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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통해 위키백과
나이에 걸맞지 않게 채력이 왕성한
슈퍼스타즈 부단장 "임대호"씨의
강슛 모습 ...
얼마전 한게임에서 4 골을 몰아쳐 넣는
정말 체력 하나는 끊내주는 사나이 ...
이젠 골프도 프로급으로 변신에 성공 ...
만능 스포츠맨으로 불려도 손색이없는
사나이 .. 그이름 "협보장군"

*연예인 피스컵 대회에서 여자 심판으로부터
첫번째로 퇴장당하는 "임대호"선수 ....
어휴 .... 멋적어라
담에 어디 봅시다 .. ㅋ ㅋ ㅋ

"임대호"살살좀 뛰어라 ...
어디 힘자랑하러 왔니 !!!!!
"오만석"씨의 골을 축하 해주는 ""임대호
선수 .....
만석아! 잘했어! 하이 파이브하자 ....

"임대호 " 선수의 날렵한 드리볼 .....
역시 만능 스포츠맨 다운 활기 넘치는
역동적인 모습 ...

"임대호"선수에 걸맞지 않게 ....
"신태용"일화 감독을 잡아 당기는 ....
치사한 행동 .... 에고 .... 부끄러워 ㅋ ㅋ ㅋ

"임대호"선수 골키퍼까지 재끼고 ....
골을 넣었지만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
어 .. 휴 김빠지네 ...

"협보"와 "사용"과의 희대의 스캔들 ...
정말 둘이 정분 나는거 아냐 .....

연예인 피스 스타 컵에서 빛나는 MVP를 .....
첫번째 .... "임대호"선수 축구에서는 항상
첫번 째야 .... 퇴장도, MVP가도 .... ㅋ ㅋ ㅋ

"임대호"선수가 골세레모니를 해보지만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
그것도 모르고 폼을 멋지게 잡았네 ....

"협보"장군으로 전장터에서는 용맹스러운
힘센 장군으로 나오는데 ...
왜 남자와 사랑을한다는 어린 딸들의
질문에 당혹하기만하다는 어떤 주부의
말씀이 생각 나는군요

드라마 "주몽"종방기념장에서
'협보 "와"사용 "이가 포옹을 .....
다들 오해하겠다 ㅋ ㅋ ㅋ

"임대호"변신에 성공하다 !!!!!!
머리는 안정환 스타일로 .....

"헤딩슛"도 잘해요 ... 암튼 ....
못하 는게 없다니까????

