀라운 것은 그 구겐하임을 진짜 이 도시에 딱 어울리는 건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변신했다는 사실이다.
프랭크 게리가 티타늄으로 만든 미술관 건물은 수많은 관광 지도에 '빌바오'라는 지명을 적어넣게 한 장본인이다. 그런데 빌바오 사람들은 그 건물보다도 그 앞에 있는 커다란 강아지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설치 조각가 제프 쿤스가 만든 12.4m의 거대한 토피어리 꽃 강아지(Puppy)는 원래 구겐하임 개관을 기념한 한정 전시물이었는데,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사랑 때문에 영구 전시물이 되어 있다. 설치 당시 정원사로 위장한 ETA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폭탄 화분이 장착될 위기를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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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강을 만들어라 - 주비주리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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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를 새롭게 만드는 온갖 프로젝트들은 굽이굽이 흐르는 네르비온의 강을 따라 줄을 잇고 있다. 수많은 매력의 포인트들이 빌바오의 기적이 단지 구겐하임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노마 포스터의 획기적인 지하철 시스템, 잔디밭 위를 구르는 산뜻한 초록색 트램 라인, 페데리코 소리아나가 디자인한 유스칼두나 콘서트 홀 등 이 도시는 리노베이션 건축학의 견학 코스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중에서도 주비주리(Zubizuri)의 하얀 윤곽이 도드라진다.
바스크어로 '하얀 다리'라는 뜻을 지닌 주비주리는 발렌시아 출신의 건축가 겸 조각가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디자인했다. 우아한 곡선의 보도와 매력적인 디자인의 아치가 어우러져 강변의 풍경을 바꾸는 데 크게 일조했다. 하지만 유리로 된 바닥이 부서지거나 미끄러지는 등 지역 주민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빌바오는 여전히 건설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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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비주리는 바스크어로 '하얀 다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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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모를 지켜라 - 바스크 모자 가게

베레모는 바스크의 목동들이 쓰던 모자로부터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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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의 변신은 오랫동안 그들을 지켜봐 온 주변인들에게 더욱 놀라운 현실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곳은 유럽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바스크인들의 본거지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의 피레네 산맥 주변에 살고 있는 바스크인들은 주변과 완전히 고립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도 유럽어족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들과 아무런 친족 관계를 찾을 수 없다. 언어로부터 시작된 고립성은 이 지역 사람들의 고집스러운 독립 정신으로 이어져오기도 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으로 유명한 게르니카(Guernica)의 학살 사건도 빌바오 인근에서 벌어졌다.
바스크는 스스로를 고립시켰지만, 자신들의 개성을 세계에 퍼뜨리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베레모. 피레네 산맥의 목동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크고 둥글게 만든 모자는 각국의 군복 디자인에 활용되면서 세계적인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검은 베레로 유명한 체 게바라도 북스페인의 바스크 혈통을 이어받고 있다. 빌바오 구시가에는 1857년부터 대대로 바스크 전통의 모자(Txapelduns)를 만들고 있는 고로스타이가 가문의 모자 가게(Sombreros Y Boinas Gorostiaga)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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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 남자들의 힘을 보여주라 - 산 마메스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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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축구리그에 관심이 많은 팬들은 빌바오를 또 다른 이유 때문에 또렷이 인식하고 있다. 다른 스페인의 대도시처럼 이곳에도 고유의 축구팀인 아틀레틱 빌바오가 존재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축구팀에는 오직 바스크 출신들만이 선수로 뛸 수 있다는 점이다. 레알 마드리드나 FC 바르셀로나 같은 팀이 전 세계의 슈퍼스타들을 모아 드림팀을 만들고, 인근 도시이자 역시 바스크 지역인 산 세바스티안이 이천수 등 외국 선수들을 영입해온 것을 보면 얼마나 특이한 전통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이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아틀레틱 빌바오가 스페인 4대 명문 팀으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바스크 남자들은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내놓는 것은 축구가 아닌 바스크 전통의 스포츠 게임이다. 가끔 해외 토픽을 장식하는 바스크 전통의 민속 스포츠는 무거운 돌 들기, 통나무 빨리 썰기, 도끼로 나무 쪼개기 등 인간의 원초적인 힘, 노동과 직결되는 능력을 테스트한다. 아틀레틱 빌바오의 본거지인 산 마메스 스타디움에서, 우리는 이 도시가 가장 국제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원초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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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는 H18K라 불리는 18종의 바스크 전통 게임을 현대화하고 규격화하려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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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와 신시가를, 바스크와 세계를 엮어라 - 빌바오 기차역

아반도의 기차역은 고풍스러운 스테인드글라스와 현대적인 교통 시스템이 어우러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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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는 20년간 변신했지만, 여전히 극과 극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구겐하임을 중심으로 한 산뜻한 리노베이션 라인과 여전히 구태의연한 도심은 이질적인 채로 공존한다. 중세의 분위기를 풍기는 구시가와 바스크 고유의 음식점이 현대 도시의 차가움을 덜어주지만, 때론 강의 동쪽과 서쪽을 아예 다른 도시로 여겨지게 만들기도 한다. 다행히 그 모든 것을 이어주는 혈관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깔끔하고 매력적인 지하철도 좋지만, 도시 위를 느릿느릿 배추벌레처럼 기어가는 트램의 정겨움이 이 도시를 사랑스럽게 만든다.
