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장성(萬里長城)과 베이징(北京)과의 만남은 독특하다. 지도상으로 2,700km가 넘는 거대한 성벽의 한 축은 어렴풋이 수도 베이징과 맞닿아 있다. 베이징 여행자들의 일정에는 만리장성 투어가 담기고, 광대한 성벽과 도시는 묘한 조화와 차별로 이방인들을 유혹한다. 만리장성은 2,000년 세월 동안 굳건한 방어벽의 상징이었고, 베이징은 닫힌 문을 열고 변신을 모색 중이다.
베이징을 대표하는 새로운 건축물로 자리매김한 올림픽 주경기장.
만리장성은 현재진행형 성곽이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 때 골격을 갖췄고 중원 수호에 전념했던 왕조시대에는 만리장성이 곧 국경이었다.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성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새로운 성터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본성에서 갈라져 나간 전체 길이를 합치면 5,000km가 넘는 엄청난 규모다.
베이징 인근에서 만나는 만리장성은 그 일부인 팔달령 장성(八达岭长城)이다. 베이징에서 80km 떨어졌다는 지리적 장점과 용이 춤을 추는 듯한 역동적인 형상 때문에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입구를 지나 좌우로 갈라지는 여판길과 남판길은 성벽의 개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쪽은 거친 오르막길이고 반대쪽은 완만한 내리막길인데, 어느 길로 들어서던 성곽의 윤곽은 또렷하다. 성벽은 속세의 인간과 투박한 벽돌이 만들어낸 점과 선을 이으며 아득하게 펼쳐진다.
만리장성의 일부인 팔달령 장성.
예술특구 다산쯔, 지우창
만리장성의 굳건함과는 달리 베이징은 빠르게 진화 중이다. 2008년 올림픽을 치르고 난 뒤 새로운 명소들이 꿈틀거린다. 자금성(紫禁城), 이화원([頤和園), 만리장성으로 대변되던 베이징 여행은 공간이동을 시작했다.
젊은 층은 틀에 박힌 관광명소 대신 예술특구를 찾고 있다. 다산쯔(大山子), 지우창(酒廠)으로 대변되는 예술특구들은 베이징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798예술촌’으로도 불리는 베이징 다산쯔는 군수공장의 폐허 위에 조성됐고 지우창은 예전에 술공장이었던 곳을 개조했다. 버려진 공장지대를 리모델링해 갤러리가 들어섰다는 점에서 뉴욕브루클린의 움직임과도 유사하다.
다산쯔에는 100여 개의 갤러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공장지대를 개조해 예술의 거리로 재탄생한 다산쯔.
다산쯔는 어느덧 100여 개의 갤러리가 들어설 정도로 큰 규모가 됐다.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채 벽안(碧眼)의 아티스트들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이곳에서 흔한 풍경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웬만한 비엔날레 정도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늘 볼 수 있어 둘러보는데 꼬박 반나절을 할애해도 부족하다. 다산쯔에서 벗어난 예술가들은 최근에는 호젓한 지우창 등으로 공간을 옮기고 있는데 지우창에서는 한국 갤러리들도 문을 열었다.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다
베이징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는 곳은 올림픽을 계기로 등장한 건물들이다. ‘이제 중국 최고의 건축물은 자금성이 아니다’라는 칭찬이 과장되게 들릴지라도 올림픽 주경기장은 당분간 베이징의 새로운 트레이드마크가 될 듯하다. 4만2,000톤짜리 철근 구조물은 2007년 세계 10대 건축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새둥지를 뜻하는 ‘냐오차오(鸟巢)’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새둥지를 닮아 ‘냐오차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올림픽 주경기장.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 연극인 경극.
2,400명을 수용하는 오페라극장을 품은 국가대극원은 완성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큰 원형 건축물로 등극했으며 두 개의 기울어진 타워가 독특한 CCTV 건물 역시 ‘피사의 사탑’처럼 이색적이다.
이처럼 새로운 것들이 강성해도 옛것의 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베이징 음식의 아지트인 왕푸징 거리(王府井大街)의 동화문 먹자골목은 여전히 북적북적하다. 전갈, 불가사리 꼬치 등 진기한 베이징 음식들은 만날 수 있다. 베이징 오리구이의 대명사인 전취덕은 1864년에 문을 열어 150년째 살살 녹는 오리 맛을 선사한다.
베이징의 중심가인 왕푸징 거리.
온갖 먹을거리들이 즐비하게 모여 있는 동화문 먹자골목.
베이징의 밤은 싼리툰(三里屯)과 스차하이 후퉁에 맡기면 된다. 대사관이 밀집해 있는 싼리툰 거리는 밤 10시가 넘어서면 그 진가를 뽐낸다. 메인 거리를 중심으로 라이브 바와 클럽들이 네온사인을 밝힌 모습은 흡사 서울 홍대 앞 거리를 연상시킨다.
스차하이 후퉁은 낮과 밤이 다르다. 개조한 인력거를 타고 베이징의 옛 골목을 누비는 후퉁 투어의 출발점인 스차하이 후퉁은 밤이 되면 호숫가 불빛 아래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기는 나이트라이프의 명소로 변신한다. 입구에는 당당하게 옛날 집을 개조한 스타벅스가 들어서 있고, 노천카페촌의 술값 가격은 베이징 최고 수준이다. 밤이 되면 후퉁 입구에서 베이징 시민들이 모여 지르박 등 모던 댄스를 추는 모습도 만나게 된다.
베이징 여행은 이렇듯 업그레이드 수순을 밟고 있다. 만리장성, 천안문(天安門) 등 익숙한 것에 덧칠해진 새로운 공간은 오래된 도시를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가는 길
베이징 T3 공항이 새로운 관문이다. 베이징까지 항공티켓을 구입할 때는 저가에 유혹되지 말고 유류할증료와 세금을 확인해야 한다. 베이징에서의 이동은 지하철이 편리하다. 베이징 시내는 순환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순환로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택시 이동 때 유용하다. 출퇴근 러시아워는 심각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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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뭐죠? 저기 저 갯벌에 붉은 거요.” 일행은 손가락 끝에 힘을 줘 한 곳을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갯벌로 눈길을 돌렸다. 갯벌에 붉은빛이 가득하다. 신비로웠다. 순간 순천만 용산전망대에서 본 풍경이 떠올랐다. 칠면초였다. “아! 저거요 저건 칠면초라는 건데요… 여기서 또 보네요.” 일행은 붉고 푸른빛을 발산하는 바닷가 풍경에 홀린 듯 한동안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붉고 푸른 갯벌
무안은 땅의 반 이상이 황토다. 그리고 대부분의 바다가 갯벌을 품고 있다. 그래서 무안은 갯벌과 황토의 고장이다. 갯벌과 바다, 황토가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무안 곳곳에 있는데 그 중 이번 걷기여행 코스는 유월리 무안생태갯벌센터에서 송석리 송계어촌체험마을까지 가는 약 8.5km 구간이다. 이 길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자연이 만들어 내는 빛과 색이다. 봄의 신록, 가을 단풍, 빛깔 좋은 꽃 등의 아름다움은 흔히 볼 수 있지만 바다와 갯벌 황토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신비스러운 색의 향연을 보려면 이 길을 걸어야 한다.
무안생태갯벌센터 건물 2층에서 바라본 갯벌 풍경.
걷기여행의 출발점은 무안군 해제면 유월리 1-1, 무안생태갯벌센터다. 무안의 갯벌은 3000여 년 전부터 퇴적과 침식을 거듭하며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형성된 갯벌의 생태와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 무안생태갯벌센터다.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개관), 명절 연휴 휴관. 오전 9시~오후 6시. 입장료 500원~1500원]
무안생태갯벌센터 2층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인상적이다. 칠면초 군락이 붉은 빛을 한껏 발산한다. 붉은 빛 사이에 푸른빛 생명체가 햇볕에 반짝인다. 갯벌의 원래 색이 그 사이를 메우고 있으며 연무에 싸인 바다가 그윽하게 빛난다. 풍경을 감상하고 무안생태갯벌센터에서 무안의 갯벌에 대한 전시물 관람 및 정보를 얻는다. 생태연못, 염전체험장, 갯벌탐방로, 칠면초 등 염생식물 단지 등도 이용할 수 있다. 다 둘러 본 뒤 매표소 앞을 지나 직진, 길을 만나면 우회전해서 길을 따라 걷는다(바다는 오른쪽에 있다).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다.
길은 황토밭 사이로 났다. 푸른 생명이 자라나는 밭은 푸른빛으로 빛나고, 아무것도 심지 않은 밭이라도 황토의 붉은 빛이 강렬하다. 더 멀리 갯벌은 붉고 푸른빛이 어울려 있으며 연무에 싸인 바다가 배경이 되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길에서 볼 수 있는 이 모든 풍경은 자연이 선물하는 빛과 색의 향연이다.
길은 낮게 흐르고
바다와 갯벌, 황토가 만들어 내는 빛의 향연을 즐기며 걷는 길은 여행자 마음을 밝게 만든다. 길은 대부분 바다와 나란히 놓여 있지만 무안생태갯벌센터에서 나와 약 3km 정도 지나면서 바다와 더 가까워진다. 갯벌로 내려갈 수도 있다. 바다처럼 낮게 깔린 길은 주변 풍경과 어울려 그 자체로 걸음을 유혹한다. 이 길에서는 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여행자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도 곳곳에 있다.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야 하지만 가끔 다니는 차만 조심하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가을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고 이마에 등줄기에 땀이 흐르지만 주변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힘든 줄 모른다. 곧게 뻗은 도로 끝은 오르막이다. 길 오른쪽 옆에는 갯벌과 바다가 펼쳐진다. 아이들이 갯벌에서 논다. 몇몇은 앉아서 흙을 파고 있고 몇몇은 갯벌을 뛰어 다닌다. 저 멀리 바닷가에서 어부가 낚시 도구를 손질한다. 조금 있으면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것 같다. 길 옆 갯벌에는 일을 마친 어망이 한가롭게 햇볕을 쬔다. 이런 풍경을 보며 고개를 넘는다. 이 고개만 넘으면 도리포다.
도리포는 옛날에 중국과 가장 가까웠던 항구였기 때문에 중요한 교역항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95년에 14세기 강진 청자 639점이 인양되는 등 고려청자 매장지역으로 유명하다.
도리포, 또 다른 희망의 시작
청자를 인양했다는 역사적인 이유 말고도 도리포는 고즈넉한 바닷가 마을 자체로 여행자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 바다와 항구와 마을에 햇볕이 가득 찼다. 물결마다 부서지는 햇볕은 휘발하는 기체처럼 청량하게 하늘로 흩어지는 것 같다. 간혹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는데, 그럴 때면 도리포 바다 앞에 선 여행자도 바닷가 풍경이 된 듯하다.
도리포 갯바위 위에서 바라본 갯바위와 바다. 바다 빛이 아름답다. 저 바다 끝에 보이는 곳이 함평이다.
도리포는 길의 끝이다. 길의 끝은 갯바위다. 누군가 그 갯바위에 ‘희망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희망봉 위에는 무안군 보호수 ‘행운을 비는 나무’가 푸르게 자란다. 그 앞 바다가 함평만이고 바다 건너가 함평 땅이다. 구름 낮게 깔린 도리포 바다는 오늘도 고즈넉하다. 갯바위에 올랐다. 행운을 비는 나무 옆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간혹 불었고 구름 사이로 해가 나타날 때면 따가운 햇볕도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어도 행복했다. 그리고 행운을 비는 나무에 소원을 빌었다. ‘이곳에 와서 행운을 비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해달라’고.
수녀복을 입은 사람들이 갯바위를 오가며 허리 굽혀 무엇인가를 줍고 있다. 삶의 한 부분을 포기한 사람들의 뒷모습이 바다에 겹친다. 바다로 머리를 내민 갯바위, 희망봉 정수리에 앉아 생각해본다. ‘한 삶을 버린 저들이 또 다른 희망을 줍는다. 희망봉은 허리를 굽힌다.’ 풍경이 이끌어 낸 상념에서 깨어나자 허기가 졌다. 어민복지회관에서 음료수와 간단한 먹을거리로 시장기만 속이고 도착지점인 송계어촌체험마을로 길을 재촉했다. 이제 약 1km만 더 걸으면 된다. 그곳에 가면 배를 타고 나가 바다사람들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다(물이 차고 빠지는 때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갯벌 및 어장체험을 하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
어차피 여행이란 다른 세상에서 또 다른 나를 찾는 일 아니겠는가. 도리포에서 발걸음이 싱그러워진다.
웹 브라우저(web browser)는 웹 서버에서 쌍방향 통신하는 HTML 문서나 파일과 연동하고 출력하는 응용 소프트웨어이다. 개인용 컴퓨터에서 주로 쓰는 웹 브라우저에는 인터넷 익스플로어, 모질라 파이어폭스, 오페라, 사파리, 구글 크롬 등이 있다. 웹 브라우저는 대표적인 HTTP사용자 에이전트의 하나이기도 하다.
웹 브라우저는 웹 페이지를 가져오기 위해 대부분의 웹 서버가 사용하는 HTTP(hyper-text transfer protocol)로 통신한다. HTTP를 이용해 웹 페이지를 가져올 뿐 아니라 웹 서버에 정보를 송신하기도 한다. 작성한 시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HTTP는 HTTP/1.1로 RFC 2616에 정의되어 있다. HTTP/1.1은 현 세대의 다른 브라우저와는 달리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완벽하게 지원하지 못하는 표준이 있어야 한다.
페이지들은 주소처럼 이용되는 URL(uniform resource locator)을 통해 장소가 정해지고, HTTP 접근을 위해 "http:"로 시작된다. 많은 브라우저가 FTP를 위한 "ftp:", HTTPS(암호화된 HTTP)를 위한 "https:"와 같은 다양한 URL 종류와 대응 프로토콜을 지원한다.
웹 페이지의 파일 포맷은 보통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이 쓰이고 HTTP 프로토콜의 MIME "content type"에 의해 확인된다. 대부분의 브라우저는 HTML 외에 JPEG, PNG, GIF 이미지 포맷들을 지원하고, 그밖에도 플러그인을 통해 확장할 수 있다. HTTP의 "content type"과 URL 프로토콜 명세의 조합으로 웹 페이지 설계자들은 이미지, 애니메이션, 동영상, 소리, 스트리밍 미디어 등을 웹 페이지에 덧붙이거나 웹 페이지를 통해 접근할 수 있게 한다.
초기의 웹 브라우저는 단순한 HTML만을 지원했다. 독점적인 웹 브라우저의 빠른 개발로 HTML의 비표준 확장이 많이 이루어졌고, 웹 호환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났다. 현대의 웹 브라우저들은 모든 브라우저에서 동일하게 표시되어야 할 표준 기반의 HTML과 XHTML(HTML 4.01에서 출발한)[1]을 지원한다.
부가적으로 유즈넷 뉴스나 IRC(Internet relay chat), 이메일 등을 지원하는 브라우저도 있다. 이들은 대체로 NNTP, SMTP, IMAP 등의 프로토콜 지원이 포함된다.
이집트, 미라 하면 당연히 떠오르는 투탕카멘. 투탕카멘의 발굴은 그 자체로 전설이다. 이집트의 제18왕조의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의 무덤은 1922년에 처음 발견되었는데, 당시 굉장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무덤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존재감조차 희박하던 이 파라오는 도굴이 안 된 온전한 무덤에서 수많은 보물과 함께 발견되면서 이집트의 왕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떠올랐다.
아홉 살의 나이로 파라오의 자리에 올랐다가 열아홉에 죽은 연약한 왕. 요절의 원인은 오랫동안 미스테리였으나 오랜 연구 끝에 뼈 질환과 말라리아 등 합병증으로 일어난 한쪽 다리의 부상으로 밝혀졌다. 발이 안쪽으로 휘는 병인 내반족, 입천정이 갈라져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기형인 구개파열을 앓고 있던 것도 함께 드러났다.
투탕카멘은 또한 기이한 저주로도 유명하다. 발굴에 관련된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죽었다는 게 그 소문의 내용인데, 발굴을 기획하고 자본을 댔던 카나본 경이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 그 5개월 뒤 카나본 경의 동생이 돌연사한 사건, 발굴을 지휘했던 하워드 카터가 기르던 카나리아가 무덤을 열던 날 코브라에 잡아먹힌 사건 등이 저주의 목록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막상 무덤을 열었던 하워드 카터의 평범한 죽음은 그 모든 저주설을 무색하게 한다. 사실, 발굴에 관련된 사람 58명 중 12년 안에 죽은 건 오직 8명뿐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은 저주설이 소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는 분명한 증거다.
투탕카멘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은 손타지 않고 고스란히 발견된 수많은 보물이다. 그중에서도 청금석으로 장식된 골드마스크는 유명하다. 투탕카멘의 보물들을 현재 카이로에 있는 이집션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이집션 박물관은 16만여 점의 문화재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말 그대로 보물창고다. 장소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유물들은 건물을 포화상태로 만들고 있는데, 2011년 개관을 목표로 대 이집트 박물관이 한창 지어지고 있는 중이라 하니 수많은 나라에 빼앗기고도 넘치게 남아있는 그 풍성한 유산들은 제 가치에 걸맞은 대우를 곧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묻고, 죽이다 - 대 스핑크스(Great Sphinx)
스핑크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괴물이다. 여자의 머리와 가슴,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를 지닌 이 괴물은 티폰과 에키드나 사이에 태어난 딸이라고 한다. 헤라는 그녀를 테베 시민들을 징벌하기 위해 파견했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의 죄를 묻기 위해서였다.
테베에 있는 피키온 산 부근에 자리 잡은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이에게 그 유명한 질문을 던진다. “아침에는 네 다리, 낮에는 두 다리,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 그리고 정답을 내놓지 못하는 자를 가차없이 잡아먹었다.
정답인 “사람”을 내놓아 스핑크스가 자살하게 만든 것은 유명한 오이디푸스다. “인생의 아침인 어린 시절에는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낮이라 할 수 있는 장년에는 두 발로 걸어다니고 인생의 밤인 노년이 되면 지팡이를 짚고 세 발로 기어다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막 속의 스핑크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신화 속에서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에게 지고 난 뒤 사라졌지만, 현실 속에서는 길이 57미터, 높이 20미터의 장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살아남아 이집트에 굉장한 관광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하나의 바윗덩어리를 깎아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큰 석조조각으로 인정받는 이 대 스핑크스는 코도 떨어져 나가고 풍파에 시달려 정교한 맛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수많은 이들에게 경외감을 안겨주고 있다.
카프레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스핑크스는 오랫동안 모래에 파묻혀 있었는데, 훗날 젊은 왕자였던 이집트의 투트모세 4세의 꿈에 나타나 “내 몸을 덮고 있는 모래를 다 걷어 주면 너를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고 비로소 지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현재 이 전설을 새긴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꿈의 비석‘을 앞다리 사이에 끼고 있다.
스핑크스의 이름은 많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의 살아 있는 모습”이라는 뜻의 “쉐세프 앙크(Shesep ankh)”라고 불렀고, 아랍인들은 “공포의 아버지”라는 뜻을 지닌 “아엘 홀(Abu al-Haul)”이라고 불렀다.
이슬람에 대해 묻다 - 알 아즈하르 모스크(Al-Azhar Mosque)
알 아즈하르 모스크의 전경.
