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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Jenson has come of age at Mclaren
7월 29, 2010 | Article Posted By - Bruce, seoul, Korea

How Jenson has come of age at Mclaren

올 시즌은 루이스의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현역 월드 챔피언이라는 데서 나오는 자신감과 성숙함,

그리고 스피드를 모두 갖춘 젠슨 버튼과 맞서고 있는 까닭이다.

                                                                 

2010-04-02 맥라렌,메르세데스.jpg2009시즌 말 젠슨 버튼이 브라운과 결별하기로 결정할 당시 F1 커뮤니티는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과거를 떠올리며 그를 2009년 월드 챔피언으로 만들기까지 브라운이 얼마나 많으 노력을 해왔는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맥라렌에서 루이스 해밀턴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정말 의욕이 너무 앞선 일일까?

 

소수 의견이기는 해도 다른 한편에서는 "루이스의 뒷마당에서 그와 대적하지 마라"는 경고를 떠올리는 사람들과 버튼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순간에 맥라렌으로 이적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만으로도, 젠슨은 자신보다 한 해 앞서 월드 챔피언에 오른 루이스와의 신경전에서 한 발 앞으로 내딛게 되었다. 이 싸움은 그들이 레이스에서 서로 경쟁하기 전부터 이미 시작 되었다.

사실대로 말해 젠슨이 맥라렌으로 이적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그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는, 그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조언자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분별력 있고 합리적인 결정이다. 우선 맥라렌은 적수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팀으로 이름이 나있고,30년 동안 계속해서 레이스에 참가해온 팀이며 드라이버글에게 평등한 대우를 해주기 때문이다.

 

2010-07-28 14;17;49.jpg두번째로는 맥라렌처럼 입지가 증명된 팀에 들어가는 것은 F1에서 일생에 한 번 올까말까 한 기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들이 접촉해온 그 순간 젠슨의 생각에는 이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표뮬러원 드라이버라면 스타팅 그리드에서 그 누구보다도 팀메이트를 이기고 싶어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전혀 어렵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모든 뛰어난 스포츠맨의 야심의 원동력이 자신에 대한 믿음에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팀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뛰어난 선수와 자신을 팀이 비교한다는 믿음이다.

미하엘 슈마허가 페라리에서 특별 대우를 고집하는 것이 다섯 차례 연속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보면,이는 맥라렌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닌것 같다

라우다 대 프로스트, 프로스트 대 세나의 대결이 무모할 만큼 격렬하게 벌여졌던 시절 이후로 각 팀들은 드라이버들이 서로 자유롭게 경쟁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왔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이 스포츠가 추구하는 이념이다.

2010 시즌에 대한 젠슨의 자신감이 처음으로 고스란히 나타난 것은 1월7일, 소복하게 눈이 내려 바닥에 고르게 쌓이던 날 여러 기자들에게 연락해 전화로 진행했던 기자회견에서였다.

새롭게 즉위한 월드 챔피언은 특유의 사람 좋아 보이는 자신감으로 빛났다. 당당하지만 거만하지 않고 실력은 있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모습이였다.

같은날 아침, 마라넬로에서 미하엘 슈마허와 함께한 기간 이후 팀원과 경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던 전직 페라리 드라이버 에디 어바인은 ESPN가의인터뷰에서 젠슨이 브라운에서 맥라렌으로 옮긴 것은 제 정신으로 한 결정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어바인은 해밀턴이 그를 밀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이스가 그를 깔아 뭉갤 것이라고 했다. 1999년 챔피언 타이틀에 가까이 다가갔던 드라이버는 이처럼 극단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여전히 쉽게 논란을 일으키고 거침없이 발언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결국 빗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2010-07-28 14;48;41.jpg맥라렌 드라이버들의 역학관계 언제나 복잡했다. 젠슨과 루이스의 현재 상황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맥라렌은 성적에 대한 엄청난 압박으로 스스로를 짓누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몇년 동안 반복해서 기존에 활동하던 드라이버들을 선택해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드라이버 선발 방식은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커보인다. 하지만 사실상 그들은 단지 팀 전체의 성공 가능성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존 왓슨의 경우도 또렸하게 기억난다. 과거 맥라렌의 뛰어난 드라이버로 활약했던 왓슨은 젊은 아일톤 세나에게 경고했다. 1988년 초반에 그 팀에 들어간 것과 알랭 프로스트의 영역으로 여겨진 팀에서 그와 맞선다는 것은 능력을 넘어서는 일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일톤은 자신의 라인업보다 더 헌신하고, 더 빨리 달리며, 팀에 더 잘 적응해 프로스트를 꺾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해 존을 놀라게 했다. 아일톤은 그가 말한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세나는 무모한 위험으로 스스로를 내몰 만큼 강한 자신감과 하늘을 찌를 듯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올해 터키 GP에서 두 레드불 머신이 일으킨 충돌이 극도롤 거칠었다고 생각한다. 일부는 터키 레이스가 끝날 무렵 팀메이트와 경쟁하기로 결정한 젠슨을 보며 루이스와 같은 걱정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와 같은 충돌은 아일톤의 광적이고 위험한 몇번의 주행과 비교하면 얌전한 수준이다.

