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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이야기....창덕궁 낙선재 권역
낙선재樂善齋 권역


7-h-1 낙선재樂善齋

위치와 연혁 :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를 통틀어 낙선재라고 한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방이기도 하다. 낙선재라는 이름은 영조 때부터 기록에 등장하나 1756(영조 32)년과 1788(정조 12)년에 발생한 화재로 타버려서 『동궐도』에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낙선재는 1847(헌종 13)년에 헌종이 후궁 경빈 김씨를 맞이하면서 왕실의 사생활 공간으로 사용하려고 세운 것이다. 1884년 갑신정변 직후에는 고종이 이 곳을 집무소로 사용했다. 고종은 여기에서 대신들을 만나 갑신정변의 뒤처리를 하고, 일본과 청나라 등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기도 했다.
고종의 뒤를 이은 순종(1874~1926년)은 국권을 빼앗기고 나서 1912년 6월 14일이 곳으로 거처를 옮겨 거주하였다. 1963년 일본에서 환국한 영친왕 이은(李垠,1897~1970년)도 낙선재에서 생애를 마쳤다. 그 후 이은의 부인 이방자(李芳子,1901~1989년) 여사가 여기에서 살았다.
낙선재는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익공 팔작지붕집으로, 오른쪽 한 칸을 전면으로 돌출시켜 누마루로 삼았다. 이 일대는 본래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있었으나 지금은 창덕궁 영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뜻풀이 : ‘낙선(樂善)’은 ‘선을 즐긴다’는 의미이다. 『맹자』에 “인의(仁義)와 충신(忠信)으로 선을 즐겨 게으르지 않는 것[樂善不倦]을 천작(天爵)이라고 한다.”<원전 1>고 했다. 임금이 이 곳에서 인의와 충신을 지키며 선을 즐겨 하늘의 작록(爵祿) 1)을 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작 정보 : ‘낙선재’ 현판은 청나라때 문인인 섭지선(葉志詵, 1779~1863년) 2)의 글씨이다.
7-j-1 낙선재樂善齋의 주련

위치와 연혁 : 낙선재의 주련은 본채의 동쪽 측면을 제외한 건물 전체에 빙 둘러 걸려 있다. 낙선재의 주련 수량은 연경당 다음으로 많다. 만든 격식이나 내용으로 보면 궁궐을 통틀어 주련 연구에 가장 중요한 곳이다.
뜻풀이 :
(1) 瓦當文延年益壽(와당문연년익수)
와당에는 연년익수(延年益壽) 3)라고 씌어 있고
(2) 銅盤銘富貴吉祥(동반명부귀길상)
동반에는 부귀길상(富貴吉祥) 4)이라고 새겨져 있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장수와 부귀를 누리기를 기원한 구절이다. 와당, 즉 기와끝에는 장수하라는 뜻의 글을 써 놓았고, 동반, 즉 구리로 만든 쟁반에는 부귀와 복을 누리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는 뜻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이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인 ‘趙光(조광)’과 ‘蓉舫(용방)’이 사각의 음각 도장으로 새겨져 있다. 청나라 때 문인인 조광(趙光, 1797~1865년) 5)은 시문을 잘 하였고, 동기창(董其昌, 1555~1636년) 6)의 서법에 능하였다. 경복궁 함화당(咸和堂)과 창덕궁 한정당(閒靜堂)에도 각각 같은 구절이 걸려 있다.
뜻풀이 :
(3) 山隨水曲趣無盡(산수수곡취무진)
산이 물을 따라 굽이치니 흥취가 다함이 없고
(4) 竹與蘭期坐有情(죽여란기좌유정)
대와 난과 기약하니 자리에 정이 넘치네.
산이 물을 따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흥취를 누리고, 대와 난이 자라는 이 곳에서 그들과 함께 하기를 기약하고 정을 나눈다는 내용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씨를 쓴 사람의 자와 이름을 나타내는 ‘樹琴英和(수금영화)’와 ‘英和之印(영화지인)’이 사각 음각 도장으로, ‘煦齋(후재)’가 사각 양각 도장으로 새겨져 있다. 영화(英和, 1771~1840년) 7)는 만주 출신의 청나라 때 문인으로 후재는 그의 호다.
뜻풀이 :
(5) 經學精硏無嗜異(경학정연무기이)
경학을 정밀히 연구하여 특이함을 좋아하지 않았고
(6) 藝林博綜乃逢原(예림박종내봉원)
문예를 널리 종합하여 이에 근원을 만났도다.
경학을 깊이 연구하여 정통의 학문을 추구할 뿐 특이한 이단의 학설을 좋아하지 않고, 육예 8)를 두루 섭렵하여 올바른 교양을 갖추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봉원(逢原)’은 ‘도의 근원을 철저하게 알아낸다’는 뜻으로 『맹자』에서 유래한 말이다.<원전 2>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인 ‘翁方綱(옹방강)’과 ‘옹방강인(翁方綱印)’이 사각 음각 도장으로, 호인 ‘담계(覃谿)’가 사각 양각 도장으로 새겨져 있다. 청나라의 문인 옹방강(翁方綱, 1733~1818년) 9)은 김정희(金正喜,1786~1856년)를 비롯한 조선의 문인들과 교유를 하여 조선의 청조학(淸朝學), 즉 청대 고증학 수용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뜻풀이 :
(7) 滿襟?氣春如海(만금화기춘여해)
가슴 가득 화기(和氣)이니 봄은 바다와 같고
(8) 萬頃文瀾月在天(만경문란월재천)
만 이랑에 물결 이는데 달이 하늘에 있도다.
화기(和氣)가 가득한 봄날의 무르익은 풍경과 수많은 이랑처럼 물결이 이는 강물에 하늘에 뜬 달이 비쳐 보이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화기는 따스하고 생기 있는 기운을 말한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을 쓴 사람의 호와 이름을 나타내는 ‘雲泉黃鑑(운천황감)’과 ‘황감(黃鑒)’이 사각 음각 도장으로, ‘운천(雲泉)’이 사각 양각 도장으로 새겨져 있다. 황감 10)은 청나라 문인으로 옹방강에게 필법을 배웠다고 한다.
뜻풀이 :
(9) 可釣可?盤谷序(가조가경반곡서)
낚시질할 만하고 밭갈이할 만하니 반곡서(盤谷序)이고,
(10) 堪詩堪?輞川圖(감시감화망천도)
시 지을 만하고 그림 그릴 만하니 망천도(輞川圖) 11)라네.
은거하며 유유자적하는 은자의 자족적인 생활을 그린 구절이다. 탈세속의 공간에서 자족하는 모습을 노래하였다. ‘반곡서’는 당나라 한유의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 이원이 반곡으로 돌아감을 전송하는 글)」를 가리킨다. 벗인 이원(李愿)이 반곡에 은거해 살면서 세상의 명리에 초월하여 홀로 유유자적하겠다고 말하자 한유가 이에 찬동하여 쓴 글이다.<원전 3> 위의 구절은 이 곳이 한유가 이원을 전송하며 쓴 글에 나오는 그 반곡과 같다는 말이다.
한편, 아래 구절은 시로 읊거나 그림으로 그릴만큼 이곳의 풍광이 당나라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王維)가 그린 ‘망천도’와 같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이 구절은, 원나라의 양공원(楊公遠)이 지은 「초하여중(初夏旅中)」 오수(五首)<원전 4>중 제 5수에 나오는 구절을 따온 것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필사자의 이름과 도장이 새겨져 있으나, 주련이 너무 낡아 이름 부분의 ‘梁(양)’자 외에는 판독이 불가능하다. 경복궁의 함화당에는 같은내용의 주련이 뒤의 구절은 분실된 채 앞 구절만 걸려 있다.
뜻풀이 :
(11) 四壁圖書供嘯傲(사벽도서공소오)
사방에 가득한 도서(圖書)는 득의만만하게 노래하게 하고
(12) 半窓風月任吟?(반창풍월임음아)
창 한켠의 풍월(風月)은 마음껏 읊조리게 하네.
사방에 도서가 많아 그 속에서 마음껏 책을 보고 득의만만해 한다는 것과, 창문한켠에 바람 불고 달이 떠오르면 자연의 흐름에 맞춰 시를 읊조리는 유유자적한 분위기를 묘사하였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인 ‘英和(영화)’와 ‘英和之印(영화지인)’이 사각 음각 도장으로, ‘煦齋(후재)’가 사각 양각 도장으로 새겨져 있다.