이슬람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다면, 어디에 물어보면 좋을까? 이집트 국내에서는 물론이요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슬람 연구의 본산 알 아즈하르 모스크가 정답이다. 서기 972년에 모스크가 세워진 뒤, 989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활동을 시작하며 대학을 세운 이곳은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대학 중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곳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교육기관으로 인정받는 이곳은 이슬람의 ‘하버드’로, 이곳 출신의 이슬람 학자들은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현재 알 아즈하르 모스크는 이슬람의 다수 종파인 수니파의 본산이다. 처음 설립되었을 당시에는 이슬람의 소수 종파인 시아파의 교육 기관 및 모스크였다고 한다. 시아파의 지류인 이스마일파를 따랐던 파티마 왕조의 통치자 알 무잇즈가 세운 이곳에서는 첫 신학 세미나에서 시아파 율법 요지를 낭독하며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대학이 세워진 이후에도 35명의 교수는 시아파 내 이스마일파의 신앙을 가르쳤다.
알 아즈하르의 입장이 바뀐 것은 파티마 왕조의 몰락 이후이다. 새로운 왕조인 아윱 술탄들은 시아파 교육을 이집트에서 금지했다. 알 아즈하르 모스크가 수니파의 사원으로 거듭난 것은 맘룩 술탄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오스만 제국 통치기에는 무슬림 세계의 중심 신학 대학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일반 대학과 마찬가지로 모든 학문을 가르치고 있다.
카이로에 살던 무슬림 여자들은 눈도 막고 귀도 막은 채 갇혀 살기만 했을까? 그러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녀들은 훔쳐보기의 달인이었다. 그녀들이 손님들을 훔쳐보고 잘 생긴 남자들을 품평하던 비밀의 방은 옛 저택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35년 카이로에 머물던 영국인 장교인 존 게이어 앤더슨이 17세기에 지어진 두 채의 집을 구입해 연결하고 터키 양식, 파라오 양식, 중국 양식 등으로 꾸며 완성한 집은 현재 게이어 앤더슨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그 속살을 보여주고 있다. 그곳에는 얼핏 벽장같아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좁고 긴 비밀의 방이 있다. 연회를 열면 손님들이 모여들 거실의 천정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이 방은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작은 창문이나 작은 나뭇조각을 이어 만든 장식인 마샤라베야로 가려져 있다. 여자들은 이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호기심을 채웠다.
두 채의 집 중 하나는 게이어 앤더슨이 구입하기 전, ‘크레타 여인의 집’이라 불렸다. 한때 크레타 섬에서 온 부유한 무슬림 여인의 소유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게이아 앤더슨은 이 집에 얽힌 전설들을 수집했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 집이 바로 노아의 방주가 홍수 뒤에 머물렀다는 산에서 나온 재료로 지었다는 것이다. 또한, 모세가 신의 말을 들은 것이 바로 이 지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븐 툴룬 사원의 부속건물로, 이곳 테라스에 서면 이븐 툴룬 사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의 리셉션 홀과 옥상 테라스에서 영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가 촬영되었다.
영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촬영장으로 쓰였다.
성궤가 있는 곳을 묻다 - 칸 엘 칼릴리 Khan al-Khalili 시장
카이로의 시장이 나오는 영화 [레이더스].
카이로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라 해도, 카이로의 시장통에 대한 분명한 이미지는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화 [레이더스]의 유명한 한 장면 때문이다.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로 가득 찬 시장 한복판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길을 가로막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를 만난다. 그는 위협적인 칼을 현란하게 휘두르며 인디아나 존스에게 다가가는데, 우리의 주인공, 고개를 갸웃하더니 바로 총으로 쏘아버린다. 야단법석을 떠는 코믹한 현지인들과 인디아나존스의 쿨한 태도가 대비되어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는 인디아나 존스 박사는 정부의 명령으로 성궤를 찾는 모험을 떠난다. 그가 찾는 성궤는 모세가 호렙산에서 가져왔다가 깨뜨린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 두 조각이 들어있는, 일명 ‘언약의 궤’. 어느 날 사라진 이 성궤를 찾는 것은 인디아나존스만은 아니다. 그 신비한 힘 때문에 나치 또한 눈에 불을 켜고 성궤를 찾고 있었던 것.
영화 속의 그 시장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카이로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인 칸 엘 칼릴리 Khan al-Khalili 시장에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1382년 맘루크 왕주의 술탄 바르쿠크의 아들 알 칼릴리 왕자가 세운 유서깊은 이 시장은 이집트에서도 가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아랍권에서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고. 6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장답게 1,500개가 넘는 점포와 미로 같은 좁은 골목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아쉽게도, 카이로의 한 시장이라고 하지만 막상 영화를 촬영한 곳은 튀니지의 다른 시장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영화 속의 그곳을 찾기는 어렵겠다.
나일 강물아, 어디까지 왔니? - 나일로미터[Nilometer]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말했다. ‘이집트는 나일의 선물’이라고. 그들의 농사짓는 법은 독특하다. 애써서 밭을 갈고 잡초를 뽑지 않는다. 그들은 상류의 에티오피아 고산지대에서 범람한 강물이 밭에 흘러들어왔다 물러가기를 기다린 뒤, 비옥하고 촉촉해진 땅 위에 씨앗을 뿌리고 돼지로 하여금 땅을 밟게 한다. 돼지는 수확 때도 이용된다. 그렇게 한 해 농사가 끝나면, 다음번 나일강의 범람을 기다린다.
그러하니,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나일강의 수위’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강물이 적어도 안 되고 지나쳐도 곤란했다. 적당하면 그해는 풍년이었다. 강물의 높이를 재는 단위는 큐빗(cubit), 약54센티미터였는데, 풍년을 보장하는 높이는 약 16큐빗이었다. 그보다 모자라도 재난이었고, 그보다 높아지면 농사를 망치는 것은 물론이요, 역병이 돌았다.
1902년 나일강 상류에 영국이 1,900미터 길이에 54미터 높이의 아스완댐을 만든 이후 수위를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나일강의 범람은 이제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나일로미터의 설계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가 맡았다.
하지만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한 건축물인 나일로미터는 아직도 제자리에 남아, 당시 이집트 농부들의 관심과 열망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카이로 남부 로다 섬에 있는 나일로미터는 AD 861년에 지어졌다. 압바스 조 칼리프인 알 무타와킬이 지었는데, 설계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가 맡았다. 강 바닥부터 가파른 계단같은 수위측정계를 설치하여 강물의 범람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하였다. 중앙에는 물높이를 재는 팔각형의 가는 돌기둥이 우뚝 서 있다. 카이로의 나일로미터는 이집트 내에서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가장 오랜 이슬람 시대 건축물이다.
궁금증이 뭉글뭉글 - 쿠푸 왕의 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는 규모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계7대 불가사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들어왔던 이 목록의 첫 번째 줄에는 늘 피라미드가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카이로 남서쪽 기자에 있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이다. 대피라미드, 혹은 제1 피라미드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게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규모가 압도적이다. 높이 146.5m(현재는 137m만 남아 있다), 바닥변 약 230m, 사면각도 약 51도. 평균 2.5톤의 돌을 230만 개 쌓아올려 만든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이다.
이집트 제4왕조의 제2대 왕인 쿠푸 왕의 무덤인 이 피라미드는 4,500년 전의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놀라운 것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는 각 변의 오차가 아주 미세하다는 것. 두 번째는 피라미드가 세워진 시기가 철이 발견되기도 전임에도 불구하고, 230만 개의 돌을 필요한 크기대로 자르고 다듬는데 이용된 도구가 겨우 돌과 구리로 만든 연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로는 그 돌을 쌓기 위해 발휘된 뛰어난 건축술이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참여했던 수학자 몽즈는 대피라미드의 체적을 계산하여 프랑스의 국경을 3m의 높이에 0.3m의 폭을 가진 담으로 둘러 쌀 수 있는 양이라 환산했다 하는데, 그토록 큰 규모의 건물을 변변한 도구 없이 지어올렸다는 것은 신비에 가까운 일이다. 네 번째는 높이 20cm, 폭 22cm의 천체창이다. 이 창의 진정 놀라운 점은 기원전 2600년에서 기원전 2400년 경의 오리온자리 세 별에 정확히 맞춰져 있다는 사실. 당시의 천문학의 발달수준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겠다.
파레토법칙은 20%의 상품이 총 매출의 80%를 창출하고, 20%의 충성스런 고객들이 총 매출의 80% 차지한다는 식으로 '결과물의 80%는 조직의 20%에 의하여 생산된다'는 이론이다. 이같은 '80 대 20 법칙'은 비즈니스 분야에서 황금률로 받아들여져 마케팅의 기본 토대가 되었다. 인기상품을 고객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하여 판매하거나 소수의 우수고객 또는 우량고객을 우대하는 등의 마케팅 기법은 모두 이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롱테일법칙은 파레토법칙과는 거꾸로 80%의 '사소한 다수'가 20%의 '핵심 소수'보다 뛰어난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론으로서, 이 때문에 '역(逆) 파레토법칙'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온라인 서점 아마존닷컴의 전체 수익 가운데 절반 이상은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서가에 비치하지도 않는 비주류 단행본이나 희귀본 등 이른바 '팔리지 않는 책'들에 의하여 축적되고, 인터넷 포털 구글의 주요 수익원은 《포춘》에서 500대 기업으로 선정한 '거대 기업'들이 아니라 꽃배달 업체나 제과점 등 '자잘한' 광고주라는 것이다.
이 용어는 2004년 10월 미국의 인터넷 비즈니스 관련 잡지 《와이어드 Wired》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이 처음 사용하였다. 앤더슨에 따르면, 어떤 기업이나 상점이 판매하는 상품을 많이 팔리는 순서대로 가로축에 늘어놓고, 각각의 판매량을 세로축에 표시하여 선으로 연결하면 많이 팔리는 상품들을 연결한 선은 급경사를 이루며 짧게 이어지지만 적게 팔리는 상품들을 연결한 선은 마치 공룡의 '긴 꼬리(long tail)'처럼 낮지만 길게 이어지는데, 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상품들의 총 판매량이 많이 팔리는 인기 상품의 총 판매량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의 발달에 따른 현상으로 분석된다. 인터넷상에서는 예를 들면,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서가에 비치되지도 않는 책들까지 모두 소개할 수 있는 등 전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전시비용이나 물류비용이 매우 저렴해져서 유통구조가 혁신되었으며, 소비자들은 검색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상품 정보를 찾을 뿐 아니라 다른 소비자들과 소통하여 제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됨으로써 선택의 폭이 크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조건들이 결합되어 종전에는 비용대비 저효율로 소비자의 눈에 띌 기회조차 갖지 못하였던, 외면당하던 제품들이 전체적으로는 인기상품을 압도하는 결과를 낳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르게 되었다.
투박한 열차에 오르면 중세로 떠나는 슬로바키아(Slovakia) 여행은 시작된다. 열차 안의 낯선 언어는 무뚝뚝해도 친근함이 있다. 보헤미안의 풍류가 서린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는 고풍스럽고 정감 넘친다. 잊혀졌던 ‘원초적’인 동유럽의 향수가 담겨 있다. 체코프라하, 헝가리부다페스트에서 ‘깊은 동유럽’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여행자들로 가득 채워진 프라하의 카를교나 부다페스트 왕궁에 서면 파리샹젤리제 거리에 와 있는 듯하다. 다국적 사람들의 혼란스런 언어, 빠른 발걸음 소리는 귀를 어지럽게 만든다.
미카엘스 탑은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의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탑 주변에는 노천바들이 늘어서 있다.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한가운데 놓여 있으면서도 생소하게 다가왔던 브라티슬라바는 그런 점에서 여행자의 마음을 빼앗는다. 오스트리아 빈의 수드반호프역(Südbahnhof, 남역)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는 열차로 불과 1시간 걸릴 뿐이다.
오스트리아 동쪽 끝, 마세그역(Marchegg)을 넘어서면 풍경은 달라진다. 빈의 도시 향은 사라지고 정겨운 시골풍경이 나타난다. 열차로 동유럽 국경을 넘는 것은 재미와 스릴이 넘친다. 차장이 도중에 바뀌고 출입국 검사도 까다롭다. 독일어를 쓰는 배낭족은 수프도 끓여 먹고 피리도 불어 대는 한가로운 모습이다. 촌스런 유니폼의 차장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이다.
동유럽의 오랜 향수가 투영된 도시
비엔나에서 브라티슬라바행 열차에 오르는 순간
고풍스런 동유럽 여행은 시작된다.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은 유럽의 외딴 시골역 같은 정경을 만들어낸다.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인 흘라브나 스타니카(hlavná stanica)는 기대만큼이나 여유롭다. 수드반호프역에서 봤던 마음 급한 단체관광객을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MT라도 온 듯 배낭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기타를 퉁긴다. 슬로바키아의 수도가 아니라 소박한 시골 마을의 정경이다.
역 주변에서 구시가로 이어지는 길목은 고즈넉하다. 골목 어느 곳에서나 이정표가 되는 곳은 브라티슬라바성이다. 성은 슬로바키아의 동전에도 새겨져 있고 각종 기념품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로마와의 변경(邊境)을 지켜냈던 성은 1800년대 헝가리의 지배 때 파괴됐다가 재건축됐다. 한때는 대통령의 거처였고 국회의사당 건물로 이용되기도 했다.
성루에 오르면 브라티슬라바는 도나우 강(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두 가지 모습으로 나뉜다. 한쪽은 창백하고 다른 한쪽은 소담스럽다. 구시가, 신시가에 대한 경계선은 어느 도시보다 명확하다. 구시가지는 헝가리 통치 시절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유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다리 건너 신시가는 사회주의식의 황량한 회백색 건물로 채워져 있다.
슬로바키아 기념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브라티슬라바 성.
도시에는 슬로바키아의 애틋한 역사도 서려 있다. 슬로바키아는 오랜 기간 헝가리의 통치를 받았고, 브라티슬라바에는 200년 넘게 헝가리의 수도가 들어서기도 했다. 체코와 병합돼 체코슬로바키아를 세운 뒤에도 경제 발전은 대부분 체코 중심으로 이뤄졌고 전통 농업 국가였던 슬로바키아는 늘 뒷전이었다. 뒤늦은 개발은 1989년 벨벳혁명 이후 재분리된 슬로바키아가 오히려 옛 흔적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보헤미안의 소박하고 고즈넉한 정취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지 여행은 미카엘스 탑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14세기에 세워진 미카엘스 탑은 오랫동안 브라티슬라바의 관문이었다. 성 마틴 대성당, 성 프란시스코 교회, 시청사 등 대부분의 볼거리들이 인근에 몰려 있다. 성 마틴 대성당은 슬로바키아의 역대 왕과 왕비를 기리고 있으며 성 프란시스코 교회는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이곳 골목은 중세의 ‘고도’임을 항변하듯 규칙 없는 미로 같은 길이다. 흐비쯔도슬라보브 광장(Hviezdoslav Square) 등 구도시의 거리들은 빛바랜 건물과 그 건물에 기대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미로같은 구시가의 상징적인 기준이 되는 미카엘스 탑.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성 프란시스코 교회.
옛 시청사가 있는 광장 앞 주변은 노천바와 조각품들로 채색된다. 브라티슬라바의 명물인 소를 주제로 한 조각과 거리의 악사를 만날 수 있는 곳도 이곳이다. 노천바에 앉아 맥주를 주문하면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이 가득 담겨 나온다. 알싸한 맛이 강한 보헤미안 맥주는 구시가의 향취를 더욱 몽롱하게 만든다. 음악가인 프란츠 리스트 역시 도시에 취해 15차례나 브라티슬라바를 찾았다고 한다.
브라티슬라바 외곽에서는 외국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헝가리어, 체코어가 국어로 쓰이던 시절이 있었기에, 슬로바키아어를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이곳 사람들의 자국어에 대한 애착심은 대단하다. 그렇다고 여느 식당이나 모텔에서 언어 때문에 불편한 경우는 없다. 그림을 그려주면 그림으로 화답할 정도의 정성스런 모습을 보여준다. 유럽의 흥청대는 관광지와 달리 때가 묻지 않은 게 슬로바키아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구시가의 골목들은 다른 동유럽의 수도와 달리
고즈넉한 풍경이다.
브라티슬라바는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정감이 묻어나는 도시다.
슬라브족 여인들은 덩치도 아담하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가족뿐 아니라 체면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동양인들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순박하고 단아한 사람들을 동유럽의 숨겨 놓은 도시는 소중하게 간직해내고 있다.
가는 길
오스트리아 빈이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차를 타는 게 일반적이다. 빈의 수드반호프역에서는 평균 1시간 단위로 열차가 다닌다. 동유럽구간의 이동 때는 동유럽 패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집 전체를 녹색으로 칠하거나 녹색 재료만을 사용해 지었다고 녹색 주택이 되지는 않는다. 진정한 녹색 주택은 친환경적이며 저에너지 소비를 지향해야 한다. 유럽 출장 중에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 신문에서 읽은 인상적인 기사가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친환경 녹색 주택을 위해서는 태양에너지, 우수한 단열재를 사용해야
독일의 한 주택 건설사가 모범적 녹색 주택 설계 모형을 제안하고 있으며, 그 회사는 주문에 따라 녹색 주택을 건축해준다는 기사였다. 가장 눈에 뜨이는 세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가정용 에너지의 대부분을 태양에너지(태양빛과 태양열)를 사용하여 얻는다.
2. 건축자재는 단열성이 우수하고 친환경적인 제품을 쓴다.
3. 사용하는 물은 재사용 가능케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자주 듣는 소위 ‘녹색 기술(green technology)’을 최대한 적용하여 주택을 짓겠다는 것이다. 기술적 내용을 각각 상술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매우 인상적이라 생각했다. 친환경 주택에서 중요한 요소인 우수한 단열재를 만들기 위한 화학적인 노력과 함께, 에너지 생산을 위한 태양에너지 활용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단열재로 사용하는 발포 폴리스티렌과 폴리우레탄은 절연 효과가 우수해
주택의 에너지 절약은 기초∙벽∙지붕∙창문 및 문이 만드는 소위 건물 외피 내의 에너지 흐름과 냉·난방 및 환기에 특히 주목하여야 한다. 불행히도 천연 건축재료는 대부분 절연체로 친환경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여, 발포 폴리스티렌(흔히 스티로폼, 스티로폴 등으로 잘 알려졌다.)과 폴리우레탄이 대표적 절연성 벽, 지붕 재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폴리우레탄 제조에는 독성이 센 디이소시아네이트, 석유화학제품인 폴리올∙난연제∙발포제∙접착제 등이 함께 사용되는데, 친환경적이며 온실가스 방출 감소형 원료 사용에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다. 예컨대 콩기름을 폴리올 제조에 사용하고, 화학 발포제 대신 공기가 채워진 발포 재료를 만들며, 단열재의 두께를 줄이기 위해 흑연 가루를 충전제로 사용하는 등 새로운 기술이 개선된 단연재를 가능케 하고 있다.
스티렌 단위체가 중합 반응을 통해, 폴리스티렌이 된다.
이 폴리스티렌이 발포과정을 거치면, 흔히 부르는 스티로폼이 된다.
