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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 ....진풍경
Image via Wikipedia
궁궐 이야기....창덕궁 [관란정 권역]
11. 관람정觀纜亭 권역

11-h-1 관람정觀纜亭
위치와 연혁 : 일명 반도지(半島池) 가에 놓인 부채꼴 모양의 정자이다. 『궁궐지』에는 선자정(扇子亭)이라고 나와 있다.
『동궐도』에는 관람정이 보이지 않고, 반도지 또한 두 개의 방형 연못과 한 개의 원형 연못으로 나뉘어 있다. 한편 순종 때 그려진 『동궐도형』에는 연못이 호리병 모양으로 합해져 있다. 아마 이때에도 배를 띄웠을 것으로 추정되며, 『동궐도형』이 그려진 이후, 즉 순종 때 일제 강점기에 반도 형태의 연못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뜻풀이 : '관람(觀纜)'은 '닻줄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뱃놀이를 구경하고자 하는 뜻을 가진다. 람(纜)은 닻줄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뱃놀이를 의미한다.

제작 정보 : 서체는 행서이다.
11-j-2 존덕정尊德亭의 주련
위치와 연혁 : 관람정이 있는 연못을 내려다 보는 언덕에 있으며 1644(인조 22)년에 세웠다. 『궁궐지』에 의하면 존덕정 옆에 반월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반월지가 지금의 반도지로 변형된 듯하다. 원래는 육면정으로 불렀으나 나중에 존덕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숙종이 존덕정과 관련한 친필 시 등을 여기에 걸기도 했으며, 선조와 인조의 어필도 이곳 존덕정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헌종 연간의 존덕정 현판은 헌종의 어필이었다고 하는데 현재 현판은 걸려 있지 않다. 존덕정의 내부는 매우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되어 있다. 육모정의 가운데는 여의주를 사이에 두고 황룡과 청룡이 희롱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이 정자의 격식이 상당히 높았음을 보여 준다.
존덕정 북쪽 창방에는 정조(1752~1800년)가 지은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가 나무판에 새겨져 있다. 1)
뜻풀이 :
(1) 盛世娛遊化日長(성세오유화일장)
태평성세에 즐겁게 놀며 덕화(德化)의 날은 기니,
(2) ?生咸若春風暢(군생함약춘풍창)
온갖 백성 교화되어 봄바람 화창하네.
임금의 교화가 잘 이루어진 세상에서 백성들이 태평한 삶을 누리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덕화는 옳지 못한 사람을 덕으로 감화시키는 것이고, 함약(咸若)은 제왕의 교화(敎化)를 칭송하는 말이다. 『서경』 「고요모(皐陶謨)」에서 "?, 咸若時, 惟帝其難之(아, 너의 말이 옳으나 다 이와 같이 함은 요 임금도 어렵게 여기셨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뜻풀이 :
(3) 庶俗一令趨壽域(서속일령추수역)
뭇 백성들 한결같이 태평성대로 나아가게 하고,
(4) 從官皆許宴蓬山(종관개허연봉산)
근신(近臣)들도 모두가 봉래산 잔치에 허락 받았네.
정치가 잘 이루어져 백성들이 편안하고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 어울리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수역(壽域)은 태평한 세상을 뜻한다.
뜻풀이 :
(5) 艶日綺羅香上苑(염일기라향상원)
고운 봄날 비단 치마는 상림원(上林苑)에 향그럽고,
(6) 沸天簫鼓動瑤臺(비천소고동요대)
하늘까지 치솟는 피리소리·북소리는 요대(瑤臺)를 뒤흔드네.
궁궐 후원에서 즐겁게 놀이하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상림원은 한나라 때 임금의 동산 이름으로, 일반적으로 궁궐의 후원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상림원은 원래 진(秦)나라 때도 있었으나 황폐해진 것을 한 무제(武帝)가 수복하여 확장시켰으므로 상림원은 주로 한나라 궁궐을 일컫는다. 요대는 전설 속의 신녀(神女)가 산다는 누대로 아름다운 누대를 뜻한다. 비단 치마는 궁녀들이 입고 있는 실제의 치마일 수도 있고, 후원에 난만하게 피어 있는 꽃잎을 비유한다고 볼 수도 있다. 송나라 왕조(王操)의 「낙양춘(洛陽春)」<원전 1> 중 경련(頸聯)에서 따 온 구절이다. 왕조는 송나라 때 강남의 문인으로 자는 정미(正美)이다.

