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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천일야화는 끝나지않았다!

September 3, 2010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외국집.gif칼리프의 잃어버린 박물관

티그리스강이 휘감은 이 도시는 4대 고대 문명 중에서도 가장 큰 영광을 빛낸 메소포타미아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바그다드가 서기 762년 아바스 왕조의 수도가 되고나서 세계 최대의 도시로 성장하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언자 마호메트의 계승자를 자처하며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가 된 칼리프는 인도와 중국에까지 손을 뻗었고, 수도 바그다드는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사람과 문화가 풍성히 교류하는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 영광은 1258년 몽골의 침략에 의해 이집트로 왕조를 옮겨가기까지 이어졌다.

 

1926년 영국의 여행가 거트루드 벨(Gertrude Bell)이 건립한 바그다드 고고학 박물관은 후에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 of Iraq)으로 발전해 이 지역의 문명을 자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바빌론, 수메르, 아시리아 등 메소포타미아 지역 문명의 가장 중요한 유산들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양측의 교전 도중 박물관 안의 소장품들은 참담하게 약탈당했다. 수메르의 여신 이난나를 새긴 고대 화병, 아카디아의 우루크 청동상 등 5천 년 전의 고대 유산들을 비롯해 박물관의 카달로그에 적힌 17만 점 대부분이 손실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후 유네스코, FBI 등의 전문 인력이 동원되어 상당수의 유물이 회복되었지만, 우리가 마음 편히 박물관 안을 거닐며 바그다드의 영광을 떠올리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알리 바바가 40인의 도적을 죽이는 법

 

 

세헤라자데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밤마다 페르시아의 황제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만약 바그다드를 빼놓으라고 했다면, 그녀의 목숨이 1001일 동안 이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천일야화]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원래 6세기 사산조의 페르시아 사람들이었지만, 8세기 아랍어로 번역되면서 당시 최대의 도시였던 바그다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 많이 첨가되었다.


모험왕 신밧드는 노년에 바그다드의 대저택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짐꾼 신밧드와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가 젊은 시절 겪은 7개의 대모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룬 알 라시드를 비롯한 바그다드의 칼리프들이 여러 차례 [천일야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칼리프 앞에서 자신의 여섯 형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바그다드의 이발사'가 대표적이다.

 

수많은 이야기들 중 바그다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야화는 아마도 '알리 바바와 40인의 도적'인 것 같다. '알리 바바 광장' 혹은 '카라마나 광장'이라 불리는 곳에는 그 일화를 새긴 조각상이 있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주인공이 '열려라 참깨' 해서 벼락부자가 된 알리 바바가 아니라 그의 충직한 하녀라는 사실. 광장에는 이곳 사람들이 카라마나(Kahramana)라고 부르는 총명한 하녀가 항아리에 든 도둑들에 끓는 기름을 붓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전쟁 이후 무법천지가 되어 도적 떼가 들끓는 바그다드. 시민들이 겪고 있는 고난의 가장 큰 원인이 땅 속의 기름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알리 바바는 바그다드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시절의 풍요를 보여준다.

 

 

 

누구를 위한 승리의 손인가?

 

 

후세인이 만든 '승리의 손' 아래를 지나가는 미군 탱크.


 

2008년 <에스콰이어> 잡지 영어판은 '전체주의의 7대 불가사의'를 선정해서 소개했다. 중국의 모택동 동상, 북한의 노동당 창건 기념탑과 더불어 다분히 조롱 섞인 이 리스트에 들게 된 것은 바그다드의 '승리의 손(The Hands of Victory)'. 도로 양쪽에 있는 두 손이 거대한 칼을 서로 가로지르게 해서 들고 있는 모양으로, [호랑이와 눈] [그린 존] 등 21세기의 바그다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기념물이다. '승리의 손'의 공식 명칭은 '카디시야의 검(the Swords of Qādisiyyah)'으로 일종의 개선문이다. 사담 후세인이 이란-이라크 전쟁의 승리를 기념한다며 자우라 광장으로 통하는 도로에 건립했다. 전쟁에서 죽은 이라크 병사들의 총을 녹여 칼을 만들었고, 전장에서 뺏어낸 이란 병사들의 헬멧들로 그 아래를 장식해두고 있다. 칼을 쥔 손의 모델은 사담 후세인 자신으로, 완성 후 스스로 백마를 타고 그 아래를 행진해갔다고 한다. 백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고 얻어낸 승리란 과연 무엇일까?  