<출처 : Edgar181 at ko.wikipedia.com>
우리가 종종 보는 절연구조패널은 절연건축재료로 인기가 점점 높아가고 있는데, 사용하기 쉬운 모듈형으로 주로 절연벽, 천장재료로 쓰이고 있다. 섬유판∙합판∙석고판∙섬유-시멘트 복합판 사이에 발포 폴리스티렌이나 폴리우레탄을 채운 구조로 되어 있다. 절연 및 방수 코팅된 알루미늄이나 철판 구조를 외부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발포 폴리스티렌과 콘크리트를 섞어 만든 절연 콘크리트도 미국 일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우수한 절연효과를 가지고 있어, 건축 단열재로 많이 사용하는 폴리우레탄의 구조
건물의 단열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
요즈음 건축하는 고층 건물을 보면 커다란 철제 프레임을 유리로 뒤덮은 유리통 모양이다. 철제 프레임의 절연성은 매우 나쁘고, 유리창이 태양열의 1/3이나 건물로 들어가게 해 냉방에 큰 부담을 준다. 따라서 유리의 절연성을 향상하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상용화되고 있다.
단열 효과가 좋은 물질을 판 사이에 채운 샌드위치 패널
그 중 미국에서 시판되고 있는 금속산화물을 다층으로 코팅한 유리가 유명하다. 맑은 날에 전압을 조금 걸어 주면 유리가 어두워져 햇볕의 98%를 차단하고 전압을 반대 방향으로 걸면 다시 투명해진다. 가역적 전기 화학적 반응을 이용한 예다.
또 재미난 아이디어는 석회 보드에 캡슐화시킨 왁스를 포함하는 법이다. 방이 너무 더워지면 왁스가 열을 흡수해 녹고, 저녁때 방이 추워지면 왁스가 다시 굳어지면서 저장 열을 방출한다. 이런 아이디어를 독일의 BASF와 미국 듀폰사가 이용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유리창과 벽재 사이에 왁스를 넣은 단열 및 냉·난방에 효율적인 건축재 개발이 제안된 바 있다. 알루미늄판 사이에 고분자 재료 매트릭스에 왁스를 충전시켜 샌드위치 꼴로 만든 제품도 눈에 뜨인다.
태양열의 이용과는 달리, 태양광발전은 아직 걸음마 단계
녹색 주택의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해서는 단열성이 좋은 건축자재를 사용하는 일로 만족하지 않고, 벽∙창문∙지붕에 기능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설계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가장 관심을 끄는 기능은 태양열과 태양광의 이용이다. 태양열 이용은 열과 빛을 잘 흡수하도록 까맣게 칠한 집열판 위의 얇은 층에서 물을 데워 저장 탱크에 모아 사용하는 방법과 태양광을 반도체 집광판으로 모아 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시켜 전기 발전을 하는 태양광발전 방법이다.
태양열 이용 시설은 우리나라 일부 주택 지붕에 설치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지 20여 년이 넘으나, 태양광의 이용은 아직 초보단계이다. 태양전지시설의 초기 설치비가 많이 들고, 현재 기술로는 수명을 10년을 넘기기 어려워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최대 25년의 수명을 지니는 태양전지 모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태양전지 모듈에 사용하는 주 재료는 실리콘 반도체이다. 벨기에의 한 스포츠 경기장은 필요한 전기에너지를 태양광으로부터 얻도록 설계·건축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 주변에서도 태양에너지를 이용하기 위해 지붕에 태양열(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집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주택이나 아파트의 지붕, 벽과 창문을 전통적 기능만 지니는 면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이처럼 청정에너지 생산 발전소로 사용하여 무공해, 에너지 절감이라는 이중 효과를 얻으려는 노력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독일∙일본∙중국 등이 세계시장을 이끌고 있으며, 곧 우리나라 기업들도 경쟁자로 나설 것이 기대된다. 이 모든 일이 겉보기에는 건축설계사 및 건축회사의 일처럼 보이나 위에서 말한 기능을 지닌 자재와 소재 개발의 모든 단계에 화학기술이 핵심이 된다. 화학기술이 녹색 주택 및 건물의 설계 및 녹색 기능에 절대적 자리를 차지한다. 녹색 주택 시대는 화학이 열어간다
레버리지 효과란 차입금 등 타인 자본을 지렛대로 삼아 자기자본이익률을 높이는 것으로 '지렛대 효과'라고도 한다. 가령 100억 원의 투하자본으로 10억 원의 순익을 올리게 되면 자기자본이익률은 10%가 된다. 하지만 자기자본 50억 원에 타인자본 50억 원을 더해 10억 원의 수익을 낸다면 자기자본이익률은 20%가 된다. 차입금 등의 금리 비용보다 높은 수익률이 기대될 때는 타인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투자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과도하게 타인자본을 도입하면, 불황 시에 금리 부담으로 저항력이 약해진다.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는 많은 일화를 남긴 인물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사라쿠사 왕 히에론 앞에서 "긴 지렛대(leverage·레버리지)와 지렛목만 있으면 지구라도 움직여 보이겠다"고 장담했다는 일화이다.과학에서 지레는 일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다. 일을 할 때 지렛대를 이용하면 힘의 크기를 줄일 수 있어 적은 힘으로도 같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에서 '레버리지 효과'가 갖는 의미도 과학에서 말하는 지레의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레버리지 효과는 타인으로부터 빌린 자본을 지렛대 삼아 자기자본이익률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왜 사람들은 빚을 내서 집을 살까?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부동산 가격 폭등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은행에서 빚을 내서 집을 샀다. 직장인 김씨가 5억 원 짜리 집을 산다고 가정해 보자. 김씨는 현재 2억5000만 원을 전세보증금으로 갖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전세를 얻느니 차라리 집을 사겠다고 결정하고 2억 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나머지 5000만 원은 그동안 모아둔 적금으로 충당했다. 1년 후 김씨가 산 집값이 6억 원으로 1억 원 올랐다고 하자.
김씨가 집을 사기 위해 투자한 자기 돈은 3억 원(전세보증금 2억5000만원+적금 5000만원)이다. 따라서 순수익률을 따지기 위해서는 3억 원과 대비해 얼마나 벌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3억 원을 투자해 1억 원을 벌었으니 김씨는 약 33.3%(1억/3억=33.3%)의 수익률을 올렸다. 대출받은 2억 원은 나중에 집을 팔아 갚으면 되기 때문에 수익률 계산에서는 빠진다.
은행에서 2억 원을 빌렸을 경우, 수익 1억 원 가정. (레버리지 효과)
만약 김씨가 5억 원을 전부 자기자본으로 마련해 1억 원을 벌었다면 수익률은 20%(1억/5억=20%)에 불과하다. 물론 여기에 5억 원을 모으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기회비용으로 더한다면 수익률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개인이 빚을 지렛대 삼아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서 수익률을 높이는 사례를 보고 레버리지 효과를 냈다고 한다.
자기자본으로만 5억 원짜리 집을 살 경우. (1년 뒤 1억 원의 수익을 낸다고 가정)
레버리지 효과는 기업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새로 사업을 시작하려는 벤처기업가를 생각해보자. 종자돈 10억 원을 투자해 1억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면 수익률은 10%(1억/10억=10%)가 된다. 만약 1억 원의 종자돈만 갖고, 9억 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은 뒤 사업을 통해 1억 원을 벌었다면 수익률은 100%(1억/1억=100%)가 된다. 경영학에서는 이 같은 레버리지를 특히 '재무 레버리지'라고 한다. 재무 레버리지란 기업이 타인자본을 활용해 기업 이익의 변동성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대기업들이 신규 사업에 진출할 때도 은행애서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여유자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레버리지 효과를 활용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기업의 매출원가 및 영업비용 중에서 기계설비 등 고정비를 부담하는 정도를 '영업 레버리지'라고 한다. 즉 기업이 변동비보다 고정비를 많이 사용할 때 매출액증가율보다 영업이익 증가율이 확대돼 나타나는데 이를 영업 레버리지 효과라고 한다).
레버리지 효과, 약(藥)도 되고 독(毒)도 된다
하지만 빚을 낸다는 건 굉장한 모험이다. 당장 주위를 둘러봐도 빚을 내 주식을 산 사람 치고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큰 손실를 입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위에서 설명한 김씨 사례가 한 가지 중요한 가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집값이 오를 것이란 가정이다.
반대로 1년 후 김씨의 집값이 5000만원 떨어진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약 김씨가 5억 원 전체를 자기 돈으로 마련했다면 손실률은 10%에 그친다. 하지만 레버리지 효과를 노리고 빚을 냈을 경우 자기자본 3억 원을 기준으로 손신률을 추산하면 16%가 넘는다.
극단적으로 경기 악화로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집값이 폭락해 2억 원까지 떨어졌다고 하자. 대출이자를 견디다 못한 김씨는 결국 2억 원에 집을 내놓게 된다. 집을 팔아 손에 쥔 2억 원은 대출금을 갚고 나면 한 푼도 남지 않는다.
만약 김씨가 온전히 자기 돈으로 집을 샀다면 아무리 경기가 나빠지더라도 집 자체는 남게 된다. 하지만 김씨는 대출을 통해 집을 마련했고 그 결과 빈털털이가 됐다. 이처럼 레버리지 효과는 집값이 오를 때는 엄청난 상승효과를 낼 수 있지만, 반대로 집값이 하락할 때는 큰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는 빚을 내서 집이나 주식을 사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거품이 가라앉고 부동산 불패론이 힘을 잃으면서 김씨와 같은 부동산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봤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주주 입장에서 보면 레버리지 효과는 양날의 검이나 다름없다. 매출액의 변화보다 영업이익의 변화폭이 크다는 것은 기업의 불안정성이 높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불황 및 금리 상승 등 기업에 우호적이지 않은 경제상황이 발생했을 때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경제와 레버리지 효과
레버리지 효과는 김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 전체에 김씨와 같은 사람이 많으면 어떻게 될까? 집값 하락은 개인에게도 비극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집을 잃고 길바닥에 나앉게 된다. 집을 잃는 사람이 많아지면 소비가 침체되고 물건을 사는 사람이 없으니 다시 생산과 기업활동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이로 인해 문을 닫는 기업이 많아지면 다시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또한 개인이 빚을 갚지 못하면 은행의 수익이 악화되고 금융 위기도 피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를 불안하게 여긴 외국인들이 투자한 돈마저 빼가면서 경제는 총체적 난국에 빠지게 된다.
정부가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집값이 올라 서민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는 것도 문제지만 사람들이 과도하게 빚을 내 집을 산 후 집값이 폭락하면 경제 전반의 위기를 불러오게 된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단초가 됐던 서브프라임 사태도 결국 이같은 과도한 레버리지 효과의 폐해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김씨와 같은 사람들이 집을 사기 위해 은행 등 금융권에서 얻는 빚, 즉 주택담보대출 규모를 줄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흔히들 말하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도 과도한 레버리지 효과를 제한하기 위한 정책 수단 중 일부이다. 또한 기업이 과도한 레버리지 효과를 노리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정부는 기업의 실질부채비율을 감독하고, 차입매수(LBO)를 통한 인수·합병(M&A)를 규제하는 등 각종 정책을 활용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 피터의 도시. 그 이름은 도시의 수호자인 성 베드로(Peter)에서 따왔다지만, 동시에 이 도시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바이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피터대제(Peter I the Great)는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에 불타올랐다. 그리하여 도읍을 정한 곳이 발틱 해를 향해 있는 연안의 늪지대. 네바 강 하구의 음침한 섬들 위에 도시를 건설하자고 했을 때 사람들은 조소했다. 그러나 대제는 거침이 없었다. 스스로 오두막에 기거하며 관리들과 노동자들을 독려했다. 전 러시아에 석조 건축을 금지시키고, 모든 자재를 네바 강 하구로 실어오게 했다. 그리하여 100개의 섬이 365개의 다리로 이어진 북쪽의 베니스가 탄생했다.
도시는 사회주의 혁명 이후 수십 년간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제 다시 피터의 것으로 돌아갔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상징물인 '청동 기마상(Bronze Horseman)'은 대제의 위엄을 기린 조각상이다. 말을 탄 대제가 서 있는 돌은 전설의 '번개 맞은 돌(Thunder Stone)'로 무려 1500톤에 이르는데, 이것을 오직 인력만으로 6Km나 끌어 핀란드 만에 가져온 뒤 배에 실어 지금의 위치에 옮겨놓았다.
백조, 죽어가면서 태어나다.
1890년의 어느 날, 비쩍 마른 소녀 하나가 엄마의 손을 잡고 회청록색의 마린스키 극장(Mariinsky Theatre)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그때는 알렉산드로 골로빈이 만든 황금의 커튼 장식이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마리우스 페티파의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그녀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소녀는 엄마를 보채 바로 그 극장에 있는 제국 발레학교(현재의 바가노바 아카데미)를 찾아갔다. 처음엔 너무 어리고 아파 보인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러나 11살이 되어서는 기필코 입학 허가를 얻어냈고, 혹독한 훈련을 거친 소녀는 러시아의 백조가 되었다.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na Pavlova)는 남성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와 더불어 러시아 발레의 전설을 만들어낸 대표적 인물이다. 특히 1905년, 마린스키 발레단의 정식 단원이 된 직후 발표한 소품 [빈사의 백조(The Dying Swan)]는 그녀의 이니셜 같은 작품이 되었다. 밝고 경쾌한 백조가 아니라 죽음 직전에 가냘픈 몸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백조의 모습은 이전의 발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먼 나라를 떠돌아다녀야 했지만, 파블로바는 고향의 백조들을 잊지 않았다. 1923년 러시아에 극심한 기근이 닥쳐오자 그녀는 기꺼이 구호물품을 보냈고, 마린스키 극장 앞에는 물품을 받으려는 무용수들이 긴 줄을 지었다고 한다.
'빈사의 백조' - 안나 파블로바는 죽는 순간까지 백조 의상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와 벌떼 같은 작곡자들
콘서바토리의 중흥을 이끈 림스키-코르사코프.
림스키-코르사코프, 차이코프스키, 프로코피에프,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러시아와 세계를 대표하는 작곡자들, 상트페테르스부르크의 음악인들, 그리고 바로 마린스키 극장 건너편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서바토리(the Rimsky-Korsakov St. Petersburg state conservatory)에서 음악을 배운 사람들이다.
콘서바토리는 1862년 안톤 루빈스타인에 의해 설립되었지만, 오늘날의 영광을 이야기할 때 1871년부터 1906년까지 이 학교에 몸담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첫 강의를 맡았을 당시 그는 27살의 해군 장교였는데, 발라키예프, 무소르그스키 등과 함께 소위 '5인조(the Five)'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부 유럽 음악의 모방이 아닌 '러시아의 음악'을 하기 위해 애썼는데,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던 것이 새로운 음악을 위한 활력소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막상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자,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자신의 음악적 기초가 너무나 취약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미 콘서바토리를 통해 충실히 공부해온 차이코프스키에 상담을 요청했고, 러시아의 독자적인 음악을 위해서도 유럽 음악의 기초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앞서 더 큰 공부를 자청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후 후진 양성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열정이 콘서바토리를 세계 최고의 음악학교로 만들어낸 것이다.
극작가 체호프, 사상 최악의 야유를 받다
18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Alexandrinsky Theatre)에서 [갈매기]가 초연된 후, 극작가 안톤 체홉은 스탭들과 가족들에게 말했다. "다시는 극을 쓰지 않겠다." 그만큼 연극은 엉망이었다. 고독과 몽환의 이야기는 스타 연기자들을 동원해 지나치게 화려하게 만들어졌고, 멜로드라마를 거부한 실험적인 극은 관객들은 물론 제작진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상태였다. 2막이 시작되자 야유는 넘쳐났고, 주연 여배우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후에 모스크바에서 새롭게 상연되어 호평을 얻기는 했지만, 체호프는 그 공연도 만족하지 못했다.
이렇게 체호프에게 연극사에 길이 남을 좌절을 가져다준 극장이지만, 알렉산드린스키는 러시아 공연 예술의 메카로 오늘날까지 그 영광을 이어오고 있다. 이 도시 곳곳을 빛내온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카를로 로시(Carlo Rossi)가 디자인한 건물로, 안팎으로 19세기의 우아함을 잘 간직하고 있다. 극장 앞의 작은 광장은 크리스마스 즈음에 열리는 축제로 많은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체호프를 좌절시킨 제국 시대의 극장, 알렉산드린스키.
도스토예프스키의 다락방에 숨어들다
도스토예프스키,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에게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심장이다. 그런데 그 심장은 살짝 얼어 있다. 마치 북쪽 바다처럼 말이다. 이 도시는 톨스토이, 고골리, 고리키 등 러시아 문학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만큼 이 도시의 정신을 반영한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제국의 영광은 영광이지만, 19세기 러시아인의 삶은 곤궁하기 그지없었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검은 빵 한 조각을 먹지 못한 채 이상을 향해 버둥거리는 청춘들이 넘실거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60년대 이 도시의 작은 쪽방에 기거하며 거의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창밖으로 인간 군상들을 바라보며 소설을 써나갔다. 서유럽의 합리주의를 쫓지만 러시아의 종교적 영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 정신의 풍요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물질적 빈곤으로 고통 받는 인간들….
이 도시에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기거하며 글을 썼던 두 장소가 남아 있다. 센나야(Kaznacheyskaya ul 7, Sennaya)의 좁은 골목에서 그는 세 개의 방을 옮겨 다녔는데, 바로 [죄와 벌]을 썼고 그 무대가 되는 곳이다. 블라디미르스카야(Vladimirskaya) 지하철 역 근처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이 박물관(Dostoevsky Museum)의 형태로 공개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썼다고 한다.
일리야 레핀의 리스트를 훔쳐보다
19세기부터 혁명 이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았던 예술가들의 리스트는 정말로 화려하다. 문학, 음악, 연극, 발레 등 수많은 분야에서 교과서 레벨의 이름들이 줄을 잇고 있다. 21세기의 우리가 그 사람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조악한 기술로 찍은 흐릿한 흑백 사진은 젖혀 두자. 그들에게는 국민 초상화가가 있었다. 바로 일리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 차르와 톨스토이와 멘델레예프까지, 그의 리스트에 들지 않았다면 러시아의 유명인이라고 할 수 없다.
레핀은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초기에는 고국에 있는 코사크 족의 호쾌한 일상과 풍습을 그려냈다. 이어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과 같은 작품을 통해 방대한 스케일과 섬세한 시선으로 민초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그려내면서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의 시대를 만들어간다. 완숙기에 접어들어서는 러시아 여러 국민 영웅들의 초상, 국가적 행사들을 기록하는 데 집중해 역사적 기록자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도 했다. 러시안 뮤지엄(Russian Museum)은 '사드코(Sadko)' 등 그의 걸작들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러시아 사실주의 대가, 레핀의 '사드코'.
‘21세기의 푸쉬킨들’을 만나자
비주얼 아티스트 바비 바다로프는 푸시킨스카야-10의 시인 콘테스트에서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정말로 많은 예술가들의 리스트를 읊었지만, 그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하나를 뽑으라면 그 답은 명료하다. 시인 알렉산더 푸쉬킨. [유진 오네긴(Eugene Onegin)]등 러시아 문학의 원형이 되는 위대한 작품들을 줄줄이 낳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내를 유혹한 남자와의 결투 끝에 죽었다는 로맨틱한 최후가 더욱 큰 애정을 불러일으켜 왔다.