뜻풀이 :
(13) 閒眠東閣修花史(한면동각수화사)
한가로이 동각에서 잠자며 화사(花史)를 수정하고,
(14) 偶坐南池注水經(우좌남지주수경)
우연히 남지에 앉아 수경(水經) 12)에 주석을 하네.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은자를 그렸다. 동쪽 누각에서 한가로이 화사, 곧 화초에 대한 책을 다듬어 보고, 남쪽 연못에서 『수경』에 주석을 다는 은자의 모습을 표현했다.
동각(東閣)은 양(梁) 나라 때 사람인 하손(何遜, ?~518년)이 자신의 동각을 개방하고 문인(文人)을 초빙하여 매화를 감상했던 고사에서 따온 말로 여러 시에서 관용적으로 쓰이곤 했다. 이를테면 두보(杜甫, 712~770년) 13)의 시에 “동각 관아의 매화가 시흥을 일으키니, 하손이 양주에 있을 때와 흡사하네.”라는 구절이있다.<원전 5> 『추구(推句)』14)에도 “서쪽 정자에는 강 위에 달 뜨고, 동쪽 누각에는 눈 속에 매화가 피었네(西亭江上月, 東閣雪中梅)”라는, 작자 미상의 구절이 실려 있다.
‘남지(南池)’는 중국의 호남성(湖南省) 영릉현(零陵縣)에 있는 지명으로 당나라의 시인 유종원(柳宗元, 773~819년)이 여기서 잔치를 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유종원이 지은 「배최사군유연남지서(陪崔使君遊宴南池序)」라는 글이 있다.
제작 정보 : 왼쪽에 필사자를 나타내는 ‘鐵保(철보)’라는 글이 적혀 있고, 아래에는 ‘又字鐵卿(우자철경)’이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다. 철보(1752~1824년)는 호가 매암(梅庵) 15), 자가 야정(冶亭)으로 만주 출신의 청나라 서예가이며 당대의 명가인 유용(劉墉, 1719~1804?년), 옹방강 등과 명성이 나란하였다. 조선의 북학파 학자인 박제가(朴齊家, 1750~1805년)와 교유하여 자주 서신을 왕래하였으며, 박제가는 연작 「회인시(懷人詩)」에서 세 차례나 그에 대해 읊었다. 경복궁 함화당에도 같은 구절이 걸려 있다.
뜻풀이 :
(15) 名紙勝於求趙璧(명지승어구조벽)
좋은 종이는 조벽(趙璧)을 구하는 것보다 낫고
(16) 異書渾似借荊州(이서혼사차형주)
기이한 서적은 형주(荊州)를 빌려온 듯하네.
좋은 종이와 기이한 책은 값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귀하다는 뜻이다. 조벽은 전국 시대에 조(趙)나라의 국보이던 둥근 옥구슬로 진(秦)나라가 이를 탐을내어 갖은 술수를 썼던 일이 있다. 조나라의 인상여(藺相如)가 기지를 발휘하여 되찾아 온 고사로 유명하다. 형주는 삼국 시대 촉한의 유비(劉備, 161~223년)가 손권(孫權, 182~252년)에게서 얻으려 무던히 애쓴 지역이다.
본래 이 구절은 송나라 육유(陸游, 1125~1210년) 16)의 칠언율시 「수엄술회(守嚴述?)」<원전 6> 중에서 함련, 즉 셋째와 넷째 구절을 따온 것이다. 원시에는 ‘명지(名紙)’가 ‘명주(名酒)’로, ‘승(勝)’이 ‘과(過)’로 되어 있다.
제작 정보 : 왼쪽에 필사자의 호와 이름인 ‘信芳 劉?之(신방 유환지)’라는 글씨가 있고 ‘신방(信芳)’이란 사각 양각 도장 및 ‘劉?之印(유환지인)’이란 사각 음각 도장이 새겨져 있다. 유환지(劉?之, 1762~1821년) 17)는 청나라 때 문신으로 이덕무 등이 중국에 연행(燕行)했을 당시 교유하여 조선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뜻풀이 :
(17) 閒將西蜀團?錦(한장서촉단과금)
한가로이 서촉(西蜀)의 단과금(團?錦) 18)을 가져와
(18) 因誦東坡憶雪詩(인송동파억설시)
이어서 동파(東坡: 蘇軾)의 억설시(憶雪詩)<원전 7>를 읊노라.
본래 이 두 구절은 각기 다른 시이다. 주련의 글씨체로 보면 닮아 있어, 주련을 만들면서 편의상 두 시에서 한 구절씩 따서 대련을 만든 듯하다. 위 구절은 송나라 육유의 칠언절구 「재중잡제(齋中雜題)」<원전 8> 중에서 제3구를 따온 것이고, 아래 구절은 송나라 때 유학자이자 시인인 왕정규(王庭珪, 1079~1171년)의 칠언고시 「차운증육재취월당설시(次韻曾育才翠?堂雪詩)」<원전 9> 중 제 5구를 따온 것이다.
제작 정보 : 왼쪽에 필사자의 호와 이름인 ‘竹葉亭生 姚元之(죽엽정생요원지)’라는 글씨가 있고 ‘元之(원지)’라는 호리병 모양 양각 도장 및 ‘姚氏伯昻(요씨백앙)’이라는 사각 음각 도장이 새겨져 있다. 요원지(姚元之, 1773~1852년) 19)는 청나라 때 문인이다.
둘째 구의 ‘因(인)’자는 외관상 ‘目(목)’자처럼 보이며 1957년에 조사한 자료인 『각궁주련조서(各宮柱聯調書)』에서도 ‘目誦東坡憶雪詩’라고 하였으나, 이는‘口(구)’자 안에 ‘工(공)’자가 결합된 형태로서 ‘因’자를 예서로 쓴 것인데 수리하는 과정에서 잘못 판독하여 ‘目’자로 보이도록 고친 것이다. 다시 올바로 수리를 해야 할 것이다.
뜻풀이 :
(19) 太史文章臣瓚注(태사문장신찬주)
태사(太史: 司馬遷)의 문장은 신하 찬(瓚) 20)이 주석을 하였고
(20) 尙書孝友君陳篇(상서효우군진편)
상서(尙書: 書經)의 효도와 우애는 군진편(君陳篇)<원전 10>에 자세하네.
경사(經史)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내용이다. 한나라 때 태사(太史) 벼슬을 한 사마천(司馬遷) 21)이 지은 『사기(史記)』는 신하인 부찬(傅瓚)이 주석을 하였고,『상서』, 즉 『서경』의 「군진(君陳)」편에는 효도와 우애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있다는 말이다.
서적의 내용을 시로 엮어 문장(文章)과 효우(孝友)에 대해 일깨우는 구절이다.별도의 시어를 쓰지 않고도 서적 이름이나 인명을 적절히 배열하여 대구를 만들었다.
제작 정보 : 왼쪽에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인 ‘浙西韓韻海書(절서한운해서)’와‘季弼(계필)’, 판독이 안 되는 글씨가 사각 음각 도장으로 새겨져 있다. 계필(季弼)은 한운해(韓韻海)의 자(字)로 추정되는데 자세한 인적 사항은 알 수 없다.
뜻풀이 :
(21) 擬擬寫山經?大荒(의사산경편대황)
산경(山經)을 쓰고자하여 대황(大荒)에까지 두루 다니네.
지리책을 쓰기 위해 먼 지역까지 두루 다닌다는 말이다. 산경은 지리책이란 뜻이고 대황은 먼 변방의 매우 궁벽진 곳을 말한다.
제작 정보 : 본래 두 구절이었을 것이나 현재는 하나만 남아 있다. 왼쪽에 ‘平定張穆撰句(평정장목찬구)’라고 하여 장목(張穆, 1805~1849년) 22)이 짓고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아래에 ‘陽泉張穆(양천장목)’과 ‘陽州山?(양주산매)’가 사각 음각 도장으로 새겨져 있다. 장목은 청나라의 학자로 지리에 정통했다.
7-h-2 장락문長樂門