 

 

 

 

티그리스 강변의 베르사유 - 그린 존

 

 

바그다드의 중심부, 티그리스 강변 서쪽에 있는 10평방킬로미터의 지역은 이라크 전쟁 이후 '그린 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미군이 이 도시를 점령한 이후에도 치안은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외곽의 '레드 존'에 비해 안전이 확보된 지역이라는 의미였다. 이라크 과도 정부 하에서의 공식 명칭은 '인터내셔널 존'으로 외국 공관과 호텔들이 밀집해 있었는데, 그 때문에 과격파의 테러 목표가 되어 '그린 존 카페' 등에 수차례 폭탄 테러가 행해지기도 했다.  


본(Bourne)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맷 데이먼 주연으로 만든 영화 [그린 존]은 바로 이 지역의 실상을 고발한다. 미국이 전쟁 개시의 이유로 밝힌 '대량 살상 무기'의 존재 여부를 추적하는 영화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린 존 안에서 향락을 즐기고 있는 미국 행정부 관리와 고위층들의 달콤한 생활을 보여준다. 후세인이 사용했던 공화궁(Republican Palace) 앞의 수영장에서는 마이애미비치와 같은 화려한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그린 존의 핵심인 공화궁의 모습.

 

 

 

호랑이와 눈과 병원

 

 

전쟁 중의 바그다드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한다.

 

"눈 오는 날 호랑이를 만나면 사랑을 고백하세요." 로맨틱한 홍보 문구와는 달리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호랑이와 눈]은 포화가 빗발치는 참담한 바그다드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베니니가 사랑하는 여인이 부상을 당해 병원에 누워 있으나 전쟁 중에 외국 민간인에게 돌아올 의료 장비나 약품은 없다. 그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바보 같은 무모함으로 스킨 스쿠버 장비를 가져와 산소 호흡을 시키고, 우스꽝스럽게 사막을 건너 약품을 가져온다.


바그다드의 환자들이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곳은 한때 아랍 최고, 그러니까 세계 최고의 의학 기술이 꽃피었던 곳이다. 칼리프 하룬 시대부터 무료 공공 병원이 운영되었고, 의료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서는 의사로 활동할 수 없는 등 엄격한 의료체제가 갖추어져 있었다. 천 년 후 바그다드의 병원은 지옥의 입구가 되었다.

 

 

 

 

그 실제 상황이 어떤지는 미국 HBO채널이 2006년에 방영한 다큐멘터리 [바그다드 응급병동(Baghdad ER)]의 DVD가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피바디상을 받은 이 프로그램은 바그다드 그린 존 안에 있는 이븐 시나 병원(Ibn Sina Hospital)의 응급 현장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병원은 1960년대 사담 가족과 친지를 위한 병원으로 건설되었는데, 근처에 비밀경찰의 고문실이 있어 부상을 당한 정치범들을 이 병원에서 되살려내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계속 고문하기 위해서다. 2003년 이라크 공습 이후 부상당한 미군 병사들을 위한 시설로 사용되다가, 2009년 10월에 이라크 정부로 이양되었다.

 

 

 

바빌론의 강가에서 무너진 바벨탑을 떠올리다

 

 

'바이 더 리버스 오브 바빌론~'. 올드 팝의 팬이라면 보니 엠의 전설적인 히트곡 'Rivers Of Babylon'을 기억하는 분이 많으리라. 고향을 잃은 유대인들이 울음 섞인 노래를 부르게 한, 그 성스러운 강이 바로 바그다드 남쪽에 있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천상에 이르는 탑을 짓다가 스스로 몰락한 '바벨 탑'의 주인공, 기원전 6세기에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정원을 건설한 놀라운 과학의 도시, '바빌론'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대표하는 고대 바빌론을 재발견하려는 계획은 19세기 초반부터 있어왔다. 당시의 도시 구조를 보여주는 석조 벽들이 복원되었고, 26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바빌론의 사자 상'도 발견되었다. 걸프 전 이후 사담 후세인은 이 유적 위에 수메르의 피라미드를 본 딴 현대적인 궁전을 건설할 계획을 진행하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을 따 '사담 힐(Sadam Hill)'이라 부른 이 프로젝트는 실행 직전인 2003년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되어 결국 상상 속의 바벨탑이 되고 말았다.