아반도에는 이 도시의 안과 밖을 잇는 모든 교통의 중심이 되는 기차역(Bilbao-Concordia terminal station)이 있다. 이곳은 빌바오의 기적과 바스크의 전통을 스페인과 유럽 전역으로 수출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1965년에 시작된 FEVE 철도 라인은 이 기차역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혈관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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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쓸모가넘치는 아름다움!
September 15, 2010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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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카드와 지상에서 가장 긴 아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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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 가장 좋은 게 무엇이었나요?" 많은 여행자들이 이렇게 답한다. "스톡홀름 카드요." 지하철과 버스, 섬들을 오가는 페리, 자전거 투어는 물론 80군데 주요 관광지의 할인 혜택까지 하나의 카드로 해결할 수 있다. 물론 무척이나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다. 그러나 여행의 수단에 불과한 교통 카드를 '가장 좋았다'는 목적으로 탈바꿈시키다니. 그야말로 '스톡홀름답다'.
이 카드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긴 아트 갤러리'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해준다. 스톡홀름에 있는 90개의 지하철 역사들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처럼 치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벽과 천장 자체를 동굴처럼 불규칙하고 자연스럽게 마감한 뒤에 페인팅, 모자이크, 조명, 조각 기둥들을 덧붙여 놓았다. 대학(Universitetet) 역에는 생물 분류학으로 유명한 칼 폰 린네의 업적을 기리는 장식물을 새겨두는 등 지역적 특성도 잘 살리고 있다. 갤러리답게 중앙역(T-Centralen station)에서 출발하는 가이드 투어도 있다. 화요일은 블루, 목요일은 그린, 토요일은 레드라인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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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지하철 역사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아트 갤러리'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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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사의 대 망신을 큰 자랑으로 만들다 - 바사 호 박물관
전함 바사 호, 17세기 선박의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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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5년 구스타프 2세 치하의 스웨덴 왕국은 해양 강국의 면모를 뽐내기 위해 전함 바사(Vasa) 호를 건조한다. 당대 최고의 과학과 예술의 집합체로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출항한 배, 그러나 처녀항해를 떠난 선박은 2Km도 못 가서 균형을 잃고 침몰하고 만다. 과시용으로 너무 많은 포를 실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서라고도 하고, 구스타프 국왕이 정치적 이유로 너무 급히 배를 완성시키라고 지시한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세계 해양사에 길이 남을 대망신을 당한 셈이다.
그로부터 300년이 흘렀다. 해양 고고학자들은 1956년 스웨덴 항구 바로 바깥에서 바사 호를 발견해 5년에 걸친 작업 끝에 인양한다. 놀랍게도 선체는 17세기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스톡홀름 사람들은 선조들의 부끄러운 실패를 끌고 와 멋진 박물관으로 변모시켰다. 커다란 돛대를 달고 있는 해안의 박물관 안에는 바사호의 본 모습이 생생히 재현되고 있다.
거대한 선박의 본체, 아름다운 선미의 조각, 선원들의 옷가지와 물품 등과 더불어 당시 선박의 구조와 선원들의 활동을 볼 수 있는 미니어처까지 세심하게 진열되어 있다. '30년 전쟁' 때 발틱 해를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함 바사 호는 당시에는 적들을 하나도 죽이지 못했지만, 수백 년 뒤에는 세계의 여행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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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시상식의 수상자는 어떤 기분일까 -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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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써라.' 이 격언을 스웨덴 사람처럼 충실히 따르는 경우가 있을까? 냉전 시대 스웨덴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를 오가며 짭짤한 수익을 얻었다. 그래서 박쥐고 욕을 먹기도 했지만, '사회적 환원'이라는 가치를 앞장서 추구해 왔기에 결국 착한 박쥐로 사랑받을 수 있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떼돈을 벌어들이고, 잘못 나온 부고 기사에서 '더러운 상인'이라 불린 노벨 의 변신 역시 그러했다. 그는 유산의 94%를 '노벨상' 설립에 남기고, 인류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들에게 영광의 메달을 건네주도록 했다.