위치와 연혁 : 낙선재 정문이다.
뜻풀이 : ‘장락(長樂)’이란 ‘길이 즐거움을 누린다’는 의미이다. 『한비자(韓非子)』의 「공명(功名)」 편에 “존엄한 군주의 지위를 가지고 충신을 제어하면 길이 즐거움이 생기고 공명을 이루게 된다.”<원전 11>라고 하였고, 『논어(論語)』의「이인(里仁)」편에도 “오직 어진 사람만이 길이 즐거움에 처한다.”<원전 12>라고 하였다. 임금이 어진 정치를 베풀어 길이 즐거움을 누리라는 염원을 담은 말이다.


제작 정보 :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년) 23)의 글씨이다. 창덕궁에 장락문은 연경당과 낙선재 두 곳에 있다. 중국에도 전한(前漢) 시대 서안(西安)에 장락궁이 있었다. 아울러 한나라 때는 천자의 모친을 장락궁(長樂宮)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7-h-3 금사연지琴史硯池

위치와 연혁 : 낙선재 본채의 바로 뒤에 소영주라는 석물이 있는데, 그 옆에 있는 네모난 돌 연못이다. 일부 문헌에서 이를 세연지(洗硯池)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벼루처럼 네모지게 생겼으므로 벼루 연(硯)자를 쓴 것이다.
뜻풀이 : ‘금사연지(琴史硯池)’는 ‘거문고를 연주하고 역사책을 읽는 벼루 같은 연못’이라는 뜻이다. 이 벼루같이 생긴 연못 곁에서 거문고를 연주하기도 하고 역사책을 보기도 한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인 듯하다.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년) 24)의 「추등장명부해정(秋登張明府海亭)」 시에 “나 역시 거문고와 역사책을 가지고서, 노닐면서 함께 한가함을 취하리라(予亦將琴史, 棲遲共取閑).”라고 한 용례가 보인다.

제작 정보 : 글씨는 전서체이다.
7-h-4 소영주小瀛洲

위치와 연혁 : 낙선재 본채의 바로 뒤에 있는 석물(石物)에 새겨진 글씨이다. 이런 유형의 석물은 일반적으로 석함(石函)이라고 부르며, 괴석(怪石)을 받치고있다 하여 괴석대(怪石臺)라고도 한다.

뜻풀이 : ‘소영주(小瀛洲)’는 ‘작은 영주(瀛洲)’라는 뜻이다. 영주(瀛洲)는 봉래(蓬萊), 방장(方丈)과 함께 도교에서 말하는 삼신산(三神山) 25)의 하나인데, 영생불사하는 신선들이 거주하며 불사약이 자란다는 전설상의 공간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봉래는 금강산, 방장은 지리산, 영주는 한라산이라고 일컬어 왔다.
7-h-5 운비옥립雲飛玉立