1990년 일본 그랑프리의 첫 코너에서 프로스트의 맥라렌 머신 뒤를 고의적으로 추돌한 일은 악몽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시절은 지났다.

젠슨이 2000년 호주 GP에서 윌리엄즈-BMW를 타고 F1에 데뷔한 후 지금처럼 성장한 것은 사실 예상된 수순이었다. 사람들은 20살이던 그가 시준 후반에 좋은 성적을 올렸고, 경험이 많은 팀메이트 랄프 슈마허를 움츠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안타깝게도, 후앙 파블로 몬토야를 데려가야 한다는 윌리엄즈의 책임감 탓에 젠슨은 2001,2002년을 플라비오 브리라토레의 르노에서 보내야 했다.젠슨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는 2003년이 되어서야 서서히 성공의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젠슨은 20대를 지나면서 초년에 모나코항구에서 호화 요트를 타고 나타난 탓에 그의 뒤를 따라다니던 바람둥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었다. 풋풋한 매력남에서 침착함과 자신감, 성격 좋은 젊은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젠슨은 2006년 헝가로잉에서 거머쥔 F1첫 승리를 발판으로 도약하려던 자신의 계획이 약간 차질을 빚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06년을 넘어 2007년, 2008년이 되자 젠슨은 반짝 스타로 기억될 지경이었다. 그런 그를 브라운이 구해 주었다. 2007년에 언론이 맥라렌의 신예 루이스해밀턴의 모든 움직임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을때 젠슨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바르셀로나 패독을 걸어나오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보면 누구라도 젠슨은 이제 지는 별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했다면 아주 큰 실수를 범한 셈이다.

F1 그랑프리 역사상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신예 해밀턴의 뛰어난 실력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반면 젠슨은 혼다에서 별볼일 없는 실패자로 고전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은 2009년이 되면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해밀턴은 성능을 끌어올리지 못한 맥라렌에서 어려움을 겼고 있었던 반면 브라운은 급부상했다. 어려웠던 지난 말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젠슨은 성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기다림 탓에 그 기쁨은 더 크게 다가왔다. 2009 시즌을 보내는 동안 젠슨은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고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패독을 거니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면 마음이 평호롭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으로 빛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는 기꺼이 언론을 반겼으며 능숙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기자들을 상대했다. 이제 완전한 남자,성숙한 드라이버로 거듭난 것이다.

 

2010-07-28 15;43;33.jpg젠슨의 맥라렌 이적은 효과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순조로웠다. 만약 루이스가 지금까지 혼자만의 무대를 방해하려는 같은 영국 출신 드라이버의 영입에 반대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아주 잘 감추었음에 틀림없다.

여기서 그의 의도를 볼 수있다. 맥라렌에서 페르란도 알론소도 몰아 냈으니 어떤 일도 해결할 수있다. 그러나 젠슨은 론 데니스와 마틴 휘트마쉬로부토 등을 돌리기로 결정했을때 자신의 경력애오점을 남긴 알론소보다 강했다.

올해 맥라렌 메르세데스가 공개될 때도 주도권은 젠슨이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루이스보다 약간 더 큰 그는 첫MP4-25를 공개하기 위해 가림막을 걷어낼 때도 자신의 방식대로 하는 듯했다.