슈퍼스타즈 팀원들 ....
많이 빠지긴했지만 ... www.superstars.kr

조선왕릉 이야기 ..... 파주 장릉 편
사적 제23호(비공개) 경기도 파주시 갈현리 산 25-1

<인조와 인렬왕후의 합장릉이다. 영조 때인 1731년 현재의 장릉 자리로 이장하면서 왕과 왕비를 합장하였다>
선조의 손자이며 광해군의 조카인 인조(1595~1649)는 서인 세력을 등에 업고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서인 세력이 친명주의자였던 만큼 인조는 청나라와 적대적인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청나라와 굴욕적인 군신 관계를 맺고, 맏아들과 둘째아들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효종)을 볼모로 잡히기에 이른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하고 청나라에 대한 적대 감정을 풀지 못하여, 청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소현세자와 극도의 불화를 일으킨다. 소현세자, 봉림대군은 인렬왕후(1594~1635) 소생이다. 인렬왕후는 인조가 사가에 있던 시절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장릉의 정자각 배위청의 전돌과 초석들.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국제 정세를 잘못 읽은 탓에, 지금의 송파인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을 겪고, 두 아들을 청나라에 볼모로 보낸다>
인조는 인렬왕후가 죽자 지금의 파주시 문산읍 운천리에 장사 지냈으며, 자신은 그 오른쪽에 묻혔는데, 뱀과 전갈이 석물 틈으로 집을 짓자 영조 때인 1731년 현재의 장릉 자리인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로 옮기면서 합장하였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쭉 뻗은 참도의 박석들>
24년의 재위 기간 내내 고통과 굴욕의 세월을 보내다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인조를 만나러 금천교를 건넌다>
장릉은 왕과 왕비의 합장묘로, 옛 능에서 옮겨올 때 병풍석, 난간석, 혼유석 등의 크기가 새 능에 맞지 않아 새로 만들었다. 따라서 장릉에서는 처음 조성한 17세기의 석물과 새로 조성한 18세기의 석물이 함께 어우러진다. 병풍석은 구름 무늬와 십이지신상 대신에 모란과 연꽃 무늬를 새기고 있다. 석호는 통통한 몸체에 짧막한 다리, 삐죽이 튀어나온 송곳니가 독특한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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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이야기....온릉 [편]
사적 제 210 호 (비공개)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19
< 장릉 | 長陵 >
<중종왕비 단경왕후가 홀로 잠든 온릉. 중종을 왕위에 올려놓은 반정 세력에 의해 친정아버지인 신수근이 죽임을 당하는 바람에 왕비 책봉 7일 만에 사가로 쫓겨났다. 1739년 영조 때 복위되면서 왕비 능으로 추봉되었기에 상설이 간소하다>
조선 11대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端敬王后, 1487∼1557) 신씨의 능이다.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왕비의 부친 신수근이 반정으로 참살되어 죄인의 딸이 왕비로 부적하다는 반정공신들의 주청으로 왕비 책봉 7일 만에 폐출되어 사제로 나갔다. 폐비 신씨는 소생 없이 71세로 승하했으며, 친정 묘역 언덕에 장사지냈다.
<온릉의 정자각. 중종은 반정 이후 공신들의 의견을 뿌리치지 못하고 단경왕후를 폐비 조치하였으나, 단경왕후를 늘 잊지 않았다고 한다>
1698년 숙종은 연경궁 내에 사당을 세워 춘추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한식에는 묘제를 지내게 했다. 1739년 영조는 익호를 단경(端敬), 능호를 온릉(溫陵)으로 추봉하고 새로이 상설을 설치하면서 추봉된 왕비릉인 정릉, 사릉의 상설을 따랐다.
<온릉의 석물들. 온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 무석인 등이 생략되었고, 석양과 석호, 석마 등의 수도 줄어들었다. 추봉된 왕비의 예우에 따라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문석인과 조각선이 얕고 가는 사각 장명등 문석인이 대동한 석마>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능침 주위로 양석과 호석 각 1쌍을 배치하고, 혼유석 1좌와 양측에 망주석 1쌍을 세웠으며, 3면의 곡장을 설치하였다. 한 단 아래에 문석인과 마석 1쌍씩, 중앙에 장명등석이 있고, 능 아래에 재실이 있다.
궁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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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영추문, 신무문, 계무문, 광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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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와 연혁 : 경복궁의 서쪽 궁문이다. 동쪽의 건춘문과 짝을 이룬다. 오행 상서쪽을 상징하는 계절이 가을이므로 이와 같이 이름지었다. 이 문은 주로 문무백관이 출입하던 곳으로 건춘문과 똑같은 규모였다. 현재의 문은 1975년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한 것이다.
뜻풀이 : '영추(迎秋)'란 '가을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건춘과 마찬가지로 영추 또한 『예기』의 「월령」 편에서 다음과 같은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이 달에는 입추가 있으므로 입추 사흘 전에 태사가 천자를 뵙고 '아무 날이 입추이니 천지의 성덕이 금위(金位) 1)에 있습니다' 하고 아뢴다. 천자는 재계하다가 입추일에 삼공·구경·제후·대부들을 친히 거느리고 서쪽 교외에 나가 '가을을 맞는다[迎秋].'" <원전 1> 후한 말기의 대표적 유학자로 『예기』 주석의 틀을 마련한 정현(鄭玄, 127~200년) 2)은 "영추라는 것은 백제(白帝) 백초거(白招拒) 3)를 서쪽 교외에 나가서 제사지내는 것이다"고 했다. <원전 2> 가을을 맞이함, 곧 영추는 서방의 백제(白帝)를 제사지내는 행위로 풀이한 것이다. 2) 정현. 자는 강성(康成). 유가 경전 연구에 힘써, 옛 문장들을 새롭고 쉽게 풀었다. 평생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들을 가르치는 데 몰두하여 훈고학의 시조로 존경을 받았다. 3) 서방의 황제는 오행에서 백색의 기운에 해당하므로 백제라고도 한다. 백제의 이름이 백초거다.
<원전 1> 『예기』 「월령」, "是月也, 以立秋, 先立秋三日, 大史謁之天子曰, 某日立秋, 盛德在金. 天子乃齊, 立秋之日, 天子親帥三公九卿諸侯大夫, 以迎秋於西郊." <원전 2> 『예기』 「월령」, "鄭氏曰, 謁告也. 迎秋者, 祭白帝白招拒於西郊之兆也." <원전 3> 『고종실록』 권2, 고종 2년 9월 17일(己卯). 이 책 28쪽의 원전 3을 참조하라.
뜻풀이 : '신무(神武)'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신묘하게 뛰어난 무용(武勇)'을 의미하며, 또한 신령스러운 현무(玄武)로도 이해할 수 있다. 오행에서 북쪽은 어둠, 죽음, 살상(殺傷) 등을 의미하며 이 방향을 상징하는 상상 속의 신수(神獸)가 현무다. 『주역』 「계사상전(繫辭上傳)」1)에 다음과 같은 용례가 보인다. "그러므로 시초(蓍草) 2)의 덕은 둥글면서 신묘(神妙)스럽고, 괘(卦)의 덕은 네모져 지혜로우며, 여섯 효[六爻]의 뜻은 변화하여 길흉을 알려 준다. 성인(聖人)이 이 괘와 효의 내용으로써 마음을 깨끗이 씻고 은밀한 데에 물러나 감추며, 길흉간(吉凶間)에 백성과 더불어 근심을 함께한다. 신령스러운 능력으로 미래를 알고 지혜로 과거의 일을 간직하니, 그 누가 이에 참여하겠는가. 옛날의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신묘한 무력[神武]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은 자일 것이다."<원전 2> 신무문의 성벽에는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온 세상이 태평스런 봄날과 같다'는 뜻이다. 온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리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제작 정보 : 현판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이현직(李顯稷)<원전 3>이 썼다. 이현직은 고종 때 어영대장 등의 관직을 지낸 이다. 2) 시초는 원래 풀의 이름인데, 고대에 중국에서 이 줄기를 잘라 주역점을 쳤다. 이후 대나무 산가지로 바뀌어 서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원전 1> 『태조실록』 권8, 태조 4년 9월 20일(庚申, "是月, 太廟及新宮告成....(중략)...後築宮城, 東門曰建春, 西曰迎秋, 南曰光化門. 樓三間有上下層, 樓上懸鍾鼓, 以限晨夕警中嚴. 門南左右, 分列議政府, 三軍府, 六曹, 司憲府等各司公?." <원전 2> 『주역』 「계사상전」, "是故, 蓍之德, 圓而神, 卦之德, 方以知(智). 六爻之義, 易以貢. 聖人, 以此洗心, 退藏於密, 吉凶, 與民同患, 神以知來, 知以藏往, 其孰能與於此哉. 古之聰明叡知神 武而不殺者夫." <원전 3> 『고종실록』 권2, 고종 2년 9월 17일(己卯). 이 책 28쪽의 원전 3을 참조하라. 뜻풀이 : '계무(癸武)'란 '북쪽의 현무'를 뜻한다. '계(癸)'는 천간(天干)의 마지막이며 방위로는 '북쪽'에 해당한다. '무(武)'는 북쪽을 상징하는 동물인 '현무(玄武)'를 의미한다.
제작 정보 : 서체는 전서체(篆書體)이며 돌에 새긴 금석문이다. 특히 '癸(계)'자는 소전(小篆) 3)으로 써서 알아 보기가 쉽지 않다.
────────────────────────── 1) 벽돌을 쌓아 둥근 아치형을 이루도록 만든 문을 월문이라 부른다. 2) 『궁궐지』는 헌종조(재위1834~1849년)에 발행한 것과 숙종조(재위1674~1720년)에 발행한 것이 전한다. 헌종 때 것은 각 건물의 연혁과 기능 등이 제시된 반면 숙종 때 것은 건물들의 규모만 밝혔다. 이 책에서 『궁궐지』는 따로 명시가 없는 한 헌종 때 것을 가리킨다 3) 전서는 대전(大篆)과 소전으로 나뉜다. 중국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기원전 259~210년)때 복잡한 대전을 간략화한 것이 소전이다. <원전 1> 『궁궐지』, "武淸門, 門外宮墻, 石月門癸武門." <원전 2> 『일성록(日省錄)』 고종 5년 6월 10일(丙辰), "營建都監, 以新建各殿堂號及門名別單啓. 別單...(중략)...興禮門外東墻門協生門, 西墻門用成門, 北內墻門內武門^神武門, 東邊門癸武門, 外東墻門 西墻門秋成門金華門."
뜻풀이 : '광무(廣武)'는 '무용(武勇)을 넓힌다'는 뜻이다. '광(廣)'은 '넓히다','무(武)'는 '무용'을 의미한다. 한편, 앞의 신무문에서와 마찬가지로 '무(武)'는 '현무'로도 이해할 수 있다. 오행상 북쪽은 어둠^죽음^살상 등을 의미하며 이를 상징하는 동물이 현무이다. |
여자가 봐도 부러운 박한별 몸매!
이번에 공포영화 찍으면서 요가로 몸매 가꿨다던데...
나도 요가나 해볼까ㅋㅋㅋㅋㅋ
몸매 선이 진짜 예쁜듯!



사적 제 206호 |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산1-1

융건릉 가는길 :
수원역 -> 오산방향(병점역) -> 안녕동(343번도로) -> 이정표
< 융릉 | 隆陵 >

정조의 친부모인 사도세자(추존 장조)와 혜빈 홍씨(추존 장조왕비 헌경왕후)의 합장릉인데, 혼유석은 하나만 놓았다. 모란과 연꽃 무늬가 화려한 병풍석과 꽃봉우리 모양의 인석이 눈길을 끈다. 인석에 새겨진 '손巽' 자는 동남쪽을 가리킨다>
조선 21대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정조의 부친 장헌세자(사도세자, 1735~ 62) 장조와 비 혜경궁 홍씨(헌경의황후, 1735~1815)의 합장릉이다. 이복형인 효장세자(추존 진종)가 요절하고 영조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태어난 장헌세자는 2세 때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장헌세자가 부왕을 대신하여 정무에 임하게 되면서 노론에서는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와 숙의 문씨 등을 내세워 모함하여 세자는 결국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


<무석인과 문석인의 뒷모습. 머리 장식의 세부적인 표현이 사실적이며 매우 세련되었다. 조선 후기에 문예 부흥의 꽃을 피운 정조 시대 분위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1762년 영조는 28세 나이에 비참하게 죽은 장헌세자에 대해 후회하면서 시호를 사도(思悼), 묘호를 수은묘(垂恩墓)라고 했다. 사도라는 것은 '세자를 생각하며 추도한다'는 뜻이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사소설체로 쓴 『한중록(恨中錄)』을 남겼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가 죽은 뒤인 1762년 혜빈(惠嬪)의 호를 받았다.

