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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이야기....창덕궁 [관란정 권역]
11. 관람정觀纜亭 권역

11-h-1 관람정觀纜亭
위치와 연혁 : 일명 반도지(半島池) 가에 놓인 부채꼴 모양의 정자이다. 『궁궐지』에는 선자정(扇子亭)이라고 나와 있다.
『동궐도』에는 관람정이 보이지 않고, 반도지 또한 두 개의 방형 연못과 한 개의 원형 연못으로 나뉘어 있다. 한편 순종 때 그려진 『동궐도형』에는 연못이 호리병 모양으로 합해져 있다. 아마 이때에도 배를 띄웠을 것으로 추정되며, 『동궐도형』이 그려진 이후, 즉 순종 때 일제 강점기에 반도 형태의 연못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뜻풀이 : '관람(觀纜)'은 '닻줄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뱃놀이를 구경하고자 하는 뜻을 가진다. 람(纜)은 닻줄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뱃놀이를 의미한다.

제작 정보 : 서체는 행서이다.
11-j-2 존덕정尊德亭의 주련
위치와 연혁 : 관람정이 있는 연못을 내려다 보는 언덕에 있으며 1644(인조 22)년에 세웠다. 『궁궐지』에 의하면 존덕정 옆에 반월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반월지가 지금의 반도지로 변형된 듯하다. 원래는 육면정으로 불렀으나 나중에 존덕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숙종이 존덕정과 관련한 친필 시 등을 여기에 걸기도 했으며, 선조와 인조의 어필도 이곳 존덕정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헌종 연간의 존덕정 현판은 헌종의 어필이었다고 하는데 현재 현판은 걸려 있지 않다. 존덕정의 내부는 매우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되어 있다. 육모정의 가운데는 여의주를 사이에 두고 황룡과 청룡이 희롱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이 정자의 격식이 상당히 높았음을 보여 준다.
존덕정 북쪽 창방에는 정조(1752~1800년)가 지은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가 나무판에 새겨져 있다. 1)
뜻풀이 :
(1) 盛世娛遊化日長(성세오유화일장)
태평성세에 즐겁게 놀며 덕화(德化)의 날은 기니,
(2) ?生咸若春風暢(군생함약춘풍창)
온갖 백성 교화되어 봄바람 화창하네.
임금의 교화가 잘 이루어진 세상에서 백성들이 태평한 삶을 누리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덕화는 옳지 못한 사람을 덕으로 감화시키는 것이고, 함약(咸若)은 제왕의 교화(敎化)를 칭송하는 말이다. 『서경』 「고요모(皐陶謨)」에서 "?, 咸若時, 惟帝其難之(아, 너의 말이 옳으나 다 이와 같이 함은 요 임금도 어렵게 여기셨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뜻풀이 :
(3) 庶俗一令趨壽域(서속일령추수역)
뭇 백성들 한결같이 태평성대로 나아가게 하고,
(4) 從官皆許宴蓬山(종관개허연봉산)
근신(近臣)들도 모두가 봉래산 잔치에 허락 받았네.
정치가 잘 이루어져 백성들이 편안하고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 어울리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수역(壽域)은 태평한 세상을 뜻한다.
뜻풀이 :
(5) 艶日綺羅香上苑(염일기라향상원)
고운 봄날 비단 치마는 상림원(上林苑)에 향그럽고,
(6) 沸天簫鼓動瑤臺(비천소고동요대)
하늘까지 치솟는 피리소리·북소리는 요대(瑤臺)를 뒤흔드네.
궁궐 후원에서 즐겁게 놀이하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상림원은 한나라 때 임금의 동산 이름으로, 일반적으로 궁궐의 후원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상림원은 원래 진(秦)나라 때도 있었으나 황폐해진 것을 한 무제(武帝)가 수복하여 확장시켰으므로 상림원은 주로 한나라 궁궐을 일컫는다. 요대는 전설 속의 신녀(神女)가 산다는 누대로 아름다운 누대를 뜻한다. 비단 치마는 궁녀들이 입고 있는 실제의 치마일 수도 있고, 후원에 난만하게 피어 있는 꽃잎을 비유한다고 볼 수도 있다. 송나라 왕조(王操)의 「낙양춘(洛陽春)」<원전 1> 중 경련(頸聯)에서 따 온 구절이다. 왕조는 송나라 때 강남의 문인으로 자는 정미(正美)이다.

11-h-3 승재정勝在亭

위치와 연혁 : 폄우사(?愚?) 남쪽의 가파른 언덕 위에서 관람정을 굽어보고 있는 정자이다. 연경당 뒤편에 있는 농수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1907년 8월에 순종이 즉위하고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하고, 그 해 10월부터 창덕궁 수리에 들어갔는데 이 때 관람정 등과 함께 지어진 것이다.

뜻풀이 : '승재(勝在)'는 '빼어난 경치가 있다'는 뜻이다. '승(勝)'은 '아름답고 빼어난 경치나 고적(古跡)'을 가리킨다.
11-j-3 승재정勝在亭의 주련
뜻풀이 :
(1) 龍蛇亂?千章木(용사난획천장목)
용과 뱀은 천 그루 거목(巨木)을 어지러이 휘감았고,
(2) 環?爭鳴百道泉(환패쟁명백도천)
패옥(?玉)들은 백 갈래 샘물을 울리는구나.
용과 뱀처럼 구불구불 감고 올라간 넝쿨이 수많은 거목들을 마구 휘감고, 여러줄기의 샘물이 옥으로 만든 보물들이 울리는 듯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정경을 묘사했다. '천장목(千章木)'은 '천 그루의 나무', 즉 수많은 나무를 뜻한다.
장(章)은 큰 나무를 세는 단위이다. 임천(林泉)의 승경(勝景)을 묘사한 것이다.
(3) 披香殿上留朱輦(피향전상류주련)
피향전(披香殿) 위에서 임금 수레 머무니,
(4) 太液池邊送玉杯(태액지변송옥배)
태액지(太液池) 연못가에 옥 술잔을 보내오네.
연못가의 전각에 임금의 수레가 행차하여 주연(酒宴)을 베푸는 모습을 그렸다. 왕안석(王安石, 1021~1086년) 2)의 「화어제상화조어(和御製賞花釣魚: 임금이 지은 「상화조어」에 화답하다)」<원전 2> 중 함련(?聯)에서 따 왔다. '피향전'과 '태액지'는 원래 한나라의 궁전과 연못 이름인데, 후대에 관습적으로 궁궐안의 전각과 연못을 일컬을 때 두루 쓰였다. 3) '피향(披香)'은 향기가 무럭무럭 풍긴다는 뜻이다.
11-h-4 폄우사
위치와 연혁 : 존덕정의 서남쪽 산기슭 언덕에 있는 정자다. 효명세자가 들러서 독서하던 곳이다. 건립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궁궐지』에 정조가 지은 「폄우사사영(?愚?四詠)」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1800년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궐도」에는 폄우사 정면 1칸에 직각 방향으로 담장이 이어져 맞배지붕의 세 칸짜리 건물이 있다.
뜻풀이 : '폄우(?愚)'는 '어리석은 자에게 돌침을 놓아 깨우쳐 경계한다'는 뜻이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말로 쓰인다. '폄(?)'은 '돌침'인데, '돌침을 놓아병을 치료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북송의 성리학자인 장재(張載, 1020~1077년) 4)가 글을 가르치던 서원(書院)의 동쪽 창문에 「폄우(?愚)」라는 제목의 글을, 서쪽 창문에 「정완(訂頑)」5)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 붙여 경계의 지침으로 삼은 적이 있다. 그는 나중에 이를 「동명(東銘)」과 「서명(西銘)」으로 바꾸었다.
'사(?)'자를 '활터에 세운 정자'로 풀이하고 폄우사를 사정(射亭), 즉 활터에 세운 정자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 글자는 높은 터에 지은 목재 건물을 뜻한다. 『서경』에서부터 용례가 보이는데 『서경』의 주석에 의하 면 흙이 높은 곳을 '臺(대)'라고 하고 나무가 있는 곳을 '?(사)'라고 한다고 하였다.<원전 3> 그러나 후대에는 그런 구분 없이 일반적으로 누각이나 누대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이 글자에서 오른쪽 '射(사)'는 형성(形聲) 문자에서 단순히 음을 나타내는 부분이며 '활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11-j-4 폄우사의 주련

뜻풀이 :
(1) 南苑草芳眠錦雉(남원초방면금치)
남쪽 동산에 풀 고우니 아름다운 꿩이 졸고 있고,
(2) 夾城雲下霓?(협성운난하예모)
협성(夾城)에 구름 따뜻하니 무지개가 내려오네.
고운 풀밭 위에서 아름다운 꿩이 한가롭게 졸고 있는 풍경과 따뜻한 봄날 피어 오르는 구름을 배경으로 무지개가 걸린 성곽의 모습을 묘사했다. 협성은 양변을 높은 담장으로 쌓아 그 사이로 통행하게 만든 길, 또는 성곽의 바깥 둘레에 다시 쌓은 성벽을 말한다. '예모(霓?)'는 무지개라는 뜻이다. 당나라의 시인 두목 6)이 지은 「장안잡제장구(長安雜題長句)」 육수(六首) 중 제 3수<원전 4>의 함련(?聯)에서 따왔다.
(3) 絶壁過雲開錦繡(절벽과운개금수)
절벽에 구름이 지나가니 수 놓은 비단이 펼쳐지고,
(4) ?松隔水奏笙簧(소송격수주생황)
성긴 솔이 물 건너 편에서 생황을 연주하네.
자연이 만드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생황 소리처럼 들리는 운치 있는 솔바람 소리를 묘사하였다. 두보 7)의 시 「칠월일일제종명부수루(七月一日題終明府水樓)」<원전 5> 중 제 1수의 경련(頸聯)에서 따온 구절이다.
(5) 林下水聲喧笑語(임하수성훤소어)
숲 속 아래 물 소리는 웃음 소리인 양 떠들썩하고,
(6) 巖間樹色隱房?(암간수색은방롱)
바위 사이 나무 빛깔은 방 창살을 숨기고 있네.
물 소리가 웃음 소리처럼 즐겁게 들리고, 바위 사이에 자라난 나무들 속에 거처하는 집이 보일락말락 숨어 있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숲 속의 즐겁고도 그윽한 생활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는 당나라 문인 왕유 8)의 작품으로, 「칙차기왕구성궁피서응교(?借岐王九成宮避暑應敎)」<원전 6> 중 경련에서 따온 구절이다.
앞 구절의 '笑語(소어)'가 '語笑(어소)'로, 뒤 구절의 '巖間(암간)'이 '巖前(암전)'으로 된 곳도 많다.
(7) ?閣條風初拂柳(화각조풍초불류)
아름다운 누각에 한 줄기 바람은 버들을 막 스치고,
(8) 銀塘曲水半含苔(은당곡수반함태)
은빛 연못 물굽이에는 이끼 반쯤 머금었네.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묘사한 시구이다. 화각(?閣)은 단청을 칠해 그림같이 아름다운 누각을 뜻한다. 이는 당나라 시인 무평일(武平一, ?~741년) 9)의 「봉화입춘내출채화수응제(奉和立春內出綵花樹應制)」<원전 7> 중 경련에서 따온 구절이다.
11-h-5 빙옥지氷玉池
위치와 연혁 : 1688(숙종 14)년에 천수정(淺愁亭)의 터에 청심정(淸心亭)을 짓고 그 앞의 바위를 파서 조그마한 돌 연못을 만들었다. 이것을 빙옥지라 한다. 현재 청심정의 현판은 걸려 있지 않다.
뜻풀이 : '빙옥(氷玉)'은 '얼음과 옥'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또 '빙옥'은 고상하고 정결한 인품을 비유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빙자옥질(氷姿玉質)'은 얼음이나 옥같이 맑고 깨끗한 자질, '빙기옥골(氷肌玉骨)'은 얼음같이 깨끗한 살결과 옥같은 뼈대라는 뜻으로 미인 또는 매화를 형용한다.
제작 정보 : 청심정 앞에는 돌 연못을 바라보는 거북의 조각상이 있는데, 그 거북의 등에 새겨진 금석문이다. 윗부분에 작은 글씨로 '御筆(어필)'이라고 되어있어 임금의 글씨임을 나타낸다.
11-j-6 청심정?心亭의 주련
위치와 연혁 : 존덕정 뒤쪽 산 중턱에 지은 네모난 정자이다. 1688(숙종 14)년에 천수정 터에 청심정을 짓고, 그 앞의 바위를 네모나게 파서 빙옥지를 만들어 두었다. 현재 청심정에는 현판은 걸려 있지 않고 네 기둥에 주련이 걸려 있다.

뜻풀이 :
(1) 松排山面千重翠(송배산면천중취)
산허리에 늘어선 솔은 천 겹으로 푸르고
(2) 月點波心一顆珠(월점파심일과주)
물 속에 비친 달은 한 덩이 구슬이로다.
청심정이 위치한 공간을 묘사하고 있다. 위 구절은 청심정이 있는 산중턱에 소나무가 무성함을 설명했고, 아래 구절은 정자 앞에 있는 네모난 돌 연못인 빙옥지에 달이 비치는 정경을 표현하였다.
이 구절은 본래 당나라 백거이 10)의 칠언 율시 「춘제호상(春題湖上)」<원전 8>의 함련 두 구절을 딴 것이다.
(3) 巖桂高凝仙掌露(암계고응선장로)
바위의 계수나무에는 높이 선장(仙掌)의 이슬이 맺히고
(4) ?蘭淸暎玉壺氷(원란청영옥호빙)
동산의 난초엔 맑게 옥병의 얼음이 비치네.
위 구절은 청심정 주위 바위에 자라는 계수나무에 신선의 이슬이 맺혀, 이 이슬을 먹으면 정자의 주인 또한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한 것이다. 선장은 신선의 손바닥을 뜻한다. 아래 구절은 정자 주인의 정신 세계가 높고 맑음을 '난(蘭)'과 '옥호빙(玉壺氷)'이란 시어를 빌려 표현한 것이다. 옥호빙이란 옥병 속의 얼음이란 뜻으로 정신 세계가 깨끗함을 상징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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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과 번역은 서향각의 편액 참조.
2) 왕안석은 북송의 정치가이자 문인으로 자는 개보(介甫),호는 반산(半山)이다. 부국강병을 위한 신법(新法)을 제정하여 실시하였고, 뛰어난 산문과 서정시를 남겨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3) 창덕궁에서는 애련지 연못 가에'태액'이라는 전서가 있다. 태액의 자세한 풀이는 9-h-8 태액 참조.
4) 장재의 자는 자후(子厚), 호는 횡거(橫渠)이다.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을 조화시켜 우주에 대한 일원론적 시야를 설파하였다.
5) 정완은 어리석음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6) 두목에 대해서는 10-j-1 연경당의 주련 참조.
7) 두보에 대해서는 11-h-1 관람정 참조.
8) 왕유에 대해서는 7-j-10 한정당 기둥의 주련 참조.
9) 무평일은 당나라의 시인으로, 원래의 이름은 견(甄)인데 평일(平一)이라는 자로 더 유명하다.
10) 백거이에 대해서는 9-h-8 태액 참조.
<원전 1> 왕조, 「낙양춘」, "帝里山河景莫裁 就中春色似先來 暖融殘雪當時盡 花得東風一夜開?日綺羅香上苑 沸天簫?動瑤臺 芳心只恐煙花暮 閒立高樓望幾回"
<원전 2> 왕안석, 「화어제상화조어」, " 幄晴雲拂曉開 傳呼仙仗九天來 披香殿上留朱輦 太液池邊送玉杯 宿蘂暖含風浩蕩 ?鱗淸映日徘徊宸章獨與春爭麗 恩許?歌豈易陪."
<원전 3> 『서경』 「태서(泰誓) 상」, "惟宮室臺?陂池侈服, 以殘害于爾萬姓"; 이에 대한 채침의주(註), "土高曰臺, 有木曰?."* 이덕수, 『新궁궐기행』(대원사, 2004), 345쪽.
<원전 4> 두목, 「장안잡제장구」(제 3수) "雨晴九陌鋪江練 嵐嫩千峰疊海濤 南苑草芳眠錦雉 夾城雲暖下霓? 少年羈絡靑紋玉 遊女花簪紫?桃江碧柳深人盡醉 一瓢顔巷日空高."
<원전 5> 두보, 「칠월일일제종명부수루」(제 1수) "高棟曾軒已自?, 秋風此日灑衣裳. ?然欲下陰山雪, 不去非無漢署香. 絶壁過雲開錦繡,疏松夾水奏笙簧. 看君宜著王喬履, 眞賜還疑出尙方."
<원전 6> 왕유, 「칙차기왕구성궁피서응교」 "帝子遠辭丹鳳闕 天書遙借翠微宮 隔窓雲霧生衣上卷?山泉入鏡中 林下水聲喧笑語 巖間樹色隱房? 仙家未必能勝此 何事吹笙向碧空."
<원전 7> 무평일, 「봉화입춘내출채화수응제」,"?輅靑?下帝臺 東郊上苑望春來 黃鶯未解林間? 紅蘂先從殿裏開 ?閣條風初變柳 銀塘曲水半含苔 欣?睿藻光韶律 更促霞觴畏景催."
<원전 8> 백거이, 「춘제호상」, "湖上春來似?圖, 亂峯圍繞水平鋪. 松排山面千重翠, 月點波心一顆珠. 碧?線頭抽早稻, ?羅裙帶展新蒲. 未能抛得杭州去, 一半勾留是此湖."
궁궐 이야기...연경당 [권역]
10-h-4 수인문修仁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의 안채 정문이며 장락문을 들어서면 서쪽에 있다. 장양문이 남성의 공간인데 비해 수인문은 여성의 공간이어서 행랑채와 높이가 같은 평대문이다. 일부 해설서에서 장양문은 솟을대문으로 높이 세우고 수인문은 평대문으로 세운 것에 대해 조선의 남존여비 사상 때문이라고 하고 있으나, 이는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여성은 초헌을 탈 일이 없으므로 굳이 솟을대문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며, 실생활에서의 기능에 따라 문의 높이를 정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뜻풀이 : '수인(修仁)'은 '인(仁)을 닦는다'는 뜻이다. 인(仁)은 『논어』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한 공자의 핵심 사상이다.