 

바빌론의 공중 정원 뒤로 바벨탑이 보인다.

 

 

 

21세기의 신밧드 - 바그다드 르네상스 플랜

 

 

바그다드 르네상스 플랜의 레이아웃. 건축가는 도시의 자급자족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아바스 왕조 시대 동아프리카, 인도, 중국해까지 넘나들었던 바그다드의 영예는 신밧드라는 위대한 모험가의 이야기로 집약된다. 그는 세계의 바다를 넘나들며 온갖 기이한 모험을 벌인 뒤에 수많은 금은보화를 바그다드에 가지고 돌아온다. 전쟁 이후, 복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라크인들에게는 운수 좋은 알리 바바보다는 어떤 고난도 스스로 이겨낸 신밧드가 더 훌륭한 롤 모델이 될 것 같다.


건축가 히삼 아스쿠리(Hisham N. Ashkouri)는 이라크 재건의 상징으로 31층짜리 신밧드 호텔(Sindbad Hotel Complex and Conference Center)을 건설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는 이 건물이 바그다드의 첫 번째 마천루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꿀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티그리스강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바그다드 르네상스 플랜' 역시 이 도시가 꿈꾸고 있는 21세기의 천일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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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메소포타미아 | 바그다드 | 티그리스강 | 칼리프

물음표의 도시, 카이로(세계명소)

August 27, 2010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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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544.jpg  heart투탕카멘의 수수께끼, 이곳에 모이다 - 이집션 박물관

이집트, 미라 하면 당연히 떠오르는 투탕카멘. 투탕카멘의 발굴은 그 자체로 전설이다. 이집트의 제18왕조의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의 무덤은 1922년에 처음 발견되었는데, 당시 굉장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무덤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존재감조차 희박하던 이 파라오는 도굴이 안 된 온전한 무덤에서 수많은 보물과 함께 발견되면서 이집트의 왕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떠올랐다.


아홉 살의 나이로 파라오의 자리에 올랐다가 열아홉에 죽은 연약한 왕. 요절의 원인은 오랫동안 미스테리였으나 오랜 연구 끝에 뼈 질환과 말라리아 등 합병증으로 일어난 한쪽 다리의 부상으로 밝혀졌다. 발이 안쪽으로 휘는 병인 내반족, 입천정이 갈라져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기형인 구개파열을 앓고 있던 것도 함께 드러났다.


투탕카멘은 또한 기이한 저주로도 유명하다. 발굴에 관련된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죽었다는 게 그 소문의 내용인데, 발굴을 기획하고 자본을 댔던 카나본 경이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 그 5개월 뒤 카나본 경의 동생이 돌연사한 사건, 발굴을 지휘했던 하워드 카터가 기르던 카나리아가 무덤을 열던 날 코브라에 잡아먹힌 사건 등이 저주의 목록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막상 무덤을 열었던 하워드 카터의 평범한 죽음은 그 모든 저주설을 무색하게 한다. 사실, 발굴에 관련된 사람 58명 중 12년 안에 죽은 건 오직 8명뿐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은 저주설이 소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는 분명한 증거다.


투탕카멘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은 손타지 않고 고스란히 발견된 수많은 보물이다. 그중에서도 청금석으로 장식된 골드마스크는 유명하다. 투탕카멘의 보물들을 현재 카이로에 있는 이집션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이집션 박물관은 16만여 점의 문화재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말 그대로 보물창고다. 장소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유물들은 건물을 포화상태로 만들고 있는데, 2011년 개관을 목표로 대 이집트 박물관이 한창 지어지고 있는 중이라 하니 수많은 나라에 빼앗기고도 넘치게 남아있는 그 풍성한 유산들은 제 가치에 걸맞은 대우를 곧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묻고, 죽이다 - 대 스핑크스(Great Sphinx)

 

 

스핑크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괴물이다. 여자의 머리와 가슴,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를 지닌 이 괴물은 티폰과 에키드나 사이에 태어난 딸이라고 한다. 헤라는 그녀를 테베 시민들을 징벌하기 위해 파견했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의 죄를 묻기 위해서였다. 