<추봉된 능이지만 병풍석을 설치하였고, 무석인도 배치하여 왕릉으로서의 격식에 다가갔다.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석마는 무석인 뒤쪽에만 배치하였다>
사도세자의 능은 원래 경기도 양주군 남쪽 중랑포 배봉산에 있었는데, 정조가 즉위하면서 바로 아버지의 존호를 장헌(莊獻)으로 올리고, 1789년에는 이곳으로 묘를 옮긴 후 능호를 융릉(隆陵)으로 바꿨으며, 고종 때 의황제(懿皇帝)로 추존함과 동시에 어머니도 의황후(懿皇后)로 올렸다.
< 건릉 | 健陵 >

<사도세자의 둘째아들로 영조에 의해 왕세손으로 책봉되었다가 왕위에 오른 정조와 효의왕후를 합장한 건릉의 곡장. 꽃담으로 장식되었다. 사도세자 융릉과 마찬가지로 봉분 앞에는 혼유석이 하나만 놓여 있다>
조선 22대 정조(正祖, 1752~1800)와 효의왕후(1753~1821) 김씨의 합장릉이다. 정조는 융릉에 있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둘째 아들로, 8세 때 왕세손에 책봉되었다. 정조는 제위 24년 동안 탕평책을 실시하여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고, 규장각을 두어 학문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수원에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성을 쌓았다. 무엇보다 지극한 효심은 백성들에게까지 추앙을 받았다.
<장명등을 비롯하여 건릉의 석물들은 사도세자의 융릉과 거의 똑같다. 팔각 장명등에 새겨진 매·란·국 꽃무늬는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운 정조 시절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아버지의 원혼을 위로하고 달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영조의 눈을 어둡게 했던 당쟁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화성(華城) 천도를 꿈꾸었다.
효의왕후도 정조에 못지않게 효성이 지극해 시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지성으로 모셨다. 효의왕후는 1800년 순조가 즉위하자 왕대비로 진봉되었고, 소생 없이 69세로 승하했다. 능호를 정릉(靜陵)이라 했다가 건릉에 합장되면서 능호를 따로 쓰지 않았다.

<정조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화성으로 천도를 꿈꾸었다. 왕릉은 화려하고 기운찼던 그 꿈을 소리 없이 그리고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건릉은 사도세자의 현륭원 동쪽 구릉에 있던 것을 서쪽 구릉으로 이장하면서 효의왕후와 합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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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의 비밀.... 홍유릉 편


사적 제 207 호 |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

홍유릉 가는길 :
서울시내 -> 내부순화도로 -> 북부간선도로 -> 춘천방향 -> 남양주시청방향 -> 이정표
< 홍릉 | 洪陵 >

<홍릉은 1897년 조선의 국호를 버리고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합장릉이다>
조선 26대 고종황제(高宗皇帝, 1852 ~1919)와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 95) 민씨의 능이다. 고종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로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익종의 비인 신정왕후 조씨의 지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고종은 조대비에게 수렴청정을, 흥선대원군에게 국정을 총괄하게 하였다. 고종은 1866년 명성황후 민씨를 맞아들였는데, 민씨의 척족들은 강력한 쇄국정치를 폈던 대원군에 맞서 대외 개방정책을 취했다.

<참도는 삼단이며, 중앙을 좌우보다 한 단 높게 하였다>
개화파와 수구파 사이가 악화되어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이 일어나고,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그 와중에 일본은 1895년 을미사변을 일으켜 왕궁을 습격,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폭거를 자행했다.
고종은 일본의 압력으로 민비를 폐서인시켰다가 하루 만에 서인에서 빈의 호칭을 내리고, 그해 다시 왕후로 복위시키는 조서를 내려 숭릉(崇陵) 오른쪽 에 자리잡고 숙릉(肅陵)이란 능호를 내려 국장절차를 진행하다가 김홍집 내각이 실각함에 따라 5개월 만에 중단되었다.

<병풍석과 난간석 사이 지면을 울퉁불퉁한 치맛주름 형태의 상석裳石으로 메웠다>

<문·무석인외에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등 석물이 사열하듯 참도를 따라 홍살문까지 줄지어 서 있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 수립을 선포하고, 연호를 광무라 했으며 황제가 되었다. 이때 민비가 명성황후로 추존되고, 능호를 홍릉(洪陵)이라고 다시 정하고 2년 만에 국장이 마무리되었다. 이곳이 오늘날의 청량리 홍릉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퇴위한 뒤 1919년 승하하자 지금의 남양주시 금곡동에 고종의 능을 만들면서 천장론이 일었던 민비의 능도 옮겨와 합장릉으로 했다.
< 유릉 | 裕陵 >

<유릉은 하나의 봉분에 순종황제와 순명황후, 계비 순정황후 세 분을 합장한 유일한 예이다>
조선 마지막 능으로 27대 순종황제(純宗皇帝, 1874~1926)와 원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1872~1904), 계비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1894~1966)의 삼합장릉이다. 순종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로 고종의 뒤를 이어 1907년 황제로 즉위하면서 연호를 융희로 고쳤다.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황제와 순명황후, 계비 순정황후의 합장릉. 고종황제 홍릉과 마찬가지로 황제 능의 격으로 조성되었다>
순종의 재위기간은 조선왕조 519년의 역사에 종언을 구하는 비사(悲史)와 민족의 주권을 수호하려는 저항의 통사(痛史)의 시기였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조선왕조가 멸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왕'으로 강등된 순종은 망국의 한을 달래다 1926년 승하하므로 순종황제의 인산(因山)일인 6월 10일이 일제에 항거한 6.10만세운동이 일어난 날로 알려져 있다.
순명효황후는 1897년 황태자비가 되었으나 순종 즉위 전에 승하하여 지금의 능동 어린이공원에 모셔졌다가 순종 승하시 천장하여 함께 모셔졌다.