위치와 연혁 : 소영주 위에 괴석이 놓여 있는데, 그 괴석의 앞면에 새겨진 글이다.
뜻풀이 : ‘운비옥립(雲飛玉立)’은 글자대로는 ‘구름이 날고 옥이 서 있다’는 뜻이지만 비유적으로 쓰여 ‘구름처럼 날고 옥처럼 서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말은 원래 당나라 두보의 시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시에서는 “흰 매가 날 때는 구름이 나는 것과 같고 우뚝하게 앉아 있을 때는 흰 옥이 서 있는 것 같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문헌에는 ‘雲[구름]’ 대신 ‘雪[눈]’로 되어 있는 곳도 많다.
원래 이 시는 왕감(王監)이라는 병마사가 두보에게 근처의 산에 살던 흰 매와 검은 매를 소재로 해서 시를 지어 달라고 청하자 이에 응해서 지어 준 것이다. 두보는 두 수의 시로 각각 흰 매와 검은 매를 읊었는데 ‘운비옥립’은 흰 매를 읊은 첫 수의 맨 앞 구절 ‘雲飛玉立盡淸秋(운비옥립진청추: 맑은 가을 다하도록 구름이 나는 듯하고 옥이 서 있는 듯하다)’라는 대목에 나온다.<원전 13> 괴석에다 이 구절을 새긴 것은 돌의 모습을 매가 우뚝하게 앉아 있는 듯한 형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제작 정보 : 서체는 행초서(行草書)이다. 글씨 끝에는 낙관이 새겨져 있는데 일부가 깨어져 나가 정확한 판독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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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록은 벼슬아치들에게 내리던 관직과 녹봉.
2) 섭지선의 자는 동경(東卿)이며 관직은 병부낭중(兵部?中)에 이르렀다. 다양한 방면에 지식이 많았으며, 특히고증에 뛰어났다. 추사 김정희를 비롯한 조선의 명사들과 깊이 교유하였다.
3) 연년익수는 수명을 오래 늘여나감.
4) 부귀길상은 부귀와 길상, 즉 가치 있고 행운을 부르는 것.
5) 조광은 청나라 운남(雲南) 곤명(昆明) 출신으로 자는 용방(蓉舫), 호는 퇴암(退庵), 시호는 문각(文恪)이다.
6) 동기창은 명나라말의 문인, 서화가이다. 자는 현재(玄宰), 호 사백(思白)·향광(香光)·사옹(思翁). 송, 원의 문인화를 계승해 북종화보다 남종화가 뛰어나다는 화론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7) 영화의 자는 수금(樹琴)·정포(定圃), 호는 후재(煦齋). 초명은 석동(石桐)이다. 시문에 능하고 글씨를 잘썼다. 유용(劉墉)의 문하에 있었으며 만년에는 구양순, 유공권체를 겸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8) 육예는 고대 중국 교육의 여섯 가지 과목. 3-h-4예문관 참조.
9) 옹방강의 자는 정삼(正三), 호는 담계(覃溪). 시문에 능하고, 고증, 금석(金石), 서법(書法)에 정통하였다.
10) 황감의 자는 요환(耀?), 호는 운천(雲泉)·정회(瀞懷). 전서와 예서를 좋아했고 만년에는 한대의 고질(古質)한 풍격을 얻었다고 한다.
11) ‹망천도›는 왕유가 자신의 별장이있는 망천의풍경을 그린 그림. 왕유는 이곳에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유유자적하였다.
12) 수경은 3세기경에 이루어진 책으로 하천의 발원지, 합류지, 입해지(入海地) 등을 간단히 기록해 놓았다. 북위 때의 역도원(?道元, 469~527년)이 주석을 더한『수경주(水經注)』가 유명하다.
13) 두보는 당나라의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이다. 율시에 뛰어났다. 지금까지도‘시성(詩聖)’으로 불리며,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의 최고 시인으로 꼽힌다.
14) 『추구』란 오언시(五言詩)를 대구 위주로 추려 모아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책이다.
15)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에는 자(字)가 매암이라고 하였으나 잘못인 듯하다.
16) 육유는 중국 송(宋)나라 때의 시인이다. 자는 무관(務觀), 호는 방옹(放翁)이며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출신이다. 침략자인 금나라에 대한 철저한 항쟁을 주장했으며, 그것을 시로 읊은 강직한 애국 시인이었다.
17) 유환지는 산동출신으로 자는 패순(佩循), 호는 신방(信芳), 시호는 문공(文恭)이다. 벼슬이 이부상서(吏部?書)에 이르렀다. 청렴 결백한 가문의 전통을 잘 지켜 명성이 높았다.
18) 단과금은 비단의 한 종류로, 둥근 계선을 두르고 그 안에 꽃무늬를 드문드문 수 놓은 비단을 일컫는다. 서촉은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성도(省都)로 예로부터 비단의 산지로 이름이 높았다.
19) 요원지는 자는 백앙(伯?), 호는 천청(?靑), 죽엽정생(竹葉亭生), 오불옹(五不翁)이다. 벼슬이 좌도어사(左都御史)에 이르렀다. 요내(姚?)에게 배웠고 서화에 모두 능하였다.
20) 찬의 이름은 부찬 혹은 우찬(于瓚)이다. 『사기집해(史記集解)』에 그의 주석이 많이 인용되었다.
21) 사마천은 전한의 역사가이다. 자는 자장(子長). 사상가인 사마담(司馬談)의 아들. 부친의 뒤를 이어 역사책의 전범이 된『사기』의 저술을 완성하였다.
22) 장목의 초명은 영섬(瀛暹), 자는 석주(石州), 송풍(誦風), 호는 은재(殷齋). 훈고,천문, 역산(曆算),지리에 능하였다.