우리는 이 도시 곳곳에서 푸쉬킨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푸쉬킨스카야-10(Pushkinskaya-10) 아트센터'는 21세기의 푸쉬킨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1989년에 문을 연 이곳은 "박물관이 아닌 박물관"을 지향하는 갤러리, 스튜디오, 공연장, 그리고 가게들의 집합체다. 온갖 아방가르드한 예술 행위들이 벌어지는 장소이며, 독특한 나이트클럽 피시 패브릭(Fish Fabrique)으로도 유명하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49) 박사가 정신분석학의 프리즘을 통해 전래 민담을 들여다봤다. 민담 속에 담긴 한국인의 정서 밑바닥 속 집단 무의식을 살펴보고 이것들이 현재 우리 삶에 어떻게 투영됐는지 분석했다. 최근 펴낸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민음인 펴냄)에서다.
▲ 이나미 박사
제목 그대로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의 이론을 갖고 민담 속 등장인물, 소재, 주제 등을 살펴봤다.
이 박사는 17일 “우리 민담에는 듣거나 읽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힘이 들어 있다.”면서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콤플렉스를 지적하는 것보다 민담을 통해 상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 콤플렉스가 많이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 역시 가족과 일 사이에서 힘겨워할 때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로 모성 콤플렉스를 치유할 수 있었다.”면서 “환자들에게도 민담을 들려주면 무의식 안에서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2007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 공인 융 분석 심리학자가 된 이 박사는 책을 통해 그저 재미난 옛날 이야기 정도로 치부되는 민담 속의 구체적 사례를 들며 집단무의식과 여성성, 가족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등을 조명했다.
‘우렁이 각시’에서는 소통이 없는 상태에서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 자체는 오래갈 수 없음을 보여 주고, 밤마다 동물의 간을 빼먹는 ‘여우누이 이야기’는 여성의 마음 안에 잠재된 파괴적인 측면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는 자녀의 독립을 꺼려하는 부모 콤플렉스가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돈, 모성, 외모, 학벌 콤플렉스는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집단적인 문제예요. 집단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데 민담만큼 좋은 것은 없어요. 민담을 통해 상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 콤플렉스가 많이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여자의 허물벗기’,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 등 베스트셀러를 내놓은 작가답게 글읽는 맛도 좋다
한국인은 하루 중 언제 행복감을 가장 많이 느낄까. 많은 이가 ‘말할 때’와 ‘먹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가장 행복할 때를 18점으로, 가장 불행할 때를 -18점으로 측정했을 때 말하기와 먹기는 모두 10점 이상을 기록했다.
여가활동을 할 때도 사람들은 행복을 느꼈다. 운동·산책·취미생활·종교활동 등 신체적·심리적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여가활동이 TV시청·독서·음악감상 등 정적인 여가활동에 비해 더 큰 행복감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과 연령에 따라 하루 중 행복감을 느끼는 시간이 달랐다. 연구팀은 만 19세 이상 한국인 160명을 학생(19~29세), 직장인(20~49세), 전업주부(30~59세), 노인(60세 이상)으로 나눠 이들이 하루 중 느끼는 행복감을 시간대별로 조사했다. 직장인과 대학생은 평일 저녁과 주말에 행복감이 차츰 높아진 반면, 전업주부는 평일과 주말 모두 낮 시간에 가장 행복했다. 직장인들은 퇴근 이후 가족과 함께할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꼈지만, 주부들은 가족이 없는 낮 시간에 더 행복을 느끼는 셈이다. 학생의 경우에는 친구나 선후배와 있을 때 가족과 함께하는 것과 비슷한 행복감을 느꼈다.
행복은 성별과 나이에 따라 달랐다. 고개숙인40대한국남성. 반면40대여성은상대적으로가장행복한것으로조사됐다. 40대 남성들은 다른 집단과 비교할 때 개인적 측면(자신의 성취·성격·건강)은 물론 사회적 측면(인간 관계·소속집단 관계)에서 모두 만족 수준이 낮다. “삶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 40대 남성이 행복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다. 40대 남성을 제외한 모든 집단의 ‘삶에 대한 흥미’ 평균 점수는 3.34점(1점: 전혀 느끼지 않는다, 7점: 매일 느낀다)이다. 반면 40대 남성이 삶에 흥미를 느끼는 정도는 평균 3.0 40대남성의가장큰고민은 경제적문제‘‘일또는업무’였다. 이 두 가지는 한국의 성인 남녀 대부분이 갖고 있는 주요 고민거리다. 하지만 40대 남성들에게서 두드러졌다. 조사팀(팀장 서은국 연세대 교수)은 “사회의 생존경쟁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 가장으로을 다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라며 “자신의 일과 삶에 의욕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40대 한국 남성의 자화상”이라고 분석했다.
반면40대중년여성의‘가장높은행복감’도흥미롭다. 40대여성은‘긍정적정서’를자주표현한다는점이주요특징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즐거움·행복함 과 같은 긍정적 정서를 표현한 정도’를 물었다. 40대 여성의 평균은 5.08점. 다른 성인 남녀 집단의 평균 4.84점보다 비교적 높다(1: 전혀 표현하지 않았다, 7: 매우 자주 표현했다). 서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육아와 가사를 도맡아 하는 대다수 여성은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야 자신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며 “남성은 40대에 들어서도 바깥 활동에 계속 얽매이는 반면 여성은40대가되면가사와육아에서벗어나해방감을느끼기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그곳에도 아픈 전쟁이 있었다. 크로아티아(Croatia) 스플리트(Split)는 외관으로는 아드리아해의 훈풍이 닿는 휴양도시다. 포구에는 한가롭게 배가 드나들고 헝가리에서 출발한 열차의 종착역이 되는 아득한 곳이다. 대리석으로 치장된 산책로에는 야자수들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밤이면 노천 바에 이방인들이 흥청대는 낭만의 항구다.
아드리아해와 접한 스플리트의 해 질 녘 풍경은 고즈넉하다.
푸른 바다를 드리운 발칸 반도의 휴양지는 긴 질곡의 세월을 겪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차 대전 후에는 문화, 언어가 다른 민족과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으로 통합됐다. 90년대 5년 동안이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전쟁과 그 상흔은 도시에 자욱하게 쌓여 있다.
스플리트가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런 생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크로아티아의 제2도시로 달마티안 지방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이곳은 완연한 관광지인 두브로브니크와는 모습이 또 다르다. 보듬고 가려도 북적대는 도시의 뒷골목에는 슬픈 얼굴이 담겨 있다. 지중해의 짙은 바다가 더욱 푸르게 다가서는 것도 도시의 과거가 투영된 탓이다.
전쟁의 상흔을 걷어낸 구시가
황제가 행사를 주최했던 궁전 안뜰 주변의 건물들.
궁전 위에서 내려다보면 붉은색 지붕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스플리트의 상흔을 붉고 단아하게 치장하는 것은 구시가 그라드 지역이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은퇴 후 노년을 보내기 위해 아드리아의 햇살 가득한 땅에 AD 300년경 궁전을 지었다. 그리스의 대리석과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가져다가 꾸밀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 궁전은 동서남북 200m 남짓의 아담한 규모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는 궁전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뻗어 있다. 신하와 하인들이 거주하던 궁전 안 200여 개 집터는 그 잔재가 남아 상점, 카페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황제가 행사를 열었던 안뜰은 석회암 기둥이 가지런하게 도열된 채 여행자들의 쉼터와 이정표가 됐다.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인 스플리트는 구시가지 신시가지가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그라드 지역 어느 곳으로 나서든 발걸음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동문은 재래시장과 연결되고 남문은 바다, 서문은 쇼핑가와 이어진다. 북문을 나서면 녹음이 우거진 공원이다. 궁이 지어질 때만 해도 남쪽 문과 담벼락이 바다와 접한 요새 같은 형국이었지만 성벽 밖을 메운 뒤 바닷가 산책로가 조성됐다.
좁고 구불구불한 구시가를 조망하려면 황제의 묘였던 성 도미니우스(돔니우스) 대성당에 오른다. 숨 가쁜 계단 꼭대기에 서면 구시가의 붉은 지붕과 아드리아해의 탁 트인 푸른 바다가 나란히 늘어선다. 궁전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도 이곳에서는 구식 슬라이드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황제의 궁전과 서민의 삶터
서문 밖 ‘나로드니 트르그’ 거리는 궁전골목과는 달리 현대식 예술작품들과 다양한 럭셔리 숍들이 늘어서 있다. 치즈 빛으로 채색된 옛 거리와 도시의 미녀들이 활보하는 광장은 불과 5분 거리로 연결돼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7월이면 서머페스티벌이 열리고 9월이면 국제영화제의 막이 오른다.
크로아이타의 종교 지도자인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
구시가지의 골목들은 붉은색 지붕과 현대인의 삶이 조화를 이룬다.
구시가지 동문 초입에는 새벽이면 대규모 장터가 들어선다. 지중해의 해산물과 채소, 과일이 쏟아져 나온다. 소박한 물건들이 오가는 크로아티아의 장터 모습이 생생하다. ‘황금 문’으로 불리는 북문을 지나면 크로아티아 종교지도자였던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을 만난다. 동상의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풍문 때문에 유독 엄지만 반질반질하다.
스플리트의 구시가가 낭만을 더하는 데는 해변 노천 바들이 빼곡히 들어선 오바라 히르바트스코그(Obala hrvatskog) 거리가 한몫을 한다. 자정이 넘도록 관광객들과 이곳 청춘들이 뒤엉켜 맥주를 마시거나 벤치에 앉아 항구와 바다를 바라보며 데이트를 즐긴다. 이 거리를 찾을 때만은 모두들 한껏 멋쟁이가 된다. 매끈한 스포츠카들이 주차장으로 밀려들며 굉음을 내는 모터사이클이 오가기도 한다. 파란 하늘, 창가의 흰 빨래, 파스텔톤의 담벼락이 어우러진 한낮의 구시가지 골목들과는 또 다른 단상이다.
구시가지 동문 초입에는 새벽이면 대규모 장터가 들어서 장관을 이룬다.
해변 노천 바들이 빼곡히 들어선 오바라 히르바트스코그 거리는 관광객들과 이곳 청춘들이 뒤엉켜 항상 흥청거린다.
스플리트는 항구, 기차역, 버스터미널이 한 곳에 어우러져 있다. 밤 열차를 타고 새벽녘에 도착한 이방인들과 새벽 일찍 낯선 곳으로 버스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의 포근한 정경이 터미널 앞 카페테리아에서 펼쳐진다. 헝가리에서 열차를 타고 스플리트에 닿는 여정은 이국적이며,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로 이어지는 길도 해안 절벽과 지중해풍의 낯선 마을을 만나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스플리트에서의 만남과 이별은 모두 드라마틱하다.
스플리트의 해변 산책로는 마르얀 언덕으로 이어진다. 푸른 숲과 오래된 교회를 스쳐 지나면 항구와 바다와 구시가가 자맥질을 하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크로아티아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조각가 메슈트로비치 역시 노년의 안식처로 이곳 스플리트를 선택했다. 그 편안한 도시에 기대 있으면 전쟁의 아픔은 아련한 추억으로 다소곳하게 모습을 감춘다.
가는 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스플리트행 열차가 출발한다.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오는 장거리 버스도 스플리트를 경유한다. 이탈리아 안코나 에서 페리를 이용해 도착할 수도 있다. 스플리트는 다른 동유럽 국가와 달리 열차보다는 버스 교통이 발달한 편이다. 인근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버스는 매시간 출발한다. 4시간 30분 소요. 열차 역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는 ‘sobe'로 불리는 민박집을 알선해 준다.
1루이지애나 미술관은 그 이름의 연원 자체가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다. 미술관을 짓고 이름을 붙인 크누트 W. 옌센과 옛날에 헤어진 연인 이름 같은 “루이지애나”는 아무런 인연이 없지만, 또한 기묘한 인연이기도 하다. 식품도매업자였던 옌센은 평소에 미술과 문학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코펜하겐 북쪽의 작은 마을 훔레백에 미술관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외레순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그곳은 19세기 풍의 저택이 있는 사유지였는데, 그곳의 이름이 ‘루이지애나’였다.
1895년에 부근의 땅을 구입한 남자의 이름은 알렉산더 부룸. 그가 바로 저택을 지은 이였는데, 그가 이 땅의 이름을 ‘루이지애나’라 붙인 이유가 독특하다. 그는 평생 세 번 결혼했는데, 세 명의 부인이 모두 이름이 ‘루이즈’ 였기 때문.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붙여진 이름을 미술관의 이름으로 쓴 것에 대해서 말이 많았던가 보다. 옌센은 후에 “과거를 존중하기 위해서 미술관의 이름을 ‘루이지애나’라고 지었다. 그 이름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루이지애나 미술관이 예술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이 된 건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건축과 자연과 미술의 가장 완벽한 공존의 한 예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954년 미술관 터를 사들인 옌센은 젊은 건축가 위르겐 보와 빌렘 볼레르트에게 새 건물의 디자인을 맡겼는데, 그들은 100년 전에 지어진 원래의 건물을 그대로 남겨둔 채 여러 번에 걸쳐 증축하며 지형과 풍광에 어울리는 미술관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서는 호안 미로, 막스 에른스트, 헨리 무어, 알렉산더 칼더 같은 유명한 조각가의 작품들이 자연을 배경으로 전시되어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헨리 무어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기에 이보다 나은 곳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자코메티의 작품들이 특히 유명하다.
2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인어동상으로 남다
코펜하겐은 인어의 도시이다. 이 도시가 자랑하는 안데르센이 동화 [인어공주]를 쓰기 전부터 그랬다. 코펜하겐 옆 해협은 중세부터 ‘인어의 골짜기’라고 불렸고, 오스트리아 궁정가수인 다니엘 마이스너가 만든 1623년의 지도에는 코펜하겐이 세이렌의 거주지라 적혀 있다.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빠뜨려 죽이곤 했던 세이렌. 아무래도 안데르센이 [인어공주]를 쓰게 된 데에는, 한밤중에 희미하게 들려온 세이렌의 노랫소리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브뤼셀의 오줌싸게 소년 동상, 독일의 로렐라이와 함께 “유럽의 3대 썰렁명소”의 하나로 언급되는 수모를 무릅쓰고 랑엘리니(Langelinie)의 바위 위에 꿋꿋하게 앉아 있는 80cm의 작은 인어 동상은 안데르센의 동화 속의 그 인어공주다.
1913년 칼스버그의 창립자 칼 야콥센(Carl Jacobsen)은 [인어공주]의 발레공연을 보고 조각가 에드바르 에릭센에게 인어공주의 동상을 주문한다. 공연의 프리마돈나였던 엘렌 브리스를 모델로 하고 싶어했으나, 반라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엘렌의 반대로 실패하고 그 대신 조각가의 아내 엘리네가 동상의 모델이 되었다.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인어 동상은 만들어진 뒤에 또 숱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목이 베어졌다거나 팔이 절단되었다거나 조각상 전체가 폭파되었다는 엽기적인 이야기도 있는 반면, 하루아침에 핑크색 페인트로 덮어씌워 지는 등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적지 않다.
2010년 5월, 사상최초로 늘 앉아 있던 그 바위를 떠나 상해 엑스포로 옮겨져서 전시 중인데,그에 따른 이야기들도 재미있다. 현재 인어 동상이 놓여 있던 그 자리에는 대형 TV가 설치되어 상해 엑스포장의 동상을 인터넷으로 중계하고 있다고. TV와 중계영상은 한 중국예술가의 현대미술 작품인데, 반응은 좋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그보다 더 반응이 좋았던 것은 인어공주의 해골 설치.
덴마크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of Denmark)은 만우절날 인어 동상이 놓여 있는 자리에 상반신은 사람의 뼈 모형, 하반신은 황새치의 뼈 모형으로 만든 인어공주 골격을 2시간 정도 설치했는데, "6개월이나 인어공주 동상을 뺏기게 되니 대신할 것이 필요했다. 어쨌든 만우절이니까!"라는 이들의 장난에 사람들은 즐거워했다고.
[인어공주]는 전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동화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크론보르(kronborg)성에 살다
셰익스피어는 덴마크 왕자 햄릿을 전세계인의 왕자로 만들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의 대표작인 [햄릿]에 나오는 주인공 햄릿은 어느 나라의 왕자일까? 덴마크 왕자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햄릿]의 무대가 되는 성이 코펜하겐 근처에 있다는 것은 알기 쉽지 않다. 코펜하겐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 ‘헬싱괴르’는 크론보르 성 때문에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햄릿]의 극중에서는 엘시노어 성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성’을 떼어낸 크론보르. 덴마크어로 ‘보르’는 ‘성’이라는 뜻이므로 같은 의미를 두 번 말한 셈이지만, 편의상 붙여서 말하곤 한다.
크론보르 성은 1574년 프레데릭 2세 시절에 착공하여 11년 뒤에 완성되었다. 하지만 1629년에 화재가 일어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전쟁을 겪으며 파손과 보수를 계속하다가 1924년에 이르러서야 지금 우리가 보는 형태가 되었다.
그러한 수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방들은 잘 보존이 되어있는 셈. 대규모 연회장, 금박장식의 예배당, 각종 화려한 방, 지하감옥 등을 볼 수 있다.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북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르네상스 시대의 성으로 평가받는 이곳은 [햄릿] 때문이 아니더라도 둘러볼 만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매년 6월에는 이곳에서 야외 ‘햄릿’공연이 열린다고 하지만 날짜를 맞춰가기는 쉽지 않을 터. 공연이 아니라 하더라도 코펜하겐에서 출발하는 ‘햄릿캐슬투어‘에는 참여할 수 있다. 시청 앞에 모여 크론보르 성을 비롯하여 프레드릭스보르 성, 왕족들의 여름별장, 국립박물관, 기사의 홀 등등을 둘러보는 투어는 반나절 정도 걸린다.
살아있는 무덤, 아시스텐스 묘지
코펜하겐의 이야기꾼으로는 안데르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도 있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정복자 펠레]의 원작자라고 하면 고개 끄덕여지려나?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정복자 펠레]의 원작소설을 써낸 이 작가는 1869년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안데르센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안데르센처럼 여러 사람들의 후원을 받으며 동화의 나라로 날아가는 대신 어릴 때부터 온갖 종류의 노동을 하면서 자전적인 작품을 다수 써냈다. [정복자 펠레] 4부작은 그를 서유럽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대표작. 이외에도 [파밀리엔 프랑크, Familien Frank], [사람의 딸 디테, Ditte Menneskebarn], [시인 모르텐Morten hin Røde], [잃어버린 세대, Den fortabte generation] 등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나, 국내에 번역된 책은 많지 않다.
그는 현재 뇌레브로 앞의 ‘아시스텐스 교회묘지‘에 묻혀있다. 이곳의 공원 같은 경관은, 이곳을 단지 무덤이 아니라 코펜하겐 주민들이 즐겨찾는 소풍의 장소로 만들었다. 락밴드 공연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심지어 벌거벗고 선탠하는 무리를 마주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무덤”인 셈이다. 안데르센과 키에르케고르의 동상이 있는 이 묘지를 지나며, 에곤 에르빈 키쉬는 이렇게 말했다.
정복자 펠레는 소외받는 계층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곳을 지나가며 묘석을 바라본다. 이렇게 큰 나라 덴마크에 이렇게 이름이 적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죽은 자들의 이름은 한센, 닐센, 안데르센, 마르센, 쇠렌센, 바게센, 난센, 미카엘리스, 야콥센, 옌센, 페터센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런 덴마크 특유의 이름을 가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반향을 얻고 있는가.” 적어도 우리는, 이 무덤에 잠들어 있는 두 명의 안데르센을 알고 있다.