매년 12월 10일 스톡홀름의 콘서트홀에서는 노벨상 시상식이 벌어져 전 세계인의 시선을 한 군데로 모으는데, 그 밖에도 노벨상의 꿈을 대리 체험할 수 있는 장소가 도시 곳곳에 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전망 좋은 시청 건물에서 공식 연회가 벌어지는데, 평소에도 이곳 레스토랑(Stadshuskällaren)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의 디너 메뉴를 맛볼 수 있다. 구시가에 있는 스웨덴 아카데미 소유의 레스토랑(Den Gyldene Freden)은 노벨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노벨상의 실물을 보려면 구시가인 감라 스탄(Gamla Stan)에 있는 노벨 박물관을 찾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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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의 노벨상 증서. 노벨상에 쏟아진 초기의 관심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상금액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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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삐삐의 친구가 되고 싶다면 - 주니바켄
[삐삐 롱스타킹]은 잉거 닐슨 주연의 TV 시리즈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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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할아버지가 세상에 유용한 사람을 뽑아 추켜세운다면, 세상에 절대 무용한 일들을 벌여놓고 으스대는 소녀가 있다. 바로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이 1945년에 선보인 [삐삐 롱 스타킹]이다.
항상 괴상한 패션에 장난기로 가득 차 있는 소녀,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친구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소녀. 삐삐는 어쩌면 "인내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하는 스톡홀름 인들의 마음속에 감추어진 광기를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스톡홀름에서 삐삐를 만나려면 듀르가르덴(Djurgarden) 섬으로 달려가면 된다. 여기에 있는 어린이 박물관 주니바켄(Junibacken)은 우리를 [보물섬] [정글북]과 같은 동화 속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린드그렌의 작품 세계가 재현되고 있다. 건물 바깥에는 린드그렌의 동상이 서 있고, 그녀를 기념하는 영구 전시물이 갤러리에 가득하다. 아이들은 이야기책 기차를 타고 린드그렌 월드를 탐험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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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와 스웨디시 팝의 향연 - 그뢰나 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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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르가르덴 섬은 마치 보물섬처럼 곳곳에 신나는 재미를 감춰두고 있다. 놀이공원인 티볼리 그뢰나 룬트(Tivoli Gröna Lund)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스톡홀름의 상징으로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 1883년에 세워진 이 공원은 특이하게도 당시의 거주지와 상업 건축물들을 부수지 않고 그것을 감싸 안은 채 여러 놀이기구들을 채워 넣었다. 19세기에 손으로 만든 회전 돼지가 아직도 아이들을 태운 채 돌고 있는데, 스톡홀름 사람들의 알뜰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놀이공원은 여름철의 콘서트로도 유명하다. 밥 말리, 비비 킹, 지미 헨드릭스에서부터 최근의 레이디 가가까지 멋진 리스트가 이어져왔다. 그중에서도 공원의 공식 홈페이지가 가장 위에 올려놓은 역사적 공연은 무엇일까? 바로 이 도시가 낳은 세계적인 팝 그룹 '아바(ABBA)'의 1975년 콘서트다. 아바는 1974년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를 통해 큰 주목을 받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유럽 투어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절치부심 끝에 시작한 이듬해의 스웨덴-핀란드 투어에서 본격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는데, 이곳 그뢰나 룬트의 공연에서 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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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가 그뢰나 룬트에서 공연했던 1975년의 앨범 [ABBA]. 팬들은 '리무진 앨범'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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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 에이스 오브 베이스, 카디건스 등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스웨덴 팝 밴드는 하나둘이 아니다. 그 성공의 원인은 뭘까?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 흥겹고도 단순한 리듬, 복고풍의 아기자기한 정서 등 여러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그들이 영어로 노래한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그것도 매우 쉬운 영어로. 이것 역시 스웨덴식 실용주의라 할 수 있는데, 덕분에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고는 최대의 팝 수출국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최근 뮤지컬 [맘마미아] 등을 통해 아바가 새롭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곳 공원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아바 더 뮤지엄(ABBA the Museum)'이 건설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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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디자인의 작은 보물들을 만난다 - 갤러리 파스칼
전후 스웨덴 디자인의 대표자인 스티그 린드버그(Stig Lindberg, 오른쪽). 세라믹, 유리, 텍스타일 등에서 탁월한 제품들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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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지 않은 듯 꾸민다. 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만지게 한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식을 줄을 모른다. 이 도시는 스톡홀름 퍼니처 페어(가구), 노던 라이트 페어(조명), 스톡홀름 패션 위크(패션) 등은 북유럽 디자인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을 꾸준히 제공한다. '디자인하우스 스톡홀름', '이케아' 등 스웨덴 산 디자인 제품을 구경할 수 있는 숍들도 곳곳에 있다.