23) 흥선대원군의 이름은 이하응(李昰應), 호는 석파(石坡). 고종의 아버지로, 아들이 12세에 왕위에 오르자 섭정하여, 여러 내정 개혁을 수립하였다. 천주교 탄압, 통상 수교 거부를 고수한 인물이기도 하다.
24) 맹호연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다. 고독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자연의 한적한 정취를 표현한 작품들을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맹호연집』 4권이 있으며, 약 200수의 시가 전한다.
25) 삼신산은 『열자(列子)』에 의하면, 발해(渤海)의 동쪽 수억만리 떨어져 있으며 그 높이는 각각 3만 리, 금과 옥으로 지은 누각이 늘어서 있고, 주옥(珠玉)으로 된 나무가 우거져있다.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불로불사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은 모두 선인(仙人)들로서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한다.
<원전 1> 『맹자』, 「고자(告子) 上」, “孟子曰 有天爵者, 有人爵者, 仁義忠信, 樂善不倦, 此天爵也. 公卿大夫, 此人爵也.”
<원전 2> 『맹자(孟子)』, 「이루장구 상(離婁章句上)」 “孟子曰 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自得之則居之安, 居之安則資之深, 資之深則取之左右逢其原, 故君子欲其自得之也.; 搖處之安固, 則所藉者深?而無盡, 所藉者深, 則日用之間取之至近, 無所往而不?其所資之本也.”
<원전 3> 한유, 「송이원귀반곡서」. “釣於水鮮可食”, “盤之中, 維子之宮. 盤之土, 可以稼. 盤之泉, 可濯可沿. 盤之阻, 誰爭子所?”
<원전 4> 양공원, 「초하여중」 오수, 제 5수 “每憶吾廬隱者居 天然景物足淸娛 樹林陰?鶯求友簾幕深沈燕引雛 可釣可耕盤谷序 堪詩堪?輞川圖 何當歸去北?臥 能勝羲皇以上無.”
<원전 5> 두보, 「화배적등촉주동정 송객봉조매상억견기(和裵迪登蜀州東亭 送客逢早梅 相憶見寄)」, “東閣官梅動詩興 還如何遜在揚州.”
<원전 6> 육유, 「수엄술회」, “桐君放隱兩經秋,小院孤燈夜夜愁. 名酒過於求趙璧, 異書渾似借?州. 溪山勝處?難到, 風月佳時事不休. 安得連車載?釀, 金鞭重作浣花遊.”
<원전 7> 억설시는 소식의 시 「설후서북대벽(雪後書北臺壁)」 이수(二首)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 시의 2수에서 “城頭初日始?鴉, 陌上晴泥已沒車, 凍合玉樓寒起粟, 光搖銀海眼生花,遺蝗入地應千尺, 宿麥連雲有幾家, 老病自嗟詩力退, 空吟?柱憶劉叉.”라고 하였다.
<원전 8> 육유, 「재중잡제」, “列屋娥眉不足誇,可齋?自是生涯. 閒將西蜀團?錦, 自背南唐落墨花.”
<원전 9> 왕정규, 「차운증육재취월당설시」, “?君翠?堂中雪, 詞如?戟相磨切. 又如牛鐸應?鍾, 水中躍出?賓鐵. 因誦東坡憶雪詩, 城郭山川兩奇絶. 翠?堂中雪復然, 敢擬片詞增竄竊. 長安道上醉騎驢, 忍凍不知蹄屢蹶. 爭似淮西破賊時,蔡州城外沙如月. 將軍一箭射?槍, 夜落城頭曉方滅. 書飛奏不動塵, 露布馳來迷?闕. 醉翁句律號令嚴, 凍口何由更開說. 銀杯任逐馬蹄?, 斷藁殘編且??.”
<원전 10> 『서경』의 「군진」편 첫머리에는 군진에게 효도와 우애로부터 출발하여 정치로 넓혀가라고 당부하는 내용이 있다. “王若曰 君陳,惟爾令德, 孝恭, 惟孝, 友于兄弟, 克施有政, 命汝, 尹?東郊, 敬哉.”
<원전 11> 『한비자』 「공명」, “以尊主御忠臣, 則長樂生而功名成”
<원전 12> 『논어』, 「이인」, “子曰 不仁者, 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安仁, 知者利仁.”
<원전 13> 두보, 『견왕감병마사설, 근산유백흑이응, 나자구취, 경미능득, 왕이위모골유이타응, 공납후춘생, 건비피난, 경핵사추지심, 묘불가견, 청여부시(見王監兵馬使, 說近山有白黑二鷹, 羅者久取, 竟未能得. 王以爲毛骨有異他鷹,恐臘後春生, 騫飛避暖, 勁?思秋之甚, ?不可見, 請余賦詩)』, (제 1수) “雲飛玉立盡淸秋, 不惜奇毛恣遠遊, 在野只敎心力破, 于人何事網羅求, 一生自獵知無敵, 百中爭能恥下?, 鵬?九天須却避, 兎經三窟莫深憂.” (제 2수) “黑鷹不省人間有, 度海疑從北極來, 正??風超紫塞, 玄冬幾夜宿陽臺, 虞羅自覺虛施巧, 春雁同歸必見猜,萬里寒空只一日, 金眸玉爪不凡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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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Formula One Belgian Grand Prix
2007년 season highlights....[series-15편]
F1 코리아 그랑프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하여
Afterabc를 통해 릴레이 응원을 했던
걸 그룹 "레인보우"팀은 선정성 이유로 공중파에서는 방송 불가 판정을
내렸다.
요즘 신곡 "A" 로 인기를 끌고 있는 걸그룹 "레인보우" 는 음악 처음과
중간 부분에 배꼽을 들어 보이는 안무로,
시청자들을 사로 잡았던 안무는 시정해서 다시 선보일 예정이다.
출처:한경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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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록키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컬러 영상으로 감상해 보세요
아~~~이럴수가????
궁궐 이야기.... 창덕궁-성정각 권역
성정각誠正閣 권역궁궐