<해태는 시비와 선악을 본능적으로 판단한다는 동물로 머리 가운데 뿔이 있다.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들이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재를 물리치는 동물로 여겨 궁궐 등에 장식했다>
순정효황후는 1906년 계비가 되었다가 순종이 즉위하자 황후가 되었다. 나라를 잃은 후 일제의 침탈행위,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었던 순정효황후는 만년에 불교에 귀의하여 슬픔을 달래다가 1966년 춘추 72세로 승하하여 유릉에 합장되었다.
*이 글은 문화재청이 문화재청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정보이며, 문화재청의 허락을 득하여 게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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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말레이시아 세팡 서킷에 등장한 5명의 검은 머리 청년들. '머신'이라고 불리는 포뮬러 원(F1) 경주용 차량을 타고 트랙을 내달린 이들은 한국인 최초의 F1드라이버를 꿈꾸는 이들이다. 이날 테스트는 한국자동차경주협회와 'F1 코리아 그랑프리' 운영법인인 카보(KAVO)가 공동으로 한국인 드라이버 육성 계획을 본격화하면서 이뤄졌다. 한국 모터스포츠의 10년 흥행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평가받는 의미있는 첫걸음이다. 누가 선발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들이 누구도 쉽게 꿈꾸지 못했던 한국인 최초의 F1 드라이버에 가장 근접한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테스트에 참여한 5명의 드라이버 중 국내파 출신으로 최고령자인 유경욱(30)씨와 최연소자인 안석원(23)씨를 만났다
◇ 나이만큼이나 각기 다른 입문
유씨는 원래 미케닉(정비 전문가) 출신이다. 역시 미케닉 출신인 친형의 권유 때문이었다. 미션 부문 전문 미케닉으로 경력을 쌓았던 그가 드라이버에 입문한 것은 우연이었다.
유 씨는 "소속된 팀의 드라이버가 미션에 대해 계속 불만을 토로해 직접 테스트를 하겠다고 나섰다"면서 "테스트 결과 팀 드라이버보다 기록이 좋았고 이를 지켜본 단장이 드라이버로 영입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대를 이어 드라이버에 도전하는 경우. 안씨의 아버지는 영종도의 오프로드 코스와 용인스피드웨이 초창기 시절 드라이버로 활동했다. 안씨가 초등학생이 되자 아버지는 카트 연습장으로 그를 이끌었다. 피는 못속였다.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그는 정식으로 카트 레이싱팀 소속 드라이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스피드
말레이시아 세팡 서킷의 경험에 대해 물었다.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대답이 거침이 없었다.
안씨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두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빠르게 코너를 진입하고 이를 탈출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테스트는 트랙에 대한 장악력. 랩타임. 기록 단축 속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테스트에 사용된 머신은 F1 레이스에서 사용되는 머신 수준의 출력을 자랑하는 르노V6 머신. 트랙 역시 F1 그랑프리가 열리는 장소다. 트랙과 머신 모두.참가자들이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 척박한 환경. 꿈은 크다
드라이버 초기 가족의 반대는 이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특히 유씨는 어머니가 관전하러 온 첫 경기에 7대의 차량이 유씨의 차를 들이받는 흉직한 모습을 보여줬다. 어머니는 당장 그만두라며 울며 그를 잡아끌었다. 안씨 역시 어린 나이에 운전대를 잡는다고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레이싱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꺾기에는 모터스포츠의 대한 열망이 뜨거웠다. 국내에서는 포률러 대회가 2005년 이후 자취를 감춘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최근 F1 드라이버를 향한 꿈으로 다시금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유씨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도전에 임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드라이버로 활동하면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경쟁에서 결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 평소에는 모범 운전사?
드라이버의 평소 운전은 어떨까. 유씨의 애마는 GM대우의 '마티즈'. 놀라서 물으니 "연비 좋고. 혜택 많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맞는 말이다. 안씨는 르노삼성의 'SM5'를 운전한다. 초등학교때부터 고속의 레이싱을 즐겼지만 운전면허증은 고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땄다. 안씨는 달리는 데에만 집중했던 터라 아직은 주차가 서툴다. 둘 다 지금까지 과속으로 적발된 적이 한번도 없다. 일반도로에서는 드라이버가 아닌 그냥 평범한 운전자일 뿐이다
사적 제 209 호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 산65-1 조선 왕릉의 비밀.... 사릉



사릉 가는길 :
경춘국도 금곡 -> 사릉리 방향 390번 도로(좌회전) -> 우측으로 이정표, 근처에 광해군묘와 홍유릉이 있고, 광릉은 약 40분 거리에 있다
< 사릉 | 思陵 >

<처음에 대군부인의 예우로 장사 지내졌다가 후에 왕비의 능으로 추봉되어 병풍석과 난간석이 모두 생략되었다>
조선 6대 단종 비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 송씨의 능이다. 정순왕후는 1454년(단종 2)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다음해에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자 왕후는 의덕왕대비로 진봉되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참도가 정자각 앞에서 끊겨 있다. 맞배지붕의 정자각은 건물채가 짧아 평면이 정사각형에 가까운 느낌이다>
1457년에 단종을 복위코자 한 사육신 사건으로 단종은 노산군으로, 대비 역시 부인으로 강봉되었다. 그 후 노산군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면서 단종과 생이별을 하고, 동대문 밖 연미정동에 초가를 지어 정업원(지금의 청룡사)이라 이름을 짓고, 그곳에서 단종을 그리워하며 지냈다. 단종이 17세의 나이로 죽음을 당한 것을 알게 된 정순왕후는 매일 절 뒤 산봉우리(동방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비통해했다. 정순왕후는 소생 없이 82세까지 살았다.
<해주 정씨 묘역의 문석인 앞에서 바라본 사릉의 정자각. 정순왕후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단종의 누님인 경혜공주가 시집인 정씨 집안 묘역에 모셨다>