갤러리 파스칼(gallerypascale.com)은 스웨덴-프랑스 혈통의 여성인 파스칼 코타드-올슨(Pascal Cottard-Olsson)의 콜렉션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작은 갤러리 겸 숍이다. 가구, 패션, 조명, 일러스트레이션 등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전시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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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이 가장 강하다 - 로얄 내셔널 시티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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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사랑하는 시민들인 만큼 도시는 온갖 색들로 반짝인다. 그렇다면 이 도시에서 가장 빛나는 색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린. 최근 유로연합은 도시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고자 매년 한 도시씩 유럽의 녹색 수도(European Green Capital)로 선정하기 시작했는데, 2010년 그 첫 번째 우승자가 바로 스톡홀름이다. 과감한 교통 정책으로 출근자의 80%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고, 지난 10년간 자전거 이용자는 130%나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나 획기적인 쓰레기 배출 프로세스 등을 통해 탄소 배출을 급속히 줄이고 있는데, 2050년에는 탄소 배출을 완전히 없앤다는 계획이다.
거주민의 95%가 300미터 이내에 '진짜' 녹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큰 자랑이다. 듀르가르덴의 동쪽 녹지대를 포함한 로열 내셔널 시티 파크(Royal National City Park)는 시 공원으로는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시 구역 안에 7개의 자연보호구역이 있고, 시내에서 30분만 나가면 무스와 순록을 볼 수 있는 사파리 투어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감라 스탄(Gamla Stan) 지구의 '건물 지붕 트레킹 투어' 등 도심 속에서 야생을 즐기고자 하는 상상력도 기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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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만호와 몽트뢰(스위스)
September 14, 2010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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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는 저명한 희극 배우마저 감동시켰다. 찰리 채플린은 20여 년간 레만호에 머물며 ‘석양의 호수, 눈 덮인 산, 파란 잔디가 행복의 한가운데로 이끌었다’고 회고했다. 몽트뢰(Montreux), 모르쥬(Morges), 로잔(Lausanne), 제네바(Genève)는 스위스 레만호에 기댄 도시들이다. 마을이 뿜어내는 매력은 단아하고 신비롭다. 호수 북쪽에는 예술가들의 흔적이 담겨 있고 남쪽으로는 프랑스 에비앙의 알프스가 비껴 있다. 도시와 호수 사이로는 정감 넘치는 스위스 열차가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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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트뢰의 언덕에서 내려다본 레만호 전경. 호숫가 마을은 숱한 예술혼들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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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페스티벌, 시옹성을 추억하다

해질 무렵이면 몽트뢰의 언덕에 오른다. 레만호는 높은 곳에서 응시할수록 아득한 속살을 드러낸다. 온종일 잿빛 구름과 입맞추던 호수가 파스텔톤으로 변해간다. “글쎄요? 일주일만 보면 지겨울 수도 있어요.” 2년 동안 몽트뢰에 머물고 있다는 한 여인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더니 씁쓸하게 웃는다. 호수 위로 병풍처럼 빛이 내려앉는다. 지겨울 수 있다던 그녀는 꽁초가 타들어가도록 시선을 떼지 못한다. 호수는 품에 안긴 사람들의 숱한 사연과 생채기마저 담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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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만호는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풍겨내는 분위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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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 역시 레만호를 떠나지 못한 아티스트다. 몽트뢰의 광장에는 그의 동상이 호수를 바라보며 세워져 있다. 그가 남긴 한 구절 글귀가 눈과 가슴에 박힌다. ‘나에게 몽트뢰는 제2의 고향이다.’
몽트뢰의 매년 7월은 재즈페스티벌로 채색된다. 67년 시작된 재즈 페스티벌은 필 콜린스, 밥 딜런, 스팅 등 유명 스타들이 스쳐 갔다. 그들의 선율이 닿았을 호숫가 산책로는 예술혼이 소담스럽게 쌓여 있다. 퀸, 스트라빈스키 등 음악가 외에도 루소, 바이런, 헤밍웨이 등이 이곳을 경으로 흔적을 남겼다. 가수 딥 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의 소재가 된 카지노도 몽트뢰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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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만호의 반대쪽은 프랑스 알프스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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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옹성은 바이런의 ‘시옹성의 죄수’로 더욱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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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트뢰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퀸’의 프레드 머큐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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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트뢰의 영감은 시옹성까지 닿아 있다. 바이런이 쓴 ‘시옹성의 죄수’로 유명해진 시옹성은 호숫가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고성으로 더없는 풍광을 자랑하지만 내부는 지하 감옥 등 섬뜩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기둥 어딘가에는 바이런의 이름도 남아 있다. 사연이야 다르지만 철벽 시옹성의 죄수 역시 레만호를 떠날 수는 없었다.