11-h-3 승재정勝在亭

위치와 연혁 : 폄우사(?愚?) 남쪽의 가파른 언덕 위에서 관람정을 굽어보고 있는 정자이다. 연경당 뒤편에 있는 농수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1907년 8월에 순종이 즉위하고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하고, 그 해 10월부터 창덕궁 수리에 들어갔는데 이 때 관람정 등과 함께 지어진 것이다.

뜻풀이 : '승재(勝在)'는 '빼어난 경치가 있다'는 뜻이다. '승(勝)'은 '아름답고 빼어난 경치나 고적(古跡)'을 가리킨다.
11-j-3 승재정勝在亭의 주련
뜻풀이 :
(1) 龍蛇亂?千章木(용사난획천장목)
용과 뱀은 천 그루 거목(巨木)을 어지러이 휘감았고,
(2) 環?爭鳴百道泉(환패쟁명백도천)
패옥(?玉)들은 백 갈래 샘물을 울리는구나.
용과 뱀처럼 구불구불 감고 올라간 넝쿨이 수많은 거목들을 마구 휘감고, 여러줄기의 샘물이 옥으로 만든 보물들이 울리는 듯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정경을 묘사했다. '천장목(千章木)'은 '천 그루의 나무', 즉 수많은 나무를 뜻한다.
장(章)은 큰 나무를 세는 단위이다. 임천(林泉)의 승경(勝景)을 묘사한 것이다.
(3) 披香殿上留朱輦(피향전상류주련)
피향전(披香殿) 위에서 임금 수레 머무니,
(4) 太液池邊送玉杯(태액지변송옥배)
태액지(太液池) 연못가에 옥 술잔을 보내오네.
연못가의 전각에 임금의 수레가 행차하여 주연(酒宴)을 베푸는 모습을 그렸다. 왕안석(王安石, 1021~1086년) 2)의 「화어제상화조어(和御製賞花釣魚: 임금이 지은 「상화조어」에 화답하다)」<원전 2> 중 함련(?聯)에서 따 왔다. '피향전'과 '태액지'는 원래 한나라의 궁전과 연못 이름인데, 후대에 관습적으로 궁궐안의 전각과 연못을 일컬을 때 두루 쓰였다. 3) '피향(披香)'은 향기가 무럭무럭 풍긴다는 뜻이다.
11-h-4 폄우사
위치와 연혁 : 존덕정의 서남쪽 산기슭 언덕에 있는 정자다. 효명세자가 들러서 독서하던 곳이다. 건립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궁궐지』에 정조가 지은 「폄우사사영(?愚?四詠)」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1800년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궐도」에는 폄우사 정면 1칸에 직각 방향으로 담장이 이어져 맞배지붕의 세 칸짜리 건물이 있다.
뜻풀이 : '폄우(?愚)'는 '어리석은 자에게 돌침을 놓아 깨우쳐 경계한다'는 뜻이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말로 쓰인다. '폄(?)'은 '돌침'인데, '돌침을 놓아병을 치료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북송의 성리학자인 장재(張載, 1020~1077년) 4)가 글을 가르치던 서원(書院)의 동쪽 창문에 「폄우(?愚)」라는 제목의 글을, 서쪽 창문에 「정완(訂頑)」5)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 붙여 경계의 지침으로 삼은 적이 있다. 그는 나중에 이를 「동명(東銘)」과 「서명(西銘)」으로 바꾸었다.
'사(?)'자를 '활터에 세운 정자'로 풀이하고 폄우사를 사정(射亭), 즉 활터에 세운 정자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 글자는 높은 터에 지은 목재 건물을 뜻한다. 『서경』에서부터 용례가 보이는데 『서경』의 주석에 의하 면 흙이 높은 곳을 '臺(대)'라고 하고 나무가 있는 곳을 '?(사)'라고 한다고 하였다.<원전 3> 그러나 후대에는 그런 구분 없이 일반적으로 누각이나 누대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이 글자에서 오른쪽 '射(사)'는 형성(形聲) 문자에서 단순히 음을 나타내는 부분이며 '활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11-j-4 폄우사의 주련