빙글빙글 개의 큰 눈, 코펜하겐 원형탑
원형탑은 과학적 연구를 위해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 안데르센이 쓴 동화 [부싯돌]을 읽은 이들이라면 원형탑이 뭘까, 한번쯤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마녀는 군인에게 비밀을 말해준다. 첫 번째 방에는 찻잔만한 큰 눈을 가진 개가 있다고. 그 개는 커다란 상자 위에 앉아 있노라고. 마녀가 준 푸른 주사위 모양의 앞치마를 바닥에 펼쳐놓고 그 위에 개를 앉히면 상자를 열어볼 수 있노라고. 첫 번째 방 상자 안에는 동화가 잔뜩 들어 있고, 두 번째 방, 물레만큼 큰 눈을 가진 개가 깔고 앉은 상자 안에는 은화가 들어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방에는?
"혹시 금화를 갖고 싶다면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가게. 거기서도 원하는 만큼 가져올 수 있을 거야. 그 방의 돈 상자 위에 앉아 있는 개의 눈은 코펜하겐의 원형탑만큼이나 크지. 아주 무시무시한 놈이란 생각이 들 걸세!”
원형탑을 실제로 본다면, 아마도 그 개의 모습을 상상하기 더 어려웠을 것이다. 크리스티안 4세가 세운 천문대인 이 탑은 그가 “내가 만든 최고의 예술작품”이라고 기세등등했다는 것이 이해가 갈 만큼 웅장한 자태를 갖고 있다.
1642년에 완공된 이 탑은 높이가 36m이며, 지름이 15m이다. 유럽의 건축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계단이 아닌 나선형의 통로를 통해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길이는 약 210m가량 된다. 1716년에는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말을 타고 올라갔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매년 자전거 경주가 열리고 있다고. 평상시에는 코펜하겐을 한눈에 바라보기 위한 전망대로 각광받고 있다.
지구속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높이 올라볼 일, 구세주 교회(Vor Freslers Kirke).
괴짜 광물학자인 리덴브로크 교수는 고서점에서 구한 16세기 고문서를 해독하다가 이상한 쪽지가 책갈피에 끼워져 있는 것 발견했다. 조수로 일하는 악셀은 얼떨결에 암호를 해독한다., 아이슬란드의 연금술사가 남긴 이 책 사이의 쪽지는 어떤 비밀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쥘 베른의 소설 [지구속 여행]은 그렇게 여행을 시작한다.
크리스티안스하운 섬에 있는 구세주교회는 악셀이 현기증을 치료하기 위해 리덴브로크 교수에게 끌려가는 곳이다. “내부의 나선계단을 올라가는 중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150개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바깥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종탑의 테라스에 이르자 거기서 계단은 외부로 계속 이어졌다. 난간은 약해보였고 점점 좁아지는 계단은 하늘로 올라가는 듯 했다” 구세주 교회는 1696년 크리스티안 4세에 의해 지어진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천사가 조각된 정교한 바로크양식의 제단과 파이프오르간도 눈길을 끌지만, 뭐니뭐니해도 인상적인 것은 95m의 나선형 교회탑이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교회탑을 설계한 이는 다 지어지고 나서야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거꾸로 설계한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고.
탑의 바깥으로 빙 둘러 꼭대기의 그리스도 상 아래 금공까지 이어지는 150개의 계단은 확실히 고소공포증이 있는 이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다. 그곳을 꾸준히 오르면 악셀처럼 현기증을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훌륭한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교회탑 밖으로 난 계단은 아찔하지만 전망을 바라보기에 최적의 장소다.
책과 이야기가 일상인 북카페, 세탁소 카페[Laundromat cafe]
코펜하겐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코펜하겐에는 맛있는 커피를 내는 카페가 많다.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 나누기 좋아하는 성정 때문일 것이다. 그뿐이랴, 이야기는 수다 속에도 있고 책 속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코펜하겐에는 북카페들이 유독 발달해 있다. 북카페야말로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코펜하겐 사람들의 생활에 잘 들어맞는 공간인 것이다.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타자기의 이름을 딴 카페 ‘언더우드 잉크‘에는 타자기가 진열되어 있다. 그곳 벽에는 체스터튼이 쓴 글이 적혀있는데, 그에 따르면 “문학은 사치품이고 이야기는 생필품이다.”
이곳의 북카페는 많을뿐더러 세분화되어 있다.‘더 프렌치 북카페‘는 프랑스식을 고수한다. 메뉴도 크로와상 등 프랑스풍의 음식으로 마련되어 있다. 당연히, 구비된 책들도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이 중심이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40%가 프랑스어를 말하는 사람들이고 현지인은 60% 정도라 하니, 코펜하겐 안에서 프랑스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어울리는 공간이 아닐까. 프랑스 뿐이랴, 스페인도 있다. ’라유엘라‘는 스페인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이다. 이곳에 구비된 책들도 스페인과 스페인어를 쓰는 남미 작가들의 작품들이 중심이다. 이런 특화된 북카페들만 돌아다녀도 작은 도시 안에서 세계문학여행을 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여행자들을 위한 북카페도 있다. ‘세탁소 카페‘는 어떨까? 여행 도중 쌓인 빨래들을 우아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네 개의 환경친화적 세탁기와 두 개의 건조기를 갖춘 세탁소는 북카페 안에 자리잡고 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아늑한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4천여 권의 장서 중 한 권을 골라 읽을 수 있는 카페. 지겨우면 젊은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관람할 수 있는 카페. 여행의 숙제를 해결하면서도 그 도시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현재 사비나미술관 관장과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를 겸하고 있다. 성신여대를 졸업한 후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나 소피아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 석사 학위를 받았고,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원에서 예술기획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목포 MBC 교양국 PD를 거쳐 1996년 서울 인사동에 [갤러리사비나]를 개관했다. [갤러리사비나]는 매번 참신하고 새로운 기획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대중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저서로는 [팜므 파탈]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천재성을 깨워주는 명화 이야기] [아침 미술관] [센세이션展] [사비나의 에로틱 갤러리] [화가들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날씨로 보는 명화] 등이 있다.
오늘늘의책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비결은 천진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사물을 낯설게 보는 훈련을 시작하라. 사물을 낯설게 보는 순간 권태는 사라지고 세상이 매혹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 무엇보다 좋은 점은 예술가처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갖게 되는 것이다.(26쪽)
우리도 예술가처럼 몰입의 즐거움을 체험하자. 하지만 몰입하려면 먼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행동을 할 때 가장 기쁜지, 누구를 만날 때 진심으로 행복한지 알아야 한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할애해서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자. 그러면 볼록렌즈로 햇살을 모으듯 긍정적인 에너지를 집약시킬 수 있다. 한곳으로 모인 에너지가 창의적인 생각의 불꽃을 피울 것이다. (66쪽)
왜 관찰력이 뛰어난 화가가 창의적인 작품을 제작하게 되는 것일까? 인간은 사물을 관찰하면서 특정 대상을 의식하게 된다. 의식화 과정을 거치면서 관찰의 결과를 상상하고 정신을 집중한다. 다시 말해, 관찰력은 시각을 예리하게 만들고, 기억을 증진시키고, 집중력을 훈련시키는 가장 유용한 도구라는 뜻이다. (108쪽)
소명감을 갖고서 특정 분야의 일을 선택한 사람은 중도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는 강한 확신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되면서 온몸을 던질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들은 설령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낙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 그것이 진정한 마이 웨이 My Way다. (137쪽)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하면 누구나 예술가들처럼 치열하게, 또는 강렬하게 삶을 살 수 있다.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소중하게 느끼기 위해서라도,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고통은 필요하다. 고통이란 삶을 권태롭게 여기는, 삶을 낭비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찌르는 가시라고 생각하자. 가시에 찔린 자리에서 꽃잎처럼 붉은 핏방울이 맺히는 것을 축하하자.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소중한 증거니까. (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비결은 천진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사물을 낯설게 보는 훈련을 시작하라. 사물을 낯설게 보는 순간 권태는 사라지고 세상이 매혹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 무엇보다 좋은 점은 예술가처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26쪽)
우리도 예술가처럼 몰입의 즐거움을 체험하자. 하지만 몰입하려면 먼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행동을 할 때 가장 기쁜지, 누구를 만날 때 진심으로 행복한지 알아야 한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할애해서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자. 그러면 볼록렌즈로 햇살을 모으듯 긍정적인 에너지를 집약시킬 수 있다. 한곳으로 모인 에너지가 창의적인 생각의 불꽃을 피울 것이다. (66쪽)
왜 관찰력이 뛰어난 화가가 창의적인 작품을 제작하게 되는 것일까? 인간은 사물을 관찰하면서 특정 대상을 의식하게 된다. 의식화 과정을 거치면서 관찰의 결과를 상상하고 정신을 집중한다. 다시 말해, 관찰력은 시각을 예리하게 만들고, 기억을 증진시키고, 집중력을 훈련시키는 가장 유용한 도구라는 뜻이다. (108쪽)
소명감을 갖고서 특정 분야의 일을 선택한 사람은 중도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는 강한 확신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되면서 온몸을 던질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들은 설령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낙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 그것이 진정한 마이 웨이 My Way다. (137쪽)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하면 누구나 예술가들처럼 치열하게, 또는 강렬하게 삶을 살 수 있다.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소중하게 느끼기 위해서라도,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고통은 필요하다. 고통이란 삶을 권태롭게 여기는, 삶을 낭비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찌르는 가시라고 생각하자. 가시에 찔린 자리에서 꽃잎처럼 붉은 핏방울이 맺히는 것을 축하하자.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소중한 증거니까. (v
현재 사비나미술관 관장과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를 겸하고 있다. 성신여대를 졸업한 후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나 소피아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 석사 학위를 받았고,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원에서 예술기획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목포 MBC 교양국 PD를 거쳐 1996년 서울 인사동에 [갤러리사비나]를 개관했다. [갤러리사비나]는 매번 참신하고 새로운 기획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대중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저서[팜므 파탈]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천재성을 깨워주는 명화 이야기] [아침 미술관] [센세이션展] [사비나의 에로틱 갤러리] [화가들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날씨로 보는 명화] 등이 있다.
현재 사비나미술관 관장과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를 겸하고 있다. 성신여대를 졸업한 후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나 소피아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 석사 학위를 받았고,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원에서 예술기획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목포 MBC 교양국 PD를 거쳐 1996년 서울 인사동에 [갤러리사비나]를 개관했다. [갤러리사비나]는 매번 참신하고 새로운 기획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대중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저서로는 [팜므 파탈]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천재성을 깨워주는 명화 이야기] [아침 미술관] [센세이션展] [사비나의 에로틱 갤러리] [화가들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날씨로 보는 명화] 등이 있다.
뉴질랜드 연구팀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장수하며 그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오타고 대학연구팀은 '건강 불평등 연구 보고서'에서 지난 1981년부터 2004년 사이 자료를 이용, 뉴질랜드인들의 기대수명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을 이끈 크리스티 카터 박사는 기대수명이 수입과 관련이 있는 지 연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며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고 말했다.
기대수명은 전반적으로 증가했으나 이는 그룹에 따라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들의 경우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기대수명 차이는 1981년 4.4년에서 2001년 6.5년 더 벌어졌으며, 여자들의 경우도 같은 기간 3.3년에서 4.7년으로 분명한 격차를 보였다.
한편, 인종에 따른 기대수명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마오리족이 아닌 남자들의 경우 기대수명이 가장 크게 향상됐으며 마오리족 남자들은 그 격차가 가장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제 둔화 우려감이 재차 불거지면서 미국 증시에 이어 국내 증시도 직격탄을 맞았다.
12일 코스피 지수는 12일 36포인트나 급락하며 사흘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코스피 지수는 1721.75포인트로 밀려났으며 코스닥도 4.16포인트 내려 470.98포인트를 기록하면서 향후 증시 전망을 더욱 어둡게 했다.
이날 서울증시의 급락은 글로벌 경제둔화 우려감과 유럽증시에 이어 뉴욕증시가 크게 하락하면서 촉발됐다.
전날 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경기회복세 둔화 전망에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확대, 중국의 경기둔화 등에 대한 우려로 다우지수가 무려 265.42포인트(2.49%)나 떨어진 1만378.83으로 마감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모두 불안정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일본 도쿄증시 역시 엔화값이 불안하게 움직이면서 12일 닛케이(日經)평균주가지수는 전날보다 80.26포인트(0.86%) 빠진 9212.59에 마감해 5일 연속 하락했다.
이날 서울증시에서는 개인과 기관이 동반 매수했지만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와 중국의 산업생산과 고정자산투자 증가율 둔화 소식, 그리고 오늘 옵션 만기일을 맞은 가운데 오후들어 프로그램매물이 증가했고, 외국인이 5천억원 이상 순매도한 탓에 낙폭이 확대됐다.
코스피시장에서의 거래량과 거래대금은 각각 3억5033만주와 5조3002억원을 기록했다. 업종별로는 섬유의복,화학, 의약품,비금속광물,철강금속,기계,전기전자,의료정밀,운송장비,유통,전기가스,건설,운수창고,통신,금융,은행,증권, 보험업 등 전 업종이 하락했다.
삼성전자와 포스코,신한지주,LG화학,삼성생명,현대중공업,현대모비스,한국전력,KB금융 등 시가총액상위 10위권 종목들이 일제히 하락했다.
LIG손해보험과 메리츠화재,삼성화재,코리안리가 2~5% 하락하는 등 대표적인 금리인상 수혜주로 분류되는 보험주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여파로 약세를 면치 못했다. 증시가 하락함에 따라 증권업종 지수도 2% 이상 하락했다.
반면 삼성SDI가 외국계 매수에 힘입어 장중 반등하며 사흘 연속 상승했고, LS네트웍스우선주와 벽산건설우선주가 연일 상한가 행진을 이어가는 등 우선주가 강세를 나타냈다.
상승 종목 수는 상한가 15종목을 포함해 210개를, 하락 종목 수는 하한가 6종목을 포함해 606개를 기록했다.
코스닥시장에서는 통신서비스,인터넷,디지털컨텐츠,소프트웨어,컴퓨터서비스,통신장비,반도체,섬유의류,제약,기계 장비업 등이 하락했고, 통신서비스,방송서비스,출판매체복제,비금속,금속업 등이 상승했다.
시가총액상위권 종목 중에서는 셀트리온과 서울반도체,OCI머티리얼즈,메가스터디,네오위즈게임즈,주성엔지니어링 등이 하락했고, SK브로드밴드와 CJ오쇼핑,포스코ICT,동서,다음,태웅 등이 상승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오는 17일 종합편성 채널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기본계획안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미디어관 련주인 디지틀조선과 ISPLUS는 동반 상한가를 기록했다. 전날 민주당이 4대강 사업 절충안을 발표했다는 소식으로 이화공영과 동신건설이 10% 이상 오르는 등 4대강 관련주가 강세를 나타냈다.
상승 종목 수는 상한가 25종목을 포함해 279개, 하락 종목 수는 하한가 10종목을 포함해 623개였다.
처음 그의 사진을 봤을 땐 사진에 등장한 구성 요소들을 개미떼라고 짐작했습니다. 줄을 지어 묵묵히 언덕을 기어올라가는 모습은 분명히 일개미들의 행렬이었습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사진을 보고 다시 그 사진을 보면서 실체를 깨달았습니다. 거대한 금광 계곡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거기에선 개인의 인격은커녕 존재감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거대한 자본의 위력 앞에 기계부품처럼 전락한 숱한 노동현장의 노동자들을 기록한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대표 테마 중 하나인 노동자(Workers)에 실려있는 브라질 금광노동자들의 이미지를 설명드린 것입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도 노동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웃기지만 편히 웃을 수 없는 명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하루종일 나사못을 죄는 채플린은 전체 공정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동작이 크고 도구가 두드러지면 찍기 쉽다
[2000 제주 물질하는 해녀] 이성은
이번 테마는 노동(노동자)입니다.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모든 형태의 노동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원시시대엔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농작물을 재배하여 끼니를 이어나가는 노동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가장 중요했습니다만 산업화시대를 거치고 현재의 정보화시대에 이르러 노동의 종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앞으로 더 세분화될 전망입니다. 종류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은 유형무형의 재화를 생산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모두 인간의 삶을 위해 필요한 내용들입니다. 위에서 제시한 금광의 노동자나 공장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가사노동 또한 꼭 필요하고 가치 있는 활동입니다.
'테마-노동'은 접근하기가 쉬운 편입니다. 일단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컴퓨터를 붙들고 씨름하는 IT 업종의 종사자도 노동자이며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도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 혹은 노동자를 사진으로 표현할 땐 쉽고 어려움의 차이가 뚜렷합니다. 사진으로 옮기기 쉬운 노동은 동작이 크고 노동의 도구가 눈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업종의 노동입니다. 조선소에서 큰 해머를 들고 망치질을 하는 모습, 불꽃을 사방으로 날리며 용접을 하는 모습은 누가 찍어도 그림이 되는 노동입니다.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는 장면, 호미나 낫을 들고 잡초를 제거하는 장면은 독특한 도구의 모양으로 인해 노동의 광경이 잘 드러납니다. 소방호스를 들고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수, 큰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쓰는 환경미화원은 그들이 입고 있는 옷 자체만으로도 노동의 의미가 전달되는 경우입니다.
모던타임즈
노동의 냄새나는 대상 찾아서 인물과 더불어
벌써 눈치를 챘겠지만 이런 노동을 잘 찍는 방법은 일목요연합니다. 우선 동작이 클 것, 그리고 도구가 잘 보이는 앵글을 잡을 것, 제복이 보이도록 할 것 등에 유의하면 노동(노동자)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사진은 동영상이 아닌 한 장의 정지화면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큰 움직임의 노동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찍힌 사진에서 순간적으로 흐름이 끊어지면 노동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몇 시간을 쉬지 않고 허리를 굽힌 채 땀을 흘리며 모내기를 하는 농부들을 찍는다고 합시다. 허리를 굽혔을 때는 누르지 않다가 어느 한순간 허리를 펴고 한숨을 돌리는 장면을 찍는다면 완성도가 높아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노동을 찍든 활동의 패턴을 관찰해두는 것이 노하우이며 필수적인 자세입니다. "이 동작 다음엔 이런 동작이 온다"라는 것을 예측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2003 제주 숨비소리] 이성은
지금 우리는 동작이 크지 않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은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인물의 주변 환경에 의존하여 노동을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인물을 둘러싼 환경에서 노동의 냄새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을 찾아서 그 대상과 더불어 인물을 담는 것입니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사무실, 그날의 노동을 위해 출근하는 노동자들로 가득한 콩나물버스와 지하철도 좋은 소재가 됩니다. 노동자가 벗어놓은 장갑, 땀에 젖은 수건, 작업복 등이 유용한 대상이 됩니다. 더불어 재봉틀, 주방기구 등의 작업환경도 좋은 대상이 됩니다.
얼굴 속에 노동의 흔적 고스란히
지금 서울 한미사진미술관에서는 워커 에반스(1903~1975)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에반스는 1930년대 미국이 대공황의 시련을 겪고 있을 때 미국 정부의 농업안정국(FSA)에 고용되어 피폐해진 농민과 노동자를 찍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이때 에반스와 더불어 활동했던 작가로는 명작 '이민자 어머니(Migrant Mother)'로 유명한 도로시아 랭이 있습니다.