제작 정보 : 현판의 글씨 중 '修(수)'자는 통용자인 '脩(수)'자로 썼다.
10-h-5 청수정사淸水精舍
위치와 연혁 : 연경당의 동쪽 행각이다.
뜻풀이 : '청수정사(淸水精舍)'는 '맑은 물이 두르고 있는 정사'라는 뜻이다. '정사(精舍)'는 '학문을 강론하는 집' 또는 '정신을 수양하는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밖에 절이라는 의미로도 널리 쓰이지만 여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10-h-6 선향재善香齋
위치와 연혁 : 연경당 동쪽에 있는 14칸짜리 건물로 책들을 보관하고 책을 읽는 서재이다. 가운데 큰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앞면에 설치한 차양이 다른 건물들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뜻풀이 : '선향재(善香齋)'는 '좋은 향기가 서린 집'이라는 뜻이다. 책을 보관하던 곳이기에 좋은 향기란 책 향기를 가리킨다.
10-j-6 선향재善香齋의 주련
뜻풀이 :
(1) 道德摩勒果(도덕마륵과)
도덕은 마륵(摩勒)의 과일이요,
(2) 文章鉢曇花(문장발담화)
문장은 우담바라의 꽃이로다.
황금 과일처럼 고귀한 도덕과 우담바라 꽃처럼 진귀한 문장이라는 뜻이다. 그러한 도덕과 문장을 갖춘 사람을 찬양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마륵은 금중에서도 가장 훌륭하다는 자마금(紫磨金)을 말한다. 우담바라는 불교에서 전륜성왕(부처)이 나타날 때 핀다는 상상의 꽃이다. 우담바라는 한자로는 優曇婆羅, 優曇波羅, 優曇跋羅華, 優曇鉢華, 優曇華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한다.
(3) 張子野詞伯(장자야사백)
장자야(張子野)는 사(詞)에 뛰어난 문인이고,
(4) 李將軍?師(이장군화사)
이장군(李將軍)은 그림에 특출한 화가로다.
사에 뛰어났던 장선(張先, 990~1078년)과 그림에 뛰어났던 이사훈(李思訓,651~716년)을 찬양한 표현이다. 장자야는 송나라 사람인 장선을 가리키는데, 사(詞)에 뛰어나서 남조 때의 유운(柳?, 465~517년)에 비견되었다. 당나라 화가 이사훈은 벼슬이 우무위대장군(右武衛大將軍)에 올랐으므로 대리장군(大李將軍)으로 불렸고 그의 아들 이소도(李昭道) 역시 산수화에 능하여 소리장군(小李將軍)으로 불렸다. 이들 부자는 북종화(北宗?)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또는 이들처럼 뛰어난 문인이나 화가를 비유적으로 칭찬하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5) 汝南尋孟博(여남심맹박)
여남(汝南) 땅으로 맹박(孟博) 1)을 찾아가고,
(6) 高密訪康成(고밀방강성)
고밀(高密) 땅으로 강성(康成)을 방문한다네.
후한(後漢)의 명사인 맹박, 즉 범방(范滂, 137~169년) 2)이나 강성, 즉 정현 3)과 같은 훌륭한 학자를 그들의 고향으로 찾아가서 만나고 교유(交遊)하고 싶은 소망을 나타내었다. 하남성 여남 지방은 범방뿐 아니라 진번(陳蕃)·설포(薛包)·황헌(黃憲)·원안(袁安) 등과 송나라 때 범중엄(范仲淹, 989~1052년)·주돈이 등의 명사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산동성 고밀은 정현의 고향이다.

(7) 細讀斜川集(세독사천집)
사천(斜川)의 문집을 세밀히 읽고,
(8) 新烹顧渚茶(신팽고저다)
고저(顧渚)의 차를 새로 달이네.
독서하며 차를 마시는 담박(淡泊)한 생활을 읊었다. 사천은 송나라 때 문인 소식의 아들인 소과(蘇過, 1072~1123년)의 호이다. 하남성 허창현(許昌縣)의 지명이기도 한데, 소과가 여기에 살아서 호로 삼았다. 고저는 절강성 장흥현(長興縣)에 있는 산의 이름이다. 차의 명산지인데 이 곳에서 난 '고저차(顧渚茶)'가 유명하다.
제작 정보 : 송나라 시인 육유 4)의 칠언율시 「재중농필우서시자율(齋中弄筆偶書示子聿)」<원전 1>에서 함련(?聯)의 앞 두 글자씩을 생략한 것이다. 거의 모든 주련은 원래 시의 구절을 그대로 따 온 것이 일반적인데, 이처럼 7언시를 줄여서 5언시로 만든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점이다.
(9) 養竹不除當路筍(양죽불제당로순)
대 기르기 좋아하여 길에 자란 죽순도 베지 않고,
(10) 愛松留得?門枝(애송류득애문지)
솔을 사랑해 문 가린 가지도 남겨 두었네.
자연을 사랑하여 인위적인 손상을 가하지 않는 천연스런 삶을 읊었다. 당나라 승려 관휴(貫休, 832~912년) 5)의 「산거시(山居詩)」 이십사 수(二十四首)<원전2> 중 제 8수의 함련에서 따온 구절이다. '門(문)'은 대부분의 문헌에 '人(인)'으로 되어 있다.
경복궁의 함화당에도 같은 문구의 주련이 있다.

(11) 史編作鑑推君實(사편작감추군실)
역사를 편찬함은 『자치통감(資治通鑑)』 6)을 지은 사마군실(司馬君實)을 추대하고,
(12) 賦筆凌雲擬子虛(부필능운의자허)
부(賦) 짓는 솜씨는 구름을 뛰어넘는 기상의 자허(子虛)에게 비기네.
앞의 구절은 『자치통감』을 지은 송대(宋代)의 명신 사마광(司馬光, 1019~1086년)이 역사의 대가로 추앙을 받는다는 뜻이며, 뒤의 구절은 사부(辭賦) 7)를 짓는 문장 솜씨가 한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 기원전 179~기원전 118년)와 같은 문장의 대가에 견줄 만하다는 뜻이다. 군실은 사마광의 자이다. 자허는 사마상여가 지은 「자허부(子虛賦)」에 나오는 인물인데, 여기서는 사마상여를 가리킨다. 구름을 뛰어 넘는 기상이라는 것은 사마상여가 「대인부(大人賦)」를 지어 바쳤을 때 천자가 크게 기뻐하면서 "구름을 타고[凌雲] 훨훨 날아오르는 기상이 있도다."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원전 3> 뒤 구절의 문맥으로 보아 앞 구절도 사마광처럼 역사에 뛰어난 인물을 견주어 칭찬하는 것이다.
(13) 瀑布之餘雲盡水(폭포지여운진수)
폭포의 밖에서는 구름이 온통 물이 되고,
(14) 茯?其上樹交花(복령기상수교화)
복령(茯?)의 위에서는 나무가 꽃과 어울렸네.
거대한 폭포의 주변에 물보라가 일어 구름을 형성하고 그 구름이 또 물방울로 화하는 모습과, 뿌리에 복령이 난 나무가 우뚝 서서 꽃을 피운 모습을 표현하였다.
복령은 버섯의 일종으로 소나무를 벤 뒤 5~6년이 지나면 그 뿌리에서 자란다. 『회남자』 「설산(說山)」 편에서는 "천 년 된 소나무 밑에는 복령이 있다(千年之松, 下有茯?)."고 하였다. 웅장하고 신비한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한 구절이다.
(15) 却對眞山看?圖(각대진산간화도)
문득 진짜 산을 대하니 그림을 보는 듯하도다.
실제의 산을 눈 앞에 보니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말이다. 송나라 시인 정구(程俱, 1078~1144년)의 시 「희제화권(戱題?卷)」의 함련 중 한 구절이다.<원전 4>
짝이 되는 앞 구절은 분실되었다. 분실된 앞 구절은 다음과 같다.
如今掃迹長林下(여금소적장림하)
이제야 깊은 숲 아래서 속객 자취 쓸어버리고,
10-h-7 우신문佑申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사랑채의 북쪽 담장에 있는 문이다.
뜻풀이 : '우신(佑申)'은 '돕기를 거듭한다'는 뜻이다. '신(申)'은 '거듭'이라는 의미이다. 즉 하늘이 나라를 돕기를 거듭한다는 말이다. '우신(佑申)'이 단어로 독립되어 쓰인 용례는 문헌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우나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그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예조참판 서명응(徐命膺, 1716~1787년) 8)이 상소하여 「천우 오장(天佑五章)」의 시(詩)를 올렸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순 임금은 오십에도 부모를 생각하였는데, 우리 임금은 지금 팔십에도 사모하신다. 하늘이 내려 보시며, 도우심을 거듭하도다[保佑申申]. 거듭 도우시는 것은 무엇인가? 긴 눈썹으로 천년을 장수하시는 거라네. 남쪽에 남극성이 있어, 우리 동방(東方)을 비추도다. 붉은 대궐 뜰에 임하여 빛을 발하니 아름답고 빛나서 그 상서로움이 밝도다. 상서로움이란 무엇인가? 만수무강하심이로다.' 라고 하였다."<원전 5>
10-h-8 통벽문通碧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안채에 있는 반빗간(부엌)으로 가는 문이다.

뜻풀이 : '통벽(通碧)'은 '푸른 곳으로 통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벽(碧)'의 의미는 '벽산(碧山, 푸른 산)'이나 '벽성(碧城, 신선이 산다는 성)' 등이 될 수 있는데, '벽산' 정도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부엌으로 가는 문이라는 기능에 비추어 보면 이름과 어울리지 않으며 따라서 이 문은 기능과는 상관없이 일반적인 관례대로 전아(典雅)한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0-h-9 태일문太一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사랑채 뒤로 가는 문이다. 농수정(濃繡亭)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앞 쪽에 있는 일각대문이다.
뜻풀이 : '태일(太一)'은 도가적(道家的) 용어로서 '우주 만물의 본원'이라는뜻이며 '도(道)'와 같은 의미로도 쓰인다. 『장자(莊子)』 「천하(天下)」 편에서"관윤(關尹)과 노담(老聃) 9)은 그 기풍을 듣고 기뻐하여 항상한 허무의 도를 세우고 태일(太一)이라는 절대의 도를 주로 삼았다."<원전 6>라고 하였다. 당나라 성현영(成玄英, 601?~690년) 10)은 태일을 "'태(太)'는 광대하다는 명칭이고'일(一)'은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지칭한다. 큰 도가 넓고 아득하여 둘러싸지 않음이 없으며 만물을 담아서 통하여 하나가 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태일이라고 한다."<원전 7>라고 풀이하였다. 『여씨춘추(呂氏春秋)』 11) 「대악(大樂)」 편에서는 "도라는 것은 지극히 정밀하여서 형체를 지을 수도 없고 이름할 수도 없다. 억지로 이름한다면 태일이라고 한다."<원전 8>라고 하였다.
10-h-10 정추문正秋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안채 동문에서 사랑채로 가는 문이다.

뜻풀이 : '정추(正秋)'는 '한창 무르익은 가을'이라는 뜻으로, '중추(仲秋)'와 같은 말이다. 『주역』의 「설괘전(說卦傳)」 12)에서 '태(兌; )'괘를 설명하며 "태는 바로 가을이니, 만물이 기뻐하는 바이므로 '태에 기뻐한다'고 하였다."<원전 9>라고 하였다.
10-h-11 소양문韶陽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사랑채의 동문이다.
뜻풀이 : '소양(韶陽)'은 '밝고 아름다운 봄빛'이라는 뜻이다.
10-h-12 태정문兌正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안채에 있는 서행각(西行閣)의 가운데 문이다.
뜻풀이 : '태정(兌正)'은 '곧고 바르다'는 뜻이다. '태(兌)'는 '곧다', '통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주역의 괘 이름이기도 하여 방위로는 서쪽을 나타내는데, 이 문이 서행각에 있으므로 방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태정'은 왼쪽의 정추문의 뜻풀이에서 든 용례에서와 같이 "태는 바로 가을이다[兌正秋也]"라는 표현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10-h-13 소휴문紹休門

위치와 연혁 : 농수정의 동문이다.
뜻풀이 : '소휴(紹休)'는 '아름다움을 이어 받는다'는 의미이다. 『한서(漢書)』13)「무제기(武帝紀)」에는 "집사에게 조서를 내려 청렴한 이를 흥기시키고 효자를 천거하여 거의 풍속을 이루어 성인의 훌륭한 업적을 이어받았다."<원전 10>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주석에서 안사고(顔師古, 581~645년) 14)의 말을 인용하여 "휴(休)는 아름답다는 뜻이고 서(緖)는 업적이라는 뜻이므로 이는 선대 성인의 아름다운 업적을 이어받는다는 말이다."<원전 11>라고 풀이했다.
10-h-14 농수정濃繡亭

위치와 연혁 : 연경당의 동쪽 돌계단 위에 지은 정자이다. 겹처마 네모지붕으로 꼭대기에 절병통 15)이 꽂혀 있다. 정면 측면이 각 1 칸씩이고 완자[卍字] 무늬의 사분합(四分閤) 16) 문으로 구성하여 모두 들어 올릴 수 있게 했다.

뜻풀이 : '농수(濃繡)'는 '짙은 빛을 수놓는다.'는 의미이다. 연경당의 구석 깊숙이 자리하여 녹음에 둘러싸인 풍경을 표현한 이름이다.
10-j-14 농수정濃繡亭의 주련

뜻풀이 :
(1) 五色天書詞絢爛(오색천서사현란)
오색의 임금 조서(詔書)는 글이 아름답게 빛나고,
(2) 九重春殿語從容(구중춘전어종용)
구중궁궐 봄 전각(殿閣)에는 말씀 조용하시네.
임금이 나라의 일을 훌륭히 수행하고, 태도나 행실에서도 모범을 보이는 것을 찬양하고 있다. 임금은 언행이 진중하고 과묵한 것을 미덕으로 보았다. 고려 시대의 김부식(金富軾, 1075~1151년)의 「등석(燈夕; 관등절 저녁에)」이라는 시에 "임금께선 공손·과묵하고 음악과 여색을 멀리 하시니 / 궁녀들아 온갖 패물로 치장함을 자랑하지 말라."<원전 12>라는 표현이 있다.
(3) 春水方生華來鏡(춘수방생화래경)
봄 물은 막 불어나고 꽃은 거울에 비쳐오니,
(4) 吾廬可愛酒滿床(오려가애주만상)
내 오두막 사랑스럽고 술은 상에 가득하네.
봄을 맞아 불어난 물이 화사하게 핀 온갖 꽃들과 어우러지는 풍경을 묘사하면서, 그 가운데 소박한 오두막집에서 술을 마시며 자족적인 삶을 사는 모습을 노래하였다. '거울(鏡)'은 맑은 물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앞 구절은 도연명 17)의 작품으로 알려진 「사시(四時)」<원전 13>에서 '봄 물은 연못마다 가득하고'라고 한 표현을 응용했고, 뒤의 구절은 역시 도연명의 「독산해경(讀山海經; 산해경을 읽으며)」<원전 14>에서 '뭇 새들은 깃들 곳에 즐거워하고나 또한 내 집을 사랑하노라', '즐거운 마음으로 홀로 봄 술을 마시며 정원의 채소 뜯어 안주를 한다'라고 한 것을 응용한 표현으로 보인다.