뜻풀이 :
(1) 南苑草芳眠錦雉(남원초방면금치)
남쪽 동산에 풀 고우니 아름다운 꿩이 졸고 있고,
(2) 夾城雲下霓?(협성운난하예모)
협성(夾城)에 구름 따뜻하니 무지개가 내려오네.
고운 풀밭 위에서 아름다운 꿩이 한가롭게 졸고 있는 풍경과 따뜻한 봄날 피어 오르는 구름을 배경으로 무지개가 걸린 성곽의 모습을 묘사했다. 협성은 양변을 높은 담장으로 쌓아 그 사이로 통행하게 만든 길, 또는 성곽의 바깥 둘레에 다시 쌓은 성벽을 말한다. '예모(霓?)'는 무지개라는 뜻이다. 당나라의 시인 두목 6)이 지은 「장안잡제장구(長安雜題長句)」 육수(六首) 중 제 3수<원전 4>의 함련(?聯)에서 따왔다.
(3) 絶壁過雲開錦繡(절벽과운개금수)
절벽에 구름이 지나가니 수 놓은 비단이 펼쳐지고,
(4) ?松隔水奏笙簧(소송격수주생황)
성긴 솔이 물 건너 편에서 생황을 연주하네.
자연이 만드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생황 소리처럼 들리는 운치 있는 솔바람 소리를 묘사하였다. 두보 7)의 시 「칠월일일제종명부수루(七月一日題終明府水樓)」<원전 5> 중 제 1수의 경련(頸聯)에서 따온 구절이다.
(5) 林下水聲喧笑語(임하수성훤소어)
숲 속 아래 물 소리는 웃음 소리인 양 떠들썩하고,
(6) 巖間樹色隱房?(암간수색은방롱)
바위 사이 나무 빛깔은 방 창살을 숨기고 있네.
물 소리가 웃음 소리처럼 즐겁게 들리고, 바위 사이에 자라난 나무들 속에 거처하는 집이 보일락말락 숨어 있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숲 속의 즐겁고도 그윽한 생활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는 당나라 문인 왕유 8)의 작품으로, 「칙차기왕구성궁피서응교(?借岐王九成宮避暑應敎)」<원전 6> 중 경련에서 따온 구절이다.
앞 구절의 '笑語(소어)'가 '語笑(어소)'로, 뒤 구절의 '巖間(암간)'이 '巖前(암전)'으로 된 곳도 많다.
(7) ?閣條風初拂柳(화각조풍초불류)
아름다운 누각에 한 줄기 바람은 버들을 막 스치고,
(8) 銀塘曲水半含苔(은당곡수반함태)
은빛 연못 물굽이에는 이끼 반쯤 머금었네.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묘사한 시구이다. 화각(?閣)은 단청을 칠해 그림같이 아름다운 누각을 뜻한다. 이는 당나라 시인 무평일(武平一, ?~741년) 9)의 「봉화입춘내출채화수응제(奉和立春內出綵花樹應制)」<원전 7> 중 경련에서 따온 구절이다.
11-h-5 빙옥지氷玉池
위치와 연혁 : 1688(숙종 14)년에 천수정(淺愁亭)의 터에 청심정(淸心亭)을 짓고 그 앞의 바위를 파서 조그마한 돌 연못을 만들었다. 이것을 빙옥지라 한다. 현재 청심정의 현판은 걸려 있지 않다.
뜻풀이 : '빙옥(氷玉)'은 '얼음과 옥'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또 '빙옥'은 고상하고 정결한 인품을 비유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빙자옥질(氷姿玉質)'은 얼음이나 옥같이 맑고 깨끗한 자질, '빙기옥골(氷肌玉骨)'은 얼음같이 깨끗한 살결과 옥같은 뼈대라는 뜻으로 미인 또는 매화를 형용한다.
제작 정보 : 청심정 앞에는 돌 연못을 바라보는 거북의 조각상이 있는데, 그 거북의 등에 새겨진 금석문이다. 윗부분에 작은 글씨로 '御筆(어필)'이라고 되어있어 임금의 글씨임을 나타낸다.
11-j-6 청심정?心亭의 주련
위치와 연혁 : 존덕정 뒤쪽 산 중턱에 지은 네모난 정자이다. 1688(숙종 14)년에 천수정 터에 청심정을 짓고, 그 앞의 바위를 네모나게 파서 빙옥지를 만들어 두었다. 현재 청심정에는 현판은 걸려 있지 않고 네 기둥에 주련이 걸려 있다.