5-h-1 영현문迎賢門
위치와 연혁 : 지금은 내의원이라 부르는 성정각의 남문이다. 『궁궐지』의 「창덕궁·성정각」조에 “성정각은 세자가 공부하는 곳이다. 그 곳의 남문을 영현문이라 한다.”<원전 1>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성정각이 세자가 공부하는 곳이었다는 것은 문의 편액을 해석할 때 도움이 되는 중요한 단서이다.
뜻풀이 : ‘영현(迎賢)’이란 ‘어진이를 맞이한다’는 의미이다. 세자가 공부하는 장소이므로, 어진이를 맞아들여 공부에 힘쓰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제작 정보 : 지금 영현문 안쪽 본채에는 현판이 붙어 있지 않고, ‘조화어약(調和御藥)’, ‘보호성궁(保護聖躬)’이란 편액과 함께 마당에 약을 찧는 절구가 있으므로 내의원으로 불리고 있으나, 이것은 순종 때의 일시적 조치였으므로 성정각으로 회복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5-h-2 보춘정報春亭

위치와 연혁 : 성정각의 동쪽 누각에 남향하여 붙은 현판이다. 『궁궐지』에 “희우루와 보춘정은 성정각의 동쪽 누각인데 동쪽이 희우, 남쪽이 보춘이다.”<원전 2>라고 하였다. 『동궐도』에도 표시되어 있다.

뜻풀이 : ‘보춘(報春)’은 ‘봄이 옴을 알린다’는 의미이다. 봄은 동쪽을 상징하고 성정각이 춘궁(春宮: 왕세자)이 독서를 하는 곳이므로 ‘춘(春)’ 자가 중의적으로 쓰인 듯하다.
5-h-3 희우루喜雨樓

위치와 연혁 : 성정각의 동쪽 누각에 동쪽을 향해 붙은 현판이다. 『궁궐지』에서는 “희우루와 보춘정은 성정각의 동쪽 누각인데 동쪽이 희우, 남쪽이 보춘이다.”<원전 3>라고 하였고, 『동궐도』에서도 비슷하게 기록했다. 『홍재전서(弘齋全書)』 1) 54권에 「희우루지(喜雨樓志)」가 있다. 그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정유(1777, 정조 1)년에 매우 가물었는데, 이 누각을 중건하기 시작하자 마침 비가 내렸고, 또 몇 개월 동안 가물다가 이 누각이 완성되어 임금이 행차하자 다시 비가내려 희우(喜雨)라는 이름을 지어 기념했다는 내용이다.<원전 4>

뜻풀이 : ‘희우(喜雨)’는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기뻐한다’[喜雨]는 뜻이다. 송나라 소식(蘇軾,1036~1101년)이 「희우정기(喜雨亭記)」2)를 지은 이래 ‘희우’는 정자의 이름으로서 각지에서 애용되었다. 창덕궁 주합루 뒤에도 희우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다.