(5) 如斯嘉會知難得(여사가회지난득)
이 같은 좋은 모임을 얻기 어려움 알겠는데,
(6) 常駐詩人若有緣(상주시인약유연)
항상 머무는 시인은 마치 인연이나 있는 듯하네.
이처럼 아름다운 모임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여기에 항상 머무는 시인은 마치 인연이나 있는 듯 그런 아름다운 모임을 만나 무척 기쁘다는 뜻이다.
(7) 漢魏文章多古質(한위문장다고질)
한(漢)·위(魏)의 문장은 예스럽고 질박한 맛이 많으며,
(8) 春秋風日長精神(춘추풍일장정신)
춘추(春秋)의 풍기(風氣)는 정신을 길러 주도다.
앞 구절은, 한나라·위나라 때의 문장은 수식과 기교가 적어 예스럽고 질박한 기풍이 많았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의 문예적 가치를 평가한 말이다. 다음 구절의 '춘추풍일(春秋風日)'은 '봄 가을의 날씨'라는 뜻이지만 앞 구절의 '한위문장(漢魏文章)'과 대구의 격이 잘 맞지 않아 '춘추(春秋)'를 역사서이자 경전인『춘추(春秋)』의 의미로, '풍일(風日)'은 '풍기(風氣)'의 의미로 풀었다. 즉 춘추필법(春秋筆法) 18)의 엄정한 기풍이 정신을 고양시켜 준다는 뜻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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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맹박은 범방의 자이고 강성은 정현의 자이다.
2) 후한 환제(桓帝) 때 외척과 환관들이 결탁해 횡포와 정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범방은 이 때 청류당(淸流黨)의 편에서 정절을 지켜 이름이 높았다.
3) 정현에 대해서는 1-h-1 돈화문 참조.
4) 육유에 대해서는 7-j-1 낙선재의 주련 참조.
5) 관휴는 당말 오대의 승려로 절강성 출신이다. 수묵화에 능했다. 꿈에 본 십육나한을 그렸는데, 그 형상이 매우 괴기해 '응몽나한(應夢羅漢)'이라고 불렸다.
6) 『자치통감』은 편년체(編年體)의 대표적 역사서로서, 전국시대부터 오대까지 1362년 동안의 역사를 기록했다.
7) 사부는 초사(楚辭)형식에서 비롯된, 산문에 가까운 운문이다. 한 무제 때 사마상여 등이 궁정에 초청되어 활동하면서문학의 한갈래로서 중추적 지위를 얻었다.
8) 서명응은 조선후기 학자이다. 북학파의 경향을 띠었다. 자는 군수(君受), 호는 보만재(保晩齋)·담옹(澹翁). 1759(영조35)년 왕명으로 악보를 집대성해 『대악 전보(大樂前譜)』『대악 후보』를 간행했다.
9) 노담은 노자다.『장자』에서는 노담과 관윤을 하나의 학파로 보았다.
10) 성현영은 당나라 태종 때 활동한 도가의 도사로, 장자를 풀이한 『주소(註疏)』를 썼다.
11) 『여씨춘추』는 진 (奏)나라의 승상 여불위(呂不韋)가 빈객(賓客)을 모아 편찬하게 한 사론서(史論書)이다. 「대악」 편은 음악을 논한 장이다.
12) 설괘전은 주역 팔괘의 성질과 방위, 자연 현상 등 상징하는 바를 설명한 글이다.
13) 『한서』는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서이다. 기원전 3세기 한 고조에서 왕망(王莽, 기원전 45년~기원후 23년)까지 229년간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14) 안사고는 중국 당나라 초기의 학자이다. 그는 『한서』의 여러 주석들을 집대성 해 주석을 달아 『한서』의 해석에 중요한 근거를 마련했다.
15) 절병통은 궁전이나 정자의 지붕마루 가운데에 세우는, 기와로 된 항아리 모양의 장식이다.
16) 사분합문은 문짝이 넷으로 되어 좌우와 위아래로 여닫는 문을 이른다.
17) 도연명에 대해서는 9-h-1 기오헌 참조.
18) 공자는 춘추를 정리하면서 자신의 시각에서 미묘한 필삭(筆削)을 가하였는데, 이를 춘추필법이라고 한다. 그 특징은 대의명분과 객관성을 엄중히 여기는 역사기록체라는 것이다.
<원전 1> 육유, 「재중농필우서시자율」, "左右琴樽?不譁 放翁新作老生涯 焚香細讀斜川集候火親烹顧渚茶 書爲半?差近古 詩雖苦思未名家 一?殘日呼愁起 ??江城咽暮?."
<원전 2> 관휴, 「산거시」 이십사 수, 제 8수"心心心不住希夷, 石屋?岩?髮垂. 養竹不除當路筍, 愛松留得?人枝. 焚香開卷霞生?, 卷箔冥心月在池. 多少故人頭盡白, 不知今日又何之."
<원전 3> 『사기』,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飄飄有凌雲之氣."
<원전 4> 정구, 『북산집(北山集)』 「희재화권」,"五載京鹿白?鬚 丹靑遐想寄衡巫 如今掃迹長林下 却對眞山看?圖 ?中雲夢本無窮 合是人間老?工 常恨無因繼三絶 ?人拈筆寫胸中."
<원전 5> 『영조실록』 44년 9월 12일(丁酉),"禮曹參判徐命膺上疏, 進天佑五章, 詩曰, ...(중략)...舜以五十, 后今八旬. 天監在下, 保佑申申. 申申伊何, 眉壽千春. 維南有極, 照我東方.載臨?庭, 載揚之光. 郁郁煌煌 昭厥禎祥. 禎祥伊何, 萬壽無疆."
<원전 6> 『장자』 「천하」, "關尹老聃聞其風而說之, 建之以常无有, 主之以太一."
<원전 7> 위 구절에 대한 성현영의 소(疏), "太者廣大之名, 一以不二爲稱. 言大道曠蕩, 無不制圍, 抱囊萬有, 通以爲一, 故謂之太一也."
<원전 8> 『여씨춘추』 「대악」, "道也者, 至精也,不可爲形, 不可爲名, 彊爲之, 謂之太一."
<원전 9> 『주역』 「설괘전」 제 5장. "兌, 正秋也,萬物之所說也, 故曰說言乎兌."
<원전 10> 『한서』 「무제기」 "深詔執事,興廉擧孝, 庶幾成風, 紹休聖緖."
<원전 11> 위 구절에 대한 안사고의 주석,"休美也, 緖業也. 言紹先聖之休緖也."
<원전 12> 김부식, 「등석」, "城闕沈嚴更漏長 燈山火樹璨交光 綺羅??春風細 金碧鮮明曉月凉華蓋正高天北極 玉爐相對殿中央 君王恭?疎聲色 弟子休誇百寶粧."
<원전 13> 「사시」,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峯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 이 시는 도연명의 작품을 모은 문집인 『도정절집(陶靖節集)』에 실려 있어 오래 전부터 도연명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문진보(古文眞寶)』에도 도연명의 작으로 실려 있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화가로 이름난 진(晋)나라의 고개지(顧愷之,345?~406년)의 작으로 비정하기도 했다.
<원전 14> 도연명, 「독산해경(讀山海經)」, "孟夏草木長 繞屋樹扶疎 衆鳥欣有託 吾亦愛吾盧旣耕亦已種 時還獨我書 窮巷隔深轍 頗回故人車 欣然酌春酒 摘我園中蔬 微雨從東來 好風與之俱 汎覽周王傳 流觀山海圖 傘仰終宇宙 不樂復何如."
궁궐 이야기..창덕궁- 연경당권역
연경당演慶堂 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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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와 연혁 : 진장각(珍藏閣)이 있던 자리에 사대부의 생활을 알기 위해 효명세자가 순조에게 요청하여 세웠다고 전해진다.<원전 1> 그러나 일부 사료에는 순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경축 의식을 거행할 곳으로 건축했으며 '연경'이라는 이름도 이 때에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연경당은 속칭 궁궐 안의 99칸 집으로 유명하지만 순종대에 간행한 『궁궐지』에 따르면 실제로는 연경당(사랑채) 14칸, 내당(內堂: 안채) 10칸 반, 선향재(善香齋) 14칸, 농수정(濃繡亭) 1칸, 북행각(北行閣) 14칸 반, 서행각(西行閣) 20칸, 남행각(南行閣) 21칸, 외행각(外行閣) 25칸으로 모두 120칸이었다. 궁궐 안의 다른건물들이 단청과 장식을 화려하게 한 것에 비하여 이 집은 단청을 하지 않았고 구조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기둥 위에 공포 1)를 두지 않은 민도리집이다. 처음 지었던 연경당은 없어지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그 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연경당'은 이곳의 건물군(群) 전체의 이름이면서 사랑채의 당호이기도 하다.
사랑채인 연경당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홑처마 집인데 이 집 주인의 일상 거처이다. 대궐에서 퇴궐하면 이 방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또 문객들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뜻풀이 : '연경(演慶)'은 '경사(慶事)가 널리 퍼진다'는 뜻이다. '연(演)' 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늘이다(延)', '널리 펴다'는 뜻이다.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1827(순조 27)년 효명세자가 대조(大朝: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는 경사스런 예(禮)를 만났고 마침 연경당을 낙성하였으므로 그렇게 이름하였다고 한다.<원전 2>