뜻풀이 :
(1) 松排山面千重翠(송배산면천중취)
산허리에 늘어선 솔은 천 겹으로 푸르고
(2) 月點波心一顆珠(월점파심일과주)
물 속에 비친 달은 한 덩이 구슬이로다.
청심정이 위치한 공간을 묘사하고 있다. 위 구절은 청심정이 있는 산중턱에 소나무가 무성함을 설명했고, 아래 구절은 정자 앞에 있는 네모난 돌 연못인 빙옥지에 달이 비치는 정경을 표현하였다.
이 구절은 본래 당나라 백거이 10)의 칠언 율시 「춘제호상(春題湖上)」<원전 8>의 함련 두 구절을 딴 것이다.
(3) 巖桂高凝仙掌露(암계고응선장로)
바위의 계수나무에는 높이 선장(仙掌)의 이슬이 맺히고
(4) ?蘭淸暎玉壺氷(원란청영옥호빙)
동산의 난초엔 맑게 옥병의 얼음이 비치네.
위 구절은 청심정 주위 바위에 자라는 계수나무에 신선의 이슬이 맺혀, 이 이슬을 먹으면 정자의 주인 또한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한 것이다. 선장은 신선의 손바닥을 뜻한다. 아래 구절은 정자 주인의 정신 세계가 높고 맑음을 '난(蘭)'과 '옥호빙(玉壺氷)'이란 시어를 빌려 표현한 것이다. 옥호빙이란 옥병 속의 얼음이란 뜻으로 정신 세계가 깨끗함을 상징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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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과 번역은 서향각의 편액 참조.
2) 왕안석은 북송의 정치가이자 문인으로 자는 개보(介甫),호는 반산(半山)이다. 부국강병을 위한 신법(新法)을 제정하여 실시하였고, 뛰어난 산문과 서정시를 남겨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3) 창덕궁에서는 애련지 연못 가에'태액'이라는 전서가 있다. 태액의 자세한 풀이는 9-h-8 태액 참조.
4) 장재의 자는 자후(子厚), 호는 횡거(橫渠)이다.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을 조화시켜 우주에 대한 일원론적 시야를 설파하였다.
5) 정완은 어리석음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6) 두목에 대해서는 10-j-1 연경당의 주련 참조.
7) 두보에 대해서는 11-h-1 관람정 참조.
8) 왕유에 대해서는 7-j-10 한정당 기둥의 주련 참조.
9) 무평일은 당나라의 시인으로, 원래의 이름은 견(甄)인데 평일(平一)이라는 자로 더 유명하다.
10) 백거이에 대해서는 9-h-8 태액 참조.
<원전 1> 왕조, 「낙양춘」, "帝里山河景莫裁 就中春色似先來 暖融殘雪當時盡 花得東風一夜開?日綺羅香上苑 沸天簫?動瑤臺 芳心只恐煙花暮 閒立高樓望幾回"
<원전 2> 왕안석, 「화어제상화조어」, " 幄晴雲拂曉開 傳呼仙仗九天來 披香殿上留朱輦 太液池邊送玉杯 宿蘂暖含風浩蕩 ?鱗淸映日徘徊宸章獨與春爭麗 恩許?歌豈易陪."
<원전 3> 『서경』 「태서(泰誓) 상」, "惟宮室臺?陂池侈服, 以殘害于爾萬姓"; 이에 대한 채침의주(註), "土高曰臺, 有木曰?."* 이덕수, 『新궁궐기행』(대원사, 2004), 345쪽.
<원전 4> 두목, 「장안잡제장구」(제 3수) "雨晴九陌鋪江練 嵐嫩千峰疊海濤 南苑草芳眠錦雉 夾城雲暖下霓? 少年羈絡靑紋玉 遊女花簪紫?桃江碧柳深人盡醉 一瓢顔巷日空高."
<원전 5> 두보, 「칠월일일제종명부수루」(제 1수) "高棟曾軒已自?, 秋風此日灑衣裳. ?然欲下陰山雪, 不去非無漢署香. 絶壁過雲開錦繡,疏松夾水奏笙簧. 看君宜著王喬履, 眞賜還疑出尙方."
<원전 6> 왕유, 「칙차기왕구성궁피서응교」 "帝子遠辭丹鳳闕 天書遙借翠微宮 隔窓雲霧生衣上卷?山泉入鏡中 林下水聲喧笑語 巖間樹色隱房? 仙家未必能勝此 何事吹笙向碧空."
<원전 7> 무평일, 「봉화입춘내출채화수응제」,"?輅靑?下帝臺 東郊上苑望春來 黃鶯未解林間? 紅蘂先從殿裏開 ?閣條風初變柳 銀塘曲水半含苔 欣?睿藻光韶律 更促霞觴畏景催."
<원전 8> 백거이, 「춘제호상」, "湖上春來似?圖, 亂峯圍繞水平鋪. 松排山面千重翠, 月點波心一顆珠. 碧?線頭抽早稻, ?羅裙帶展新蒲. 未能抛得杭州去, 一半勾留是此湖."
궁궐 이야기...창덕궁- 기오헌 권역
9. 기오헌寄傲軒 권역