<사릉의 능역은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왕릉 가운데 소나무 숲이 가장 잘 보존된 곳 중 하나이다>
중종은 단종부터 7대에 걸친 왕대를 산 정순왕후를 대군부인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가 출가한 정씨(해주 정씨) 가족묘역에 안장하고 제사를 지내주었다. 1698년 숙종에 의해 노산군이 단종대왕으로 복위되자 부인도 정순왕후로 복위되었으며, 신위는 창경궁에 모셔져 있다가 종묘에 안치되었다. 평생 단종을 생각하며 일생을 보냈다 하여 능호를 사릉(思陵)이라고 붙였다.
* 미술문화에서 발간한 [조선 왕릉 답사 수첩]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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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궁문 宮門
1-h-1 광화문 光化門
※ 각 항목의 번호에서 현판 및 금석문 등 공간의 이름으로 볼 수 있는 사항은 h, 주련 및 시문, 산문 등은 j로 표기합니다 ※
위치와 연혁 :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1395(태조 4)년 경복궁의 중요한 건물들을 세운 뒤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실록의 태조 4년 9월 29일 기사에서는 정전(正殿)인 근정전과 편전(便殿)인 사정전, 침전(寢殿)인 경성전·연생전·강녕전 등을 지어 궁궐의 기본 구조를 갖춘 다음, 궁성을 쌓은 뒤 동·서·남쪽에 궁문을 세우고, 동문을 건춘문(建春門), 서문을 영추문(迎秋門), 남문을 광화문이라 이름 지었다고 하였다.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의 다른 전각들과 마찬가지로 불에 탔다가 1867(고종 4)년에 다시 지어졌다.
광화문의 석축에는 홍예문이 세 개 나 있어, 가운데의 홍예문으로는 왕이 출입하고 신하들은 좌우의 문으로 다니도록 했다.
1927년 총독부 청사가 들어설 때 광화문은 건춘문의 북쪽으로 옮겨졌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불탔다. 이후 1968년에 돌 축대[石築] 일부를 수리하고 문루를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한 광화문이 우리의 기억에 널리 알려진 모습이다. 2006년 12월 시작된 광화문 제모습 찾기 사업에 따라 원래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설 예정이다.
뜻풀이 : '광화(光化)'란 천자나 군주에 의한 덕화(德化)를 의미한다. '광(光)'의 전거는 『서경(書經)』에서 찾을 수 있다. 「요전(堯典)」의 "옛 요 임금를 떠올려보건대, 공을 크게 세우신[放勳] 분이시다. 경건하고 밝으시며 문채 1)가 나고 생각함이 편안하고도 편안하며 진실로 공손하고 참으로 겸손하시었다. 빛[光]이 온천하에 빛나 하늘과 땅에 가 닿았다."<원전 1>는 구절이나 혹은 『서경』 「홍범(洪範)」의 "무릇 여러 백성[庶民]들이 지극하게 펼쳐 말한 바를 교훈으로 삼고 행해야만이, 천자의 빛[光]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천자가 우리들의 부모가 되어야 천하의 왕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원전 2> 등과 같은 대목이 그렇다.
중국 송나라 때의 성리학자 채침(蔡沈, 1176~1230년) 2)은 「홍범」의 '광'에 대해"도덕의 광화(光華)이다. 천자는 백성들[庶民]과 비교할 때 성(性)이 똑같을 뿐이니, 다스림에 목표로 삼아야 할 바[皇極]에 대해 백성들이 펼쳐 말한[敷衍] 바를 교훈으로 삼고 행하면 도덕의 광화를 가까이 할 수 있다."라고 풀이하였다.<원전 3> 즉 '광'을 천자의 도덕적 광화라고 이해한 것이다.
'화(化)'는 『주역(周易)』에서 건(乾)괘를 풀이하면서 "세상을 좋게 하고도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며, 덕이 넓어 교화한다"<원전 4>라고 한 데에서 전거를 찾을 수 있다.
이 '광'과 '화'가 합쳐진 '광화(光化)'라는 표현은 『위서(魏書)』 「함양왕희전(咸陽王禧傳)」에서 찾을 수 있다. "희(禧)가 대답하였다. '폐하의 성스러움은 요 임금이나 순 임금보다 더 뛰어나 중원을 광화하셨습니다. 신이 비록 밝은 법칙을 받들어 아뢰어도 매사 어긋나니, 장차 어떻게 황경(皇經)을 선포하고 제칙(帝則)을 부찬(敷贊)하겠습니까? 3) 어긴 죄는 실로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원전 5> 함양왕 희 4)의 말 가운데 '성스러움으로 중원을 광화하였다'는 구절에서, 광화가 곧 군주의 교화를 의미함을 확인할 수 있다.
제작 정보 : 2006년까지 광화문에 걸려 있던 현판의 글씨는 박정희(1917~1979년) 전대통령이 썼으며, 한글체이다. 사진은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지기 전까지 걸려있던 임태영(任泰瑛)의 글씨인데, 1916년경에 촬영된 사진의 유리 원판을 디지털 기술로 복원한 것이다. 임태영은 1865년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으로서 영건도감(營建都監) 제조(提調) 5)직을 맡아 공사를 총지휘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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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채(文彩)는 아름답게 광채난다, 밝고 교양이 있다는뜻이다.
2) 채침은 주자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그리고 훗날 주희가 완성하지 못한 『서경』의 주석을 수십 년 연구하여 『서집전(書集傳)』을 완성하였다.
3) 황제의 명을 알리고 법과 규칙을 알릴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4) 함양왕 희는 남북조 시대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 재위471~~499년)의 동생이다.
5) 제조는 감독관에 해당하는 조선의 관직명이다.
<원전 1> 『서경』 「요전」, "曰若稽古帝堯 曰放勳. 欽明文思安安, 允恭克讓, 光被四表, 格于上下."
<원전 2> 『서경』 「홍범」, "凡厥庶民, 極之敷言, 是訓是行, 以近天子之光. 曰, 天子作民父母, 以爲天下王."
<원전 3> 『서경』 「홍범」, "光者, 道德之光華也. 天子之於庶民, 性一而已. 庶民, 於極之敷言, 是訓是行, 則可以近天子道德之光華也."
<원전 4> 『주역』 건괘(乾卦), "善世而不伐, 德博而化."
<원전 5> 『위서』 「함양왕희전」, "禧對曰, 陛下, 聖過堯舜, 光化中原, 臣雖仰稟明規, 每事乖互, 將何以宣布皇經 敷贊帝則 舛違之罪, 實合刑憲."
1-h-2 건춘문 建春門
위치와 연혁 : 경복궁의 동쪽 궁문이다. 서쪽의 영추문과 짝을 이룬다. 오행(五行)에서 동쪽을 상징하는 계절이 봄이므로 이와 같이 이름지은 것이다. 경복궁 창건 당시 세웠던 문은 임진왜란 때 불탔으며, 고종 때 중건한 지금의 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을 돌로 된 석문 위에 세운 것이다.
뜻풀이 : '봄을 세운다'는 뜻이 된다. '건(建)'은 입(立)과 통하므로 이를 입춘(立春)의 의미, 즉 '봄이 시작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오행에서 동쪽은 봄과 통하므로 동쪽 문에 춘(春) 자를 흔히 붙인다.
'건춘(建春)'이란 용어는 『예기(禮記)』의 「월령(月令)」 편 가운데 "1월에 태양은 영실성(營室星) 자리에 있고, 해질녘에는 삼성(參星)이 남중(南中)하며, 아침에는 미성(尾星)이 남중한다. 1) 그 날은 갑을(甲乙)이고 그 제(帝)는 태호(太호) 2)이며 그 신은 구망(句芒) 3)이다....(중략)...기러기가 온다."<원전 1>에 대한 공영달(孔穎達, 574~648년)의 주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국 당나라 때의 학자인 공영달은 이 구절을 성인이 천시(天時)를 받드는 일, 그리고 만물과 절후를 명확히 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리고 나서 후한 때의 학자인 채옹(蔡邕, 133~192년)의 말을 빌려 '먼저 봄을 세우고[建春] 하늘을 받든다'고 덧붙였다.<원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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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실성,삼성, 미성은 모두 별자리이름들이다.
2) 태호는 삼황 가운데 복희씨를 말한다. 목덕(木德)으로 황제가 되었는데, 목은 곧 봄에 해당한다.
3) 구망은 오제 가운데 소호금천씨의 아들로 목덕의 임금을 돕는 신이며,죽어서 나무를 다스리는 신이되었다.
<원전 1> 『예기』 「월령」, "孟春之月, 日在營室, 昏參中, 旦尾中. 其日甲乙, 其帝大호, 其神句芒...(중략)...鴻雁來."
<원전 2> 『예기집설(禮記集說)』 권36, "故先建春以奉天, 奉天然後立帝, 立帝然後言佐."
<원전 3> 『고종실록(高宗實錄)』 권2, 고종 2년 9월 17일(己卯), "營建都監, 以景福宮各殿堂·各門懸板書寫官【交泰殿曺錫元, 康寧殿李載冕, 延生殿李載元, 慶成殿趙成夏, 含元殿趙寧夏, 麟趾堂李周喆, 千秋殿鄭範朝, 萬春殿宋熙正, 光化門任泰瑛, 建春門李景夏, 迎秋門許棨, 神武門李顯稷】別單, 書人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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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의 비밀.... 광릉편


사적 제 197 호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산 99-2

광릉 가는길:
서울(미아리)→의정부→축석고개→광릉수목원→광릉(33㎞)
< 광릉 | 光陵 >

<세조는 봉분 주위에 둘렀던 병풍석을 없애고 난간석만 두르는 등 능제를 간소화하였다>
조선 7대 세조(世祖, 1417~68)와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83) 윤씨의 능이다. 광릉은 조선조 내내 풀 한 포기의 채취도 금할 정도로 잘 보호되어 동식물의 낙원이자 천연의 자연 박물관이다.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1445년 수양대군으로 책봉되었다. 권력에 대한 야심이 컸던 세조는 1452년 단종 즉위 후 다음해 1453년 10월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키고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1455년 단종에게서 왕위를 건네받았다.
<광릉의 숲은 세조의 유언대로 조선왕조 내내 풀 한 포기도 뽑지 못하게 할 정도 잘 보호되어 오늘날에는 천연 그대로 살아 있는 자연 박물관이 되고 있다>
밖으로는 국력을 크게 강화해 두 차례나 북방의 여진족을 정벌하거나 회유하였고, 안으로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찬술(纂述)하고 편찬(編纂)을 시작하는 등 국가의 모든 제도를 정비하는 많은 치적을 쌓았다.