뜻풀이 :
(1) 秦城樓閣烟花裏(진성누각연화리)
진(秦)나라 성의 누각은 연화(烟花) 속에 있고,
(2) 漢帝山河錦繡中(한제산하금수중)
한(漢)나라 황제의 산하는 금수(錦繡) 속에 있네.
청명(淸明)절을 맞은 도성(都城)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린 시 구절이다. 연화는 안개 속에 쌓여 있는 꽃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봄 경치를 은유한 표현이고, 금수는 수 놓은 비단이라는 뜻으로 풍광이 아름다울 때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진나라는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였고 한나라는 중국에 문화의 번영을 가져온 나라이므로 모두 중국을 비유하고자 관습적으로 끌어왔다. 두보의 시「청명(淸明)」 이수(二首) 중 제 2수<원전 3>에서 따 온 구절이다.
제작 정보 : '한제(漢帝)'가 여러 시선집에는 대부분 '한주(漢主)'로 되어 있으나 의미에 차이는 없다.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董其昌(동기창)'2)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3) 臨事無疑知道力(임사무의지도력)
일에 임하여 의문이 없으니 도력을 알겠고,
(4) 讀書有味覺心閒(독서유미각심한)
글을 읽음에 참맛이 있으니 마음 한가로움을 깨닫네.
도를 깨달아 막힘 없고 만족스러운 마음을 갖고, 책이나 읽으면서 한가한 삶을 누리는 경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송나라 승려 각범(覺範, 1071~1128년) 3)의 「이십일우서(二十日偶書)」 이수(二首) 중 제 2수의 <원전 4>함련(?聯)에서 따 왔다.
제작 정보 : '심(心)'이 다른 문헌에는 '신(身)'으로 된 곳이 있다. 좌측에 쓰인글씨는 불명확하지만 형태로 보아 '옹방강(翁方綱)'을 모사(模寫)하면서 잘못새긴 것으로 보인다. '方綱(방강)'과 '覃谿(담계)'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어 청나라 학자 옹방강 4)의 글씨임을 알려 준다. 담계는 옹방강의 호이다.
(5) 雲裏帝城雙鳳闕(운리제성쌍봉궐)
구름 속 도성에는 한 쌍의 봉궐(鳳闕)이요,
(6) 雨中春樹萬人家(우중춘수만인가)
빗속의 봄 숲에는 수많은 인가로다.
구름 속에 우뚝 솟은 궁궐의 모습과 봄비 내리는 중에 숲속에 싸여 있는 평화로운 민가의 모습을 묘사했다. '봉궐'은 궁궐을 달리 부르는 말인데 한나라 때 궁궐 꼭대기에 구리로 만든 봉황을 설치한 데서 유래한 호칭이다. 당나라 시인 왕유의 「봉화성제 종봉래향흥경각도중 유춘우중 춘망지작 응제(奉和聖製從蓬萊向興慶閣道中留春雨中春望之作應制); 임금께서 지으신 「봉래궁에서 흥경궁을 가는 도중에 봄비 속에 머물면서 봄 경치를 바라보며」라는 작품에 화답하여 짓다)」<원전 5>에서 따 온 구절이다.
제작 정보 : '운리(雲裏)'가 '설리(雪裏)'로 되어 있는 문헌도 있다. 좌측에 '董其昌書(동기창서)'라고 쓰여 있어 동기창의 글씨임을 알려 준다. 경복궁의 함화당, 창덕궁의 한정당에도 같은 내용의 주련이 있다.
(7) 瑞氣逈浮靑玉案(서기형부청옥안)
상서로운 기운은 아득히 청옥안(靑玉案)에 떠 있고,
(8) 日華遙上赤霜袍(일화요상적상포)
햇빛은 멀리 적상포(赤霜袍) 위로 솟아 오르네.
주변 공간을 신선들이 사는 세계에 빗대어 신선의 책상에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 신선의 옷자락에는 햇빛이 솟아오른다고 묘사하였다. 청옥안은 청옥으로 만든 책상이라는 뜻으로서 여기서는 신선의 책상을 말하며, 적상포도 신선이 입는 도포로 모두 선계를 가리킨다. 당나라 경위(耿?, ?~?년) 5)의 시 「조하기한사인(朝下寄韓舍人)」<원전 6> 중 함련에서 따 온 구절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米?(미불)'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미불 6)은 북송 시대의 서화가로, 소동파, 황정견 등과 친교가 있었다.
뜻풀이 :
(9) 雲近蓬萊常五色(운근봉래상오색)
구름은 봉래궁(蓬萊宮)에 가까워 늘 오색 빛이요,
(10) 雪殘?鵲亦多時(설잔지작역다시)
눈은 지작관(?鵲觀)에 남아 오랫동안 쌓여 있네.
봉래궁이 하늘에 드높이 솟아 구름이 가까이 떠 있으며 항상 상서로운 오색 빛을 띠고 있고, 지작관의 응달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는 말이다. 봉래궁은 원래 신선이 산다는 전설 속의 이름인데 여기서는 궁전의 이름으로 쓰였다. 중국 당나라 때 장안의 용수산(龍首山)에 있던 대명궁을 봉래궁이라고 고쳐 불렀다. 지작관은 한나라 때 감천원(甘泉苑)에 있던 누관(樓觀) 7)의 이름인데, 이 누관이 크고 높아서 깊은 응달이 졌음을 말한다. 두보의 「선정전퇴조만출좌액(宣政殿退朝晩出左掖; 선정전에 조회를 마치고 저녁에 문하성을 나서며)」<원전 7> 중 경련(頸聯)에서 따온 구절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米?(미불)'이 적혀 있다.
(11) 山中老宿依然在(산중노숙의연재)
산 속의 노스님은 늘 그대로 앉은 채로
(12) 案上楞嚴已不看(안상능엄이불간)
책상 위에 『능엄경(楞嚴經)』을 이미 보지 않고 있네.
걸림 없는 무애(無碍)의 경지에서 경전마저 초월한 불립문자(不立文字) 8)의 생활을 하는 노스님의 초탈한 생활을 읊은 시구이다. 『능엄경』은 심성의 본성을 밝힌 불경의 하나로 선종 승려들이 많이 연구했다. 이는 송나라 시인 소식의 「증혜산승혜표(贈惠山僧惠表)」<원전 8>중 함련에서 따온 구절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劉墉(유용)'이라는 글을 적었다. 유용은 청나라의 서예가로서 옹방강과 동시대 인물이다.
뜻풀이 :
(13) 名將存心惟地理(명장존심유지리)
명장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오직 지리(地理)뿐이요,
(14) 聖門傳業只官書(성문전업지관서)
성인 문하에 업을 전하는 것은 다만 관서(官書)일 뿐이네.
명장은 전쟁에서 승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지형의 이치를 잘 알아야 하고,성인의 문하에서 업을 전수하는 것은 오직 관서로써 한다는 말이다. 관서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이병희는 호가 농천(農泉), 농암(農巖)이며 대구 출신으로 군수를 지냈다. 행서와 초서에 능했으며 강릉 선교장(船橋莊)의 활래정(活來亭) 주련을 비롯해 수많은 고택과 사찰의 주련을 썼다.
뜻풀이 :
(15) 九天日月開新運(구천일월개신운)
구천(九天)의 해와 달이 새로운 운을 열어 주니,
(16) 萬里雲霞醉太平(만리운하취태평)
만리의 구름과 노을은 태평에 취해 있네.
드높은 하늘의 해와 달이 국가가 새롭게 발전할 운을 열어 주니 만리에 걸쳐 떠있는 구름과 노을도 태평에 취한 듯 붉게 물들어 있다는 말이다. 구천은 드높은 하늘이라는 뜻으로, 궁궐이라는 의미도 있어 여기서는 중의적으로 쓰였다. 나라가 새로운 기운을 받아 태평성대를 이룬 모습을 노래한 구절이다.
제작 정보 : '이병희인(李丙熙印)', '삼주후인(三州後人)'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17) 千里春風回碧巒(천리춘풍회벽만)
천리에 봄바람은 푸른 봉우리를 돌아오고,
(18) 南極祥光兆吉昌(남극상광조길창)
남극성(南極星)의 상서로운 빛은 길상(吉祥)을 알려오네.
천리 멀리에서 불어온 봄바람은 푸른 산봉우리를 휘돌아 오고, 수명을 주관하는 남극성은 상서로운 길조(吉兆)를 보여 준다는 말이다. 남극성은 남극노인성으로 인간의 수명을 주관한다고 여겨져 장수를 축원할 때 곧잘 언급되었다.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19) 請於上古無爲世(청어상고무위세)
상고 시대와 같은 무위(無爲)의 세상에서
(20) 長作天家在野臣(장작천가재야신)
길이 천자의 백성이 되기를 청하네.
요순 임금이 다스리는 무위지치(無爲之治)의 세상에서 오래도록 벼슬도 하지 않는 평범한 백성이 되어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노래하였다. '무위'는 백성을 교화하거나 인위적 통치를 하지 않아도 세상이 잘 다스려짐을 뜻한다.<원전 9>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21) 功崇六宇郭中令(공숭육우곽중령)
공이 온 세상에 높은 이는 곽중령(郭中令)이요,
(22) 荷香風共聖之淸(하향풍공성지청)
연꽃 향기 바람과 함께 하는 이는 성인 중에 맑은 사람일세.<원전 10>
명신 곽중령(郭中令, 697~781년)과 같이 높은 공을 세우는가 하면, 연꽃처럼 맑은 백이(伯夷) 10)의 정신을 본받기도 한다는 뜻이다. 곽중령은 당나라의 곽자의(郭子儀)인데, 그는 높은 벼슬에 올랐으며 자식도 많아 팔자 좋은 사람의 전형으로 일컬어진다. 세상에 나아가 경륜을 펼치거나 물러나 절조를 지키는 출처(出處), 행장(行藏)을 읊은 구절이다.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뜻풀이 :
(23) 兩京名詔皆高士(양경명조개고사)
두 서울 11)에 조서로 부르는 자는 모두가 고사이니,
(24) 四時和氣及蒼生(사시화기급창생)
사시에 온화한 기운이 온 백성에게 미치네.
온 나라에 조서를 내려 훌륭한 인재를 천거해 올리라는 명을 내리니 거기에 응해 온 인물들이 모두 고상한 선비들이어서, 이들에 힘입어 훌륭한 정치를 행하여 언제나 온화한 기운이 백성들에게 미친다는 말이다. 고사(高士)는 인격이 높고 성품이 깨끗한 선비를 뜻한다.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25) 山靜日長仁者壽(산정일장인자수)
산은 고요하고 해는 길어 어진 이는 장수하고,
(26) 月明人影鏡中來(월명인영경중래)
달 밝으니 사람 그림자가 거울 속에 비춰 오도다.
고요한 산 속에서 참된 성정을 기르면서 밝은 달밤에 연못가를 산책하는 모습이다. '거울 속'은 거울처럼 맑은 물을 가리킨다. 첫 구절은 『논어(論語)』의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활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원전 11>라는 내용을 응용한 표현이다.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27) 半窓?影梅花月(반창소영매화월)
창 한 켠에 성긴 그림자는 달빛에 매화요,
(28) 一榻淸風栢子香(일탑청풍백자향)
책상에 맑은 바람은 측백의 향기로세.
매화나무 가지에 달이 떠올라 성긴 매화 가지의 그림자가 창문에 비치고, 측백나무 향기가 섞인 바람이 책상 위로 불어오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속세를 벗어난 듯한 맑고 깨끗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첫 구절은 북송 때의 시인 임포(林逋, 967~1028년)의 시 「산원소매(山園小梅)」에 나오는 "맑고 얕은 물가에는 성긴 가지 비껴 있고 / 달 뜨는 황혼녘에 은은한 향기 도네(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라는 구절을 응용한 표현이다. '백(栢)'자를 우리나라에서는 『두시언해』 이후로 흔히 '잣나무'로 번역하지만 원래는 측백나무를 뜻하므로 여기서는 원 뜻대로 번역하였다.
제작 정보 : '李丙熙印(이병희인)', '三州後人(삼주후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뜻풀이 :
(29) 山逕繞邨松葉暗(산경요촌송엽암)
산길은 마을을 두르고 솔잎은 짙은데
(30) 柴門臨水稻花香(시문임수도화향)
사립문은 물에 가까워 벼꽃은 향기롭네.
마을을 둘러 산길이 나 있고 산에 자란 솔잎은 짙은 그늘을 이루고 있는데, 사립문은 물 가까이 있어 벼꽃 향기가 바람에 풍긴다. 시골 산촌의 한가롭고 정겨운 모습을 묘사하였다. '邨(촌)'은 '村(촌)'과 같은 글자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春? 于湘蘭(춘원 우상란)'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뜻풀이 :
(31) 於此閒得少佳趣(어차한득소가취)
이 곳에서 한가히 약간의 아름다운 흥취 얻으니,
(32) 亦足以暢敍幽情(역족이창서유정)
또한 그윽한 정을 펼치기에 족하도다.
일상에서 잠시 동안 아름다운 흥취를 얻어 그윽한 마음 속 정을 펼쳐 보는 소박한 정취를 노래하였다. 뒷 구절은 중국 진나라 때의 서예가이자 문인인 왕희지(王羲之, 307~365년) 11)의 「난정기(蘭亭記)」에서 "비록 성대한 거문고와 피리소리는 없지만, 술 한 잔 마시고 시 한 수를 읊으니 그윽한 마음 활짝 펴기에 충분하도다. (雖無絲竹管絃之盛, 一觴一詠, 亦足以暢敍幽情)"라고 한 표현에서 따 왔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鐵保(철보)'라는 글이 적혀 있고'鐵保私印(철보사인)'이라는 낙관과 그의 호 매암(梅庵)을 나타내는 '某庵(매암)'이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다. 12) '某(매)'는 '梅(매)'의 본자이다.
(33) 淸興高於將上月(청흥고어장상월)
맑은 흥은 솟아 오르려는 달보다 높고,
(34) 深情溢比欲開尊(심정일비욕개준)
깊은 정은 열려고 하는 술독에 비할 만큼 넘친다네.
밝은 달밤에 벗과 더불어 잘 익은 술을 마실 때의 맑은 흥취와 깊은 정을 노래하고 있다. '尊(준)'은 '樽(준)'과 같은 글자로 쓰였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전생 허내선(?生 許乃善)'이라는 글이 적혀 있고 '전생(?生)'이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다. 외관상 '善(선)'자가 안보이나 보수 과정에서 지워진 것이며 건탁(乾拓)을 해 보면 확인된다.
(35) ?約屢申松菊徑(동약루신송국경)
노복과의 약속<원전 12>도 소나무와 국화의 길에서 자주 하였고,
(36) 水租先報?荷洲(수조선보기하주)
수조(水租)도 마름꽃과 연꽃이 핀 물가에서 먼저 받았네.
자연을 사랑하여 항상 소나무와 국화가 자란 길을 노닐므로, 노복과의 약속도 이 곳에서 하게 된다. 또 마름꽃과 연꽃이 피는 물가가 좋아 수세(水稅)를 받는 보고도 이런 곳에서 받다는 뜻이다. 수조(水租)는 수세(水稅)를 뜻하는 듯한데,봇물을 사용하는 대가로 내는 세금이다. 한나라 신행(愼行)의 「진부암급간이종원도색제(陳傅巖給諫以種園圖索題)」 이수(二首)<원전 13> 중 경련(頸聯)에서 따 온 구절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成親王(성친왕)'이라는 글이 적혀있다. 성친왕은 건륭제의 열한 번째 아들 영성(永?, 1752~1823년)의 봉작이다. 특히 해서에 뛰어났고 추사 김정희도 그의 글씨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뜻풀이 :
(37) 春雨杏花虞學士(춘우행화우학사)
봄비에 살구꽃은 우학사(虞學士)가 노래했고,
(38) 酒旗山郭杜司勳(주기산곽두사훈)
주막 깃발 산 성곽은 두사훈(杜司勳)이 읊었다네.
송말 원초의 성리학자 우집(虞集, 1272~1348년) 13)과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803~853년) 14)의 작품에서 한 부분씩 인용하여 봄날의 아름다운 정취와 산촌의 반가운 주막의 모습을 읊었다. 앞 구절은 우집이 「풍입송 기가경중(風入松 寄柯敬仲)」이라는 사(詞)에서 "살구꽃 봄비 내리는 강남이라네(杏花春雨江南)"라고 쓴 것을 가리키고, 뒤의 구절은 두목의 시 「강남춘(江南春)」에 "물가 마을산 성곽에 주막 깃발 펄럭이네(水村山郭酒旗風)."이라는 구절이 있음을 말한것이다. 우집은 한림직학사(翰林直學士)를 지냈기 때문에 우학사라고도 했으며 두목은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을 지냈기 때문에 두사훈이라했다.
명나라 주무서(朱茂曙)의 시 「진회하춘유즉사(秦淮河春遊卽事)」<원전 14>에서 경련(頸聯)을 따 왔다. 명나라 진욱(秦旭, 1410~1494년)의 「주중기흥(舟中紀興)」에 "東風兩?雪?? 一枕蘭舟酒半? 不似邵菴虞學士 杏花春雨憶江南"이라고 하였는데, 전(轉)·결(結)구에 유관한 표현이 보인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笛樓 溫忠彦(적루 온충언)'과'小有山房(소유산방)' 등의 낙관이 있다. '彦(언)'자가 이상한 형태로 보이나 보수 과정에서 잘못 칠한 것이며, 건탁(乾拓)해 보면 분명히 확인된다.
(39) 樂意相關禽對語(낙의상관금대어)
즐거운 뜻 서로 관계하여 새들은 마주하여 지저귀고,
(40) 生香不斷樹交花(생향불단수교화)
향기 풍겨 끊이지 않으니 나무는 꽃과 서로 어울렸네.
즐거운 마음을 나누는 듯이 서로 마주 지저귀는 새들의 모습과, 끊임없이 향기를 풍기며 서로 어우러진 초목·화초들의 풍광을 노래하였다. 송나라 시인 석연년(石延年, 994~1041년) 15)의 「금향장씨원정(金鄕張氏園亭)」<원전 15>에서 경련을 따 왔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을 나타내는 '卓秉恬(탁병념)'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탁병념(1781~1855년)은 여러 관직에 있었던 청나라의 문신이다.


위치와 연혁 : 연경당의 정문이다.
뜻풀이 : '장락(長樂)'은 '길이 즐거움을 누린다'는 뜻이다. 고전에 쓰인 예로는 『한비자(韓非子)』 16) 「공명(功名)」 편에 "존엄한 군주의 지위를 가지고 충신을 제어하면 오랜 즐거움이 생기고 공명을 이루게 된다."<원전 16>라고 한 것을 들 수 있다.

제작 정보 : 낙선재의 대문 이름도 똑같은 장락문(長樂門)이다.
10-h-3 장양문長陽門
위치와 연혁 : 정문인 장락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동쪽에 있으며, 연경당의 사랑채 문이다. 사랑채는 남성의 공간이므로 솟을대문으로 만들었다. 솟을대문은 사대부가 초헌(?軒) 17)을 타고 드나들 수 있도록 행랑채의 지붕보다 높이 솟아오르게 지은 것이다.

뜻풀이 : '장양(長陽)'은 '길이(오래도록) 볕이 든다'는 뜻이다. '양(陽)'은 볕, 남성, 하늘 등 양기(陽氣)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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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포는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끝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맞추어 댄 나무 구조물로, 장식의 기능도 겸한다.
2) 동기창에 대해서는 낙선재의 주련 참조.
3) 각범의 성은 팽(彭)씨, 이름은 혜홍(惠洪) 또는 덕홍(德洪)으로 서주(瑞州)에서 태어났다.『임간록(林間錄)』, 『고승전』,『기신론해의(起信論解義)』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4) 옹방강에 대해서는 7-j-1 낙선재의 주련 참조.
5) 경위는 자는 홍원(洪源), 하동(河東)출신이다. 당나라 중기가 시작되던 대력(大曆) 연간(776~779년)에 시로 명성을 얻은 대력 10재자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
6) 미불은 자는 원장(元章), 호는 남궁(南宮)·해악(海岳)으로 호북성(湖北省)출신이다. 그림과 문장·서(書)·시 ·고미술 일반에 대해 조예가 깊어 궁정의 서화박사(書?博士)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7) 누관은 전망과 경치가 좋은 누각.
8) 불립문자란 깨우침은 문자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체험을 중시하는 선종의 구도 방식을 표명한다.
9) 백이는 중국 은(殷)나라 말의 현인이다. 이름은 윤(允), 자는 공신(公信). 주나라의 무왕(武王)이 은의 주왕(紂王)을 치려고 했을 때, 아우인 숙제(叔齊)와 막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었다.
10) 양경(兩京)은 주나라의 호경(鎬京)과 낙읍(?邑), 한나라의 장안과 낙양(洛陽), 북경(北京)과 남경(南京) 등을 가리키는데, 주로 한나라의 장안과 낙양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11) 왕희지는 자 일소(逸少). 우군장군(右軍將軍)을 지내 왕우군이라고도 불린다. 예술로서 서예의 지위를 확립하여 중국 고금(古今)의 첫째가는 서예가로 존경받는다.「난정기」는 시모임인 난정회(蘭亭會)의 시집에 쓴 서문이다.
12) 철보에 대해서는 7-j-1 낙선재의 주련을 참조.
13) 우집은 자는 백생(伯生), 호는 소암(?菴)이다. 송대 성리학자들의 도학시를 모은『염락풍아(濂洛風雅)』를 편찬하여, 도학시를'염락시(濂洛詩)'라고 부르는것이 그로부터 유래했다.
14) 두목은 자 목지(牧之), 호 번천(樊川). 이상은(李商隱)과 더불어 이두(李杜)로 불리는 만당기의 대표적 시인이다. 함축성이 풍부한 서정시를 많이 남겼다.
15) 석연년은 자는 만경(漫卿)이다. 곧은 절개를 갖고 속세에서 멀리 떠나 글을 쓰는 생활을 했다. 특히 시에 능했다.
16) 『한비자』는 중국 전국(戰國)시대 말기에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주창한 한비(韓非, 기원전 280~기원전 233년)와 그 일파의 견해를 모아 엮은 책이다.
17) 초헌은 벼슬아치들이 타던 가마를 가리킨다.
<원전 1> 『동국여지비고』와 『한경지략』에는 순조 27년, 『궁궐지』에는 순조 28년에 건립하였다고 나와 있다.
<원전 2> 『동국여지비고』 1권, 「경도(京都)」,"純祖二十七年, 翼宗在春宮時, 創建于珍藏閣舊基, 時値大朝上尊號慶禮, 而適成, 故名之."
<원전 3> 『두보』, 「청명」. "此身飄泊苦西東 右臂偏枯半耳聾 寂寂繫舟雙下淚 悠悠伏枕左書空十年蹴?將雛遠 萬里?韆習俗同 旅雁上雲歸紫塞 家人鑽火用靑楓 秦城樓閣煙花裏 漢主山河錦繡中 風水春來洞庭? 白?愁殺白頭翁"
<원전 4> 각범, 「이십일우서」 이수, "此生早衰坐世故 末路易歸驚?艱 臨事無疑知道力 讀書有味覺身閑 解醫憂患臂三折 難隱文章豹一斑永?山完山赤頭璨 不令姓氏落人間."
<원전 5> 왕유, 「봉화성제 종봉래향흥경각도중유춘우중 춘망지작 응제」,
<원전 6> 경위, 「조하기한사인」. "侍臣鳴?出西曹 鸞殿分階翊綵? 瑞氣?浮靑玉案 日華遙上赤霜袍 花間焰焰雲旗合 鳥外亭亭露掌高 肯念萬年芳樹裏 隨風一葉在蓬蒿."
<원전 7> 두보, 「선정전퇴조만출좌액」, "天門日射黃金? 春殿晴?赤羽? 宮草菲菲承委?爐烟細細駐遊絲 雲近蓬萊常五色 雪殘?鵲亦多時 侍臣緩步歸?? 退食從容出每遲."
<원전 8> 소식, 「증혜산승혜표」, "行遍天涯意未? 將心到處遣人安 山中老宿依然在 案上楞嚴已不看 ?枕落花餘幾片 閉門新竹自千竿 客來茶罷空無有 盧橘楊梅尙帶酸"
<원전 9> 『논어』 「위령공」 편, "子曰, 無爲而治者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이에 따르면 '무위의 세상'이란 요순 시대를 말한다.
<원전 10> 『맹자』 「만장(萬章) 하(下)」 "孟子曰,伯夷, 聖之淸者也, 伊尹, 聖之任者也, 柳下惠, 聖之和者也, 孔子, 聖之時者也."라고 한 데서 '성인 중에 맑은 사람'은 백이를 가리킨다.
<원전 11> 『논어』 「옹야」편,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원전 12> 한(漢)의 왕포(王褒)가 『동약(?約)』을 지어서 노비와의 계약을 기록하였는데, 그이후 동약이라는 표현은 주인과 노복의 약속을뜻하게 되었다. 청나라 조익(趙翼)의 시 「동약」에, "?約雖頒十數條, 守門奴已出遊?"라고 하였다.
<원전 13> 신행, 「진부암급간이종원도색제」, 이수 "身在元龍百尺樓 菴居那便署休休 慣聽絲竹知魚樂 別築陂塘領鶴游 ?約屢申松菊徑 水租新報?荷洲 黃橙綠橘皆垂實 歲計如農亦有秋."
<원전 14> 주무서(朱茂曙), 「진회하춘유즉사」,"橋下溪流燕尾分 灣頭新水慣?裙 六朝芳草年年綠 雙調鳴箏戶戶聞 春雨杏花虞學士 酒旗山郭杜司勳 兒童也愛晴明好 紙剪春鳶各一?."
<원전 15> 석연년, 「금향장씨원정」, "亭館連城敵謝家 四時園色?明霞 窓迎西渭封侯竹 地接東陵隱士家 樂意相關禽對語 生香不斷樹交花 縱遊會約無留事 醉待參橫月落斜."
<원전 16>『한비자』, 「공명」편. "以尊主御忠臣,則長樂生而功名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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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이야기...창덕궁- 기오헌 권역
9. 기오헌寄傲軒 권역

9-h-1 기오헌寄傲軒
위치와 연혁 : 『궁궐지』에는 의두합(倚斗閤)이라고 나오는 건물이다. 의두합은 수많은 책을 비치하고 독서하던 곳이다. 『궁궐지』에 따르면 "영화당 북쪽에 있으며 예전에 독서처가 있던 자리인데 1827(순조 27)년에 익종이 춘저(春邸) 1)에 있을 때 고쳐 지었다."<원전 1>고 하였다. '의두(倚斗)'는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북두성에 의거하여 경화(京華) 2)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민도리 집이다.