숨겨진 와인산지와 프랑스풍 길목

몽트뢰에서 모르쥬로 연결되는 길은 숨겨진 와인산지다. 깎아지른 절벽에 위치한 포도밭은 호수에 반사된 햇빛까지 품에 안아 풍요롭다. 열차가 지나는 머리 위로 포도송이들은 매달려 있다. 이곳 라보(Lavaux) 지구는 계단식 포도밭, 레만호, 프렌치 알프스의 풍광이 어우러져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호수와 설산을 바라보며 포도밭 사이를 걷는 여행은 최근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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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쥬는 1년 내내 꽃을 피워 내는 아름다운 꽃의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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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만호 일대는 스위스 와인의 숨은 보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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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잔 곳곳에서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동상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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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쥬는 ‘레만 호수의 꽃’으로 불린다. 봄이면 10만 송이 튤립 속에서 튤립축제가 열린다. 꽃축제는 아이리스, 달리아 축제로 이어져 연중 꽃을 볼 수 있다. 모르쥬 외곽의 톨로체나즈 (Tolochenaz)는 오드리 헵번이 여생을 보낸 고장으로 아침 장터는 헵번이 레만호 산책을 겸해 들린 곳이기도 하다.
모르쥬와 맞닿은 로잔은 두 가지 모습이다. 우리에겐 올림픽의 도시로 익숙하지만 스위스 사람들에게는 음악, 연극의 도시로 명성 높다. 도시는 샘이 날 정도로 깔끔하게 정제돼 있지만 스위스 젊은이들의 뜨거운 나이트라이프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호숫가 올림픽 박물관에는 육상 스타 임춘애가 들고 달렸던 88올림픽 성화와 호돌이가 장식돼 있다. 언덕 위 로잔 노트르담대성당이 로잔의 상징. 고딕양식 성당에는 야경꾼이 소리 내어 시간을 알리는 이색 전통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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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시내에 들어서면 프랑스풍의 향취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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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만호의 남서쪽으로 내려서면 프랑스풍 향기가 배어나는 제네바다. 레만호는 제네바호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중앙역에서 보행자 거리인 몽블랑 거리로 이어지는 길은 늘 이방인들로 북적인다. 레만호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에는 낯선 프랑스어와 명품상점, 커피 한잔의 여유가 가득하다. 구시가지 길목에서는 생피에르 성당 외에도 오래된 서점과 가게들이 촉촉히 젖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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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만호의 외곽으로는 아득한 전원풍경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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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서 론강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외곽으로 나서면 녹색지대다. 스위스 제3의 와인생산량을 자랑하는 강변계곡에서는 와인메이커가 직접 만들어내는 하우스 와인을 맛볼 수 있다. 붉은 와인을 한잔 기울이면 레만호를 사랑했고, 떠나지 못했던 숱한 사연들이 아련하게 소용돌이친다.
가는 길
레만호 여행은 열차편이 많은 제네바에서 출발하는 게 편리하다. 제네바에 도착해 몽트뢰로 이동한 뒤 제네바로 다시 거슬러 오르며 호숫가 마을을 둘러본다. 테마 열차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골든 패스 라인은 취리히∼루체른∼인터라켄∼몽트뢰∼제네바를 잇는 코스로 스위스의 호수들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열차에는 천정에 유리창이 설치된 ‘파노라믹 객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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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티 슬라바(슬로바키아) 세계명소
August 25, 2010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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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열차에 오르면 중세로 떠나는 슬로바키아(Slovakia) 여행은 시작된다. 열차 안의 낯선 언어는 무뚝뚝해도 친근함이 있다. 보헤미안의 풍류가 서린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는 고풍스럽고 정감 넘친다. 잊혀졌던 ‘원초적’인 동유럽의 향수가 담겨 있다. 체코 프라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깊은 동유럽’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여행자들로 가득 채워진 프라하의 카를교나 부다페스트 왕궁에 서면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와 있는 듯하다. 다국적 사람들의 혼란스런 언어, 빠른 발걸음 소리는 귀를 어지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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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스 탑은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의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탑 주변에는 노천바들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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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한가운데 놓여 있으면서도 생소하게 다가왔던 브라티슬라바는 그런 점에서 여행자의 마음을 빼앗는다. 오스트리아 빈의 수드반호프역(Südbahnhof, 남역)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는 열차로 불과 1시간 걸릴 뿐이다.