제작 정보 : ‘喜(희)’ 자는 속자로 써서 하반부 점획(點劃)이 하나 생략되었으며 ‘樓(루)’ 자도 속체로 써서 정자(正字)와는 모양이 많이 다르다.
5-h-4 집희緝熙
위치와 연혁 : 예전에 왕세자가 거처하던 관물헌(觀物軒) 건물에 걸려 있는 어필 현판이다. 『동궐도』에는 지금의 이름이 아니라 ‘유여청헌(有餘淸軒)’으로 표기되어 있다.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년)가 세자로 책봉된 다음 이 곳에서 서연(書筵) 3)을 한 일이 있고, 1874(고종 11)년에는 순종이 이 곳에서 탄생하였다. 1884(고종 21)년 갑신정변 때에는, 사방을 한눈에 살필 수 있어 수비가 용이하다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개화파가 고종을 모시고 이 곳으로 피신하여 청나라 군사들을 대비하기도 하였다.
뜻풀이 : ‘집희(緝熙)’란 ‘계속하여 밝게 빛난다’[緝熙]는 의미이다. 『시경』 「대아(大雅)·문왕(文)」편 4)에 “심원하신 문왕이여, 아! 계속해서 밝히시고 공경하시도다.”<원전 5>라는 구절에서 온 말이다. 주자(朱子, 1130~1200년)는 “집(緝)은 이어지는 것이요, 희(熙)는 밝은 것으로 또한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원전 6>라고 하여 ‘임금[文王]의 밝은 덕이 계속하여 빛난다’는 의미로 풀이하였다.
한편 경희궁(慶熙宮)에도 집희당(緝熙堂)이 있었는데, 영조는 「집희당시(緝熙堂詩)」를 지어 “이 전각은 옛날 세자의 집이라, 집 안에 훌륭한 작품들이 새롭구나. / 계속하여 밝게 빛나니, 어진 이를 높이어 날로 더욱 친하도다.”<원전 7>라고 읊었다. 집희당은 본래 세자의 거처이고 그 뜻이 ‘계속하여 밝게 빛난다(繼續光明)’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제작 정보 : 집희라는 현판에 ‘갑자년(甲子年)’, ‘어필(御筆)’이라 덧붙여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재위하는 동안 갑자년이 들었던 영조·순조·고종 가운데 어느 임금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고종이 즉위 원년에 15세의 나이로 글씨를 썼으므로 다소 서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5-h-5 조화어약調和御藥·보호성궁保護聖躬

위치와 연혁 : 현재 성정각 앞 행각에 ‘조화어약’과 ‘보호성궁’이란 편액이 나란히 북쪽을 향하여 걸려 있다. 본래 창덕궁 내의원은 인정전 서쪽의 약방 자리에 있었다. 고종 때 내의원을 전의사(典醫司)로 개편하였고, 순종 때 창덕궁을 개조하면서 내의원이 헐리어 현판과 도구들을 이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뜻풀이 : ‘조화어약(調和御藥)’은 ‘임금이 드시는 약을 조제한다’는 의미이다.
‘보호성궁(保護聖躬)’은 ‘임금의 몸을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성(聖)’은 임금을 뜻하며 ‘궁(躬)’은 몸이라는 뜻이다.


제작 정보 : 근래에 나온 일부 책에서 이 현판들을 정조의 어필이라고 본 경우도 있지만, 임금이 스스로 ‘보호성궁’이라고 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한경지략』에서는 원해진(元海振)이 ‘화제어약(和劑御藥)’ ‘보호성궁(保護聖躬)’여덟 글자를 썼다고 했다.<원전 8> ‘화제어약’은 ‘조화어약’을 착오로 잘못 쓴 것으로 보이며 원해진은 인적 사항 미상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명필로 유명한 원진해(元振海, 1594~1651년)를 잘못 표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5-h-6 자시문資始門

위치와 연혁 : 중희당(重熙堂)의 서쪽에 위치했던 문이다. 지금은 중희당이 없으므로 마치 관물헌, 즉 집희의 출입문처럼 되어 있다. 『궁궐지』에는 “중희당이 관물헌 동쪽에 있는데, 1782(정조 6)년에 건립되었고, 동쪽이 중양문(重陽門), 서쪽이 자시문이며, 편액은 정조의 어필이다.”<원전 9>라고 되어 있다.
뜻풀이 : ‘자시(資始)’는 ‘만물이 힘입어 비롯한다’는 의미이다. 『주역(周易)』에서 나온 말로 건괘(乾卦; )의 자시(資始)가 곤괘(坤卦; )의 자생(資生)과짝을 이룬다. 「건」의 단사(彖辭) 5)에, “위대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의뢰하여 시작하니[資始], 이에 하늘을 통합하였도다.”라고 했고, 「곤」의 단사에는,“지극하다 곤의 원(元)이여, 만물이 의뢰하여 생겨나니[資生], 이에 순히 하늘을 받든다.”라고 했다. 주자의 풀이를 종합하면, ‘건원은 천덕(天德)의 큰 시작[大始]이므로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 모두 이에 힘입는다. 자시의 시(始)는 기(氣)의 시작이고, 자생의 생(生)은 형(形)의 시작이다.’<원전 10>라고 하였다.