뜻풀이 : '기오(寄傲)'는 '거침없이 호방한 마음을 기탁한다'는 뜻이다. 원래 동진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년) 3)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중 "남쪽 창에 기대어 호방함을 부려 보니[寄傲], 좁아터진 집이지만 편안함을 알겠노라."<원전 2>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원래 이름이었던 의두합과 기상(氣像)이 서로 통하는 명칭이다.

제작 정보 : 서체는 예서체이다.
9-h-2 초연대超然臺
위치와 연혁 : 기오헌 뒤쪽 축대에 있는 사각형 돌에 새긴 금석문이다. 기오헌 뒤의 급경사지에는 여러 단의 층급을 둔 석축이 있고 그 사이에 여러 차례 꺾인 좁은 계단이 나 있다. 이 석축에 새겨진 것이다.
초연대는 경기도 가평과 포천, 평안남도 개천군, 평양의 대동문 앞 등 여러 군데에 같은 이름의 대가 있다. 중국에서는 산동성(山東省) 중부의 저성현(諸城縣)북쪽에 있는 것이 유명하다. 송나라 때에 소식이 이 곳 밀주(密州) 지방의 지사로 있을 때에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뜻풀이 : '초연(超然)'은 '세속을 초월한 모양', 또는 '아득히 먼 모양'을 뜻한다. 『노자(老子)』에 이르
기를 "비록 영화로운 생활을 누리더라도 한가하게 처하여 초연하게 지낸다."<원전 3>라고 하였다.
9-h-3 추성대秋聲臺
위치와 연혁 : 기오헌 뒤쪽 축대에 있는 사각형 돌에 초연대와 나란히 새겨진 금석문이다.

뜻풀이 : '추성(秋聲)'은 '가을에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라는 뜻으로 바람소리, 낙엽 지는 소리, 벌레 소
리 등을 가리킨다. '추성'은 문학 작품에서는 일반적으로 서글픔, 쓸쓸함을 나타낼 때가 많다. 이는 전국 시대 말 초(楚)나라의 문인 송옥(宋玉, 기원전 290?~222?년)이 초사(楚辭) 작품 「구변(九辯)」에서 가을 기운의 슬픔을 노래하였고, 송나라 때 문인인 구양수(歐陽脩, 1007~1072년) 4)가 「추성부(秋聲賦)」에서 만물이 시들어 쇠락하는 경물을 인생의 덧없음과 결부시켜 탄식한 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추성은 짝이 되는 '초연대'와 연관시켜 볼 때 풍성하고 아름다운 가을 경치 속에서 듣는 운치 있는 자연의 소리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9-h-4 영춘문永春門
위치와 연혁 : 창덕궁과 창경궁을 경계 짓는 담장에 난 문으로서 불로문 앞 길건너 맞은편에 있다. 이 문은 평소에는 항상 닫혀 있는데, 창경궁의 춘당지 쪽으로 통하는 문이다. 동궐도에는 두 궁궐을 나누는 담이 없으므로 당연히 영춘문도 그려지지 않았다. 후대에 이 담을 세울 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는 일제 강점기로 추정한다.

뜻풀이 : '영춘(永春)'은 '영원한 봄'이라는 뜻이다. 봄날처럼 아름답고 화창한 시기가 오래 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9-h-5 금마문金馬門
위치와 연혁 : 기오헌의 정문이다.


뜻풀이 : '금마(金馬)'는 '쇠붙이로 만든 말'이라는 뜻이다. 원래 금마문은 중국 한나라 때 대궐 문의 이름으로, 문 옆에 동(銅)으로 만든 말이 있었으므로 '금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 '금마'는 한나라 때 국가에서 책을 갈무리하던 곳의 이름이기도 했다. 기오헌이 책을 비치하던 곳이므로 한나라의 전통을 따라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9-h-6 불로문不老門
위치와 연혁 : 금마문 옆 담장의 중간, 기오헌 아래턱에 위치한 돌문이다. 쇠못을 박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 문이 달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궁궐지』에 의하면 이 문 앞에 불로지(不老池)가 있었고 문 안에 어수당이 있었다고 한다.
뜻풀이 : '불로(不老)'는 '늙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문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늙지 않고 오래도록 살라는 축원을 담았다. 또한 임금의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염원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제작 정보 : 한 장의 돌을 '┏┓'자로 깎아 만들어 세운 돌문이다. 글씨는 전서체이다.
9-h-7 애련정愛蓮亭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앞 연못가의 정자이다. 『궁궐지』에 따르면 1692(숙종 18)년 연못 가운데에 섬을 쌓고 정자를 지어 '애련(愛蓮)'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숙종이 지은 「애련정기(愛蓮亭記)」에도 연못 가운데에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지금의 애련정은 연못가에 있다. 즉 문헌대로 고증을 한다면 지금의 애련정은 나중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네 개의 기둥 중 두 개가 못에 잠겨 건물의 반은 못 위에, 반은 축대 위에 걸쳐져 있다.
애련정의 앞 네모난 연못은 애련지(愛蓮池)라고 한다. 연못 서쪽 옆에는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뜻풀이 : '애련(愛蓮)'은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송나라 때 성리학자 염계 주돈이가 연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쓴 「애련설(愛蓮說)」이 유명하다. 숙종은 「애련정기(愛蓮亭記)」에서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연꽃을 사랑하여 새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이라고 지었다."고 썼다. 이는 다분히 주돈이의「애련설」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며 숙종 스스로도 주렴계(周濂溪: 주돈이)와 뜻이 같음을 밝혔다.<원전 4>
9-j-7 애련정愛蓮亭의 주련
위치와 연혁 : 애련정 각 기둥의 바깥으로 향한 면에 붙어 있다.

뜻풀이 :
(1) 雨葉眞珠散(우엽진주산)
비 맞은 잎사귀에는 진주가 흩어지고,
(2) 晴花粉?明(청화분검명)
말간 꽃은 화장한 뺨처럼 환하도다.
비 내릴 때 연 잎에 동그랗게 맺혔다가 흘러 떨어지는 빗방울을 진주로 비유하고, 붉은 연꽃을 여자의 곱게 화장한 얼굴에 비유하였다.
(3) 亭近如來座(정근여래좌)
정자는 석가여래의 자리와 가깝고,
(4) 池容太乙舟(지용태을주)
연못은 태을주(太乙舟)를 받아 들였네.
불교에서 석가여래, 즉 부처님이 대개 연꽃 대좌 위에 앉아 있으므로 애련정의 연꽃을 석가여래의 자리로 비유하였고, 연못에 연잎이 많이 나 있는 풍경을 태일진인(太一眞人)이 배처럼 타고 누웠다는 그 연잎에 비유하였다. 태을주는 태일연주(太一蓮舟)와 같은 말로서 태일진인이 타고 있는 연잎 배라는 뜻이다. 북송의 유명한 화가 이공린(李公麟)이 그린 「태일진인도(太一眞人圖)」가 있는데, 그 그림 속의 태일진인이 큰 연 잎 가운데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장면에서 유래한 말이다. 태을(太乙)은 태일(太一)과 같은 말로 우주 만물의 본원, 또는 도(道)를 말하고, 태일진인은 도가의 신선을 뜻한다.
(5) 花愛稱君子(화애칭군자)
꽃을 사랑하여 군자라 일컫고,
(6) 龜齡獻聖人(귀령헌성인)
거북의 수명을 임금님께 바치네.
송나라의 주돈이가 「애련설」에서 연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연꽃을 꽃중의 군자라고 하였다. 또 연못 속에 거북이 사는 것을 보고 거북의 장수를 임금에게도 누리게 하고 싶다는 기원을 담았다. 여기서 성인은 임금을 가리킨다.
(7) 碧筒供御酒(벽통공어주)
푸른 대궁으로 어주(御酒)를 바치니,
(8) 霞綺散天香(하기산천향)
노을 빛 비단 꽃은 천향(天香)을 발산하네.
연꽃의 푸른 대궁, 즉 꽃대로 임금에게 술을 따라 바치니, 노을 빛을 띤 비단 같은 연꽃 잎에 아름다운 향이 마구 풍긴다는 뜻이다. 어주는 임금이 마시는 술, 또는 임금이 상으로 내리는 술을 말한다. 푸른 대궁으로 임금께 술을바친다는 것은 미화법으로 표현한 말이고 '하기(霞綺)'도 붉은 연꽃을 미화한 것이다. 천향은 향기를 미화해서 표현한 말로 주로 궁중에서 사용하는 향을 가리킬 때 쓴다.
9-h-8 태액太液
위치와 연혁 : 애련정 연못가에 있는 돌에 새겨진 금석문이다. 애련지 서북쪽은 3층의 계단을 이루고 있는데, 중앙층의 맨 좌측 돌에 글씨를 새겼다. 이로 인해 애련지의 다른 이름이 '태액지(太液池)'였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
뜻풀이 : '태액(太液)'은 '큰 물'이라는 뜻이다. '액(液)'은 액체로 물을 뜻한다.
'태액지'는 원래 중국 한나라의 건장궁(建章宮) 북쪽에 있던 연못 이름이었는데 연못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태액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당나라 때도 대명궁(大明宮) 함량전(含凉殿) 뒤쪽에 같은 이름의 연못이 있었는데, 당대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년) 5)의 유명한 「장한가(長恨歌)」에 "태액지의 연꽃과 미앙궁의 버들이로다[太液芙蓉未央柳]"라는 구절에 나오기도 한다. 청나라 때도 북경(北京) 고궁 서화문(西華門) 밖에 같은 이름의 연못이 있었다.
제작 정보 : 네모로 다듬은 돌에 전서체로 새긴 금석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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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저는 황태자나 왕세자, 또는 그가 거처하는 공간을 뜻한다. 여기에서는 사후에 익종으로 추존된 효명세자를 가리킨다.
2) 경화는 서울의 번화함을 뜻한다.
3) 도연명은 이름은 잠(潛), 연명은 자이다. "봉급5두미 때문에 향리의 소인에게 굽신거릴 수 없다"며 벼슬을 관둘 때 쓴 것이「귀거래사」이다. 전원 생활의 한아함을 기교없이 쓴 작품들로 후대에 육조 시대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 받았으며 많은 영향을 남겼다.
4) 구양수는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문학에 뛰어나 당송 8대가의 한사람으로 꼽히며 후대 문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5) 백거이의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취음선생(醉吟先生)이다. 평이하고 유려한 시풍으로 당대의 시인 원진(元?)과 함께 원백체(元白體)로 불린다. 「장한가」는 당나라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 사이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장편 고시이다.
<원전 1> 『궁궐지』 「창덕궁지(昌德宮志)·의두합(倚斗閤)」, "倚斗閤在暎花堂北, 舊讀書處基, 純宗二十七年丁亥, 翼宗在春邸時改建." 여기서 순종(純宗)은 순조(純祖)의 처음 묘호(廟號)이다.
<원전 2> 도연명, 「귀거래사」, "...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원전 3> 『노자』 26장, "雖有榮觀, 燕處超然."
<원전 4> 『궁궐지』 「창덕궁, 애련정」, "予生平不役於耳目, 而獨愛紅衣之處汚濁而不?不改, 以中立而不偏不倚, 耿介拔俗, 瀟灑出塵, 隱然有君子之德, 此所以命名新亭, 而數千載之上, 與吾同志者, 其惟濂溪一人而已乎."
궁궐 이야기....창덕궁[주합류 권역]
8-h-5 서향각書香閣

위치와 연혁 : 주합루 서쪽에 동향(東向)한 건물이다. 주합루나 봉모당에 봉안된 임금의 초상화·글·글씨 등을 포쇄(曝?), 즉 햇볕에 말리던 곳이다. 매년 4개월에 한 번씩 포쇄하여 봉모당에 안치하였다.
뜻풀이 : ‘서향(書香)’은 ‘책의 향기’라는 뜻이다. 책에서 나는 고유의 냄새를 향기라고 미화한 것이다. 서책을 말리던 곳이기 때문에 ‘책의 향기가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서향각’이라고 하였다.

제작 정보 : 편액은 정조 때의 명필로 알려진 조윤형(曺允亨, 1725~1799년) 1)의 글씨이다.
8-j-5 서향각書香閣의 편액
위치와 연혁 :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는 정조가 1798(무오)년 자신의 호를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정하고 그 내력을 서문형식으로 지은 것이다. 이듬해 11월 정범조(丁範祖, 1723~1801년), 성대중(成大中, 1732~1812년) 등 조신(朝臣) 수십 사람에게 각각 글씨를 쓰게 하고, 궁중의 각처에 걸어 달(임금)이 모든 시냇물(신하)에 비추는 이치를 실제 구현해 보려고 하였다.<원전 1> 당시에 걸었던 현판은 대부분 54행으로 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는 존덕정(尊德亭)과 서향각 안에 하나씩 걸려 있다. 똑같은 글이므로 존덕정에서는 생략하고 여기에서만 다룬다.

뜻풀이 : 어제 「만천명월의 주인이 스스로 지은 글」
온 시냇물에 비친 밝은 달의 주인 노인이 말한다.
태극(太極)이 있고 나서 음양(陰陽)이 있으므로 복희씨(伏羲氏)의 점사는 음양으로써 이치를 밝혔고, 음양이 있고 나서 오행(五行)이 있으므로 우 임금의 홍범은 오행으로써 치도(治道)를 밝혀 놓았다.
물과 달의 형상을 보고서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와 꼭 같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달은 하나인데 물의 종류는 일만 가지가 된다. 물이 달빛을 받으면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뒤 시내에도 달이 있게 되니, 달의 개수는 시내의 수와 같아 시내가 만 개라면 달도 역시 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본디 하나일 뿐이다.
천지(天地)의 도는 바르게 보여 주는 것이고, 일월(日月)의 도는 바르게 밝은것이다. 만물이 서로 보는 것은 남방의 괘이므로, 남면(南面)을 하여 정치를 듣고 밝음을 향하여 다스리니, 내가 이렇게 함으로써 세상을 다스릴 좋은 계책을 얻은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무(武)를 숭상하던 분위기를 문화적인 것으로 바꾸고, 관부(官府)를 뜰이나 거리처럼 환하게 하였으며, 현자(賢者)는 높이고 척신(戚臣)은 낮추며,환관(宦官)과 궁첩(宮妾)은 멀리하고 어진 사대부를 가까이 하였다. 세상에서 이른바 사대부(士大夫)라는 이들이 반드시 사람마다 어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흑백(黑白)을 어지럽히고 남북(南北)을 뒤집는 심부름꾼이나 마부의 무리들과 똑같이 보아선 안 될 것이다.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 보았는데 아침에 들어왔다 저녁에 나가고, 무리 지어 따르며 드나드는 중에, 생김새와 얼굴빛이 다르고 눈과 마음이 제각기 다르다. 트인 자가 있으면 막힌 자도 있고, 강한 자와 유약한 자, 바보 같은 자와 어리석은 자, 좁은 자와 얄팍한 자, 용맹한 자와 비겁한 자, 밝은 자와 약은 자, 진취적인 자와 굳세고 깨끗한 자, 모난 자와 원만한 자, 트이고 통달한 자, 간결하면서중후한 자, 말이 어눌한 자, 말재주가 좋은 자, 준엄하고 뻣뻣한 자, 바깥으로만도는 자, 명예를 좋아하는 자, 실제에 힘쓰는 자 등등 종류별로 나누어 보면 수백수천 가지가 된다.
내가 처음에는 그들 모두를 내 마음으로 미루어 헤아려 보고, 나의 뜻으로 믿어도 보고, 풍운(風雲: 밝은 임금과 어진 신하의 비유)의 즈음에 지휘하기도 하고,노비(爐?: 용광로와 풀무) 속에서 단련시켜 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을 인도하여 일으키고, 떨치어 일어나게 하며, 깨우쳐 바로잡고, 휘어서 다듬으며,바르고 곧게 하였다. 이것은 마치 맹주(盟主)가 규장(珪璋) 2)으로 제후(諸侯)들을 회합하여, 수응(酬應)하며 오르고 내리는 예절에 지치는 것과 같았는데, 이또한 20여 년이 되었다.