테베에 있는 피키온 산 부근에 자리 잡은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이에게 그 유명한 질문을 던진다. “아침에는 네 다리, 낮에는 두 다리,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 그리고 정답을 내놓지 못하는 자를 가차없이 잡아먹었다.


정답인 “사람”을 내놓아 스핑크스가 자살하게 만든 것은 유명한 오이디푸스다. “인생의 아침인 어린 시절에는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낮이라 할 수 있는 장년에는 두 발로 걸어다니고 인생의 밤인 노년이 되면 지팡이를 짚고 세 발로 기어다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막 속의 스핑크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신화 속에서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에게 지고 난 뒤 사라졌지만, 현실 속에서는 길이 57미터, 높이 20미터의 장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살아남아 이집트에 굉장한 관광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하나의 바윗덩어리를 깎아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큰 석조조각으로 인정받는 이 대 스핑크스는 코도 떨어져 나가고 풍파에 시달려 정교한 맛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수많은 이들에게 경외감을 안겨주고 있다. 


카프레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스핑크스는 오랫동안 모래에 파묻혀 있었는데, 훗날 젊은 왕자였던 이집트의 투트모세 4세의 꿈에 나타나 “내 몸을 덮고 있는 모래를 다 걷어 주면 너를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고 비로소 지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현재 이 전설을 새긴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꿈의 비석‘을 앞다리 사이에 끼고 있다.


스핑크스의 이름은 많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의 살아 있는 모습”이라는 뜻의 “쉐세프 앙크(Shesep ankh)”라고 불렀고, 아랍인들은 “공포의 아버지”라는 뜻을 지닌 “아엘 홀(Abu al-Haul)”이라고 불렀다. 

 

 

 

이슬람에 대해 묻다 - 알 아즈하르 모스크(Al-Azhar Mosque)

 

 

알 아즈하르 모스크의 전경.

 

이슬람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다면, 어디에 물어보면 좋을까? 이집트 국내에서는 물론이요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슬람 연구의 본산 알 아즈하르 모스크가 정답이다. 서기 972년에 모스크가 세워진 뒤, 989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활동을 시작하며 대학을 세운 이곳은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대학 중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곳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교육기관으로 인정받는 이곳은 이슬람의 ‘하버드’로, 이곳 출신의 이슬람 학자들은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현재 알 아즈하르 모스크는 이슬람의 다수 종파인 수니파의 본산이다. 처음 설립되었을 당시에는 이슬람의 소수 종파인 시아파의 교육 기관 및 모스크였다고 한다. 시아파의 지류인 이스마일파를 따랐던 파티마 왕조의 통치자 알 무잇즈가 세운 이곳에서는 첫 신학 세미나에서 시아파 율법 요지를 낭독하며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대학이 세워진 이후에도 35명의 교수는 시아파 내 이스마일파의 신앙을 가르쳤다.


알 아즈하르의 입장이 바뀐 것은 파티마 왕조의 몰락 이후이다. 새로운 왕조인 아윱 술탄들은 시아파 교육을 이집트에서 금지했다. 알 아즈하르 모스크가 수니파의 사원으로 거듭난 것은 맘룩 술탄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오스만 제국 통치기에는 무슬림 세계의 중심 신학 대학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일반 대학과 마찬가지로 모든 학문을 가르치고 있다.

 

 

 

여자들의 호기심이 비밀의 방을 만들다 - 게이어 앤더슨 박물관(Gayer Anderson Museum)

 

 

카이로에 살던 무슬림 여자들은 눈도 막고 귀도 막은 채 갇혀 살기만 했을까? 그러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녀들은 훔쳐보기의 달인이었다. 그녀들이 손님들을 훔쳐보고 잘 생긴 남자들을 품평하던 비밀의 방은 옛 저택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35년 카이로에 머물던 영국인 장교인 존 게이어 앤더슨이 17세기에 지어진 두 채의 집을 구입해 연결하고 터키 양식, 파라오 양식, 중국 양식 등으로 꾸며 완성한 집은 현재 게이어 앤더슨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그 속살을 보여주고 있다. 그곳에는 얼핏 벽장같아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좁고 긴 비밀의 방이 있다. 연회를 열면 손님들이 모여들 거실의 천정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이 방은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작은 창문이나 작은 나뭇조각을 이어 만든 장식인 마샤라베야로 가려져 있다. 여자들은 이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호기심을 채웠다.