오스트리아 동쪽 끝, 마세그역(Marchegg)을 넘어서면 풍경은 달라진다. 빈의 도시 향은 사라지고 정겨운 시골풍경이 나타난다. 열차로 동유럽 국경을 넘는 것은 재미와 스릴이 넘친다. 차장이 도중에 바뀌고 출입국 검사도 까다롭다. 독일어를 쓰는 배낭족은 수프도 끓여 먹고 피리도 불어 대는 한가로운 모습이다. 촌스런 유니폼의 차장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이다.
동유럽의 오랜 향수가 투영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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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에서 브라티슬라바행 열차에 오르는 순간
고풍스런 동유럽 여행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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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티슬라바 중앙역은 유럽의 외딴 시골역 같은 정경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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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티슬라바 중앙역인 흘라브나 스타니카(hlavná stanica)는 기대만큼이나 여유롭다. 수드반호프역에서 봤던 마음 급한 단체관광객을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MT라도 온 듯 배낭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기타를 퉁긴다. 슬로바키아의 수도가 아니라 소박한 시골 마을의 정경이다.
역 주변에서 구시가로 이어지는 길목은 고즈넉하다. 골목 어느 곳에서나 이정표가 되는 곳은 브라티슬라바성이다. 성은 슬로바키아의 동전에도 새겨져 있고 각종 기념품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로마와의 변경(邊境)을 지켜냈던 성은 1800년대 헝가리의 지배 때 파괴됐다가 재건축됐다. 한때는 대통령의 거처였고 국회의사당 건물로 이용되기도 했다.
성루에 오르면 브라티슬라바는 도나우 강(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두 가지 모습으로 나뉜다. 한쪽은 창백하고 다른 한쪽은 소담스럽다. 구시가, 신시가에 대한 경계선은 어느 도시보다 명확하다. 구시가지는 헝가리 통치 시절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유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다리 건너 신시가는 사회주의식의 황량한 회백색 건물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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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기념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브라티슬라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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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슬로바키아의 애틋한 역사도 서려 있다. 슬로바키아는 오랜 기간 헝가리의 통치를 받았고, 브라티슬라바에는 200년 넘게 헝가리의 수도가 들어서기도 했다. 체코와 병합돼 체코슬로바키아를 세운 뒤에도 경제 발전은 대부분 체코 중심으로 이뤄졌고 전통 농업 국가였던 슬로바키아는 늘 뒷전이었다. 뒤늦은 개발은 1989년 벨벳혁명 이후 재분리된 슬로바키아가 오히려 옛 흔적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보헤미안의 소박하고 고즈넉한 정취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지 여행은 미카엘스 탑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14세기에 세워진 미카엘스 탑은 오랫동안 브라티슬라바의 관문이었다. 성 마틴 대성당, 성 프란시스코 교회, 시청사 등 대부분의 볼거리들이 인근에 몰려 있다. 성 마틴 대성당은 슬로바키아의 역대 왕과 왕비를 기리고 있으며 성 프란시스코 교회는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이곳 골목은 중세의 ‘고도’임을 항변하듯 규칙 없는 미로 같은 길이다. 흐비쯔도슬라보브 광장(Hviezdoslav Square) 등 구도시의 거리들은 빛바랜 건물과 그 건물에 기대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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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같은 구시가의 상징적인 기준이 되는 미카엘스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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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성 프란시스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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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청사가 있는 광장 앞 주변은 노천바와 조각품들로 채색된다. 브라티슬라바의 명물인 소를 주제로 한 조각과 거리의 악사를 만날 수 있는 곳도 이곳이다. 노천바에 앉아 맥주를 주문하면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이 가득 담겨 나온다. 알싸한 맛이 강한 보헤미안 맥주는 구시가의 향취를 더욱 몽롱하게 만든다. 음악가인 프란츠 리스트 역시 도시에 취해 15차례나 브라티슬라바를 찾았다고 한다.
브라티슬라바 외곽에서는 외국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헝가리어, 체코어가 국어로 쓰이던 시절이 있었기에, 슬로바키아어를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이곳 사람들의 자국어에 대한 애착심은 대단하다. 그렇다고 여느 식당이나 모텔에서 언어 때문에 불편한 경우는 없다. 그림을 그려주면 그림으로 화답할 정도의 정성스런 모습을 보여준다. 유럽의 흥청대는 관광지와 달리 때가 묻지 않은 게 슬로바키아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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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의 골목들은 다른 동유럽의 수도와 달리
고즈넉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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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티슬라바는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정감이 묻어나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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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족 여인들은 덩치도 아담하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가족뿐 아니라 체면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동양인들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순박하고 단아한 사람들을 동유럽의 숨겨 놓은 도시는 소중하게 간직해내고 있다.