전시장에 걸린 워커 에반스의 작품엔 노동자의 적나라한 표정을 담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굴만 보고 있어도 밑바닥 인생의 노동이 떠오른다는 점에서 여러분의 시각 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사진을 반복해서 보는 것이 사진을 잘 찍는 지름길입니다.
[Greensboro, Alabama. 1936] Walker Evans
[Sharecropper, Hale County, Alabama 1936] Walker Evans
사진이 비교적 늦게 전파되었지만 한국이라고 왜 노동의 얼굴이 없겠습니까? 일찍이 1940년대에 벌써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부두노동자를 찍었던 임석제가 있었고 한국전쟁 이후엔 부산 자갈치시장의 상인들을 찍은 최민식이 있었습니다. 육명심, 윤주영의 작품에서도 일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표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육명심의 작품집 '문인의 초상'엔 시인, 소설가 등의 인물이 줄줄 등장합니다. 문인들의 활동을 노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인들의 창작 또한 결코 쉽지 않은 지적인 생산활동이란 점에서 권해드릴 수 있는 인물사진집입니다.
치열했던 시대엔 많았는데 지금은 왜 드물까
시대를 조금 건너와 1980~1990년대의 노동현장엔 수십 명의 사진가와 사진기자들이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너무 쉽게 잊히고 있지만 울산의 치열했던 대규모 노동현장을 다룬 사진들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활동하는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들 중에서 노동이나 노동자의 얼굴이나 노동 현장을 전문적으로 기록하는 이들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외국인노동자들의 거주공간과 인물을 찍는 사람들도 있고 크고 작은 노동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다루는 사진가들은 물론 있습니다만 발표도 뜸하고 또 발표의 기회도 잘 잡지 못한 채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2006 송내
2010 안동
전시회를 열거나 사진집을 만들면 이를 적극적으로 소화해줘야 사진가들이 설 땅이 생깁니다. 분명히 현역 사진가들이 한국의 노동현장과 노동자를 외면한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급격히 성장한 한국사진문화의 밑변에는 수백만 DSLR 사용자를 포함한 천만 생활사진가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것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한국 최고의 취미활동으로 성장한 사진을 더욱 풍성하게,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의 차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선 천만 생활사진가들이 앞장서야합니다. 부디 볼 만한 한국 사진가들의 사진전시장이 꽉꽉 들어차고 그들의 사진집도 꾸준히 팔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칸쿤(Cancún)은 카리브해의 욕망이다. 적어도 숱한 수식어 상으로는 그렇다. 미국인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은 곳, 중남미 청춘들의 허니문 열망지로 늘 앞순위에 오른다. 한국에서는 낯선 카리브해의 해변이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중독성 강한 '꿈의 휴양지'다.
호텔들은 호화로운 시설과 서비스로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칸쿤은 산호로 만들어진 '7'자 모양의 길쭉한 섬이었다. 고기잡이 배나 드나들던 한적한 어촌마을은 휴양도시로 개발되며 섬 양쪽 끝이 뭍과 연결됐고 초호화 시설을 갖춘 호텔들이 들어섰다. 이제는 전 세계 호텔 체인을 이곳 칸쿤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옛 정취는 사라졌다.
150여 개의 호텔과 리조트는 흡사 성벽처럼 해변을 둘러싸고 있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아쉽게도 바다보다는 호텔 외관과 각종 인테리어에 시선이 집중된다. 빼곡한 호텔지역은 칸쿤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매김했고 그 화려한 유명세에 힘입어 칸쿤은 휴양, 허니문, 부의 상징으로 군림했다.
칸쿤은 아메리카 대륙의 청춘에게는 욕망이 실현되는 카리브해의 파라다이스다.
리조트에서 미녀와 조우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방인이 흥청대는 카리브해의 낙원
칸쿤을 육로로 다가서는 일은 드물다. 미국은 물론이고 쿠바아바나, 남미 일대에서 수시로 항공기가 뜨고 내린다. 비행기 창 너머로 내려다보면 자욱하게 밀려드는 게 카리브해의 파도다. 몰디브의 바다처럼 연둣빛 라군(석호)으로 채색돼 있지는 않지만, 해변의 규모에 있어서는 압권이다.
바닷가에 긴 평행선을 그은 듯 흰 모래사장은 20여km 이어진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산호 산맥이 섬 일대를 지나고 있고 산호가 파도에 부서져 하얀 모래를 만들었다. 유카탄 반도와 이어지는 북쪽 해안은 상대적으로 호젓한 편이며 동쪽해안은 드넓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예전에 근해였던 지역은 다리가 놓인 뒤 호수가 됐는데 칸쿤에서 진행되는 각종 해상투어의 출발점도 이곳 잔잔한 니츄뻬(Nichupté) 호수다.
칸쿤의 북쪽 해변은 상대적으로 호젓한 분위기다.
할리우드풍의 나이트 클럽인 '코코봉고'. 영화 [마스크]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칸쿤에 들어서면 첫인상은 이곳이 멕시코 땅인가 싶다. 일단 멕시코 본토에서 잘 통용되지 않던 영어가 일상어처럼 쓰인다. 쿠클칸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도 대다수가 미국인들이다. 태평양 하와이쯤 와 있다는 착각이 밀려든다. 이방인들은 낮에는 뜨거운 해변을, 해가 지면 쇼핑가와 나이트클럽을 배회한다. 영화 [마스크]에도 나왔던 할리우드 풍의 '코코 봉고'는 이곳 나이트클럽의 대명사가 됐다. 술에 만취한 미국 청춘들을 만나는 것도, 깜짝 놀랄 물가와 돈 많은 부호들의 호사스러움과의 조우도 이곳 칸쿤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칸쿤이 선택된 자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칸쿤의 도심인 센트로 지역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숙소와 레스토랑이 몰려 있다. 라스 빨라빠스 광장은 돈 없는 여행자들에게는 마음 편한 놀이 공간이다. 단 바다까지 버스로 오가는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멕시코풍의 호젓한 해변을 원하면 이슬라 무헤레스(무헤레스섬)로 향한다. 칸쿤에서 북동쪽으로 11km 떨어진 섬인 이슬라 무헤레스에는 현지인과 배낭족이 어우러지는 소박한 해변이다. 칸쿤처럼 시멘트벽이 만들어내는 단절감 없이 카리브해를 마음에 담을 수 있다.
고대 마야유적의 정수 치첸이트사
칸쿤행 발길의 의미를 채우는 곳이 치첸이트사다. 칸쿤에서 200km, 마야유적에 로망을 느끼는 여행자들이 당일치기 투어로 꼭 들리는 명소다. 사실 칸쿤과 함께 치첸이트사를 언급하는 것은 다소 이질적이다. 칸쿤이 떠들썩한 휴양지라면 치첸이트사는 천년세월의 문명이 숨쉬는 숭고한 땅이다. 천문학과 건축기술이 한데 어우러진 마야유적은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에도 이름을 올렸고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돼 있다. 칸쿤의 거대한 호텔과 바다에 들뜬 가슴은 이곳에 들어서면 숙연해진다.
쿠클칸의 피라미드는 천문학적인 건축미가 담겨 있다.
성기게 펼쳐진 돌덩이 사이에서 쿠클칸의 피라미드는 단연 돋보인다. 9세기 초 완성된 신전은 동서남북으로 늘어선 계단이 인상적이다. 피라미드는 마야인이 그들만의 달력을 사용한 지혜로운 부족임을 보여주는데 각각 91개로 된 4면의 계단에 정상 계단을 합하면 1년을 뜻하는 365일이 되는 천문학적인 구조를 지녔다. 신전 앞 정면에서 박수를 치면 뱀이 우는 소리를 내며 기이한 분위기마저 연출한다. 인신공양에 쓰인 자들의 해골을 쌓아올렸던 쏨판똘리나 우승자의 심장을 신에게 바쳤던 경기장, 성스러운 샘 등은 나란히 정렬돼 있다. 규모는 웅대하지 않아도 조각, 벽화 하나에도 마야인의 총명함과 재주가 깃들어 있다.
다양한 기둥이 오밀조밀하게 세워진 전사의 신전.
칸쿤은 태양, 바다, 파티, 호텔로 치장된 땅이다. 파도의 설렘과 밤의 흥청거림은 새벽까지 이어진다. 뭍 깊숙이 몸을 감춰버린 마야인처럼 '원초적 중미'의 모습은 해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카리브해가 만들어낸 휴양 특구의 세련된 향기만이 짙게 배어난다.
가는 길 미국 LA를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멕시카나 항공 등이 칸쿤과 카리브해 연안국가들을 연결한다. 쿠바 아바나에서 입국하거나 미국으로 출국할 때는 심사가 까다로운 편이다. 칸쿤 호텔지역에서는 수시로 셔틀버스가 다녀 쇼핑 및 이동에 큰 불편은 없다. 칸쿤 버스터미널에서 치첸이트사로 향하는 버스편이 있다.
세대교체형 총리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경우 대권주자 반열에 우뚝 서겠지만, 젊기 때문에 우려되는 국정의 경륜과 화합문제를 선결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김 지명자는 이를 `겸손한 젊음`, 특유의 친화력으로 돌파한다는 구상이다. 겸손은 `무한 도전`과 함께 그가 좌우명으로 삼아온 덕목이다. 김 지명자는 10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비전을 갖고 도전하되 철저하게 겸손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 도의원과 군수, 두 번의 경남도지사 생활에서는 겸손과 친화력을 과시하는 일화들이 많다.
그 중 폭탄주의 변형으로 마산의 특산술과 맥주를 섞어만든 `정탄주`는 친화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이 됐다. 김 지명자는 지난 10년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탄주를 마셨다고 한다. 우선 도민들과 어울려 소통과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김 지명자는 동네 노인들의 잔칫집을 찾아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으면 무조건 `형님`이고 부모뻘이면 `아버님`, `어머님` 하면서 머리 숙여 술을 따르고, 도민들을 친척들로 만들었다. 그래서 자칭 `경남의 술상무`다.
그의 친화력은 시간,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다. 한 달 전 쯤에는 정운찬 총리를 찾아가 "총리실장이라도 시켜주십시요"라고 중앙 무대 진출의 꿈을 피력했다. 이미 사의를 표명했던 정 총리는 김 지명자의 너스레에 "내 거취도 불분명한데..."라며 서로 웃음으로 받아넘겼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김 지명자의 친화력은 분명 여야를 넘어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평했다.
시내버스로 각광받는 압축천연가스(CNG) 버스가 '달리는 시한폭탄'이 됐다. 특히 CNG 버스가 운행도중 폭발사고가 발생, 인명 피해를 낸 것은 처음이다. 문제의 CNG 버스는 서울시내 전체 버스 가운데 98%를 차지, 시민들의 불안과 충격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시민의 발'이라 불리는 시내버스의 안전 문제 등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 '시민의 발'인 시내버스가 운행중 갑자기 폭발하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했다. 9일 오후 4시57분쯤 서울 행당동 행당역 주변에서 송모(53)씨가 몰던 압축천연가스(CNG) 시내버스가 신호 대기 중 돌연 폭발, 승객과 운전기사 등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전문가들은 연료계통의 구조적인 문제와 정기검사 기준 부재 등 CNG버스 관리·감독 부실에 따른 '예견된 사고'라고 지적한다. 경찰은 "버스의 중간 부분에서 '펑'하는 폭발음이 들렸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근 차량·상가까지 먼지· 파편
9일 오후 4시57분쯤 서울 성동구 행당동 행당역 주변에서 241B번 CNG 시내버스가 폭발해 이효정(27·여)씨 등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당시 버스는 무학여중 방향으로 가기위해 행당역 4번 출구 앞에서 신호 대기 중 갑자기 폭발했다. 조용하던 버스 내부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승객들은 폭발 연기 속에서 버스 유리창을 통해 필사적으로 빠져 나오느라 큰 혼잡을 빚었다. 폭발로 인한 연기와 파편, 먼지는 인근 차량과 상가까지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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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대원과 성동경찰서 소속 경찰관 80여명이 현장에 긴급 출동해 구조자를 응급처치하고, 인근 한양대병원 등 4개 병원으로 부상자를 옮겼다. 사고 당시 승객과 목격자들은 "출발하기 전에는 냉방이 계속되고 있었고, 차가 흔들리지는 않았다."면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 속에서 눈을 떠보니 버스 뒷바닥이 폭발로 솟구쳐 있었다."고 진술했다.
현장에서 사고를 목격한 손모(44)씨는 "버스에서 큰 소리가 들렸고 5초 정도 연기가 솟았다. 발목을 심하게 다친 여성 한 명이 보였고, 운전기사는 온몸에 먼지를 덮어쓴 채 버스 밖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복합골절과 발목 절단 등 가장 큰 부상을 입은 이씨는 버스 연료통 바로 위 좌석에 앉아 화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 등 2명을 제외한 나머지 부상자들은 비교적 상처가 경미해 응급치료를 받고 돌아갔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버스 중간 부분에서 폭발음이 들렸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연료통이 폭발해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폭발 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고 원인으로 열기에 의한 엔진과열 가능성을 첫번째로 꼽았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엔진이 과열된 뒤 화기가 호스를 타고 연료통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올 초 눈이 많이 와서 도로에 염화칼슘을 많이 뿌렸는데 이로 인해 연료통이 부식된 뒤 가스가 누출된 상황에서 스파크 등에 의해 폭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환경부에 따르면 서울시내 버스 7600대 가운데 98%(지난해 말 기준)인 7491대가 CNG 버스이며, 올 연말이면 모두 CNG버스로 교체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김태호 총리 발탁'은 오랫동안 두 사람이 '이심전심'해온 결과물로 평가된다. 이 대통령은 입지전적인 자수성가형 인물로 급성장하면서 자신과 닮은꼴 행보를 보여온 김 총리 지명자에게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표명해왔다. '8·8개각' 전체를 상징하는 세대교체 총리 등용이 비록 전격적이긴 하지만, 하늘에서 갑작스레 떨어진 게 아니라는 의미다.
이 대통령이 "김태호를 중앙정치 무대에 데뷔시켜야겠다"고 직접적으로 중용의사를 내비친 건 연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월6일 이 대통령은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차 청와대를 방문한 김 지명자와 독대했다. 당시 경남지사였던 김 지명자는 대통령면담을 요청한 뒤 "도지사에 불출마하고자 합니다. 민생을 보듬을 수 있는 더 큰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고 전해진다.
3선 도지사 당선이 확실한데 이를 포기한 결단을 높이 산 때문일까. 이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도지사를 두번한 만큼이나 큰 공부가 어디 있겠느냐"고 격려하는 데 그쳤지만, 이후 이 대통령은 주변에 "김 지사는 앞으로 크게 쓸 인물"이라는 뜻을 표명했다. 세간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미스터리한 정치적 행위로 회자됐던 김 지명자의 지난 1월25일 '경남 도지사 불출마선언'은 8일에 와서야 의문이 풀린 셈이다.
이 대통령은 그 이전 서울시장 재직시 김 지명자가 제2대 시·도지사협의회 의장을 맡아 겸손하고 신중한 언행으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을 눈여겨봐왔다.
이 대통령이 그러나 '김태호 총리'를 최종 결정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나 한나라당 전당대회 등을 통해 여의도 정치무대에 입성시키거나 내각 주요직 등용까지는 생각했지만, 총리까지는 아니었다.
이 대통령이 '김태호 총리'를 전격 구상한 계기는 6·2지방선거의 패배이후다. 20~40대 젊은 층에서 여권이 외면당한 결과에 이 대통령은 정권재창출의 적신호를 직감했다. 단순한 세대교체형 개각콘셉트를 넘어선 친서민 중도실용기조와 소통을 핵심으로 한 집권후반기 국정운영 구상에 이르게 된다.
[이데일리 편집부] 왕피천 계곡 트래킹은 일반적으로 굴구지 마을 끝자락에 있는 상천마을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굴구지마을에서 상천마을에 이르는 계곡도 무척 멋스러워 이번 왕피천 트래킹은 굴구지에서 상천에 이르는 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원점회귀가 가능한 이 코스는 계곡과 산길, 그리고 마을길을 두루 섭렵할 수 있는 최상의 트래킹 코스다.
구산3리 마을회관 앞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리는데 좌측은 왕피천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우측은 상천으로 가는 길이다.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짧은 마을길을 지나면 이내 천혜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왕피천이 모습을 드러낸다. 넘실대는 물줄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무더위를 잊게 만든다.
▲ (좌)왕피천, (우)왕피천 급류구간_여행작가 정철훈
멋진 풍광에 대한 감탄도 길이 끊긴 계곡 아래에 이르면 누구든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어디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무작정 계곡을 거슬러 오르기 보다는 평지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는 게 정답.
계곡 가운데 얕게 드러나 있는 자갈 구간을 지나 계곡을 건너다보면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지만 건너기에 부담스럽진 않다. 지난 밤 내린 비로 물이 많이 불어 이 정도라고 하니 평소에는 별 어려움이 없어 건너다닐 수 있어 보인다.
계곡을 건널 때는 늘 조심해야 한다. 욕심껏 발걸음을 내딛기 보다는 물을 안고 걷는다는 생각으로 목적지 보다 조금 아래에서 물살을 거슬러 오르듯 걸어야 한다. 그래야 중심을 유지하면서 걸을 수 있다.
계곡을 건너 평탄한 길을 조금 걸으면 이제는 어른 키만 한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고 나선다. 울퉁불퉁 제 멋대로 솟아 있는 바위들의 모습이 자못 당당하다. 한데 그 모습이 위협적이라기보다는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모습 때문이지 싶다.
넘실대는 왕비천의 물살과도 많이 닮은 이 바위구간은 물길을 걷듯 그렇게 타고 넘으면 된다. 전체 구간 중 걷는 재미가 가장 쏠쏠한 곳이다.
▲ (좌)멋스러운 바위구간, (우)왕피천에서 만난 폭포_여행작가 정철훈
바위구간을 지나 큰 굽이를 돌아 나올 때까지는 길이 조금 험해진다. 아니 험 하다기 보다 잡풀과 잡목이 많아 걷기가 불편하다. 이때는 과감히 계곡으로 내려와 물길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계곡 트래킹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길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고, 길이 없으면 계곡으로 내려서면 되고, 길이 막히면 계곡을 건너면 그만이다.
제법 강하게 쏟아져 내리던 물살은 보가 설치된 구간을 지나면서 다시 잔잔해 진다. 이곳에서 다시 계곡을 건너면 된다. 이곳은 물이 얕고 넓은 자갈밭이 있어 잠시 쉬어가거나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좋다.
계곡을 건너 다시 한 굽이 돌아서면 마치 출발점에 다신 선 듯, 굴구지 앞 계곡과 비슷한 풍광이 펼쳐진다. 넓게 열린 시야도 그렇고 계곡 가운데 얕게 드러난 자갈 구간도 그렇다. 재미있는 건 이곳에서도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맞은편으로 계곡을 건너야 하는데, 물의 깊이도, 흐름도 아주 흡사하다.
▲ 용소_울진군청제공
여기서 용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방심하기는 아직 이르다. 용소까지는 600m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길은 얼마가지 못해 다시 바위에 가로막힌다. 역시 비경은 그리 쉽게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것 같다.
때문에 여기서 다시 계곡을 건너 길을 잡아야 하는데, 이 부근은 수심이 깊어 무턱대고 발을 들이기도 부담스럽다. 그 중 가장 안전한 루트는 건너편 모래톱에 서 있는 이정표를 바라보고 걷는 코스다.