9-h-1 기오헌寄傲軒
위치와 연혁 : 『궁궐지』에는 의두합(倚斗閤)이라고 나오는 건물이다. 의두합은 수많은 책을 비치하고 독서하던 곳이다. 『궁궐지』에 따르면 "영화당 북쪽에 있으며 예전에 독서처가 있던 자리인데 1827(순조 27)년에 익종이 춘저(春邸) 1)에 있을 때 고쳐 지었다."<원전 1>고 하였다. '의두(倚斗)'는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북두성에 의거하여 경화(京華) 2)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민도리 집이다.

뜻풀이 : '기오(寄傲)'는 '거침없이 호방한 마음을 기탁한다'는 뜻이다. 원래 동진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년) 3)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중 "남쪽 창에 기대어 호방함을 부려 보니[寄傲], 좁아터진 집이지만 편안함을 알겠노라."<원전 2>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원래 이름이었던 의두합과 기상(氣像)이 서로 통하는 명칭이다.

제작 정보 : 서체는 예서체이다.
9-h-2 초연대超然臺
위치와 연혁 : 기오헌 뒤쪽 축대에 있는 사각형 돌에 새긴 금석문이다. 기오헌 뒤의 급경사지에는 여러 단의 층급을 둔 석축이 있고 그 사이에 여러 차례 꺾인 좁은 계단이 나 있다. 이 석축에 새겨진 것이다.
초연대는 경기도 가평과 포천, 평안남도 개천군, 평양의 대동문 앞 등 여러 군데에 같은 이름의 대가 있다. 중국에서는 산동성(山東省) 중부의 저성현(諸城縣)북쪽에 있는 것이 유명하다. 송나라 때에 소식이 이 곳 밀주(密州) 지방의 지사로 있을 때에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뜻풀이 : '초연(超然)'은 '세속을 초월한 모양', 또는 '아득히 먼 모양'을 뜻한다. 『노자(老子)』에 이르
기를 "비록 영화로운 생활을 누리더라도 한가하게 처하여 초연하게 지낸다."<원전 3>라고 하였다.
9-h-3 추성대秋聲臺
위치와 연혁 : 기오헌 뒤쪽 축대에 있는 사각형 돌에 초연대와 나란히 새겨진 금석문이다.

뜻풀이 : '추성(秋聲)'은 '가을에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라는 뜻으로 바람소리, 낙엽 지는 소리, 벌레 소
리 등을 가리킨다. '추성'은 문학 작품에서는 일반적으로 서글픔, 쓸쓸함을 나타낼 때가 많다. 이는 전국 시대 말 초(楚)나라의 문인 송옥(宋玉, 기원전 290?~222?년)이 초사(楚辭) 작품 「구변(九辯)」에서 가을 기운의 슬픔을 노래하였고, 송나라 때 문인인 구양수(歐陽脩, 1007~1072년) 4)가 「추성부(秋聲賦)」에서 만물이 시들어 쇠락하는 경물을 인생의 덧없음과 결부시켜 탄식한 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추성은 짝이 되는 '초연대'와 연관시켜 볼 때 풍성하고 아름다운 가을 경치 속에서 듣는 운치 있는 자연의 소리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9-h-4 영춘문永春門
위치와 연혁 : 창덕궁과 창경궁을 경계 짓는 담장에 난 문으로서 불로문 앞 길건너 맞은편에 있다. 이 문은 평소에는 항상 닫혀 있는데, 창경궁의 춘당지 쪽으로 통하는 문이다. 동궐도에는 두 궁궐을 나누는 담이 없으므로 당연히 영춘문도 그려지지 않았다. 후대에 이 담을 세울 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는 일제 강점기로 추정한다.