<정희왕후 능역에서 바라본 정자각. 광릉은 참도가 없는 유일한 조선왕릉이다>

<광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동원이강릉으로 조영된 첫 왕릉이다>
정희왕후는 판중추부사 윤번(尹?)의 딸로 11세 때 가례를 올려 슬하에 의경세자(추존되어 덕종), 예종(睿宗), 의숙공주를 두었다. 의경세자가 20세에 요절하고, 예종이 19세로 즉위하여 1년 2개월 만인 20세에 승하하자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13세의 자산군(者山君, 成宗)을 왕위계승권자로 지명하여 당일로 즉위시키고 7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했다. 계유정난 때 세조를 독려했던 일화나 조선시대 최초의 수렴청정 등 정희왕후는 강인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1483년 춘추 66세로 온양행궁에서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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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Getty Images via Daylife
슈퍼스타즈 단장 "정준호"의
힘으로 몰아 붙이는 몸싸움의 기술,,,, ㅋㅋㅋ
여성축구선수야..... 이거 의도적아냐 ㅎㅎㅎ

연예인 피스스타컵에서 제법 강슛하는...
"정준호" 선수.....
실제로는 축구실력이 어떨런지???

경기도중 상대팀으로부터 강한 태클을 받고
넘어진 "정준호"선수.....
꾀병이 심한듯..... 아픈표정이 아니라
누워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표정....

어.....허 제법입니다.... 그려
드리볼 실력이....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와 FC서울과의 친선경기
에 앞서 서울시청 여자축구단과 연예인올스타
팀과의 경기에서 드리볼하는 "정준호"선수

2002년 부터 청룡영화상 시상식 MC를
맡아 .....
환상적인 콤비를 이루는 "김혜수"씨와
함께....

"정준호"씨의 1인 3색 표정들...
축구를 관전하는 표정이 정말로....



밝은사회국제클럽 홍보대사로 위촉된...
"준호"군과 "선아"양....
"정준호"씨는 좋은 일도 많이 하시네요..
사랑의밥차도 있고 움직이는 목욕탕도 있고
각종 홍보대사며....
남들은 한가지도 못하고 사는 사람이 넘
많은데.... "준호"씨는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겠어!

"정준호" F1그랑프리 전남 유치를 환영
한다는 인사말씀....
"앞으로 afterabc 와도 인연이 되겠네!!!
"정준호" 결식아동돕기 고양 마라톤 대회참가..
수익금 전액 기부.....마음이 angel 인가..

에...구 "정준호" 단장이 이제야 한골을
넣었네 보네....ㅉㅉㅉ
그렇게 좋을꼬....

이미지를 통해 위키백과
KBS 탤런트 공채 15 기 ....
연기 경력 15 년차 .... 물오른 연기를 펼쳐
보이는 "오지영"그녀가 영화에 출연하다.
2009 년 "우리들의 이데오 ".....
고시원을 소재로 다룬 영화 ......
8 월 크랭크인을 앞두고있다.

오지영은 월트 디즈니사에서 제작한 어린이 쇼 '디즈니 라이브! 미키의 매직쇼 (이하 디즈니 라이브쇼) '의 내한 공연에 쇼호스트로 선발됐다.
'디즈니 라이브쇼'는 미키 마우스, 미니 마우스, 도널드덕, 백설 공주, 신데렐라 등 디즈니의 인기 캐릭터가 총출동하여 춤과 노래, 마술을 펼치는 어린이 쇼로, 월트디즈 니에서 야심 차게 기획한 라이브 쇼이다.
이 뮤지컬은 이미 미국을 비롯해 유럽, 캐나다, 일본 등에서 순회 공연을 펼치며 각 나라마다 현지 쇼호스트를 한 명 씩두고 쇼를 진행했다. 디즈니사에서는 매년 어린이 뮤지컬 쇼를 제작하고 있지만 내한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지영의 소속사 측은 "다년간의 연기 경험과 유창한 영어 실력, 그리고 최근 어린이 드라마 '마법 전사 미르 가온'에 출연해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는 점이 부각돼 오지영이 수천명의 경쟁자를 물리 치고 디즈니 라이브쇼의 한국 호스트로 최종 선발되었다 "설명했다 고.
오지영은 이번 캐스팅 소식에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있는 어린이 쇼의 호스트 역할은 매우 긴장 되면서도 설레는 경험"이라며 "앞으로 '어린이 뮤지컬하면 오지영이라는 이름이 떠오를 수 있도록 열심히하겠다"소감을 밝혔다 고.
오지영은 1993 년 KBS 드라마 '손자 병법'으로 데뷔해, 그동안 '용의 눈물', '제국의 아침', '마이걸'등 20 여편의 드라마와 단막극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주몽'에서 원후 (견미리 역)의 상궁 역을 맡아 주몽의 1 마지막회까지 출연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회부터.
현재 kbs 드라마 ..... 산넘어남촌에서
은자 역으로 열연을하고있는 "오지영 ".....
향후 중견 배우로서 인간미 넘치고 사랑이
담긴 왕성한 활동이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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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추천해 준 저의 세팅 및 내용 소스를 제가 맟춤화 할 수 있습니까?
네, 개인 속성이 있으며 이곳에서 귀하는 맞춤화 할 수 있습니다. 귀하는 RSS feed (뉴스나 블로그같이 자주 업데이트되는 사이트의 feed내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파일 형식) (전체 기사 프로그램만 사용)를 추가하여 내용과 관련된 귀하의 기사를 나타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귀하는 만약 귀하의 이미지들을 Zemanta 도구를 이용하여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하고자 한다면 귀하의 플리커 계정을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사용자 지침 중 "귀하의 블로그로부터 기사를 추천하기 위하여 Zemanta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항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단지 그들의 내용에 대한 내용 추천에 제한을 두기를 원하며 작성자를 위하여 좀 더 획일적 다중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발행자들은 서비스의 엔터프라이즈 버전에 대하여 Zemanta와 연락하여야 합니다.
제 이미지와 기사에 나타나는 작은 사람 아이콘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이 내용이 귀하의 개인 소스 혹은 귀하의 플리커 계정이나 프렌즈 및 블로그 피드에서 추출된 것을 의미합니다. 귀하는 귀하의 속성에서 피드에 대한 추가 설정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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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자동 친구 모임을 위하여 귀하의 이미지에 대한 Flicker와 같이 Facebook, MyBlogLog 및 Twitter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귀하 친구들의 계정으로 실제 들어가는 내용을 단지 추천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만약 귀하 친구들이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이 서비스에서 그들의 실명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그 이름으로는 식별할 수 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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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중인 사항
귀사가 지원하는 언어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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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좋은 추천인지 귀사는 어떻게 결정합니까?
우리는 귀사의 기사를 우리의 등록된 자연언어 처리와 의미 알고리즘을 통하여 분석하며, 내용의 사전 색인작업을 한 우리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문맥상 체계를 비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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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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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via Wikipedia
조선왕릉의 비밀... 헌인릉


헌인릉 가는길 :
박석고개 -> 헌릉로(성남방향) -> 내곡 IC (좌회전) -> 이
< 헌릉 | 獻陵 >
태종은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 번째 아들로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정안군에 봉해졌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정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태종은 1405년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였고 조선왕조의 기반을 닦는 데 많은 치적을 남겼다.