물은 가슴까지 차오르지만 그래도 물살이 약해 건너기에 크게 힘들진 않다. 다만 물 흐름이 약한 곳이다 보니 발아래 밟히는 바위와 돌에 이끼가 많아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곳이 상천이다. 왕피천 계곡 트래킹은 이곳에서 용소에 다녀오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게 좋다. 굴구지에서 용소까지 4km. 거기에 다시 생태탐방로를 거쳐 마을로 돌아오는 구간 2km를 더하면, 대략 6km 정도를 걷는 코스다.
▲ (좌)왕피천 생태탐방로, (우)생태탐방로에서 본 왕피천_여행작가 정철훈
조금은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계곡을 건너고, 바위 구간을 지나야 하는 계곡 트래킹은 일반 걷기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더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무리해서 걷기 보다는 자신의 체력을 고려해 코스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일반인의 경우 이 코스를 걷는데도 4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왕피천탐방코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고산3리 남중학(010-4134-0565) 이장에게 도움을 받으면 된다.
혹시 아쉬움이 남는다면 내쳐 속사까지 다녀올 수도 있다. 이때는 최근 완공된 왕피천생태탐방로를 따라가면 된다. 간혹 용소를 헤엄쳐 건넌 뒤 계곡을 따라 속사까지 가는 이들도 있지만, 전문 가이드와 함께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 권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용소에서 속사까지는 왕복 10km, 나무다리와 방책 등이 설치돼 있는 탐방로를 따라가도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 (좌)속사마을, (우)굴구지 산촌펜션_여행작가 정철훈
왕피천 트래킹 후에는 굴구지 마을에서 하루 이틀 푹 쉬었다 오는 것도 괜찮다. 산촌생태마을이기도 한 굴구지 마을에선 피라미 잡기, 송이 캐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 온가족이 함께하기에도 좋다.
특히 마을 앞, 트래킹이 시작되는 계곡은 수심이 얕고 물살이 느려 아이들의 물놀이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숙박은 마을에서 운영하는 펜션을 이용하면 된다. 최근에 지은 굴구지 산촌펜션은 여느 관광지에 있는 펜션 못지않은 시설을 자랑한다.
또한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성류굴이 있고, 왕피천 트래킹의 시작점과 끝점이 되는 고산리와 왕피리를 잇는 38번 국도에는 불영사와 불영사계곡도 자리해 있으니 지나는 길, 잠시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문암골이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 가을. MBC 예능프로 '오마이 텐트'에 소개되면서부터다. '오마이 텐트'는 김제동이 MC로 나서 게스트와 함께 캠핑을 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진지한 접근으로 인해 '다큐적 예능'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마이 텐트'는 단 1회만 방송되고 종결됐다. 이 프로그램의 처음이자 마지막 촬영지가 살둔마을과 문암골이다. 문암골에는 당시 세운 '오마이 텐트가 찾은 걷고 싶은 길'이라는 이정표가 있어 지금도 오지마을을 찾아 나선 이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세상의 끝 오지마을에서 다시 시작되는 길
10여 년 전만 해도 살둔마을은 오지의 대명사였다. 이곳에서 길이 끝났다. 내린천 물길은 이어졌지만 찻길은 없었다. 여행자들은 이 외진 오지마을을 찾아 세상 끝까지 온 듯한 여행의 기쁨을 맞보곤 했다. 그 중심에 살둔산장이 있었다. 내린천 곁에 귀틀집으로 지은 이 산장은 감성이 충만한 여행자의 안식처였다. 그러나 살둔마을이 끝이 아니었다. 길은 끝에서 다시 시작됐다. 그곳이 문암마을로 가는 문암골이다. 살둔산장에서 내린천 건너에 빤히 보이는 계곡. 그 계곡을 따라 오지로 가는 아름다운 길이 있다.
문암골 초입에 세워진 목장승 2기. 이곳에서 내려가면 내린천을 가운데 두고 살둔산장과 마주하게 된다.
문암골로 가는 길은 살둔마을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내린천을 오른쪽에 끼고 산비탈을 따라 길이 나 있다. 초입에 '자전거 트레킹 코스'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 문암마을까지는 걷는 것도, MTB를 타고 가는 것도 좋다. 자전거는 생둔분교 오토캠핑장에서 대여해준다.
내리막길은 잠시 야트막한 언덕을 지나 부드럽게 이어진다. 언덕을 지나면 남녀형상의 거대한 목장승 두기가 있다. 호랑소라는 비석도 있다. 이곳을 지나면 드문드문 민가가 나타난다. 첫 번째 다리를 건너면서 시멘트포장도로가 끝이 난다. 이곳부터 문암마을 삼거리까지 4km는 아늑한 흙길이 이어진다.
다리를 건너 500m쯤 가면 '오마이 텐트에서 찾은 걷고 싶은 길' 이정표가 있다. 이곳부터 민가도 보이지 않는다. 문암마을까지는 이제 둘이 나란히 걷기 좋은 길과 깊은 숲, 소리만으로도 청량감을 물씬 풍기는 계곡만이 있다. 길과 나란히 이어진 계곡은 문암골이 깊어질수록 풍광이 아름다워진다. 바위와 암반이 어울린 협곡이 짙은 녹음 사이로 언뜻언뜻 비친다. 도보여행에 나선 이들은 그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쉽지 않다. 워낙 계곡이 험하기 때문에 내려서는 길이 많지 않다.
문암골 청량한 물소리는 탁족의 즐거움을 부르고
이정표가 서 있는 자리에서 10분쯤 가면 첫 번째 삼거리다. 오른쪽으로 가면 운리동으로 간다. 문암마을로 가는 길은 왼쪽이다. 갈림길을 지나면 길은 더욱 아늑해진다. 계곡미도 더욱 빼어나다. 하얗게 포말을 그리며 쏟아지는 물살이 여행자의 마음을 훔친다. 그러나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갈림길에서 1km즘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계곡과 마주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작은 채마밭이 있는 이곳은 물살이 층층이 떨어지며 흘러가는 곳. 계곡물은 발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차다. 걷기는 그만하고, 탁족을 하며 그저 쉬고 싶게 만든다. 이곳에 오마이 텐트가 세운 '여기까지 2,500걸음'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여행자를 배려하는 그 이정표가 정겹다.
이정표를 지나서도 계곡의 풍광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협곡으로 변해 신비감을 준다. 과연 이 길 끝에 마을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끝은 있었다. 다시 '여기까지 5,000걸음'이란 이정표를 만나고 나서 300m만 더 걸으면 잘 포장된 시멘트 도로와 만난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 달리 말끔하게 포장된 도로여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지점이 삼거리다. 직진하면 고개를 넘어가 홍천과 상남을 잇는 31번 국도와 만난다. 문암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넘어 율전리로 장을 보러 간다. 즉, 이 길이 문암마을과 세상을 연결하는 끈이다. 따라서 주민들의 편리를 위해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든 것이다. 반면, 문암골에서 살둔마을로 가는 길은 활용도가 떨어져 점점 아늑한 오솔길로 변하고 있다.
삼거리에서 문암마을로 가는 길은 왼쪽이다. '문암마을 감리교회 2km'라 적힌 이정표가 있는 다리를 건너간다. 삼거리에서 문암마을로 이어진 길은 특별하지 않다. 짙은 숲 그늘도 없고, 경치도 특별날 게 없다. 무엇보다도 포장된 도로가 마음에 거슬린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계곡이 한결 가까워졌다는 것. 이제는 틈만 나면 계곡에 발을 담글 수 있다.
빗물로 불어난 문암골의 계곡물이 세차가 흘러가는 가운데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첫 번째 삼거리가 나온다.
종교적 경건함이 흐르는 소박한 문암교회
삼거리에서 문암마을까지는 20분이면 족하다. 이 계곡 끝에 무엇이 있을까 싶던 의구심은 마을 입구에 닿으면 풀린다. 마을이 터 잡은 계곡은 생각보다 넓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산자락 마다 밭이 만들어져 있다. 10가구쯤 되는 집들도 띄엄띄엄 있다. 과거에는 꽤나 큰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에 있는 문암교회는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들고나는 길도 험하기 짝이 없던 그 시절에 이곳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최근에 새롭게 단장한 문암교회는 종교가 추구해야할 진정성과 가치를 조용히 말해준다. 통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황토로 벽을 발라 지은 교회는 아담하다. 하늘을 찌르는 첨탑도 없이 수수하다. 교회 내부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예배당 정면에 세워 놓은, 나무를 켜서 만든 선이 자연스러운 십자가도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창문 너머로는 문암마을의 전경이 펼쳐진다. 무신론자에게도 종교적 감동을 줄 정도로 경건함이 흐르는 검박한 모습이다.
문암마을에서 땀을 식히고 나면 이제 돌아갈 일만 남는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길이라 조금 싱거울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내장까지 시원하게 훑어줄 계곡이 기다리고 있어 발길이 가볍다. 혹여, 밭일 나가는 농부의 트럭이라도 얻어 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포털 하위 업체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진원지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온라인인맥구축서비스(SNS)다. 국내에도 스마트폰 열풍과 함께 불어닥친 SNS 파고에 검색점유율 하위권 포털 업체들의 최근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야후, 파란, SK컴즈' 반란 삼총사
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야후코리아는 자사 홈페이지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기능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포털 가운데 처음이다. 사용자들은 야후코리아 한 곳에만 로그인하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이른바 '싱글로그인' 서비스인 것이다. 메시지 작성과 리트윗 등 트위터의 모든 기능과 페이스북의 강점인 온라인인맥구축게임(SNG)도 즐길 수 있다. 야후코리아 관계자는 "SNS 서비스 이용에 편리함을 보태고 개방형 홈페이지로의 변혁을 통해 올 연말까지 2배 이상의 검색 점유율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색 점유율 1∼2%를 오가는 KTH의 '파란'도 최근 SNS로 변혁을 모색하고 있다. 진두 지휘는 박태웅 부사장이 맡았다. 박 부사장은 열린검색으로 널리 알려진 엠파스의 창립 멤버다. 그가 내놓은 첫번째 위치기반(LB) SNS가 바로 '아임인'(아임in)이다. '한국판 포스퀘어'를 지향하는 '아임인'은 출시(7월 7일) 한 달도 안돼 이미 가입자 수가 12만명을 넘어섰다. '아임인'은 자신의 위치를 지도 위에 기록해 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서비스다.
로스앤젤레스의 북쪽, 그리피스 파크의 언덕에 우뚝 서 있는 9개의 거대한 알파벳 글자 'HOLLYWOOD'. 이 유명한 사인은 이곳이 미국, 아니 지구를 대표하는 영화의 도시임을 알리고 있다. 할리우드 사인은 1923년 지역의 주택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HOLLYWOODLAND' 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다. 이후 할리우드가 영화 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얻게 된다.
할리우드 사인은 영화가 만들어내는 빛과 어둠을 동시에 보여준다. 수많은 스타 지망생들이 멋진 캐딜락을 끌고 그 사인 아래를 달리는 날을 꿈꾸지만, 그 'H' 글자 위에서 뛰어내려 죽은 영화배우도 있었다. 또한 영화인들은 이 글자들을 가지고 놀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 [투모로우]에서는 거대한 토네이도가 사인을 부수는 것으로 대재난이 벌어졌음을 알리고, [오스틴 파워 3 - 골드멤버]는 사인 아래 닥터 이블의 기지를 숨겨 두고 있다.
명예의 거리에 나의 별을 남기자
세계가 인정하는 셀레브리티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Hollywood Walk of Fame)에 입성해 자신의 별을 남기는 것이다. 영화, 텔레비전, 공연 예술 등의 분야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은 스타들의 이름을 새긴 황금의 타일이 이 대로의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1950년대부터 전통을 이어온 이 별의 숫자는 2400개를 넘기고 있는데, 할리우드 대로와 바인 스트리트에 걸쳐져 있는 거리의 길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찰리 채플린은 1956년에 별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지만 당시 매카시 선풍으로 인해 그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1972년에야 자신의 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5월에는 도날드 덕, 심슨 가족에 이어 슈렉이 가상의 캐릭터로서 이 거리에 들어서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명예의 거리는 매년 1천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시사회를 하려면 바로 이 극장들에서
그라우맨스 차이니즈 극장은 스타들의 손도장으로 유명하다.
황금기 할리우드를 가득 채웠던 영화 산업의 시설들 중 상당수는 시 외곽으로 빠져 나갔다. 그럼에도 아직 이 지역은 영화사의 면면을 기억하게 하는 역사적 유물들로 가득하다. 특히나 전통을 자랑하는 영화관들의 자태는 왜 할리우드가 할리우드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라우맨스차이니즈 극장(Grauman's Chinese Theatre)은 가장 유명한 곳 중의 하나인데, 아시아 스타일로 지어진 우아한 극장 건물은 멀티플렉스에 익숙해진 영화 관객들의 상식을 깨끗하게 깨어버린다. 또한 극장 앞바닥을 가득 채운 여러 스타들의 손과 발자국 때문에 유명세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손과 발뿐만 아니라 해롤드 로이드의 안경, 그라우초 막스의 담배, 해리 포터의 마법봉 등의 상징물들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 극장은 [스타워즈]를 비롯한 여러 영화들의 시사회장으로도 유명하지만, 종종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포레스트 검프]와 [스피드]에서는 이 영화관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상영되고 있는 모습이 나오고, [오스틴 파워]의 주인공들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으로 자신들이 방금 벌인 일들의 영화판을 보는 극장도 바로 이곳이다. 1940년대 중반에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개최장이기도 했는데, 현재는 근처에 있는 코닥 극장(Kodak Theatre)에서 열린다. 브로드웨이에 있는 극장가(Broadway Theater and Commercial District)는 1920~31년 사이에 지어진 12개의 궁전과도 같은 영화관들로 유명하다. 찰리 채플린의 [시티라이트]의 시사회로 문을 연 로스앤젤레스 극장(Los Angeles Theatre)은 [뉴욕뉴욕] [미녀 삼총사]에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기도 했다.
비벌리 힐스 아이들의 집은 어디에 있나요
2천 년대의 미드 열풍 이전에도 미국산 드라마 열기는 만만치 않았다. 1970~80년대 [기동순찰대(CHiPs)] [A 특공대(The A-Team)] [미녀 삼총사(Charlie's Angels)] 등 원조 미드 인기작들 중에는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드라마 제작 스튜디오가 이 지역에 몰려 있기도 했지만,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 빛나는 도시는 성공을 꿈꾸며 모여든 사람들이 액션 활극을 벌이기에도 적당한 장소였으리라.
1990년대에 등장한 [비버리 힐스 아이들(Beverly Hills, 90210)]은 부유층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미드의 새로운 경향을 예고했다. 비버리 힐스는 로스앤젤레스 서쪽 고지대에 있는 세계적 부촌으로, 톰 크루즈,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초특급 스타들의 대저택이 모여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쇼핑가인 원조 로데오 거리(Rodeo Drive)에서 비버리 힐스가 어느 쪽인지 물어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신이 만약 리처드 기어라면 [프리티우먼]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 영화의 현장인 비벌리 윌셔 호텔(Beverly Wilshire Hotel)이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프리티 우먼]의 현장인 비벌리 윌셔 호텔에서 현대의 신데렐라를 꿈꾼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여기에서 공부해
조지 루카스의 기념비적인 SF 영화 [THX 1138]은 USC 재학 시절 만든 단편을 발전시킨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도시이니만큼 배우나 감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수학 천재들의 범죄 드라마 [넘버스]에 교정을 빌려주기도 하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는 대표적인 영화학도의 산실이다. 이 대학의 영상예술학교(School of Cinematic Arts)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영화학교로, 조지 루카스, 로버트 저메키스 등 명감독들을 배출해냈다. 1973년 이래 매해 한 명 이상의 졸업생이 아카데미와 에미상 후보로 뽑히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으며, 200개 가까운 수상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1960년대 초반 월트 디즈니의 주도로 설립된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는 애니메이션 분야의 인재들을 배출해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비틀쥬스]의 팀 버튼, [이온 플럭스]의 피터 정 등이 이 학교 출신이고, [라이온 킹] [토이 스토리]의 크레디트 곳곳에서 졸업생들의 이름을 볼 수 있다.
거대한 꿈의 공장의 실체를 확인하자
도시 북쪽, 할리우드 사인 근처에 있는 유니버설 시티는 이름 그대로 영화사 유니버설 픽처스의 터전이 되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 있는 거대한 영화 스튜디오이자 테마 파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스 할리우드(Universal Studios Hollywood)'는 할리우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생생히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20세기 초반 유니버설이 무성 영화를 찍을 때부터 영화 촬영장을 둘러볼 수 있는 투어는 존재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테마 파크형의 투어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이제 관람객들은 영화 촬영 세트만이 아니라 돌발적인 이벤트, 스턴트 시범, 라이브 퍼포먼스 쇼 등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백 투더 퓨처] [비틀쥬스] [킹콩] [심슨 가족] 등 여러 히트작들을 테마로 한 세트와 놀이 기구들이 인기를 모아왔는데, 2011년에 개장될 예정인 [트랜스포머]도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거대한 영화 세트장이자 놀이동산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스 할리우드'.
월트 디즈니의 흔적을 찾아라
음악 공연과 영화에서 꾸준히 이용되고 있는 디즈니 콘서트홀.
할리우드의 꿈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이름은 월트 디즈니다. 미국은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의 마음 속에 자라온 온갖 종류의 꿈이 뒤엉킨 땅이다. 할리우드의 영화는 바로 그 아메리칸 드림을 먹고 자라왔다. 그리고 디즈니의 꿈은 가장 꿈만 같은 꿈, 상상으로만 그릴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꿈이었다. 시카고 예술학교의 야간 과정을 다니던 디즈니는 학교 신문의 만화를 그리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카툰 스튜디오를 만들기 위해 할리우드로 온다. [증기선 윌리]로부터 본격화된 그의 모험은 1930~4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황금시대를 열게 된다.
지금도 이 도시 곳곳에서 월트 디즈니의 이름을 만날 수 있는데, 2003년에 문을 연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이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딱 보기만 해도 '프랭크 게리'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날렵하면서도 웅장한 건축물은, 금방이라도 아기 코끼리 덤보와 함께 하늘을 날아오를 듯하다. 이 건물은 그 유명세 덕분에 [심슨 가족]에 패러디되기도 했다.
스프링필드 마을이 프랭크 게리를 불러 새로운 콘서트홀을 만드는데, 번즈 사장은 이 건물을 교도소로 바꾸어 버린다. 범죄자 스네이크는 그 감옥에서 탈출하며 말한다.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감옥도 나를 붙잡아 둘 수는 없어."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음악 공연을 위해 주로 사용되지만, 2003년 [매트릭스 레볼루션]의 시사회장으로 사용되는 등 영화와도 꾸준히 인연을 맺고 있다.