두 채의 집 중 하나는 게이어 앤더슨이 구입하기 전, ‘크레타 여인의 집’이라 불렸다. 한때 크레타 섬에서 온 부유한 무슬림 여인의 소유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게이아 앤더슨은 이 집에 얽힌 전설들을 수집했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 집이 바로 노아의 방주가 홍수 뒤에 머물렀다는 산에서 나온 재료로 지었다는 것이다. 또한, 모세가 신의 말을 들은 것이 바로 이 지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븐 툴룬 사원의 부속건물로, 이곳 테라스에 서면 이븐 툴룬 사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의 리셉션 홀과 옥상 테라스에서 영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가 촬영되었다.

 

영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촬영장으로 쓰였다.

 

 

 

성궤가 있는 곳을 묻다 - 칸 엘 칼릴리 Khan al-Khalili 시장

 

 

카이로의 시장이 나오는 영화 [레이더스].

 

카이로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라 해도, 카이로의 시장통에 대한 분명한 이미지는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화 [레이더스]의 유명한 한 장면 때문이다.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로 가득 찬 시장 한복판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길을 가로막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를 만난다. 그는 위협적인 칼을 현란하게 휘두르며 인디아나 존스에게 다가가는데, 우리의 주인공, 고개를 갸웃하더니 바로 총으로 쏘아버린다. 야단법석을 떠는 코믹한 현지인들과 인디아나존스의 쿨한 태도가 대비되어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는 인디아나 존스 박사는 정부의 명령으로 성궤를 찾는 모험을 떠난다. 그가 찾는 성궤는 모세가 호렙산에서 가져왔다가 깨뜨린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 두 조각이 들어있는, 일명 ‘언약의 궤’. 어느 날 사라진 이 성궤를 찾는 것은 인디아나존스만은 아니다. 그 신비한 힘 때문에 나치 또한 눈에 불을 켜고 성궤를 찾고 있었던 것.


영화 속의 그 시장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카이로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인 칸 엘 칼릴리 Khan al-Khalili 시장에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1382년 맘루크 왕주의 술탄 바르쿠크의 아들 알 칼릴리 왕자가 세운 유서깊은 이 시장은 이집트에서도 가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아랍권에서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고. 6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장답게 1,500개가 넘는 점포와 미로 같은 좁은 골목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아쉽게도, 카이로의 한 시장이라고 하지만 막상 영화를 촬영한 곳은 튀니지의 다른 시장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영화 속의 그곳을 찾기는 어렵겠다. 

 

 

 

나일 강물아, 어디까지 왔니? - 나일로미터[Nilometer]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말했다. ‘이집트는 나일의 선물’이라고. 그들의 농사짓는 법은 독특하다. 애써서 밭을 갈고 잡초를 뽑지 않는다. 그들은 상류의 에티오피아 고산지대에서 범람한 강물이 밭에 흘러들어왔다 물러가기를 기다린 뒤, 비옥하고 촉촉해진 땅 위에 씨앗을 뿌리고 돼지로 하여금 땅을 밟게 한다. 돼지는 수확 때도 이용된다. 그렇게 한 해 농사가 끝나면, 다음번 나일강의 범람을 기다린다. 


그러하니,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나일강의 수위’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강물이 적어도 안 되고 지나쳐도 곤란했다. 적당하면 그해는 풍년이었다. 강물의 높이를 재는 단위는 큐빗(cubit), 약54센티미터였는데, 풍년을 보장하는 높이는 약 16큐빗이었다. 그보다 모자라도 재난이었고, 그보다 높아지면 농사를 망치는 것은 물론이요, 역병이 돌았다.


1902년 나일강 상류에 영국이 1,900미터 길이에 54미터 높이의 아스완댐을 만든 이후 수위를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나일강의 범람은 이제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나일로미터의 설계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가 맡았다.