<곡장 너머로 바라본 능침 공간>
원경왕후는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으나 태종이 왕권을 잡은 뒤부터 부부간의 불화가 계속되었고, 민씨 형제가 유배, 처형되면서 그 골이 깊어졌다

<헌릉은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 능제의 영향을 받아 조영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쌍릉 형식의 왕릉이다. 조선 초기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듯 장엄하고 웅장한 면모가 드러난다>
세종은 원경왕후 능 옆에 봉분을 따로 만들어 태종을 모시고 난간으로 연결하여 쌍릉으로 조성하고 곡장을 둘렀다. 능 앞의 석물들은 망주석만 빼고 모두 한 쌍씩 배치한 것도 고려 왕조의 현릉(玄陵)과 정릉(正陵) 제도를 기본으로 한 것이다.
< 인릉 | 仁陵 >

순조와 순원왕후가 함께 잠든 인릉의 곡장. 봉분에 병풍석은 생략되고 난간석만 둘렀다. 합장릉이나 봉분 앞에 혼유석을 하나만 놓아 단릉처럼 보인다>
조선 23대 순조(純祖, 1790~1834)와 비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 1857) 김씨의 합장릉이다.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때부터 외척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순조의 개혁정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거제도의 문란, 매관매직 성행 등 정치기강이 무너져 사회가 혼란해졌고, 홍경래의 난을 비롯한 각종 민란이 일어났다. 또한 이 시기에 오가작통법을 실시하여 천주교 탄압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태종 헌릉과 순조 인릉의 주변 숲은 서울시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선정되었을 만큼 능 주변의 조경이 뛰어나다. 능 뒤쪽 산비탈에는 소나무, 아래쪽 평지에는 오리나무를 많이 심었다>
순조는 처음에는 인조와 인열왕후의 능인 장릉(長陵) 왼쪽 산줄기에 모셔졌으나 풍수지리상 불길하다 하여 1856년(철종 7) 헌릉 오른쪽 언덕으로 옮겨졌다. 순원왕후는 1802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익종의 아들인 손자 헌종이 8세로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였고, 철종 때 다시 수렴청정을 하였다. 1857년 승하하여 순조의 능에 합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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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에 의해 미스터 미스터리 플리 커를 통해
2010 포뮬러 1 그랑 PRIX CALEND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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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Getty Images via Daylife
<복종하며 지배하라>
김헌식 지음, 연암사, 2009년 11월 25일 발행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말하듯,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다. 스포츠건 연예인이건 공부건 예술이건 2등은 주목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내 지난 30년 역시 그랬다. 1등이 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애썼다. 학창시절에는 반에서 1등을 하려고 잠이 오지 않는 약을 먹어가며 헛수고를 했고, 기자가 되고나서는 누구보다 특종을 많이 하고 싶어서 휴가도 반납하고 취재를 다녔다.
그래봤자 늘 1등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니기에, 최선을 다 한 것과 상관없이 영광은 1등이 모두 누린다는 것쯤은 수도 없이 경험했다. 1등과 2등은 등수로는 하나차이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현실적 지위와 보상의 차이는 엄청나다. 계단으로 치면 한 100개쯤 되려나.
기자가 되고나서 1등이라는 사람들, 참 많이 만나고 다녔다. 정치인도 있었고 연예인도 있었고 학자도 있었다. 자타공인 1등, 그러니까 1인자라는 사람과 서너 시간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혹은 술이라도 한 잔 하고 나면 느껴지는 공통된 느낌이 있다. 내용에 비해 포장이 그럴듯한, 홍보와 언론플레이를 통해 업적을 부풀린, 대중적으로는 굉장한 1인자로 비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해서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이런 느낌에 대해 이 책의 저자 김헌식은 "1인자의 위치란 대중적 인지도와 관계가 깊다. 그 대중적 인지도는 실체가 아니라 이미지에 대한 각인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지식은 많지만 경험이 없는 이, 지식과 경험은 많지만 통찰력이 부족한 이, 지식과 경험과 통찰력은 있지만 상상력을 실종당한 이. 텔레비젼과 잡지에는 스스로 차고 넘친다는 셀레브리티형 1인자들이 나날이 새로 등장하지만, 도대체 젊은 세대가 보고 배울만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진정한 실력자를 찾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롤모델 부재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여, 2인자 리더십에 주목하라
여대생들은 매년 이뤄지는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 1위를 재벌가 2세와 공중파 방송 아나운서라고 답한다. 예전에는 백지연이었고 요즘은 김주하, 예전에는 이건희였고 요즘은 이재용이 되는 셈이다. 존경과 동경, 실력과 유명세의 차이를 모르기에 나온 결과가 분명했다.
내 나이 서른. 진정한 실력자, 그러니까 정말로 멋진 사람을 찾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 롤모델 부재에 시달리는 동 세대 젊은이들과 한 줄기 빛 같은 것을 공유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느끼기 시작한 후부터는 2인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언론에 화려한 모습으로 홍보되지는 않지만 내공이 있는 사람, 변방에서 활동하면서 진정한 1인자를 만들어내는 조연들. 그 후로 내가 인터뷰 했던 사람들은 김연아가 아닌 김나영, 이병헌이 아닌 무명의 재연배우, 앙드레김이 아닌 최범석, 이현세가 아닌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잊혀진 아이돌 가수등이었다.
1인자들이 그렇듯 2인자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화려함보다는 실리를 추구한다. 인기를 좇는 허영이 아닌 양심을 따르는 원칙을 고수하는 편이다. 빨리 성공하고 싶어 하는 조바심보다 천천히 오래가고 싶어 하는 끈기가 있었다. 이런 공통점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2인자들은 현실론자들이고, 1인자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낭만주의자, 낙관주의자들이다. 낙관주의라고 하면 긍정의 의미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현실성이 없는 낙관은 관념적이며, 이 때문에 실패를 가져오기 십상이다. 참모에게 필요한 것은 객관적이며 냉철한 현실인식이다. 앞날에 대해 무조건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견해만 지닌다고 과업이 성취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저자는 역사 속의 많은 2인자들과 세계적인 수많은 2인자 기업들에 주목했다. 그 중에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말은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2인자의 자질에 대한 일화다. 스톡데일은 베트남에서 포로가 된 미군 장군으로 협상을 최선으로 이끌고 포로들을 구출해 낸 영웅으로 꼽힌다. 목숨이 걸린 절박한 상황 속에서 막연한 낙관이 아닌 냉철한 현실인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예다.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한국에는 1인자를 뒷받침해 주는 2인자들이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벤처 단지가 성공하지 못한다"는 안철수 소장을 말을 인용한다.
1인자는 2인자를, 2인자는 1인자를 잘 만나야
1인자를 만들어내는 오래가는 2인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희생과 헌신이다. 책에 등장하는 멋진 2인자들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1인자는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 정치적 쇼를 태생적으로 좋아한다. 그러나 2인자로 살기 위해서는 당장의 어떤 보상이나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바탕으로 공존하고 공생하려는 행동이 필수적이다. 2인자는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아도 다 함께 잘되는 것을 지향한다. 전체를 위해 악인의 역할을 자처할 지언 정, 선량한 본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함께하면 우월해질 수 있는 존재'로 느끼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희생하고 헌신하는 2인자 위에 그런 1인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2인자 없이 1인자가 존재할 수 없는 이유도 그래서다.