베르디의 [아이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화려한 개선장면일 것입니다. 실제로 [아이다] 공연을 보러 왔다가 2막의 개선장면이 끝나면 "이제 볼 거 다 봤다"며 집에 가는 관객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페라 [아이다]의 진짜 재미는 3막과 4막에 있습니다. 뒤로 갈수록 주인공들의 갈등과 긴장은 더욱 팽팽해지고 감동 또한 커진답니다. 그러니 2막 끝난 뒤 절대로 집에 가지 마세요. 그리고 코끼리, 말, 낙타의 행렬은 결코 오페라 [아이다]의 핵심이 아닙니다. 대규모 야외무대의 경우 넓은 무대를 볼거리로 채우기 위해 여러 가지 동물들을 등장시키는 것뿐, 스토리나 음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요.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고 있는 동안 이집트 국왕은 운하 개통 기념으로 국제적인 수준의 오페라를 공연하고 싶어 베르디에게 작품을 의뢰했습니다. 이를 위해 운하가 개통되는 1869년에 맞춰 카이로 오페라 극장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와의 계약을 못 미더워했던 베르디는 일단 의뢰를 거절했다가, 프랑스의 이집트학 연구가인 오귀스트 마리에트의 짤막한 소설 초고를 읽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 소재로 대본을 써서 오페라를 만들면 대단히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아이다]였답니다.
라다메스의 아리아 - 정결한 아이다 Celeste Aida / 플라시도 도밍고[테너]
이집트인의 합창 - 가자! 신성한 나일 강가로 Su! del Nilo al sacro lido
개선행진곡 - 오라, 승리자들이여 Vieni, guerriero vindice / 제임스 레바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그러나 이 오페라는 운하가 개통되고 2년이나 지난 187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야 카이로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될 수 있었습니다. 한 해 전에 오페라 작곡은 끝났지만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전쟁을 하는 바람에 파리에서 제작한 무대의상을 실어내 올 수가 없었다는군요.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초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파라오가 통치하는 고대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와 나일 강변의 도시 테베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지금도 이집트의 관광상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레이저 빔을 쏘며 현장감 있는 야외공연을 펼치기도 하죠.
콜로세움과 비슷한 외관을 가진 이탈리아 베로나 야외극장에서는 1913년부터 거의 매년 여름 [아이다]를 공연하고 있습니다.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은 6월 중순에 시작해서 8월 말까지 계속되는데, 올해는 프랑코 제피렐리가 연출한 [아이다]가 무대에 오릅니다.
[아이다]는 고대 이집트의 멤피스, 나일강변, 테베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출처: NGD>
이 오페라에서 인물들의 갈등은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국경분쟁이라는 정치적 배경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갈등의 핵심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Radames. 테너), 원래는 에티오피아 공주지만 전쟁포로로 끌려와 이집트 왕궁에서 노예로 일하는 여주인공 아이다(Aida. 소프라노), 라다메스를 사랑하는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Amneris. 메조소프라노), 이 젊은 주인공들의 삼각관계입니다.
라다메스는 등장하자 곧 '정결한 아이다'를 노래합니다. 그리고 신탁에 따라 에티오피아군을 물리칠 이집트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됩니다. 공주 암네리스는 라다메스가 승전해 돌아오면 결혼하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가, 아이다가 라다메스와 사랑하는 사이라는 사실을 알고 불같은 질투에 휩싸입니다. 라다메스는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오고, 에티오피아 포로 가운데는 신분을 감추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왕 아모나스로(Amonasro. 바리톤)가 섞여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딸 아이다를 시켜 라다메스에게서 이집트 군대의 기밀을 알아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밀을 누설한 라다메스는 절망에 빠집니다. 아모나스로가 아이다와 함께 에티오피아로 가자고 라다메스를 설득할 때 암네리스 공주가 나타나 라다메스를 반역죄로 체포하게 하는데, 라다메스는 필사적으로 아이다와 아모나스로를 도망시킵니다.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에게 아이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 살려주겠다고 말하지만, 라다메스는 신전 사제들의 재판에서 자신을 변호하지 않은 채, 산 채로 돌무덤에 갇히는 사형선고를 묵묵히 받아들입니다. 그가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라 짐작한 아이다는 미리 돌무덤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다가 라다메스를 맞이해 서로의 굳건한 사랑을 확인하며 행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갑니다.
암네리스와 라다메스의 무대장면. 암네리스는 라다메스를 사랑하며, 아이다를 질투하는 이집트의 공주이다.
침략주의적 색채가 짙은 개선장면의 개선(改善)
[아이다]를 초연했을 때 베르디의 나이는 58세. 이탈리아 국민음악가이자 유럽 최고로 군림하는 오페라 작곡가였지만 베르디는 이미 자신의 시대가 지났다고 느꼈습니다. 온 유럽이 바그너 오페라에 환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한선율,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 불협화음, 마치 현대 영화음악처럼 감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바그너의 음악이 오페라 관객을 매혹했던 것입니다. 베르디 역시 [돈 카를로] 등에서도 꾸준한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지만, 특히 [아이다]에서는 현대적 화성이 더욱 돋보이게 작곡했습니다.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까지 했던 베르디는 정치발전에 대해서도 깊은 회의를 품었습니다. 당대 정치가와 종교지도자들의 보수반동적인 태도와 선동정치에 환멸을 느꼈던 베르디는 구체적인 역사로부터 도망쳐 아득한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를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현대의 연출가들은 [아이다]의 개선행진 음악이 뿜어내는 전체주의적, 침략주의적 색채를 혐오해, 개선장면을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게 연출하기도 합니다. 이 장면의 금관악기 소리가 화성적으로 귀에 거슬리는 이유는 편협한 애국주의를 비웃으려는 작곡가 베르디의 본래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사방과 천장이 밀폐된 돌무덤 속에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맞이하는 죽음은 개인을 억압하고 흡수해버리는 거대한 사회에서 개인이 개인으로 남기 위한 유일한 선택입니다. 이들의 죽음은 암네리스 공주와 이집트 사제들로 대표되는 무덤 밖 권력자들을 가볍게 뛰어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은 동시대 오페라 역시 이승에서 불가능한 사랑을 죽음을 통해 이루는 순수하고 강인한 주인공들을 보여줍니다
모나코(Monaco)는 앙증맞다. 바티칸시국(Vatican)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다. 프랑스에서 열차로 스쳐 지나온 남부 코트다쥐르의 도시보다도 아담하다. 작은 모나코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늘 신비롭고 호사스럽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역에 내리면 한 여인의 흔적을 쫓게 된다. 마릴린 먼로와 쌍벽을 이뤘던 할리우드 스타 그레이스 켈리가 그 주인공이다. 모나코 전 국왕인 레니에 3세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던 그녀의 일화는 수십 년이 흘러도 잔영처럼 남아 있다.
모나코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다. 항구를 중심으로 아담한 지중해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내 궁전은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넓어요." 당시 모나코 왕자였던 레니에 3세는 1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며 그레이스 켈리에게 이렇게 청혼했다. 훈훈한 러브스토리와 수만 명이 몰려든 웨딩마치는 프랑스 한 모퉁이의 소국을 화제 속에 몰아넣었다. 결혼식 이후 모나코는 미국 등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관광대국으로 급성장했다. 절세의 미녀와 관광수입을 한꺼번에 얻어낸 레니에 3세는 정치가이자 로맨티시스트였던 셈이다.
그레이스 켈리의 추억이 서린 왕궁
여행자들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모나코 빌로 향한다. 결혼식이 실제로 열렸던 왕궁과 부부가 잠들어 있는 성당이 있는 공간이다. 수도승으로 위장해 모나코를 탈환했던 프랑수아 그리말디(François Grimaldi)의 동상도 들어서 있다. 정오쯤 열리는 왕궁 앞 위병 교대식은 모나코의 인기 높은 이벤트 중 하나다. 왕궁에는 지금도 왕이 살고 있다. 밖에서 언뜻 봐도 왕이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은 공간이다.
가파른 절벽 위에 세워진 모나코빌 성채.
세기의 결혼식이 치러졌던 모나코 왕궁.
절벽 위에 솟은 모나코 빌은 성채 같은 모습이다. 헤라클레스가 지나간 자리에 신전을 세운 곳이 모나코 빌이라는 전설도 내려온다.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지만 내려다보는 풍경만큼은 압권이다. 모나코 항구를 기점으로 하얀 요트들과 언덕을 가득 채운 부티크 빌라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다. 항구에서 시작된 은빛 물결은 짙푸른 지중해로 이어진다. 성채 위에는 왕이 살고 그 아랫마을에는 귀족(부호)들이 사는 듯한 낭만적인 구조다.
진정한 지중해의 휴양국가지만 그래도 바람 잘 날은 별로 없었다. 세기의 결혼식 후에도 스테파니 공주 등 모나코의 왕가들은 끊임없이 스캔들에 연루되며 화제를 뿌렸다. 현재의 왕(알버트 2세)은 독신이지만 아들과 딸이 있으며, 20년 연하의 남아공 여인과 결혼을 준비 중이다. 최근에는 그레이스 켈리의 손자인 안드레아 왕자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신데렐라의 꿈을 실현시켜줄 보랏빛 천국으로도 모나코는 손색이 없다.
왕가의 삶은 여인들에게는 색다른 로망을 심어준다.
왕실 근위대의 근무교대식.
아기자기한 레스토랑과 기념품가게로 채워진 골목.
성채에서 내려서는 길은 단아하다. 반대쪽의 투박한 절벽과 달리 아기자기한 골목들이 늘어서 있다. 지중해풍의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들도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골목에서는 그레이스 켈리가 새겨진 우표도 판매된다. 모나코에서 부치는 엽서 한 장은 여행자들에게 꽤 인기가 높다.
지중해와 F-1, 요트로 치장된 도시
모나코는 세금도, 군대도 없다. 물, 가스 등 생필품과 국정에 대한 일부도 프랑스에 의존한다. 어찌 보면 태평천국이다. 그런 모나코의 주 수입원 역할을 하는 게 F-1 자동차 경주와 카지노다.
매년 5월 열리는 F-1 경기를 위해 항구 일대는 봄부터 단장에 분주하다. 이곳 포뮬러-1 경주는 전용 트랙에서 열리는 게 아니라 일반 도로에서 펼쳐지는 게 특이하다. 바로 코앞이 항구고 지중해다. 별도의 관중석이 마련돼 있지만 빌라 옥상에서 맥주 한잔 즐기며 경주를 관람할 수 있다. 수려한 경관 속에서 폭음의 차들이 거리를 질주하며 대축제를 만들어낸다.
매년 5월이면 항구 주변으로는 F-1 경주 서킷이 마련된다.
항구 주변은 영화 속에서나 만나던 희귀한 요트들의 세상이다. 세금을 피해 모나코로 이사 온 부호들의 요트가 빼곡하게 정박해 있다. 호화로운 요트만 기웃거려도 흥미롭다. 요트 중에는 웬만한 빌라를 능가하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도 있다.
항구를 끼고 몬테카를로 지역으로 접어들면 모나코의 그랑카지노다. 파리의 가르니에 오페라를 설계한 샤를 가르니에가 1878년 건축한 곳으로 유서도 깊고 외관도 아름답다. 늘 관광객들로 흥청거리지만 막상 자국민들의 입장은 금지돼 있다. 호사스런 모나코로 놀러 온 부자들의 주머니가 주요 관심대상이다. 입구주변에는 고급 차와 명품숍들이 즐비한데 여행자의 투박한 복장으로는 입장이 좀 어렵다.
모나코는 [미라보 다리]로 유명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해양박물관, 열대 정원, 라흐보도 해변 등이 소소하게 둘러볼 만한 곳이다. 모나코빌에 오른 뒤 해안가만 거닐어도 모나코의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가는 길 항공편은 없다. 프랑스 니스에서 열차를 타고 가는 게 일반적이다. 니스에서 몬테카를로 역까지는 20분 소요. 가는 길 창밖 지중해 풍경이 꽤 인상적이다. 주요 볼거리는 역을 중심으로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왕궁, 카지노, 항구 등을 운행하는 꼬마열차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직장인 박진우(31)씨는 싱가포르로 여름 휴가를 떠났지만 아내와 다투고 돌아왔다. 지난 6월 직장에서 지급받은 스마트폰으로 급한 일처리를 해달라는 회사의 연락을 받아 휴가지에서 내내 일에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여행사 직원 이민정(29)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고객의 질문에 즉시 답변을 하라는 회사의 지시가 떨어져 휴대폰을 두 손에 꼭 쥐고 강원도 산골의 계곡 물에 발만 담근 채 휴가를 보내야 했다.
시공간을 가리지 않는 스마트오피스 구축에 열을 올리며 직원들에게 스마트폰을 무상으로 지급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언뜻 보면 직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 같지만 스마트폰은 직장인들에게 족쇄로 변하고 있다.
스마트오피스를 구축한 회사 직원들은 휴가 기간에도 수시로 상사가 전화를 걸어 업무 처리를 지시하는 통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직장인 정민지(29)씨는 "상사가 하루에도 5통 이상씩 전화를 걸어 업무와 관련된 질문을 했다"면서 "공짜로 스마트폰을 나눠준 회사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자동차회사에 다니는 김모 대리(35)는 "해외로 휴가를 떠난 것을 알면서도 상사가 수시로 이메일을 체크하라고 해 휴가 내내 가족들 눈치를 봤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의 활용법을 익히느라 'IT 스트레스'를 받던 간부급 직원들 역시 새로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휴가지에서도 결재와 문서 확인 등 중요한 사안 결정을 내리라는 회사의 지시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광고 회사에 다니는 윤모 차장(38)은 "휴가 기간에는 긴급 상황이라도 팀원이 대신 일처리를 해주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담당자가 직접 일을 해결하라고 해 여행을 떠나도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박모 부장(46)도 "상사를 비롯해 후배들마저 업무 상황 보고 및 확인을 부탁하는 통에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고 불평했다.
'똑똑한' 스마트폰이 휴가를 방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자 직장인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대안을 찾고 있다. 개인용 휴대폰과 업무용 휴대폰을 분리해 사용하는 '투폰족'이 등장하는가 하면 비공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묻지 마 스마트폰족'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 고진용(31)씨는 "업무 시간 외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팀원들이 알고 있어 일을 잘 시키지 않는다"고 귀띔했고 최영진(25)씨는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회사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더니 나한테는 일을 시키지 않더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해 "급변하는 디지털시대의 환경 속에서 직장의 아날로그적 사고방식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파워유저' 이혁진(38)씨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다 보니 겪게 되는 시행착오"라며 "스마트폰 환경에 맞게 직장문화도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① 세계 최고의 모터스포츠 이벤트인 국제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 원(F1) 코리아 그랑프리'가 오는 10월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다. 하지만 F1 선수의 프로필을 들먹인다든지, 어떤 팀이 우승후보라는 지 등의 얘기가 없다. 너무 조용하다.
② F1은 알려지다시피 월드컵, 올림픽과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라는 명성이 무색할 지경이다. 개막도 하기전부터 떠들썩한 월드컵과는 비교가 된다. 아마 한국 업체들이나 선수가 참여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아직 한 번도 국내에서 열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 같다.
③ 한국대회 운영법인인 KAVO와 전남도, F1 조직위원회가 이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레이싱장 건설현장을 찾았을 때만해도 제대로 열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이제는 전체공정의 80%를 넘었다고 한다.
④ 여기에 참가하는 업체들의 연간 예산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한 팀 당 운영 마케팅 비용만 연간 5천억 원 정도 소요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혼다가 주기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토요타는 5년 정도 연간 5천억 원씩 투자하다 지난해 경기침체 등을 이유로 포기했다고 한다.
⑤ 이번 대회의 관람석은 도로를 따라 길게 나있는데 그 규모만 13만 석에 달한다. 부산 사직야구장의 2배가 넘는다. 그렇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달리 한국선수도 없고 한국팀도 없는 F1에 관람객이 얼마나 몰릴지는 의문이다.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에는 내셔널리즘(국가주의)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라파엘로가 제작한 여러 점의 성 모자 상 가운데 가장 대중적 사랑을 많이 받은 작품 중의 하나로 <아름다운 정원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 별명은 성모 마리아가 초원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그려진 데서 유래한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인 안드레아 베로키오를 비롯하여 당시 피렌체 화가들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라미드 구도로 배치되어 있다. 중앙의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삼각형 왼편에 엄마와 눈빛으로 이야기를 하는 듯한 아기 예수가 있다. 또 중앙에는 상징인 털옷을 입고 십자가를 들고 있는 아기 세례자 요한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아기 예수를 향해 경배를 올리고 있다. 이 무렵에 그려진 라파엘로의 성 모자 상에는 이처럼 아기 세례자 요한이 함께 등장하여 세 사람 간의 구도와 심리 등을 표현한 작품이 다수 있다.
성모 마리아의 발 위에 걸쳐진 망토 가장자리에는 'RAPHAELLO VRB'(우르비노의 라파엘로)라는 작가의 이름이 적혀있으며, 팔꿈치에는 'MDVII'(1507)이라는 연대가 적혀있다. 바사리에 의하면 이 작품은 시에나의 귀족 필립포 세르가르디를 위해 제작했으나 라파엘로가 로마로 떠나면서 미완성으로 남긴 것을 리돌프 델 기를란다요가 '푸른 옷' 부분을 마저 그려 완성했다고 한다.
이 작품이 그려지기 직전에 미켈란젤로가 유명한 <톤도 도니>라는 성 가정 상을 그렸는데 미켈란젤로의 성 가정 상은 라파엘로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이 작품에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이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스승 페루지노의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라파엘로 특유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표현한 피렌체 시기의 대표작 중 하나다.
23일, 한국시간으로 17시부터 시작된 2010 F1 포뮬러-원 월드 챔피언쉽 11차전 독일 GP 금요일 프리주행에서 포스인디아의 에이드리안 수틸, 페라리의 페르난도 알론소가 각각 1, 2차 세션 톱 타임을 장식했다.
2주 전 영국 GP에 이어 HRT는 이번 독일 GP에서도 테스트 드라이버 사콘 야마모토를 출전시켰다. 하지만 이번에 야마모토는 브루노 세나가 아니라 카룬 찬독의 머신을 넘겨 받았으며, 로터스는 헤이키 코바라이넨을 대신해 파이루즈 파우지를 프리주행에 투입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도 내리는 비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애를 먹었지만 에이드리안 수틸이 1차 프리주행에서 톱 타임을 기록하는 것을 막진 못했다. 페라리의 펠리페 마사와 멕라렌의 젠슨 버튼이 2위와 3위 타임을 기록, 젠슨 버튼의 팀 메이트 루이스 해밀턴은 개량형 블로운 디퓨저가 탑재된 'MP4-25'와 함께 차곡차곡 쌓여져 있는 타이어 배리어에 충돌해 2차 세션에도 차질을 빚었다.
2차 프리주행에서는 다행히 잠시 비가 그쳤다. 허나, 언제 비가 다시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쌓인 각 팀들은 서둘러 코스 위로 머신을 송출시켰고, 그 사이로 루이스 해밀턴 만이 홀로 차고에 머물러 있었다.
어김없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비는 다행히 타임 어택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2차 프리주행 초반, 톱 타임을 새겼던 페라리의 페르난도 알론소는 레드불의 마크 웨버에게 정상의 자리를 빼앗기더니 메르세데스GP의 미하엘 슈마허가 2위 타임으로 올라서 3위까지 밀려났다. 하지만 알론소는 다시 선두로 올라섰고, 그 시각 멕라렌의 루이스 해밀턴은 코스로 들어와 톱10 진입에 버거워하더니 이내 7위까지 뛰어 올랐다.
최종적으로 2차 프리주행을 억제한 것은 1분 16초 265를 기록한 페르난도 알론소였다. 그 뒤로는 레드불의 세바스찬 베텔, 페라리의 펠리페 마사, 레드불의 마크 웨버, 메르세데스GP의 미하엘 슈마허까지 16초대 타임으로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