물론 필연적으로 팀에 새로 입단한 드라이버는 주요 관삼사가 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거의 그렇다. 젠슨은 과하지 않은 선에서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해밀턴은 이 상황을 관대하게 받아 들였다. 그가 헤이키 코발라이넨이 3년째 팀메이트로 남아 있는 것을 반대 했다면 바보 취급을 받았겠지만, 인간성이 좋은 헤이키는 이 일을 완수할 만한 스피드를 갖추지 못했다. 루이스는 조만간 알론소와 대등한 재능을 지닌 드라이버와 다시 한 번 맞서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만한 현실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젠슨 버튼의 등장으로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시즌 개막전에서부터 젠슨은 맥라렌의 이름에 걸맞는 능력을 과시했다 . 우승을 거머쥔 월드 챔피언의 지위와 더불어 남의 말을 듣고 배울 줄아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뚜어난 결단력도 지니고 있었다. 맬버른에서 약간 이른 시기에 슬릭 타이어로 교체하며 맥라렌에 올해 첫 우승을 안겨준 그의 대담하면서도 극히 자신감에 찬 결정은 그의 이러한 성격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비가 쏟아진 중국 그랑프리에서 루이스를 이끌고 결승선을 통과하며 원투승을 거머쥐었을 때는이미 젠슨이 팀 네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모나코에서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맥라렌의 미케닉들이 실수로 쿨링 커버를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개러지에서V8엔진이 예열되고 있을때 엔진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이드포드를 덮어 두도록 설계돤 덮개를 방치한 것이다.

젠슨이 포메이션랩에 나서기 직전에 일어난 일이다. 따라서 출발도 하기전에 메르세데스의 엔진 온도는 통제불능이 되었고, 제대로 경쟁하지 못한 채 리타이어했다.

젠슨은 본능적으로 빠른 판단을 내리고는 일체의 불평을 하지 않았다. 표뮬러원 내에서 수없이 자주 운명이 뒤바뀌는 상황을 충분히 겪었으므로, 가장 훈련이 잘 된 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젠슨이 루이스에 이어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던 이스탄불 파크에서는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왔을때 조차도 루이스가 둘 다 극심한 연료 절감 모드에 들어갔다고 생각했을 때 선두를 노리고 그를 압박해 한 순간도 마음 놓고 달릴 수가 없게 만들기도 했다.

비록 루이스가 거의 곧바로 4개의 코너 뒤에 젠슨을 앞지름으로써 자신의 명성을 확인시켜 주었으나, 함께 포디엄에 오르기 위해 준비하면서 루이스는 이 사건으로 크게 흔들린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젠슨은 그냥 너그러은 미소를 지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가 승자처럼 보였다.

우승하지 못했던 때조차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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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루이스해밀턴 | 맥라렌 | F1 | 젠슨버튼
Article Posted By - Bruce, seoul, Korea
궁궐 이야기...창덕궁_ 궐내각사 권역
7월 28, 2010 | Article Posted By - Bruce, seoul, Korea

궁궐 이야기...창덕궁_ 궐내각사 권역

2010-07-27 창덕궁 궐내각사.jpg









3-h-1 내각內閣


 

위치와 연혁 : 규장각(奎章閣)의 별칭이다. 이문원(?文院)이라고도 불렀으며 규장각 학사들이 근무하던 곳이다. '내각(內閣)'이라는 현판은 규장각 남문에 붙어 있는데 이는 최근에 규장각을 복원하고서 붙인 것이다.

 

뜻풀이 : '내각(內閣)'은 '궁궐 내의 중앙 관서'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오래 전부터 쓰여서 중국의 삼국 시대에는 비서각(秘書閣)을 가리켰으며 송나라 때는 태종(976~997년)이 세운 용도각(龍圖閣), 진종(眞宗, 968~1022년)이 세운 장서각인 천장각(天章閣), 인종(仁宗, 1010~1063년)이 세운 보문각(寶文閣) 등을 두루 내각이라고 불렀다. 1) 명나라·청나라 때에는 재상의 관서(官署)를 가리켰다.



 

제작 정보 : 2001년에 설치하면서 서예가 이동익(李東益)이 글씨를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3-h-2 규장각奎章閣


 

위치와 연혁 : 내각이라고도 하며 왕실 도서관과 같은 곳이다. 정조(正祖,1752~1800년)가 설치하여 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親筆)의 서화(書?), 고명(顧命), 유교(遺敎), 선보(璿譜: 王室世譜), 보감(寶鑑) 등을 보관·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정조는 1776년 즉위하자 곧 창덕궁의 북원(北苑), 곧 지금의 주합루(宙合樓) 자리에 새로 집을 짓고 규장각이라고 명명(命名)했다.

규장각은 승정원·홍문관·예문관의 근시(近侍) 2) 기능을 흡수했으며, 과거 시험과 초계문신(抄啓文臣) 제도도 함께 주관하였다. 초계문신은 글 잘하는 신하들을 대상으로 매월 시험을 치른 후 상벌을 내려 재교육의 기회를 주는 제도였다. 1779년에는 규장각 외각에 검서관을 두고 서얼 출신들을 등용했다. 이런 조치들은 학문의 진작은 물론 정조의 친위(親衛) 세력 확대에 이바지하였다. 1781년에는 규장각 청사를 옛 도총부(都摠府) 청사로 옮겼다.