뜻풀이 : '영춘(永春)'은 '영원한 봄'이라는 뜻이다. 봄날처럼 아름답고 화창한 시기가 오래 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9-h-5 금마문金馬門
위치와 연혁 : 기오헌의 정문이다.


뜻풀이 : '금마(金馬)'는 '쇠붙이로 만든 말'이라는 뜻이다. 원래 금마문은 중국 한나라 때 대궐 문의 이름으로, 문 옆에 동(銅)으로 만든 말이 있었으므로 '금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 '금마'는 한나라 때 국가에서 책을 갈무리하던 곳의 이름이기도 했다. 기오헌이 책을 비치하던 곳이므로 한나라의 전통을 따라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9-h-6 불로문不老門
위치와 연혁 : 금마문 옆 담장의 중간, 기오헌 아래턱에 위치한 돌문이다. 쇠못을 박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 문이 달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궁궐지』에 의하면 이 문 앞에 불로지(不老池)가 있었고 문 안에 어수당이 있었다고 한다.
뜻풀이 : '불로(不老)'는 '늙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문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늙지 않고 오래도록 살라는 축원을 담았다. 또한 임금의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염원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제작 정보 : 한 장의 돌을 '┏┓'자로 깎아 만들어 세운 돌문이다. 글씨는 전서체이다.
9-h-7 애련정愛蓮亭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앞 연못가의 정자이다. 『궁궐지』에 따르면 1692(숙종 18)년 연못 가운데에 섬을 쌓고 정자를 지어 '애련(愛蓮)'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숙종이 지은 「애련정기(愛蓮亭記)」에도 연못 가운데에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지금의 애련정은 연못가에 있다. 즉 문헌대로 고증을 한다면 지금의 애련정은 나중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네 개의 기둥 중 두 개가 못에 잠겨 건물의 반은 못 위에, 반은 축대 위에 걸쳐져 있다.
애련정의 앞 네모난 연못은 애련지(愛蓮池)라고 한다. 연못 서쪽 옆에는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뜻풀이 : '애련(愛蓮)'은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송나라 때 성리학자 염계 주돈이가 연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쓴 「애련설(愛蓮說)」이 유명하다. 숙종은 「애련정기(愛蓮亭記)」에서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연꽃을 사랑하여 새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이라고 지었다."고 썼다. 이는 다분히 주돈이의「애련설」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며 숙종 스스로도 주렴계(周濂溪: 주돈이)와 뜻이 같음을 밝혔다.<원전 4>
9-j-7 애련정愛蓮亭의 주련
위치와 연혁 : 애련정 각 기둥의 바깥으로 향한 면에 붙어 있다.