요즈음 다행히도 달과 물속의 달의 관계가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와 꼭 같음을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을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활용하는 방법에도 터득한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대들보와 기둥은 용도에 따라 쓰고, 오리와 학은 제 성품대로 살게 하고, 사물은 각기 사물의 이치대로 맡기고, 사물이 다가오면 그에따라 순리로 응하였다. 이에 그 단점은 버리고 장점을 취하며, 그 선한 것은 드러내고 나쁜 것은 숨겨 주고, 그 착한 사람에겐 자리를 주고 착하지 못한 사람은 물리치며, 그 그릇이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해 주었으며, 그뜻을 숭상하고 그 기예를 뒤로 하여 그 양단(兩端)을 잡고 거기에서 중(中)을 취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에 구천(九天)의 문이 열려 툭 트이고 훤하듯이 하여 어느 누구라도 머리를 들어 시원스레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 후에 트인 자는 크고도 주밀하게 대하고, 막힌 자는 여유와 너그러움으로 대하며, 강한 자는 부드러움으로, 유약한 자는 강함으로, 어리석은 자는 밝음으로, 어리숙한 자는 조리로, 소견이 좁은 자는 텅비고 넓음으로, 얄팍한 자는 깊고 침착함으로 대한다. 용감한 자에게는 방패와 도끼의 춤을 쓰고, 겁 많은 자에게는 창과 갑옷의 위용을 쓰며, 총명한 자는 심원(深遠)함으로, 교활한 자는 강직함으로 대한다. 술로 취하게 하는 것은 진취적인 자[狂]를 대하는 방법이고, 좋은 술을 마시게 함은 고집스러운 자[?]를 대하는 방법이며, 둥근 수레바퀴는 모난 자를 대하는 방법이고, 모난 옥돌은 원만한 자를 대하는 방법이다. 트이어 활달한 자에게는 나의 깊숙한 구석을 보여 주고, 대범하고 묵중한 자에게는 나의 온화한 방울 소리를 들려 주며, 말에 어눌한 자는 행동에 민첩하도록 경계시키고, 말재주에 능한 자는 숨겨 간직하도록 깨우쳐 준다. 깐깐하고 뻣뻣한 자는 산과 늪처럼 깊은 덕으로 포용하고, 멀리 외따로 도는 자는 이불과 장막으로 안정시키며,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내실에 힘쓰도록 권유하고, 실속에 힘쓰는 자는 달관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이는 마치 중니(仲尼: 공자)의 제자가 3천 명이었으되 물으면 메아리처럼 답하고,봄철의 조화를 맡은 조물주가 모든 생물을 낳되 놓는대로 생겨나는 것과 같다.
착한 말을 듣고 착한 덕행을 봄에 이르러서는 강하(江河)를 터놓은 듯하였던 순임금 3)처럼 하고, 밝은 덕으로 백성을 교화화기를 생각함에 있어서는 서방을 다스린 문왕(文王) 4)처럼 한다. 한 치의 장점도 남에게 양보하지 않으니, 만 가지 좋은 일이 모두 나에게 돌아온다. 사물마다 다 태극이 있으니 그 본성을 거스르지 말고, 그 본성을 보존하여 모두 내 소유가 되게 한다. 태극으로부터 미루어 나가면 나뉘어 만 가지 사물이 되고, 만 가지 사물로부터 추구해 오면 도리어 한 가지 이치로 돌아온다.
태극이란 상수(象數)가 나타나지 않았으나 그 이치는 이미 갖추어져 있음을 일컫는 것이고, 그 형기(形器)가 이미 나타나 있으나 그 이치가 아직 조짐이 없음을 가리킨다.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음에는 태극은 본디 태극이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음에는 양의가 태극이 되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음에는 사상이 태극이 된다.
사상 위에 각각 1획(?)이 생겨나 다섯 획이 되고, 획에는 기우(奇偶: 홀수 짝수)가 있어 그것이 곱해져 24번에 이르면 1천 6백 77만여 개에 달하는데, 그것은 모두 36분(分)과 64승(乘)에 근본한 것으로, 그 수는 우리 백성의 수에 맞먹는다. 그러므로 거기에 경계를 지어 국한하지 말고,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말아 총괄하여 나의 아량과 분수 안에 돌아오게 하고 거기에 바른 표준을 세운다. 그 표준에 의거하여 왕도(王道)를 행하며, 그것을 떳떳한 길과 바른 교훈으로 삼아 모든 백성들에게 골고루 시행하면 오사(五事)의 덕에 대한 감응으로 오복(五福)이 두루 갖추어질 것이다. 네 안색을 편안하게 하고 내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어찌 참으로 깊고 원대하지 않겠는가?
공자께서 『주역』의 「계사전(繫辭傳)」을 지으면서 맨 머리에 태극의 이치를 들어 후인을 가르쳤고, 또 『춘추』를 지어 드디어 대일통(大一統) 5)의 뜻을 밝히니, 구주(九州)의 모든 나라가 한 왕(王)에 통속되고 백 갈래 천 갈래의 물이 한바다로 돌아가고, 천 가지 만 가지 아름다운 것들이 하나의 태극에 모였다. 땅은 하늘 가운데 있으면서 한계가 있으나, 하늘은 땅의 바깥까지 포괄하면서 끝이 없다. 공중을 나는 날짐승과 냇물에 사는 물고기, 꿈틀거리는 벌레, 앎이 없는 초목에 있어서도 또한 각각 영췌(榮悴: 왕성하고 시듦)가 있어서 서로 업신 여기거나 침탈할 수 없다. 그리하여 그 큰 것을 말하면 천하로도 능히 실을 수없고, 그 작은 것을 말하면 천하가 능히 더 쪼갤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참찬위육(參贊位育) 6)의 일이면서 성인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내가 바라는 바는 성인을 배우는 것이다. 물에 있는 달에 비유하면 달은 본디 밝은 것이지만, 그것이 아래로 환히 비칠 때에는 물을 얻어서 그 빛을 발한다. 용문(龍門)의 물은 넓고 빠르며, 안탕(雁宕)의 물은 맑고 여울지며, 염계(濂溪)의물은 검으면서 푸르고, 무이(武夷)의 물은 콸콸 소리내며 흐르고, 양자강의 물은 차갑고, 탕천(湯泉)의 물은 따뜻하다. 강물은 바닷물로 인해 짜고, 경수(涇水)는 위수(渭水) 때문에 흐려진다.
달이 와서 비침도 각기 그 형태에 따라서 달라진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그 물의 큰 근본을 총괄하여 말한다면 달의 정기(精氣)이다. 그래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비추어서 나타내는 것은 사람의 형상이며, 달이 태극이고 태극이 바로 나임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일만 냇물의 밝은 달빛[萬川明月]으로써 비유하여 태극의 신묘한 작용의 뜻을 붙인 것이 아니겠는가?

달이 비출 수 있는 데는 반드시 비춘다하여 혹시라도 태극의 영역을 엿보아 헤아리려는 자가 있다면, 나는 또 그것이 부질없이 수고롭기만 하고 도움이 되지않으니 물속에 있는 달을 건지려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안다.
드디어 한가로이 거처하는 처소에 ‘만천명월주인옹’이라고 써서 걸고 스스로 호를 삼는다.
때는 무오년(1798, 정조22년) 12월 3일.

원문: 「御製 萬川明月主人翁自序」
萬川明月主人翁曰, 有太極而後有陰陽, 故羲繇以陰陽而明理, 有陰陽而後有五行, 故禹範以五行而?治. 觀乎水與月之象, 而悟契於太極陰陽五行之理焉. 月一也, 水之類萬也. 以水而受月, 前川月也, 後川亦月也, 月之數與川同, 川之有萬, 月亦如之. 若其在天之月, 則固一而已矣. 夫天地之道, 貞觀也,日月之道, 貞明也. 萬物相見, 南方之卦也, 南面而聽, 嚮明而治, 予因以有得於馭世之長策. 革車變爲冠裳, 城府洞如庭衢, 而右賢而左戚, 遠宦官宮妾, 而近賢士大夫. 世所稱士大夫者, 雖未必人人皆賢,其與便嬖僕御之伍, 幻?晳而倒南北者, 不可以比而同之. 予之所閱人者多矣, 朝而入, 暮而出, ??逐逐, 若去若來, 形與色異, 目與心殊, 通者塞者, ?者柔者, 癡者愚者, 狹者淺者, 勇者怯者, 明者?者, 狂者?者, 方者圓者, 疏以達者, 簡以重者, ?於言者, 巧於給者, ?而亢者, 遠而外者, 好名者, 務實者, 區分類別, 千百其種. 始予推之以吾心, 信之以吾意, 指顧於風雲之際, 陶鎔於爐?之中, 倡以起之, 振以作之, 規以正之, 矯以錯之, 匡之直之, 有若盟主珪璋以會諸侯, 而疲於應酬登降之節者, 且二十有餘年耳. 近幸悟契於太極陰陽五行之理, 而又有貫穿於人其人之術, ?楹備於用, 鳧鶴遂其生, 物各付物, 物來順應, 而於是乎棄其短而取其長, 揚其善而庇其惡, 宅其臧而殿其否, 進其大而容其小,尙其志而後其藝, 執其兩端而用其中焉. 天開九?, 廓如豁如, 使人人者, 皆有以仰首而快覩. 然後洪放密察以待通者, 優游寬假以待塞者, 柔以待?者, ?以待柔者, 明亮以待癡者, 辯博以待愚者, 虛曠以待狹者, 深?以待淺者, 干戚之舞以待勇者, 戈甲之容以待怯者, 沕沕以待明者, 侃侃以待?者, 醉之以酒, 所以待狂者也, 飮之以醇, 所以待?者也, 車輪所以待乎方者也, 圭角所以待乎圓者也, 疏以達者, 示我堂奧, 簡以重者, 奏我和?, ?於言者, 戒以敏行, 巧於給者, ?以退藏, ?而亢者, 包之以山藪, 遠而外者, 奠之以??, 好名者, 勸以務實, 務實者, 勸以達識. 如仲尼之徒三千, 而?之則響, 春工之化?生, 而著之則成, 以至聞言見行, 則大舜之沛然若決江河也, 予懷明德, 則文王之照臨于西土也. 寸長不讓於人, 萬善都歸於我, 物物太極, 罔?其性, 性性存存, 皆爲我有. 自太極而推往, 則分而爲萬物, 自萬物而究來, 則還復爲一理. 太極者, 象數未形, 而其理已具之稱, 形器已具, 而其理无?之目. 太極生兩儀, 則太極固太極也, 兩儀生四象, 則兩儀爲太極, 四象生八卦, 則四象爲太極. 四象之上, 各生一?, 至于五?, ?而有奇偶, 累至二十有四, 則爲一千六百七十有七萬餘?, 一皆本之於三十六分六十四乘, 而可以當吾蒼生之數矣. 不以界限, 不以遐邇, 攬而歸之於雅量己分之內, 而建其有極. 會極歸極, 王道是遵, 是?是訓, 用敷錫厥庶民, 而肅乂哲謀之應, 五福備具, 而康而色, 予則受之,豈不誠淵乎遠哉. 夫子著易繫, 首揭太極, 以詔來人, 又作春秋, 而遂明大一統之義, 九州萬國, 統於一王, 千流百派, 歸於一海, 千紫萬紅, 合於一太極. 地處天中而有限, 天包地外而無窮, 飛者之於空也,潛者之於川也, 蠢動之自?也, 草木之無知也, 亦各榮悴, 不相凌奪. 語其大則天下莫能載, 語其小則天下莫能破, 是蓋參贊位育之功, 爲聖人之能事也. 予所願者, 學聖人也, 譬諸在水之月, 月固天然而明也, 及夫赫然而臨下, 得之水而放之光也. 龍門之水洪而?, ?宕之水淸而?, 濂溪之水紺而碧, 武夷之水?而?, 揚子之水寒, 湯泉之水溫, 河以海鹹, 涇以渭濁, 而月之來照, 各隨其形. 水之流者, 月與之流, 水之渟者, 月與之渟, 水之溯者, 月與之溯, 水之?者, 月與之?, 摠其水之大本, 則月之精也. 吾知其水者, 世之人也, 照而著之者, 人之象也, 月者太極也, 太極者吾也. 是豈非昔人所以喩之以萬川之明月, 而寓之以太極之神用者耶. 以其容光之必照, 而?有窺測乎太極之圈者, 吾又知其徒勞而無益, 不以異於水中之撈月也. 遂書諸燕居之所曰萬川明月主人翁以自號. 時戊午十有二月之哉生明.
8-h-6 친잠권민親蠶勸民

위치와 연혁 : 서향각의 안쪽에 걸려 있는 현판이다. 1777(정조 1)년에 양잠소를 설치하여 왕비가 아녀자들의 모범이 되고자 누에를 쳤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
이 때는 상시적 기능은 아니었던 듯하다. 일반적으로 1911년에 총독부가 서향각을 누에 치는 양잠소로 만들어서 그 기능이 변질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편액에 걸린 내용을 보면 융희 3년 기유년 첫 여름부터라고 되어 있으므로 1909년부터 본격적인 양잠 기능을 하였다고 보인다.

뜻풀이 : ‘친잠권민(親蠶勸民)’은 ‘친히 누에를 쳐서 백성들을 권장한다’는 뜻이다.

제작 정보 : 현판 글씨는 순정효황후가 쓴 것으로 전한다.
8-h-7 어친잠실御親蠶室

위치와 연혁 : 서향각의 앞면 오른쪽 기둥에 세로로 걸려 있는 현판이다.
뜻풀이 : ‘어친잠실(御親蠶室)’은 ‘왕족이 친히 누에를 치는 방’이라는 뜻이다. 왕족은 정황으로 보아 왕비를 가리킨다.
제작 정보 : 현판의 재질이나 서체로 보아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현대에 안내판 형식으로 붙인 듯하다.
8-h-8 희우정喜雨亭
위치와 연혁 : 서향각 북쪽의 작은 정자이다. 1645(인조 23)년에 건립할 당시는 취향정(醉香亭)이라고 하는 초당이었으나 1690(숙종 16)년 여름에 오래도록 가뭄이 들어 대신을 보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바로 비가 내려서 숙종이 이를 기뻐한 나머지 지붕을 기와로 바꾸고 이름도 희우정으로 고쳤다.<원전 2>
이 곳 희우정에서 부용지의 연꽃을 감상하는 ‘희우상련(喜雨賞蓮)’은 상림십경 중의 하나이다.

뜻풀이 : ‘희우(喜雨)’는 ‘기쁜 비가 내렸다’는 뜻이다. 자세한 내용은 성정각 권역의 5-h-3 희우루를 참조.
8-h-9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

위치와 연혁 : 주합루 동북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이다. 이 건물의 본 이름은 ‘천석정(千石亭)’이며 ‘제월광풍관’은 건물 누각에 건 현판이다. 제월광풍관은 학자들이 독서를 즐기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학문을 연마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뜻풀이 : ‘제월광풍(霽月光風)’은 ‘비 갠 뒤의 밝은 달빛과 맑은 바람’이라는 뜻으로 흔히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고 더 많이 일컬어진다. 이는 마음결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한 인품을 형용하는 말로도 쓰이는데 북송(北宋)의 유명한 문인이자 서가(書家)인 황정견(黃庭堅, 1045~1105년) 7)이 성리학자인 염계(濂溪) 주돈이(周敦?, 1017~1073년) 8)를 존경하여 일컬은 데에서 더욱 유명해진 말이다. 황정견은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용릉의 주무숙은 인품이 몹시 높고 가슴 속이 시원하고 깨끗하여 광풍제월과 같다.”고 하였다.<원전 3> 광풍제월이라는 말은 훌륭한 인품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잘 다스려진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관(觀)’은 누각이라는 뜻이며 흔히 누관(樓觀)이라고 하여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한 누각을 의미한다.