또 강화사고(江華史庫) 별고를 신축하여 강도외각(江都外閣)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훗날 병인양요(1866년) 3) 때 프랑스에게 약탈당한 외규장각(外奎章閣)이다. 정조의 사후 규장각은 정치적 선도 기구로서의 기능을 점점 잃었다. 1868(고종 5)년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주합루 자리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고 소장 도서들도 이문원·경복궁의 집옥재(集玉齋)·시강원(侍講院) 등에 분산되었다. 국권을 빼앗기면서 이 도서는 1911년 조선 총독부 취조국(取調局)으로 넘어갔다. 그 후 주무 관청이 몇 차례 바뀌어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되었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에 남았다. 그 도서를 소장·관리하고 연구하는 기관이 '서울대학교 규장각'이다.

 

뜻풀이 : '규장(奎章)'이란 '임금의 시문이나 글씨'라는 뜻이다. '규(奎)'는 천체(天體)의 대표적인 별자리인 28수(宿) 중의 하나로 문운(文運)을 주관한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문장(文章)'을 상징하는 글자로 쓰이게 되었으며 특히 임금의 글이나 글씨를 미화하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제작 정보 : 지금의 현판은 정도준이 글씨를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3-h-3 옥당玉堂

 

위치와 연혁 :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이다. 조선 시대에 궁중의 경서(經書)·사적(史籍)의 관리, 문한(文翰)의 처리 및 왕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옥서(玉署)·영각(瀛閣)·서서원(瑞書院)·청연각(淸燕閣)이라고도 불렀다. 학술적인 관부이면서 사헌부·사간원(司諫院)과 더불어 언론삼사(言論三司)의 하나로서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다. 홍문관직은 청요직(淸要職) 4)의 상징이었다. 일단 홍문관원이 되면 특별한 허물이없는 한 출세가 기약되었다. 조선 시대의 정승이나 판서를 지낸 사람으로서 홍문관을 거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홍문관 관원이 되려면 교서(敎書) 등을 기초하는 지제교(知製敎) 5)가 될 만한 문장과 임금에게 경전을 강론하는 경연관(經筵官)이될 만한 학문과 인격이 있어야 함은 물론 가문에 허물이 없어야 했다.

홍문관의 일은 본래 정종 때 설치한 집현전(集賢殿)에서 맡아 하였는데, 세조 초에 세조 집권에 반대한 사육신이 주로 집현전 학사들이었기 때문에 세조가 그 기구까지도 못마땅하게 여겨 폐지했다가 1463(세조 9)년에 홍문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설치한 것이다. 연산군 때 잠시 진독청(進讀廳)으로 고쳤다가1506(중종 1)년에 복구했다. 1894(고종 31)년에 경연청과 합하여 이듬해에 경연원(經筵院)이라 개칭했다가 1896년에 다시 홍문관으로 고쳤다. 건물은 일제에의해 헐렸다가 최근에 복원된 것이다.
 

뜻풀이 : '옥당(玉堂)'은 '옥같이 귀한 집'이라는 뜻이다. 청요직의 상징으로서 출세가 보장되는 인재들이 모인 집, 또는 국가의 중요한 업무를 담당한 집이라는 뜻에서 부른 이름이다. 한편 옥당은 일반 명사로서 궁전의 미칭으로도 쓰이는데 한나라 때 궁전 이름으로 쓰인 적이 있다. 『한서(漢書)』 「이심전(李尋傳)」의 주석에 "옥당전은 미앙궁에 있다."<원전 1>라고 하였다. '옥당'은 중국에서는 송나라 이후로 한림원의 별칭으로 쓰였으나 우리 나라의 경우는 한림원(翰林院)의 기능을 '홍문관'과 '예문관'의 둘로 나누어 홍문관을 옥당이라고 하고 예문관은 한림이라고 불렀다.<원전 2>


 

제작 정보 : 홍문관 건물에 현재 붙어 있는 '옥당(玉堂)'이라는 현판은 근래에 건물을 복원하면서 2001년에 정도준이 글씨를 쓰고 오옥진이 새긴 것이다. 옛날에 걸려 있던 현판 두 종류가 현재 문화재관리국에 소장되어 있다. 하나는 임진년(?) 9월에 이원영(李元英)이 전서(篆書)로 쓴 것으로 유물번호 670번이고, 또 하나는 1699(숙종 25)년 정월 초하룻날에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1658~1716년) 6)가 예서(?書)로 쓴 것으로 유물 번호 1000번이다.