뜻풀이 :
(1) 雨葉眞珠散(우엽진주산)
비 맞은 잎사귀에는 진주가 흩어지고,
(2) 晴花粉?明(청화분검명)
말간 꽃은 화장한 뺨처럼 환하도다.
비 내릴 때 연 잎에 동그랗게 맺혔다가 흘러 떨어지는 빗방울을 진주로 비유하고, 붉은 연꽃을 여자의 곱게 화장한 얼굴에 비유하였다.
(3) 亭近如來座(정근여래좌)
정자는 석가여래의 자리와 가깝고,
(4) 池容太乙舟(지용태을주)
연못은 태을주(太乙舟)를 받아 들였네.
불교에서 석가여래, 즉 부처님이 대개 연꽃 대좌 위에 앉아 있으므로 애련정의 연꽃을 석가여래의 자리로 비유하였고, 연못에 연잎이 많이 나 있는 풍경을 태일진인(太一眞人)이 배처럼 타고 누웠다는 그 연잎에 비유하였다. 태을주는 태일연주(太一蓮舟)와 같은 말로서 태일진인이 타고 있는 연잎 배라는 뜻이다. 북송의 유명한 화가 이공린(李公麟)이 그린 「태일진인도(太一眞人圖)」가 있는데, 그 그림 속의 태일진인이 큰 연 잎 가운데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장면에서 유래한 말이다. 태을(太乙)은 태일(太一)과 같은 말로 우주 만물의 본원, 또는 도(道)를 말하고, 태일진인은 도가의 신선을 뜻한다.
(5) 花愛稱君子(화애칭군자)
꽃을 사랑하여 군자라 일컫고,
(6) 龜齡獻聖人(귀령헌성인)
거북의 수명을 임금님께 바치네.
송나라의 주돈이가 「애련설」에서 연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연꽃을 꽃중의 군자라고 하였다. 또 연못 속에 거북이 사는 것을 보고 거북의 장수를 임금에게도 누리게 하고 싶다는 기원을 담았다. 여기서 성인은 임금을 가리킨다.
(7) 碧筒供御酒(벽통공어주)
푸른 대궁으로 어주(御酒)를 바치니,
(8) 霞綺散天香(하기산천향)
노을 빛 비단 꽃은 천향(天香)을 발산하네.
연꽃의 푸른 대궁, 즉 꽃대로 임금에게 술을 따라 바치니, 노을 빛을 띤 비단 같은 연꽃 잎에 아름다운 향이 마구 풍긴다는 뜻이다. 어주는 임금이 마시는 술, 또는 임금이 상으로 내리는 술을 말한다. 푸른 대궁으로 임금께 술을바친다는 것은 미화법으로 표현한 말이고 '하기(霞綺)'도 붉은 연꽃을 미화한 것이다. 천향은 향기를 미화해서 표현한 말로 주로 궁중에서 사용하는 향을 가리킬 때 쓴다.
9-h-8 태액太液
위치와 연혁 : 애련정 연못가에 있는 돌에 새겨진 금석문이다. 애련지 서북쪽은 3층의 계단을 이루고 있는데, 중앙층의 맨 좌측 돌에 글씨를 새겼다. 이로 인해 애련지의 다른 이름이 '태액지(太液池)'였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
뜻풀이 : '태액(太液)'은 '큰 물'이라는 뜻이다. '액(液)'은 액체로 물을 뜻한다.
'태액지'는 원래 중국 한나라의 건장궁(建章宮) 북쪽에 있던 연못 이름이었는데 연못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태액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당나라 때도 대명궁(大明宮) 함량전(含凉殿) 뒤쪽에 같은 이름의 연못이 있었는데, 당대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년) 5)의 유명한 「장한가(長恨歌)」에 "태액지의 연꽃과 미앙궁의 버들이로다[太液芙蓉未央柳]"라는 구절에 나오기도 한다. 청나라 때도 북경(北京) 고궁 서화문(西華門) 밖에 같은 이름의 연못이 있었다.
제작 정보 : 네모로 다듬은 돌에 전서체로 새긴 금석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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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저는 황태자나 왕세자, 또는 그가 거처하는 공간을 뜻한다. 여기에서는 사후에 익종으로 추존된 효명세자를 가리킨다.
2) 경화는 서울의 번화함을 뜻한다.
3) 도연명은 이름은 잠(潛), 연명은 자이다. "봉급5두미 때문에 향리의 소인에게 굽신거릴 수 없다"며 벼슬을 관둘 때 쓴 것이「귀거래사」이다. 전원 생활의 한아함을 기교없이 쓴 작품들로 후대에 육조 시대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 받았으며 많은 영향을 남겼다.
4) 구양수는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문학에 뛰어나 당송 8대가의 한사람으로 꼽히며 후대 문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5) 백거이의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취음선생(醉吟先生)이다. 평이하고 유려한 시풍으로 당대의 시인 원진(元?)과 함께 원백체(元白體)로 불린다. 「장한가」는 당나라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 사이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장편 고시이다.
<원전 1> 『궁궐지』 「창덕궁지(昌德宮志)·의두합(倚斗閤)」, "倚斗閤在暎花堂北, 舊讀書處基, 純宗二十七年丁亥, 翼宗在春邸時改建." 여기서 순종(純宗)은 순조(純祖)의 처음 묘호(廟號)이다.
<원전 2> 도연명, 「귀거래사」, "...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원전 3> 『노자』 26장, "雖有榮觀, 燕處超然."
<원전 4> 『궁궐지』 「창덕궁, 애련정」, "予生平不役於耳目, 而獨愛紅衣之處汚濁而不?不改, 以中立而不偏不倚, 耿介拔俗, 瀟灑出塵, 隱然有君子之德, 此所以命名新亭, 而數千載之上, 與吾同志者, 其惟濂溪一人而已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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