가는 길
오스트리아 빈이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차를 타는 게 일반적이다. 빈의 수드반호프역에서는 평균 1시간 단위로 열차가 다닌다. 동유럽구간의 이동 때는 동유럽 패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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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 부르크(차르와 예술가들)
August 20, 2010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유럽인이 되고 싶었던 차르, 도시를 창작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 피터의 도시. 그 이름은 도시의 수호자인 성 베드로(Peter)에서 따왔다지만, 동시에 이 도시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바이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피터대제(Peter I the Great)는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에 불타올랐다. 그리하여 도읍을 정한 곳이 발틱 해를 향해 있는 연안의 늪지대. 네바 강 하구의 음침한 섬들 위에 도시를 건설하자고 했을 때 사람들은 조소했다. 그러나 대제는 거침이 없었다. 스스로 오두막에 기거하며 관리들과 노동자들을 독려했다. 전 러시아에 석조 건축을 금지시키고, 모든 자재를 네바 강 하구로 실어오게 했다. 그리하여 100개의 섬이 365개의 다리로 이어진 북쪽의 베니스가 탄생했다.
도시는 사회주의 혁명 이후 수십 년간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제 다시 피터의 것으로 돌아갔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상징물인 '청동 기마상(Bronze Horseman)'은 대제의 위엄을 기린 조각상이다. 말을 탄 대제가 서 있는 돌은 전설의 '번개 맞은 돌(Thunder Stone)'로 무려 1500톤에 이르는데, 이것을 오직 인력만으로 6Km나 끌어 핀란드 만에 가져온 뒤 배에 실어 지금의 위치에 옮겨놓았다.
백조, 죽어가면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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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의 어느 날, 비쩍 마른 소녀 하나가 엄마의 손을 잡고 회청록색의 마린스키 극장(Mariinsky Theatre)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그때는 알렉산드로 골로빈이 만든 황금의 커튼 장식이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마리우스 페티파의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그녀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소녀는 엄마를 보채 바로 그 극장에 있는 제국 발레학교(현재의 바가노바 아카데미)를 찾아갔다. 처음엔 너무 어리고 아파 보인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러나 11살이 되어서는 기필코 입학 허가를 얻어냈고, 혹독한 훈련을 거친 소녀는 러시아의 백조가 되었다.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na Pavlova)는 남성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와 더불어 러시아 발레의 전설을 만들어낸 대표적 인물이다. 특히 1905년, 마린스키 발레단의 정식 단원이 된 직후 발표한 소품 [빈사의 백조(The Dying Swan)]는 그녀의 이니셜 같은 작품이 되었다. 밝고 경쾌한 백조가 아니라 죽음 직전에 가냘픈 몸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백조의 모습은 이전의 발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먼 나라를 떠돌아다녀야 했지만, 파블로바는 고향의 백조들을 잊지 않았다. 1923년 러시아에 극심한 기근이 닥쳐오자 그녀는 기꺼이 구호물품을 보냈고, 마린스키 극장 앞에는 물품을 받으려는 무용수들이 긴 줄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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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사의 백조' - 안나 파블로바는 죽는 순간까지 백조 의상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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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스키-코르사코프와 벌떼 같은 작곡자들

콘서바토리의 중흥을 이끈 림스키-코르사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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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스키-코르사코프, 차이코프스키, 프로코피에프,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러시아와 세계를 대표하는 작곡자들, 상트페테르스부르크의 음악인들, 그리고 바로 마린스키 극장 건너편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서바토리(the Rimsky-Korsakov St. Petersburg state conservatory)에서 음악을 배운 사람들이다.
콘서바토리는 1862년 안톤 루빈스타인에 의해 설립되었지만, 오늘날의 영광을 이야기할 때 1871년부터 1906년까지 이 학교에 몸담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첫 강의를 맡았을 당시 그는 27살의 해군 장교였는데, 발라키예프, 무소르그스키 등과 함께 소위 '5인조(the Five)'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부 유럽 음악의 모방이 아닌 '러시아의 음악'을 하기 위해 애썼는데,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던 것이 새로운 음악을 위한 활력소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막상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자,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자신의 음악적 기초가 너무나 취약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미 콘서바토리를 통해 충실히 공부해온 차이코프스키에 상담을 요청했고, 러시아의 독자적인 음악을 위해서도 유럽 음악의 기초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앞서 더 큰 공부를 자청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후 후진 양성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열정이 콘서바토리를 세계 최고의 음악학교로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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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체호프, 사상 최악의 야유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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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Alexandrinsky Theatre)에서 [갈매기]가 초연된 후, 극작가 안톤 체홉은 스탭들과 가족들에게 말했다. "다시는 극을 쓰지 않겠다." 그만큼 연극은 엉망이었다. 고독과 몽환의 이야기는 스타 연기자들을 동원해 지나치게 화려하게 만들어졌고, 멜로드라마를 거부한 실험적인 극은 관객들은 물론 제작진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상태였다. 2막이 시작되자 야유는 넘쳐났고, 주연 여배우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후에 모스크바에서 새롭게 상연되어 호평을 얻기는 했지만, 체호프는 그 공연도 만족하지 못했다.