같은 맥락에서, 2인자도 1인자를 잘 만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책에는 중국 노나라의 좌구명이 쓴 춘추좌씨전에서 대숙이 한 말이 등장한다. "낮은 언덕에는 송백이 없다"는 문장이다. 1인자의 그늘 아래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생존법을 잘 나타내 주는 표현이다. 1인자의 어깨가 높을수록 그 어깨에 올라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것이 2인자다. 국내 예능 버라이어티의 공공연한 1인자 유재석이 있었기에 2인자로서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던 박명수만 떠올려 봐도 적용이 가능한 논리다.
이처럼 1인자와 2인자의 경험과 역할이 똑같이 중요한 것인데도 이제껏 우리는 1등의 성취에만 주목해온 것이 사실이다. 모든 사람이 1등으로 살 수는 없는 현실 속에서 '자처하는 만년 2등'의 삶과 그 방식에 주목할 때가 됐다. 물론 2인자도 사람이기에 1인자가 되지 못한 시기와 질투, 혐오와 분노가 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자신을 적절히 다스리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2인자는 항상 겸손하고 절제하며 주변을 배려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한다.
"2인자들은 1인자 뒤에서 일관성을 보인다. 2인자들이 안정되게 일관성을 갖는 이유는 1인자 뒤에서 잃기 쉬운 기본 원칙이나 원리를 다시금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정리처럼 진정한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느 날 갑자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2인자의 경험을 사서라도 해볼 일이다.
2인자 리더십은 비단 2인자들만이 아니라 1인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도 구사해야하는 전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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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erjkprunczyk via Flickr
미래의 한강 ...
한강은 예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변하였습니다. 자동차 도로에 가로 막혀 사람들이 동떨어지게되고, 부드러운 은빛 모래톱은 딱딱한 회색 콘크리트 고수부 지로 바뀌었습니다. 주위를 에워싼 고층 아파트로 인해 한강은 외로운 호수처럼되어 버렸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의 한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한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자연, 역사, 문화가 활기 차게 소통하는 수변 여가 공간을 새롭게 창조하는 일이 한강의 미래입니다. 서울시에서 시작한 한강르레상스 사업의 뒤를 따라 여의도 한강 공원을 함께해 봅시다.
![]()
* 한강 위에 조성될 플로팅 스테이지는 다목적 휴식 공간 및 문화 체험의 장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 직경 분 규모의 수상 분수는 피아노 반주 등에 맞춰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음악 분수입니다. 플로팅 스테이지 양쪽에 하나씩 자리한 수상 분수는 한강 및 플로팅 스테이지와 어울려 시민들에게 활기 차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선사 한답니다.
* 플로팅 스테이지 건너편쪽으로 위치해 가로 1천3백미터, 세로 35m 규모를 자랑하는 천상 계단은 시민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즐기며 한강을 조망할 수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색다른 디자인이 돋보이는 천상 계단은 여의도 한강 공원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소가 될 것이라고 관계자는 말하고있습니다.
"길게 이어지는 천상 계단의 시작 ..."
"조형물에 가까운 그늘막에 ... 달랑 의자 3 개 .. "
"물빛 광장이 시작하는 곳에 빛의 카페가 자리하고있어 시민들이 잠깐의 휴식과 물빛 광장의 아름다움을 조망 할 수 있는곳"
"물빛 광장이 수변까지 이어지고 ..."
* 저편에 보이는 마포 대교는 한강의 4 번째 다리이며 현재 왕복 10 차로로 1 일 교통량이 가장 많은 마포와 여의도 지역의 원활한 소통에 기여하고있다. 1968 년 시작된 한강 종합개발 계획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되어 황무 지인 여의도를 서울의 맨하탄으로 불리게하고있다.
"마포 대교 하단에는 서울 색 공원이 조성되어 어린들의 견학 코스로드 많이 활용될 계획이다"
"피아노 물길은 여의 나루역 공사때 발견된 지하수로를 활용하여 청계천의 물길을 시작으로 한강 41.5km를 100 분의 1 축소하여 만든 물길로"
"위, 아래 안내 문구가 잼있다"
"원효 대교 하단 브이 자 교각들 ..."
"파라다이스 선상 레스토랑과 오리 보트, 모타 보트 등이있어 가족 및 연인들이 많이 이용하고있다"
"공원에는 시인"具常"님의"강가에서 "라는 한편의 시가 동상에 새겨져있다"
"계단 조명등도 조형물 수준의 예술적 감각을 갖추고"
"가로등 또한 디자인 서울을 강조하는 것에 걸맞게 ..."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주사해 -CC TV는까지"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도 새롭고 깔끔하게"
"아쉬운게있다면 공사 마무리를 좀 깔끔하게해야되는데 .... ㅉ ㅉ"
"63 빌딩 아래쪽에는 야외 씨름장, 널뛰기, 그네가있어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했다"
"IC에서 여의 상류와 하류 IC에서 사이의 샛강에는 생태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여의도 한강 공원을 둘러보고 여의 나들목을 통해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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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에 의해 Weenhayek 플리 커를 통해
2009 년 12 월 16 일 강남에 위치한 조용한 일식집에서의 몇몇 지인들과 조촐한 송년회를 갖었다.
성남 일화에서 13 년간을 프로 선수로서 장수했고 골든슈 수상을 2 회에 걸쳐 수상했고, MVP를 수상과 미들 필더로서 99 골의 위엄을 달성했던 신태용 감독이 소속팀으로부터 은퇴 경기도 갖지 못하고 은퇴를했던 4 년전 이때에 괴롭고 힘들어했던 그때 그시절 ...
오직 축구 선수로서 젊음을 받친 그 인생에 그때 그시 절은 난생 처음 느껴보 았던 인간 사회의 냉철함을 느꼈던 신감 독은 결국 4 년후 호주에서의 생활을 끝으로 성남 일화의 지휘봉을 잡는 행운이 그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일부 축구 관계자들로부터 따가운 시선과 시샘을 받으면서 코치를 거치지 않고 막바로 감독으로 출발한 성남 일화의 신태용 감독은 우리나라 축구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것이다.
우리나라 최연소 축구 감독이면서 감독 데뷔 이후 FA 컵 준우승, 케이 리그 준우승의 성적을 거두며 마무리하는 2009 년 12 월 16 일 아주 뜻깊은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일은.
소주에 맥주를 섞은 폭탄주 몇잔에 지나간 일들을 돌아보는 신감 독에게서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고
2010 앞으로의 각오도 엿 볼 수가 있었다 년의. 새내기 감독으로서 선배 감독님들의 자세를 배우 겠다는 신감 독의 각오는 2010 년도 신감 독의 한해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는 아주 편한 송년회 자리가되어서 선배이자 형인 제 자신도 기분이 그 어느때보다 좋았다.
그자리를 빛내주기 위해서 피스컵 사무 국장 KBS는 경찰, 한양대 교수가 참석해 아주 뜻깊은 송년회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날 공교롭게도 신감 독과 친구 관계인 KBS 경찰의 생일이 겹쳐 겸사겸사 좋은 자리가되었다.
맛있는 회집 음식과 즐거운 시간의 모습들을 담아 보았습니다.
김교수와 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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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Bellevue Fine Art Repro (Scott) via Flickr
벨로루시 전직 대통령 내외분께서 방문 해주신 뜻깊은 날을 사진으로 모아서....
참석자 기념사진
방문기념 건배 ...쓰바시바(감사,러시아)
방문해주신 내외분께 감사의 선물에 대한 통역을 열심히 해주신분.
개그맨 이승환과 한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