제작 정보 : 일부 해설서에서 ‘지금은 천석정이 없다’고 하거나 기존의 천석정자리에 다시 광풍제월관을 지었다고 설명하여 서로 별개의 건물인 것처럼 본것은 잘못인 듯하다. 『동국여지비고』에 “천석정이 그 동쪽에 있으며, 작은 누각이 있는데 제월광풍루(霽月光風樓)라고 현판을 걸었다.”라고 하였다.
8-h-10 사정기비四井記碑

위치와 연혁 : 부용지 서쪽에 술성각(述盛閣)이 있던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비석이다. 세조 때 팠다는 네 개의 샘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본래 부용지 주변으로는 우물들이 있었는데, 이 우물들은 세조 때 조성된 것이었다. 즉, 세조는 자신의 조카인 영순군(永順君) 등 네 사람의 왕자를 시켜 창덕궁 안에 우물을 찾도록 명하였다. 이에 명을 받든 왕자들이 부용지 자리에서 4개의 우물을 찾아내자, 크게 기뻐한 세조는 마니정(摩尼井)·파려정(??井)·유리정(琉璃井)·옥정(玉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후에 여러 차례 병란(兵亂)을 겪으면서 우물 두 개는 없어지고 두개만 남았는데 숙종이 1690(숙종 16)년에 이 두 우물을 정비하고 세조때의 사실과 숙종 때의 정비 사실을 기념하여 비를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사정기비이다. 현재는 나머지 두 개의 우물마저 없어져 대략 어디쯤인지도 알 수 없다. 비석의 기문(記文)은 숙종이 지은 것이다.

뜻풀이 : ‘네 개의 샘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라는 뜻이다.

제작 정보 : 비석의 머리에 쓴 전서는 ‘御製閱武亭房四井記(어제열무정방사정기)’라고 되어 있는데, ‘房(방)’자가 우측에 해서(楷書)로 된 제목에는 ‘傍(방)’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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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윤형은 자는 치행(穉行), 호는 송하옹(松下翁). 1766(영조 44)년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두루지내고 1797(정조21)년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다. 그림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초서와 예서로 이름을 날렸다.
2) 규장은 옥으로 만든 의식용 기물. 제후가 천자를 뵐때에 규(珪)를 들고 들어가고, 알현한 뒤에는 장(璋)을 잡는다.
3) 『맹자』 「진심(盡心)」 장에 나오는 말로, 순임금은 남의 착한 말을 듣고 착한 행실을 보면 마음속에서 그 이치가 환히 밝아 마치 강하가 터져 세찬 물줄기를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4) 주나라 문왕이 서방의 제후가 되어서 인정을 베푸니, 현자가 모여들고 백성이 잘 교화되어 그의 아들 무왕이 천자가 되는 기초를 닦았다.
5) 대일통은 크게 통일됨을 뜻한다. 공후(公侯)로부터 서민, 산천초목으로부터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 천자에게 통솔된다는 의미이다.
6) 참찬위육은 천지가 제자리를 찾고 만물이 육성되는데 참여하여 돕는다는 말.
7) 황정견은 자는 노직(魯直), 호는 산곡(山谷)이다. 기이하고 파격적인 시를 써 송나라때 시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시집으로『산곡시내외집(山谷詩內外集)』이 있다.
8) 주돈이는 자 무숙(茂叔). 호 염계(濂溪). 우주의 생성과 인륜의 근원을 논한「태극도설」과연꽃을 고고한 군자의 기품에 빗대어 예찬한 수필 「애련설」로 유명하다.
<원전 1> 『홍재전서』 권173 「일득록(日得錄)」13, <人物三>, “予以萬川明月主人翁自號, 其義詳於自序, 而命朝臣數十人各書以進, 刻揭于燕寢諸處, 卽其點?揮染之間, 其人之?模意象, 可以?想, 此眞所謂萬川明月也.”
<원전 2> 『궁궐지』 「창덕궁\희우정」. “舊名醉香亭, 仁廟乙酉所?草堂, 肅宗十六年庚午旱,禱雨得雨, 改醉香亭曰喜雨, 親製亭名, 以瓦易之.”
<원전 3> 황정견, 「염계시서(濂溪詩序)」. “?陵周茂叔, 人品甚高, 胸中灑落, 如光風霽月.”* 안휘준 외, 「동궐도 읽기」(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 2005),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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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이야기....
창덕궁-주합류~권역
위치와 연혁 : 2층으로 된 건물인데, 원래 1층은 왕실 도서를 보관하는 도서관으로 규장각이라고 하였고 2층은 열람실로서 주합루라고 하였다. 나중에는 규장각이 인정전 서쪽 현재의 위치로 옮겨갔기 때문에 지금은 이 건물 전체를 주합루라고 부른다. 주합루는 1776년 정조가 즉위한 해에 건립되었는데 이 곳에는 정조가 지은 어제, 어필, 어진(御眞: 임금의 초상화), 인장 등을 보관하였다. 『동국여지비고』에서는 주합루를 규장각의 정실(正室)이라고 하였다.
이 권역 일대의 경치를 일컫는 ‘규장각 팔경(八景)’이 있는데, 봉모운한(奉謨雲漢:봉모당의 높은 하늘), 서향하월(書香荷月: 서향각의 연꽃과 달), 규장시사(奎章試士: 규장각에서의 선비들 시험), 불운관덕(拂雲觀德: 불운정의 활쏘기), 개유매설(皆有梅雪: 개유와의 매화와 눈), 농훈풍국(弄薰楓菊: 농훈각의 단풍과국화), 희우소광(喜雨韶光: 희우정의 봄빛), 관풍추사(觀?秋事: 관풍각의 가을걷이)가 그것이다. 이덕무가 「규장각팔경시」를 지은 바 있다.
뜻풀이 : ‘주합(宙合)’은 글자대로는 ‘우주와 합일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관자(管子)』에서 유래한 말로서 구체적으로는 ‘위로는 하늘 위에까지 통하고 아래로는 땅 아래에까지 도달하고 밖으로 사해(四海) 밖에까지 나아가며 천지를 포괄하여서는 하나의 꾸러미가 되며 흩어져서는 틈이 없는 데까지 이른다.’는 뜻이다. 『관자』 「주합편(宙合篇)」에서는 “천지는 만물의 풀무이다. 주합은 천지를 풀무질하고 천지는 만물을 감싸주기 때문에 만물의 풀무라 한다. 주합의 뜻은 위로는 하늘 위에까지 통하고 아래로는 땅 아래에까지 도달하고 밖으로 사해 밖에까지 나아가며 천지를 포괄하여 하나의 꾸러미가 되며 흩어져서는 틈이 없는 데까지 이른다는 것이다.”<원전 1>라고 하였다.
이덕무는 「앙엽기(?葉記)」에서 『관자』의 위 글을 인용하면서 ‘주합’의 뜻을 풀이하기를, “상하사방(上下四方)을 주(宙)라고 한다. 육합(六合)이란 뜻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원전 2>라고 하였다.
제작 정보 : 현판은 행서체로 쓴 정조의 친필이다.
경희궁(慶熙宮)에도 ‘주합루(宙合樓)’라는 같은 이름의 건물이 있었다. 『홍재전서』 「춘저록(春邸錄)·경희궁지(慶熙宮志)」에서는 “존현각(尊賢閣)이 있는데, 역대 왕들이 세자로 있을 때에 강독(講讀)하던 집이었으나 뒤에 폐했다. 금상(今上) 경진년에 이 각으로 이어(移御)하시고 나에게 명하여 이 각에서 글을 읽게 하였다. 이 각의 위에는 주합루와 관문루(觀文樓), 두 개의 누(樓)가 있다.”라고 하였다.
『궁궐지』 「경희궁」 조에도 “주합루는 흥정당 남쪽에 있다(宙合樓在興政堂南)”라고 하였다. 다만 『동국여지비고』에서는 “흥정당(興政堂) 동쪽에 석음각(惜陰閣)·존현각의 두 각이 있고, 각 위에는 주합루·관문루 두 누가 있다.”라고 하여 방향이 다르게 나와 있다.
위치와 연혁 : 영화당은 부용지 동쪽에 있는 건물이다. 「궁궐지」에는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다고 하였으나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에 이 영화당을 짓는일을 논의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광해군 때 처음 지어진 것으로 볼 수있다. 지금의 건물은 1692(숙종 18)년에 재건한 것이다. 이 건물의 앞쪽 마당은‘춘당대(春塘臺)’라고 불리는 곳으로 이 곳에서 왕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과거시험이 실시되었다. ‘영화시사(暎花試士)’는 후원의 뛰어난 열 가지 경치를 이르는 상림십경(上林十景) 중의 하나이다. 상림십경의 열 가지는 각각 관풍춘경(觀?春耕: 관풍각에서의 봄갈이), 망춘문앵(望春聞鶯: 망춘정에서 꾀꼬리 소리듣기), 천향춘만(天香春晩: 천향각의 늦봄 경치), 어수범주(魚水泛舟: 어수당),소요유상(逍遙流觴: 소요정 물굽이에서 술잔 띄우고 마시기), 희우상련(喜雨賞蓮: 희우정에서의 연꽃 구경), 청심제월(淸心霽月: 청심정에서 보는 개인 날의 맑은 달), 관덕풍림(觀德楓林: 관덕정의 단풍), 영화시사(영화당 앞에서 시험 보는 선비들), 능허모설(凌虛暮雪: 능허정의 저녁 눈)이다. 정조가 상림십경을 읊은 칠언 절구가 『홍재전서』에 전한다.
고전 소설 「춘향전(春香傳)」에서 이몽룡이 과거 급제할 때 시험 본 장소도 이곳 춘당대이며 이 때 글제가 ‘춘당춘색고금동(春塘春色古今同)’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은 마당 앞쪽에 창경궁과 경계를 나누는 담장이 둘러쳐 있는데 원래는 창경궁과 경계가 없이 터져 있었으므로 창경궁의 춘당지(春塘池)가 춘당대와 하나의 공간을 형성하였다.
영화당은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베풀거나 활을 쏘기도 한 정원이었는데, 정조때부터 과거 시험장으로 이용하였다. 영화당에서는 왕이 참석한 가운데 시관(試官)이 자리하여 시제를 내리고, 춘당대에서 초시(初試)에 합격한 응시자들이 마지막 시험을 보았다.
『궁궐지』에 의하면 영화당 건물 안에는 선조, 효종, 현종, 숙종의 편액이 걸려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영조의 친필인 ‘暎花堂(영화당)’ 현판만 남아 있다. 갑술년(甲戌年)에 썼다고 되어 있으니 1754(영조 30)년에 쓴 것이다.
뜻풀이 : ‘영화(暎花)’는 ‘꽃과 어우러진다’는 뜻이다. 주변에 꽃이 많이 피어서 풍광이 아름답다는 의미를 취한 것이다. ‘暎(영)’자는 ‘비치다’는 뜻이지만 시에서는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제작 정보 : 현판의 우측 상단에는 임금의 친필이라는 뜻으로 ‘御筆(어필)’이라고 작은 글씨로 쓰여 있으며 좌측 하단에는 글씨를 쓴 해의 간지인 ‘甲戌(갑술)’이 쓰여 있다.‘暎(영)’은 ‘映(영)’의 속자여서 통용되었으며 왕조실록이나 개인 문집 등에는‘映花堂(영화당)’으로 기록된 빈도 수가 훨씬 많다.
위치와 연혁 : 주합루의 남쪽 정문이다. 임금이 드나드는 중앙의 큰 문과 신하가 드나드는 좌우의 작은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조 때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으나 어수문 뒤에 있는 주합루의 뒤편 언덕 너머에 어수당(魚水堂)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어수당을 세울 때 같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한경지략』에서는 어수당을 효종 때 창건했으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년)을 인견(引見)하여 ‘어수(魚水)’의 뜻을 되살렸다고 했다.<원전 3> 그러나 『광해군일기』나『인조실록』에도 어수당이 나오므로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원전 4>
뜻풀이 : ‘어수(魚水)’는 ‘임금과 신하가 물과 물고기처럼 서로 긴밀히 의기투합한다’는 뜻이다. ‘수어(水魚)’라고도 하는데 『삼국지(三國志)』에서 유비가 자신과 제갈량(諸葛亮, 181~234년) 1)의 관계를 물고기와 물에 비유한 데서 유래하였다. 『삼국지』 「촉지·제갈량전(蜀志·諸葛亮傳)」에 보면 유비가 제갈량을 등용한 후 나날이 가까워지자 그 전에 도원결의를 맺었던 관우와 장비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불만의 소리를 하였다. 이에 유비는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는 것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다. 바라건대 그대들은 다시 말을 말라.”<원전 5>라고 하였다. 매우 친밀한 친구 사이를 ‘수어지교(水魚之交)’라고 하는 고사도 여기에서 생겨났다.
뜻풀이 : ‘부용(芙蓉)’이란 ‘연꽃’을 가리킨다. 이 연못에 연꽃이 무성하고 본래이름이 연지(蓮池)였으므로 비슷한 이름으로 고친 것이다. 부용에 대한 이설이 많은데, 『이아(爾雅)』2)에서는 “연꽃을 함담(??), 열매를 연(蓮), 뿌리를 우(藕)라고 하였다. 육조 시대의 학자 곽박(郭璞, 276~324년)은 강동(江東) 사람들이 연꽃을 부용이라 부르고, 북방 사람들은 우(藕)를 하(荷)라고 부르며 연(蓮)을 하(荷)로 부른다고 하였다. 후한의 학자 허신(許愼, 30~124년)은 피지 않은 것을 함담(??)이라 하고 이미 핀 것을 부용이라 한다.”<원전 8>고 하였다.
뜻풀이 :
(1) 千叢艶色霞流彩(천총염색하류채)
천 포기 고운 빛깔은 아름답게 흐르는 노을이요,
(2) 十里淸香麝裂臍(십리청향사열제)
십리에 맑은 향은 배꼽 열린 사향일세.
수없이 많은 떨기를 이루고 있는 부용정 연꽃들의 고운 빛깔을 저녁놀이 아름답게 흐르는 모습으로 비유하고, 멀리까지 퍼져가는 맑은 향을 마치 사향노루가 배꼽을 터뜨려 향이 풍겨 나오는 듯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사향노루의 배꼽에 사향선(麝香腺)이 있어 여기서 사향이 생성된다.
(3) ?苑列仙張翠蓋(낭원열선장취개)
낭원(?苑)의 여러 신선들이 푸른 일산을 펼친 듯,
(4) 大羅千佛擁香城(대라천불옹향성)
대라(大羅)의 일천 부처가 향성(香城)을 옹위한 듯.
부용정을 신선과 부처가 사는 신비의 공간으로 미화하여 부용지의 연잎을 신선들이 펼쳐 든 푸른 일산으로 비유하였고, 연꽃을 여러 부처로 비유하고 부용지 가운데의 섬을 불국(佛國), 또는 신선의 세계라는 향성으로 비유하여 수많은 연꽃들이 섬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형용하였다.
낭원은 낭풍전(?風?)의 동산이라는 뜻이다. 낭풍전은 곤륜산의 꼭대기로, 신선이 산다는 곳이다. 대라는 대라천(大羅天)의 준말로, 신선이 산다는 하늘의 이름이다. 모두 선계를 표현하는 말들이다.
(5) 翠丹交暎臨明鏡(취단교영임명경)
푸르고 붉은 빛이 어우러져 거울같이 맑은 물에 임하고,
(6) 花葉俱香透?簾(화엽구향투화렴)
꽃과 잎 모두 향기로운 채 고운 발에 스며드네.
푸른 연잎과 붉은 연꽃이 서로 어우러진 채 거울같이 맑은 연못 물에 가까이 비쳐 있는 모습과, 향기로운 연꽃과 연잎이 그림 장식한 발 틈 사이로 비쳐 보이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7) 晴?三千宮?醉(청악삼천궁검취)
말간 꽃잎은 삼천 궁녀의 취한 듯한 볼이요,
(8) 雨荷五百佛珠圓(우하오백불주원)
연잎에 맺힌 빗방울은 오백 나한의 둥근 염주로다.
맑고 곱게 핀 연꽃을 삼천 궁녀의 취한 듯 발그레한 뺨에 비유하고, 연잎에 맺힌 동그란 빗방울을 오백 나한이 들고 있는 염주 알에 비유하였다.
(9) 龜戱魚遊秋水裏(귀희어유추수리)
가을 물 속에서 거북이 놀고 물고기 헤엄치는데,
(10) 露繁風善早凉時(노번풍선조량시)
초가을 서늘한 때 이슬 짙고 바람 좋도다.
가을을 맞은 부용지 안에서 거북이와 물고기가 유유자적하게 헤엄치며 노는 광경과, 짙은 이슬이 내리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서늘한 날씨가 일찍 찾아온 부용정 주변의 풍광을 노래하였다.
1) 제갈량은 삼국시대 촉나라의 승상. 자(字)인 공명(孔明)으로 더욱 유명하다. 유비와 손을 잡고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촉의 승상을 맡았다.
2) 『이아』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훈고학서. 문자의 뜻을 고증,설명한 일종의 유의어 사전이다.
<원전 1> 『관자』 「주합」 편, “天地, 萬物之?也.宙合有?天地, 天地?萬物, 故曰萬物之?. 宙合之意, 上通于天之上, 下泉于地之下, 外出于四海之外, 合絡天地以爲一?, 散之至于無間.”
<원전 2> 이덕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권55 「앙엽기」, “上下四方曰宙, 六合之義, 盖出於此.”
<원전 3> 『한경지략』 「昌慶宮」, “魚水堂…在春塘臺不老門內, 此門則?石爲之, 篆書額. 孝宗朝?建, 每引見宋尤庵于此堂, 以魚水, 寓君臣相得之意.”
<원전 4>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11년 11월 4일(癸未), “慶德宮未及畢造者, 只魚水堂例別堂及月廊, 行廊, 行閣等級也.”; 『인조실록』 12년 9월 9일(壬戌), “上置酒魚水堂, 只命世子從焉. 丁卯之變, 魚水堂頹落殆盡, 上移御之後, 卽命修葺.”
<원전 5> “於是與亮情好日密.關羽\張飛等不悅, 先主解之曰,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
<원전 6> 『궁궐지』, “芙蓉亭, 在宙合樓南蓮池之上, 舊澤水齋, 正宗朝改建而改名.”
<원전 7> 『동국여지비고』, “在宙合樓南池邊, 池中有彩舟錦帆, 正宗朝, 賞花釣魚之所.”
<원전 8>계본(季本), 『시설해이자의(詩說解?字義)』 권4, 「澤陂」, “爾雅曰 荷芙渠 其華??, 其實蓮, 其根藕. 郭璞曰 江東人呼荷華爲芙蓉, 北方人便以藕爲荷, 亦以蓮爲荷. 許愼曰 未發爲??, 已發爲芙蓉.”
8-h-1 주합루宙合樓