이렇게 체호프에게 연극사에 길이 남을 좌절을 가져다준 극장이지만, 알렉산드린스키는 러시아 공연 예술의 메카로 오늘날까지 그 영광을 이어오고 있다. 이 도시 곳곳을 빛내온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카를로 로시(Carlo Rossi)가 디자인한 건물로, 안팎으로 19세기의 우아함을 잘 간직하고 있다. 극장 앞의 작은 광장은 크리스마스 즈음에 열리는 축제로 많은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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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를 좌절시킨 제국 시대의 극장, 알렉산드린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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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다락방에 숨어들다

도스토예프스키,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에게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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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심장이다. 그런데 그 심장은 살짝 얼어 있다. 마치 북쪽 바다처럼 말이다. 이 도시는 톨스토이, 고골리, 고리키 등 러시아 문학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만큼 이 도시의 정신을 반영한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제국의 영광은 영광이지만, 19세기 러시아인의 삶은 곤궁하기 그지없었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검은 빵 한 조각을 먹지 못한 채 이상을 향해 버둥거리는 청춘들이 넘실거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60년대 이 도시의 작은 쪽방에 기거하며 거의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창밖으로 인간 군상들을 바라보며 소설을 써나갔다. 서유럽의 합리주의를 쫓지만 러시아의 종교적 영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 정신의 풍요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물질적 빈곤으로 고통 받는 인간들….
이 도시에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기거하며 글을 썼던 두 장소가 남아 있다. 센나야(Kaznacheyskaya ul 7, Sennaya)의 좁은 골목에서 그는 세 개의 방을 옮겨 다녔는데, 바로 [죄와 벌]을 썼고 그 무대가 되는 곳이다. 블라디미르스카야(Vladimirskaya) 지하철 역 근처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이 박물관(Dostoevsky Museum)의 형태로 공개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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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레핀의 리스트를 훔쳐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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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부터 혁명 이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았던 예술가들의 리스트는 정말로 화려하다. 문학, 음악, 연극, 발레 등 수많은 분야에서 교과서 레벨의 이름들이 줄을 잇고 있다. 21세기의 우리가 그 사람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조악한 기술로 찍은 흐릿한 흑백 사진은 젖혀 두자. 그들에게는 국민 초상화가가 있었다. 바로 일리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 차르와 톨스토이와 멘델레예프까지, 그의 리스트에 들지 않았다면 러시아의 유명인이라고 할 수 없다.
레핀은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초기에는 고국에 있는 코사크 족의 호쾌한 일상과 풍습을 그려냈다. 이어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과 같은 작품을 통해 방대한 스케일과 섬세한 시선으로 민초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그려내면서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의 시대를 만들어간다. 완숙기에 접어들어서는 러시아 여러 국민 영웅들의 초상, 국가적 행사들을 기록하는 데 집중해 역사적 기록자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도 했다. 러시안 뮤지엄(Russian Museum)은 '사드코(Sadko)' 등 그의 걸작들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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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실주의 대가, 레핀의 '사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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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푸쉬킨들’을 만나자

비주얼 아티스트 바비 바다로프는 푸시킨스카야-10의 시인 콘테스트에서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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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많은 예술가들의 리스트를 읊었지만, 그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하나를 뽑으라면 그 답은 명료하다. 시인 알렉산더 푸쉬킨. [유진 오네긴(Eugene Onegin)]등 러시아 문학의 원형이 되는 위대한 작품들을 줄줄이 낳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내를 유혹한 남자와의 결투 끝에 죽었다는 로맨틱한 최후가 더욱 큰 애정을 불러일으켜 왔다.
우리는 이 도시 곳곳에서 푸쉬킨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푸쉬킨스카야-10(Pushkinskaya-10) 아트센터'는 21세기의 푸쉬킨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1989년에 문을 연 이곳은 "박물관이 아닌 박물관"을 지향하는 갤러리, 스튜디오, 공연장, 그리고 가게들의 집합체다. 온갖 아방가르드한 예술 행위들이 벌어지는 장소이며, 독특한 나이트클럽 피시 패브릭(Fish Fabrique)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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