 

 

 

 

하지만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한 건축물인 나일로미터는 아직도 제자리에 남아, 당시 이집트 농부들의 관심과 열망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카이로 남부 로다 섬에 있는 나일로미터는 AD 861년에 지어졌다. 압바스 조 칼리프인 알 무타와킬이 지었는데, 설계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가 맡았다. 강 바닥부터 가파른 계단같은 수위측정계를 설치하여 강물의 범람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하였다. 중앙에는 물높이를 재는 팔각형의 가는 돌기둥이 우뚝 서 있다. 카이로의 나일로미터는 이집트 내에서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가장 오랜 이슬람 시대 건축물이다.

 

 

 

궁금증이 뭉글뭉글 - 쿠푸 왕의 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는 규모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계7대 불가사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들어왔던 이 목록의 첫 번째 줄에는 늘 피라미드가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카이로 남서쪽 기자에 있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이다. 대피라미드, 혹은 제1 피라미드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게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규모가 압도적이다. 높이 146.5m(현재는 137m만 남아 있다), 바닥변 약 230m, 사면각도 약 51도. 평균 2.5톤의 돌을 230만 개 쌓아올려 만든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이다. 


이집트 제4왕조의 제2대 왕인 쿠푸 왕의 무덤인 이 피라미드는 4,500년 전의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놀라운 것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는 각 변의 오차가 아주 미세하다는 것. 두 번째는 피라미드가 세워진 시기가 철이 발견되기도 전임에도 불구하고, 230만 개의 돌을 필요한 크기대로 자르고 다듬는데 이용된 도구가 겨우 돌과 구리로 만든 연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로는 그 돌을 쌓기 위해 발휘된 뛰어난 건축술이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참여했던 수학자 몽즈는 대피라미드의 체적을 계산하여 프랑스의 국경을 3m의 높이에 0.3m의 폭을 가진 담으로 둘러 쌀 수 있는 양이라 환산했다 하는데, 그토록 큰 규모의 건물을 변변한 도구 없이 지어올렸다는 것은 신비에 가까운 일이다. 네 번째는 높이 20cm, 폭 22cm의 천체창이다. 이 창의 진정 놀라운 점은 기원전 2600년에서 기원전 2400년 경의 오리온자리 세 별에 정확히 맞춰져 있다는 사실. 당시의 천문학의 발달수준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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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루루-카타추타 국립공원(오스트렐리아)

June 30, 2010 | Article Posted By - 흑장미, seoul

지중해연안.gif

Alice Springs, Anzac Hill

Image via Wikipedia

바위 하나가 숙연한 감동이다. 울루루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중부의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산만 한 바위다. 바위는 오랫동안 원주민들의 성지였고,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의 로망의 땅이 됐다. 바위에 대한 고정관념은 울루루 앞에서 초라해진다. 울루루의 높이는 348m, 둘레가 9.4km로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다. 그나마 2/3는 땅속에 묻혀 있고, 걸어서 둘러보려면 몇 시간이 걸린다. 


울루루는 '지구의 배꼽', '세상의 중심'이라는 수식어를 지녔다. 일본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배경이었고, 일본 연인들이 방문하고 싶은 인기 여행지로 꼽힌다. 이곳에서 유독 달뜬 얼굴의 일본 청춘들을 여럿 만나게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울루루는 하루에도 몇 차례 색이 변한다. 감동의 수위도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지구의 배꼽, 세계 최대의 바위

영화 속 사연이 아니더라도 울루루는 덩치만큼이나 큰 전율이다. 바위는 수억 년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을 거치며 온몸에 굴곡과 생채기를 만들어 냈다. '그늘이 지난 땅'. 원주민의 말로 울루루는 그런 의미를 지녔다.

 

울루루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얼굴을 바꾼다. 시간에 따라, 하늘과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새벽녘부터 여행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해 질 녘이면 울루루 주변에 도열해 대자연이 연출하는 '홍조'를 감상한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말도, 어떤 미동도 없다. 영겁의 세월을 거친 바위는 그대로인데 울컥거리는 가슴의 수위는 시시각각 달라진다. 감동을 연출하기 위한 조연은 이곳에서 따로 필요 없다.