제작 정보 : 현재의 현판이 실제 정조가 직접 쓴 글씨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5-h-7 망춘문望春門

위치와 연혁 : 관물헌 뒤의 후원으로 이어진 길가에 남쪽 방향으로 난 문이다.『동궐도』에는 희정당의 동문으로서 높은 기단(基壇) 위에 있어서 후원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되어 있다.
뜻풀이 : ‘망춘(望春)’이란 ‘봄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동궐도』에 그려진 대로 동향이 되어야 춘(春)의 의미와 어울린다. 망춘은 중국의 수·당 시대 이래로 전각이나 정자의 이름으로 즐겨 사용하였다.
제작 정보 : 현판에 쓰인 ‘?(망)’은 ‘望(망)’의 속자이다. 동궐도에는 희정당의 동문으로서 동서 방향으로 그려져 있으나, 현재는 남향으로 되어 있어 방향이 전혀 다르다. 지금 망춘문 바로 아래에 현판이 걸리지 않은 문이 동향으로 나있는데, 『동궐도』 상으로는 이 문이 망춘문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자리는 응경문(凝慶門)이 되어야 할 듯하다.
5-h-8 동인문同仁門

위치와 연혁 : 희정당의 동쪽 문으로 경사진 계단 위에 위치해 있다. 현재 집희라는 현판이 걸린 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뜻풀이 : ‘동인(同仁)’이란 ‘차별 없이 인애(仁愛)를 베풀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인덕(仁德)을 함께 행한다’는 의미도 있다. 동쪽이 오행상 인(仁)에 해당하는 방위이므로 동인이란 의미와 잘 어울린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20에 “이치가 하나로부터 각기 나누어지므로 비록 차별 없이 인애로 대해주나, 스스로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원전 11>고 하였다. 한(漢)나라 황석공(黃石公) 6)이 쓴 『소서(素書)』의 「안례(安禮)」에서는 “인을 같이하면 서로 근심하고, 악을 같이하면 서로 당파를 짓는다.”<원전 12>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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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재전서』는 정조의 문집이다. 시문·윤음·교지 및 기타 편저를 모았다.
2) 「희우정기」는 소식이 1062년에 부풍이라는 고을에 관리로 부임했을 때 지은 정자를 희우정이라고 부른 내력을 쓴 글이다.
3) 서연은 황태자나 왕세자를 가르치는 강의를 일컫는다. 강의는 조강, 주강,석강이 있었다.
4) 「문왕」은 대아편의 첫 시로, 문왕이 천명을 받아 주나라를 건설한 것을 기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5) 단사는 단전(彖傳)이라고도 하며,『주역』 64괘의 뜻, 덕, 괘문, 괘명 등을 통괄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6) 황석공은 중국진(秦) 나라 말의 은사(隱士)이자 병법가(兵法家)이다. 장량(張良)에게 병서(兵書)를 전해 주었는데, 장량은 이 병서를 읽고서 한나라 고조의 중국 통일을 도왔다고 한다.
<원전 1> 『궁궐지』, “春宮 胄筵之所也. 南曰迎賢門.”
<원전 2> 『궁궐지』, “喜雨樓報春亭, 卽誠正閣之東樓. 東曰喜雨, 南曰報春.”
<원전 3> 『궁궐지』, 보춘정 <원전 2> 참조.
<원전 4> 『홍재전서』 권54, 「희우루지」, “予名新建之樓曰喜雨. 喜雨而名其亭, 古也. 歲丁酉,重建斯樓, 時天旱久, 不雨垂月餘. 工役始而雨,左右曰瑞也, 名斯樓喜雨可乎. 予曰未也, 雨未滂?, 田將蕪矣, 曷云瑞. 又數月而不雨, 左右曰樓成矣. 予命夙駕, 共近臣, 言止于樓, 而天作雲, 沛然下雨. 左右復請以喜雨名斯樓, 予曰可. 顧近臣曰, 歲可大有, 而民樂業, 喜其大矣. 古人之以喜雨名其亭, 欲以志喜雨之喜也. 心而喜喜雨而志之, 則志乎心不忘可已. 惡乎名其亭, 心者已知之, 而人之知弗與焉. 志乎心則己獨喜其喜, 而不與人共喜也. 故喜之大者, 志乎心, 志乎心之不足, 志之於物, 志於物之不足, 遂有亭之名焉.於是乎其喜之志也大矣, 故名斯樓曰喜雨樓云.”
<원전 5> 『시경』 「대아·문왕」편,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원전 6> 주자, “緝續, 熙明, 亦不已之意.”
<원전 7> 영조, 「집희당시」, “此閣古春邸, 堂中寶墨新. 繼續光明也, 尊賢日益親.”
<원전 8> 『한경지략』 「내의원(內醫院)」, “正廳所揭板曰 和劑御藥保護聖躬八字 則元海振書也.”
<원전 9> 『궁궐지』, “重熙堂, 在觀物軒東. 正祖六年壬寅建, 東曰重陽門, 西曰資始門.堂額正祖御筆.”
<원전 10> 『주역』 「건」, “(彖曰)大哉乾元, 萬物資始, 乃統天.”: 이 구절에 대한 『본의』의 해석, “此一節者, 釋元義也. 大哉, 歎辭. 元,大也始也. 又爲四德之首而貫乎天德之始終, 故曰統天.”; 『주역』 「곤」, “(彖曰)至哉坤元, 萬物資生, 乃順承天.”: 이 구절에 대한 『본의』의 해석, “此以地道明坤之義, 而首言元也. 至, 極也.比大義差緩. 始者, 氣之始, 生者, 形之始. 順承天, 施地之道也.”
<원전 11> 『주자어류』, 권20, “理一而分殊, 雖貴乎一視同仁, 然不自親始也不得.”
<원전 12> 황석공, 『소서』 「안례」, “同仁相憂,同惡相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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