8-h-2 영화당暎花堂



8-h-3 어수문魚水門


8-h-4 부용정芙蓉亭
위치와 연혁 : 주합루 남쪽 부용지 가에 있는 정자이다. 『궁궐지』에는 “예전(숙종 33년)에 지은 택수재(澤水齋)를 정조가 고쳐지으면서 부용정으로 개명하였다.”<원전 6>고 하였다. 『동국여지비고』에 “주합루 남쪽 연못가에 있다. 연못 안에 채색하고 비단 돛을 단 배가 있어, 정조 임금께서 꽃을 감상하고 고기를 낚던곳이다.”<원전 7>라고 하였다.

8-j-4 부용정芙蓉亭의 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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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불꽃 축제 2010.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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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원효대교 주변 한강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참가한 불꽃축제 참가팀들이
모여 화려한 불꽃축제를 열었다
여의도 둔치와 서강대교, 마포대교 위에는
발딛일틈도 없이 많은 관람객이 모여 오색 불꽃의 화려함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도로를 지나던 차량들은 4차선 모두 주차를 하고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약 1시간 이상 극심한 교통 혼잡을 피할 수가 없었고
다시 한번 공중도덕을 생각하게 하는 반성의 시간이 되었다
궁궐 이야기......창덕궁 낙선재 권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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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이야기.... 창덕궁-성정각 권역
성정각誠正閣 권역궁궐

5-h-1 영현문迎賢門
위치와 연혁 : 지금은 내의원이라 부르는 성정각의 남문이다. 『궁궐지』의 「창덕궁·성정각」조에 “성정각은 세자가 공부하는 곳이다. 그 곳의 남문을 영현문이라 한다.”<원전 1>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성정각이 세자가 공부하는 곳이었다는 것은 문의 편액을 해석할 때 도움이 되는 중요한 단서이다.
뜻풀이 : ‘영현(迎賢)’이란 ‘어진이를 맞이한다’는 의미이다. 세자가 공부하는 장소이므로, 어진이를 맞아들여 공부에 힘쓰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제작 정보 : 지금 영현문 안쪽 본채에는 현판이 붙어 있지 않고, ‘조화어약(調和御藥)’, ‘보호성궁(保護聖躬)’이란 편액과 함께 마당에 약을 찧는 절구가 있으므로 내의원으로 불리고 있으나, 이것은 순종 때의 일시적 조치였으므로 성정각으로 회복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5-h-2 보춘정報春亭

위치와 연혁 : 성정각의 동쪽 누각에 남향하여 붙은 현판이다. 『궁궐지』에 “희우루와 보춘정은 성정각의 동쪽 누각인데 동쪽이 희우, 남쪽이 보춘이다.”<원전 2>라고 하였다. 『동궐도』에도 표시되어 있다.

뜻풀이 : ‘보춘(報春)’은 ‘봄이 옴을 알린다’는 의미이다. 봄은 동쪽을 상징하고 성정각이 춘궁(春宮: 왕세자)이 독서를 하는 곳이므로 ‘춘(春)’ 자가 중의적으로 쓰인 듯하다.
5-h-3 희우루喜雨樓

위치와 연혁 : 성정각의 동쪽 누각에 동쪽을 향해 붙은 현판이다. 『궁궐지』에서는 “희우루와 보춘정은 성정각의 동쪽 누각인데 동쪽이 희우, 남쪽이 보춘이다.”<원전 3>라고 하였고, 『동궐도』에서도 비슷하게 기록했다. 『홍재전서(弘齋全書)』 1) 54권에 「희우루지(喜雨樓志)」가 있다. 그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정유(1777, 정조 1)년에 매우 가물었는데, 이 누각을 중건하기 시작하자 마침 비가 내렸고, 또 몇 개월 동안 가물다가 이 누각이 완성되어 임금이 행차하자 다시 비가내려 희우(喜雨)라는 이름을 지어 기념했다는 내용이다.<원전 4>

뜻풀이 : ‘희우(喜雨)’는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기뻐한다’[喜雨]는 뜻이다. 송나라 소식(蘇軾,1036~1101년)이 「희우정기(喜雨亭記)」2)를 지은 이래 ‘희우’는 정자의 이름으로서 각지에서 애용되었다. 창덕궁 주합루 뒤에도 희우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다.

제작 정보 : ‘喜(희)’ 자는 속자로 써서 하반부 점획(點劃)이 하나 생략되었으며 ‘樓(루)’ 자도 속체로 써서 정자(正字)와는 모양이 많이 다르다.
5-h-4 집희緝熙
위치와 연혁 : 예전에 왕세자가 거처하던 관물헌(觀物軒) 건물에 걸려 있는 어필 현판이다. 『동궐도』에는 지금의 이름이 아니라 ‘유여청헌(有餘淸軒)’으로 표기되어 있다.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년)가 세자로 책봉된 다음 이 곳에서 서연(書筵) 3)을 한 일이 있고, 1874(고종 11)년에는 순종이 이 곳에서 탄생하였다. 1884(고종 21)년 갑신정변 때에는, 사방을 한눈에 살필 수 있어 수비가 용이하다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개화파가 고종을 모시고 이 곳으로 피신하여 청나라 군사들을 대비하기도 하였다.
뜻풀이 : ‘집희(緝熙)’란 ‘계속하여 밝게 빛난다’[緝熙]는 의미이다. 『시경』 「대아(大雅)·문왕(文)」편 4)에 “심원하신 문왕이여, 아! 계속해서 밝히시고 공경하시도다.”<원전 5>라는 구절에서 온 말이다. 주자(朱子, 1130~1200년)는 “집(緝)은 이어지는 것이요, 희(熙)는 밝은 것으로 또한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원전 6>라고 하여 ‘임금[文王]의 밝은 덕이 계속하여 빛난다’는 의미로 풀이하였다.
한편 경희궁(慶熙宮)에도 집희당(緝熙堂)이 있었는데, 영조는 「집희당시(緝熙堂詩)」를 지어 “이 전각은 옛날 세자의 집이라, 집 안에 훌륭한 작품들이 새롭구나. / 계속하여 밝게 빛나니, 어진 이를 높이어 날로 더욱 친하도다.”<원전 7>라고 읊었다. 집희당은 본래 세자의 거처이고 그 뜻이 ‘계속하여 밝게 빛난다(繼續光明)’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제작 정보 : 집희라는 현판에 ‘갑자년(甲子年)’, ‘어필(御筆)’이라 덧붙여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재위하는 동안 갑자년이 들었던 영조·순조·고종 가운데 어느 임금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고종이 즉위 원년에 15세의 나이로 글씨를 썼으므로 다소 서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5-h-5 조화어약調和御藥·보호성궁保護聖躬

위치와 연혁 : 현재 성정각 앞 행각에 ‘조화어약’과 ‘보호성궁’이란 편액이 나란히 북쪽을 향하여 걸려 있다. 본래 창덕궁 내의원은 인정전 서쪽의 약방 자리에 있었다. 고종 때 내의원을 전의사(典醫司)로 개편하였고, 순종 때 창덕궁을 개조하면서 내의원이 헐리어 현판과 도구들을 이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뜻풀이 : ‘조화어약(調和御藥)’은 ‘임금이 드시는 약을 조제한다’는 의미이다.
‘보호성궁(保護聖躬)’은 ‘임금의 몸을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성(聖)’은 임금을 뜻하며 ‘궁(躬)’은 몸이라는 뜻이다.


제작 정보 : 근래에 나온 일부 책에서 이 현판들을 정조의 어필이라고 본 경우도 있지만, 임금이 스스로 ‘보호성궁’이라고 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한경지략』에서는 원해진(元海振)이 ‘화제어약(和劑御藥)’ ‘보호성궁(保護聖躬)’여덟 글자를 썼다고 했다.<원전 8> ‘화제어약’은 ‘조화어약’을 착오로 잘못 쓴 것으로 보이며 원해진은 인적 사항 미상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명필로 유명한 원진해(元振海, 1594~1651년)를 잘못 표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5-h-6 자시문資始門

위치와 연혁 : 중희당(重熙堂)의 서쪽에 위치했던 문이다. 지금은 중희당이 없으므로 마치 관물헌, 즉 집희의 출입문처럼 되어 있다. 『궁궐지』에는 “중희당이 관물헌 동쪽에 있는데, 1782(정조 6)년에 건립되었고, 동쪽이 중양문(重陽門), 서쪽이 자시문이며, 편액은 정조의 어필이다.”<원전 9>라고 되어 있다.
뜻풀이 : ‘자시(資始)’는 ‘만물이 힘입어 비롯한다’는 의미이다. 『주역(周易)』에서 나온 말로 건괘(乾卦; )의 자시(資始)가 곤괘(坤卦; )의 자생(資生)과짝을 이룬다. 「건」의 단사(彖辭) 5)에, “위대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의뢰하여 시작하니[資始], 이에 하늘을 통합하였도다.”라고 했고, 「곤」의 단사에는,“지극하다 곤의 원(元)이여, 만물이 의뢰하여 생겨나니[資生], 이에 순히 하늘을 받든다.”라고 했다. 주자의 풀이를 종합하면, ‘건원은 천덕(天德)의 큰 시작[大始]이므로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 모두 이에 힘입는다. 자시의 시(始)는 기(氣)의 시작이고, 자생의 생(生)은 형(形)의 시작이다.’<원전 10>라고 하였다.

제작 정보 : 현재의 현판이 실제 정조가 직접 쓴 글씨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5-h-7 망춘문望春門

위치와 연혁 : 관물헌 뒤의 후원으로 이어진 길가에 남쪽 방향으로 난 문이다.『동궐도』에는 희정당의 동문으로서 높은 기단(基壇) 위에 있어서 후원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되어 있다.
뜻풀이 : ‘망춘(望春)’이란 ‘봄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동궐도』에 그려진 대로 동향이 되어야 춘(春)의 의미와 어울린다. 망춘은 중국의 수·당 시대 이래로 전각이나 정자의 이름으로 즐겨 사용하였다.
제작 정보 : 현판에 쓰인 ‘?(망)’은 ‘望(망)’의 속자이다. 동궐도에는 희정당의 동문으로서 동서 방향으로 그려져 있으나, 현재는 남향으로 되어 있어 방향이 전혀 다르다. 지금 망춘문 바로 아래에 현판이 걸리지 않은 문이 동향으로 나있는데, 『동궐도』 상으로는 이 문이 망춘문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자리는 응경문(凝慶門)이 되어야 할 듯하다.
5-h-8 동인문同仁門

위치와 연혁 : 희정당의 동쪽 문으로 경사진 계단 위에 위치해 있다. 현재 집희라는 현판이 걸린 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뜻풀이 : ‘동인(同仁)’이란 ‘차별 없이 인애(仁愛)를 베풀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인덕(仁德)을 함께 행한다’는 의미도 있다. 동쪽이 오행상 인(仁)에 해당하는 방위이므로 동인이란 의미와 잘 어울린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20에 “이치가 하나로부터 각기 나누어지므로 비록 차별 없이 인애로 대해주나, 스스로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원전 11>고 하였다. 한(漢)나라 황석공(黃石公) 6)이 쓴 『소서(素書)』의 「안례(安禮)」에서는 “인을 같이하면 서로 근심하고, 악을 같이하면 서로 당파를 짓는다.”<원전 12>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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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재전서』는 정조의 문집이다. 시문·윤음·교지 및 기타 편저를 모았다.
2) 「희우정기」는 소식이 1062년에 부풍이라는 고을에 관리로 부임했을 때 지은 정자를 희우정이라고 부른 내력을 쓴 글이다.
3) 서연은 황태자나 왕세자를 가르치는 강의를 일컫는다. 강의는 조강, 주강,석강이 있었다.
4) 「문왕」은 대아편의 첫 시로, 문왕이 천명을 받아 주나라를 건설한 것을 기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5) 단사는 단전(彖傳)이라고도 하며,『주역』 64괘의 뜻, 덕, 괘문, 괘명 등을 통괄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6) 황석공은 중국진(秦) 나라 말의 은사(隱士)이자 병법가(兵法家)이다. 장량(張良)에게 병서(兵書)를 전해 주었는데, 장량은 이 병서를 읽고서 한나라 고조의 중국 통일을 도왔다고 한다.
<원전 1> 『궁궐지』, “春宮 胄筵之所也. 南曰迎賢門.”
<원전 2> 『궁궐지』, “喜雨樓報春亭, 卽誠正閣之東樓. 東曰喜雨, 南曰報春.”
<원전 3> 『궁궐지』, 보춘정 <원전 2> 참조.
<원전 4> 『홍재전서』 권54, 「희우루지」, “予名新建之樓曰喜雨. 喜雨而名其亭, 古也. 歲丁酉,重建斯樓, 時天旱久, 不雨垂月餘. 工役始而雨,左右曰瑞也, 名斯樓喜雨可乎. 予曰未也, 雨未滂?, 田將蕪矣, 曷云瑞. 又數月而不雨, 左右曰樓成矣. 予命夙駕, 共近臣, 言止于樓, 而天作雲, 沛然下雨. 左右復請以喜雨名斯樓, 予曰可. 顧近臣曰, 歲可大有, 而民樂業, 喜其大矣. 古人之以喜雨名其亭, 欲以志喜雨之喜也. 心而喜喜雨而志之, 則志乎心不忘可已. 惡乎名其亭, 心者已知之, 而人之知弗與焉. 志乎心則己獨喜其喜, 而不與人共喜也. 故喜之大者, 志乎心, 志乎心之不足, 志之於物, 志於物之不足, 遂有亭之名焉.於是乎其喜之志也大矣, 故名斯樓曰喜雨樓云.”
<원전 5> 『시경』 「대아·문왕」편,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원전 6> 주자, “緝續, 熙明, 亦不已之意.”
<원전 7> 영조, 「집희당시」, “此閣古春邸, 堂中寶墨新. 繼續光明也, 尊賢日益親.”
<원전 8> 『한경지략』 「내의원(內醫院)」, “正廳所揭板曰 和劑御藥保護聖躬八字 則元海振書也.”
<원전 9> 『궁궐지』, “重熙堂, 在觀物軒東. 正祖六年壬寅建, 東曰重陽門, 西曰資始門.堂額正祖御筆.”
<원전 10> 『주역』 「건」, “(彖曰)大哉乾元, 萬物資始, 乃統天.”: 이 구절에 대한 『본의』의 해석, “此一節者, 釋元義也. 大哉, 歎辭. 元,大也始也. 又爲四德之首而貫乎天德之始終, 故曰統天.”; 『주역』 「곤」, “(彖曰)至哉坤元, 萬物資生, 乃順承天.”: 이 구절에 대한 『본의』의 해석, “此以地道明坤之義, 而首言元也. 至, 極也.比大義差緩. 始者, 氣之始, 生者, 形之始. 順承天, 施地之道也.”
<원전 11> 『주자어류』, 권20, “理一而分殊, 雖貴乎一視同仁, 然不自親始也不得.”
<원전 12> 황석공, 『소서』 「안례」, “同仁相憂,同惡相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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