 

  • 1 원주민들의 전통악기인 디제리두. 사막 위의 특별한 만찬에서 그 선율을 들을 수 있다.
  • 2 해 질 녘이면 여행자들은 울루루의 주변으로 찾아든다. 감동의 순간에는 아무런 말도, 미동도 없다.

  

숙연함을 받아들이는 데 이방인과 원주민의 호흡은 다르다. 여행자들에게 가쁜 감탄의 대상은 원주민인 '아그난족'에게는 조상의 거룩한 숨결이 담긴 성지다. 죽은 자들의 혼령이 머무는 땅에는 부족의 주술사만이 오를 수 있었다. 낮은 곳에는 아그난족의 벽화가 새겨져 있고, 바위에 난 생채기 하나하나는 영혼의 흔적으로 여겨졌다. 원주민들은 울루루의 정상에 오르는 것과, 혼령의 터를 촬영하는 행위를 자제할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다.    


'고유의 것'을 탐하려는 정복자들의 의지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울루루는 오스트레일리아 초대 수상(Henry Ayers)의 이름을 따 공식명칭이 한때 '에어즈 록'으로 불리기도 했다. 정상에 오르는 편의를 위해 바위의 심장부 길에는 쇠말뚝이 박혔다.


최근에는 원주민들의 땅을 온전히 지켜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입장객들에게는 엄격한 주의사항이 요구되며,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는 울루루의 둘레길을 걷는 것을 권유한다. 울루루의 주변을 거닐면 말 없는 울루루가 단순한 대자연만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벽화와 생채기를 스쳐 지나면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지난한 삶들의 온기가 전해진다. 

 

 

시시각각 변하는 원주민의 성지

울루루를 감상하는 방법은 그밖에도 다양하다. 그중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체험은 스러져가는 바위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와인 한 잔을 기울이는 체험으로 구성된다. 해 질 녘, 달려드는 파리떼의 고충만 견뎌낸다면 자연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움은 로맨틱하다. 원주민의 전통악기인 디제리두의 연주도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 1 울루루에는 고급 숙소에 머물며 색의 변화를 감상할 수 있는 사막 위의 리조트들이 자리잡았다.
  • 2 카타추타는 조각난 바위의 모습을 지녔다. 울루루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울루루 주변에는 숙소에 누워 오로지 바위만 감상할 수 있는 고급 리조트도 자리 잡았는데 이곳에서 이색 신혼여행을 즐기는 커플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결코 요란하지 않고 고요하게 자연과 동화된다는 것이다.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울루루 주변을 질주하는 좀 더 역동적인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울루루는 서쪽으로 수십km 떨어진 카타추타와 함께 유네스코 복합유산으로 지정됐다. 자연과 원주민들의 문화적 가치가 동시에 존중받은 결과다. 카타추타는 바위 한 개가 36개로 조각난 모습을 지녔는데 역시 성지 중 하나다. 카타추타는 '머리가 많다'는 의미를 지녔는데 원주민들은 조각난 바위에서 사람 머리군을 연상해냈다. 이곳에서는 바위를 가로질러 바람의 계곡까지 트레킹 하는 코스가 인기 높다.

 

  • 1 바람의 계곡 트래킹. 카타추타는 울루루와 달리 조각난 바위의 형태다. 이곳에서는 바람의 계곡으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가 인기가 높다.
  • 2 앨리스 스프링스 도심의 벽화. 사막의 도시에는 원주민과 초기 정착 백인의 삶이 뒤엉켜 있다.

 

울루루를 여행하는 거점 도시는 인근 앨리스 스프링스 다. 앨리스 스프링스에서는 사막에 초기 정착했던 백인들과 원주민들의 삶이 뒤엉켜 있다. 안작 힐(Anzac Hill)에 올라 황야를 조망하거나 낙타를 타는 사막 사파리 등의 체험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자연은 좀 더 친밀하게 다가선다.

 

가는 길
인천에서 시드니를 경유해 울룰루로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시드니 울룰루간 3시간30분 소요. 공항에서 숙소가 밀집되어 있는 리조트 단지까지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울룰루에서 앨리스 스프링스까지는 항공편으로 50분 소요. 투어버스를 이용하면 5시간30분 걸린다. 울룰루에 일단 도착하면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주의사항을 전달받은 뒤 출입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각 호텔에서 일출·일몰을 보는 프로그램에 관한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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