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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이야기.....창덕궁
태종(太宗, 1367~1422년)이 경복궁이 아닌 별도의 이궁(離宮)을 세우도록 명하여 1405(태종 5)년에 완성한 것이 창덕궁이다. 개성의 수창궁(壽昌宮)에서 즉위한 태종은 바로 한양의 경복궁으로 돌아왔으나, 경복궁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경복궁은 왕자의 난을 겪은 피의 현장이기 때문에 기피했다고도 알려진다. 그러나 부왕인 태조(太祖, 1335~1408년)가 건설한 법궁(法宮) 1)인 경복궁을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창덕궁에 주로 머물면서도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거나 상왕인 정종(定宗, 1357~1419년)을 위로하는 잔치를 베푸는 등의 주요 행사는 경복궁에서 했다. 어쨌거나 실록에서는 태종이 경복궁으로 행차한 것을 '이어(移御)'라고하고 창덕궁으로 간 것을 '환어(還御)'라고 한 것으로 보아 창덕궁이 태종의 주된 거주 공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궁이 완성되고 궁의 이름은 창덕궁으로 정했으나 이 때까지는 아직 궁궐로서의 여러 시설들이 갖추어지지 못하여, 태종 연간에는 건물이 계속 세워졌다. 즉, 궁 안 여기저기에 누각과 연못 등을 조성하고 석교(石橋)를 만들었으며, 1412년에는 비로소 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을 세웠다. 세조(世祖, 1417~1468년) 가 즉위하고서는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을 다시 짓고 궁내 각 건물의 명칭을 고쳤는데, 이 때 고쳐진 전각들의 이름이 대체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다.
조선 전기에는 임금들이 경복궁에서 정사를 보았으므로 창덕궁은 크게 이용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성종(成宗, 1457~1494년)이 즉위하고부터는 왕이 창덕궁에 머물면서 정사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연산군(燕山君, 1476~1506년)은 재위 중 주로 이 궁에서 정사를 보면서 실정(失政)을 거듭하기도 하였다. 왕들이 이 궁의 정전에서 외국 사절을 접견하는 일도 점점 잦아졌다.
1592(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창덕궁과 경복궁·창경궁 등 조선 왕조의 3대 궁궐은 모두 불타 버리고 말았다. 세 궁궐 가운데 창덕궁이 가장 먼저 복구에 들어가 1609(광해군 1)년에 중건되었다. 곧이어 창경궁도 복구되었지만 경복궁만은 그대로 방치되었다가 1867(고종 4)년에 가서야 중건되었다. 따라서 창덕궁은 임진왜란 뒤 중건되면서부터는 조선 왕조의 법궁인 경복궁을 대신하여 나라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치르는 역사의 주 무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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