3-h-4 예문관藝文館

 

위치와 연혁 : 인정전 서쪽 행각의 숭범문과 향실 사이에 위치한 관청이다. 예문관의 출입문은 숭범문 바깥쪽에 이다. 예문관은 임금의 명령인 사명(辭命)을 짓고, 사초를 작성하여 실록 편찬의 자료로 보관하는 관청이다. 영조가 14년과 32년에 친히 행차하여 각각 '태공사필(太公史筆)', '창수고풍(?守古風)'이란 글씨를 써서 걸었다고 한다. 1811(순조 11)년 화재로 사료와 서적이 모두 불에 탔다.<원전 3> 현재의 건물은 2005년에 복원한 것이다. 영조 어필 편액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뜻풀이 : '예문관(藝文館)'은 '예문을 담당하는 관서'란 의미이다. 예문은 육예(六藝: 禮·····數) 7)에 관련된 도서를 총칭하기도 하고 사장(辭章), 문예(文藝)만을 한정하기도 한다.


 

제작 정보 : 현판은 정도준이 글씨를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3-h-5 약방藥房

위치와 연혁 : 내의원(內醫院)으로서 궁중의 의약을 담당했던 곳이다. 내국(內局)·내약방(內藥房)·약원(藥院) 등으로도 불렸다. 태종 때 내약방으로 설치되었다가 1443(세종 25)년부터 내의원이라고 했다. 약방은 인정전 서쪽 행각에 가까이 있는데 이는 임금의 병을 가까이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내의원을 내의사(內醫司), 궁 밖에 있는 의료 기관인 전의감(典醫監)과 혜민서(惠民署)를 외의사(外醫司)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약방의 역할을 나타내는 '調和御藥(조화어약)', '保護聖躬(보호성궁)'의 현판이 현재는 옛 성정각(誠正閣)의 남쪽 맞은편 건물에 붙어 있고 약절구도 그 마당에 있다. 그래서 지금은 일반적으로 성정각이 내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순종(純宗, 1874~1926년) 때 창덕궁이 개조되면서 내의원이 헐리고, 현판들과 의약 도구들이 옮겨졌다고 하는데, 단순히 도구들만을 옮긴 것이 아니라 이 때 성정각이 내의원의 기능을 맡게 된 듯하다. 현재의 건물은 최근에 복원된 것이다.

 

뜻풀이 : '약방(藥房)'은 '약을 짓는 방'이라는 뜻이다.



 

제작 정보 : 현판은 정도준이 글씨를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3-h-6 양지당養志堂

 

위치와 연혁 : 선원전과 인정전 사이에 있으며 임금이 선원전에서 제사를 모시기 전에 머물며 재계하던 집이다. '어재실(御齋室)'이라고도 했다. 임금의 초상화나 임금이 쓴 글씨를 궤에 담아 보관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때 없어졌으나 최근에 복원하였다.


 

뜻풀이 : '양지(養志)'는 '고상한 뜻을 기른다'는 의미와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그 마음을 즐겁게 한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여기서는 건물의 기능으로 보아 선원전에 참배(參拜)하기 위해서 이 곳에 머물며 '고상하고 엄숙한 뜻을 배양한다'는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제작 정보 : 이동익이 글씨를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3-h-7 억석루憶昔樓

 
 

위치와 연혁 : 선원전 남행각에 위치한다. 『한경지략』에 의하면 영조가 신농씨(神農氏)의 위판(位版)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도록 내의원에 명하면서 '입심억석(入審憶昔)'이라는 네 글자를 써 주었다고 한다.<원전 4> 이로 보아 억석루는 내의원에 속하는 건물임을 알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삼황(三皇) 가운데 한 사람인 신농씨는 각종 풀에 있는 약의 효능을 알아보기 위하여 온갖 풀들을 다 먹어 보았으며, 이를 통해 약초를 알아내어 질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일설에는'자편(?鞭)'이라는 신기한 회초리를 가지고 여러 가지 식물들을 때려서 독성이 있는지 없는지, 효능이 어떠한지, 한성(寒性)인지 열성(熱性)인지를 판별했다고도 한다. 그는 나무로써 쟁기와 보습 등의 농기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고, 또 약을 발명하여 사람들의 병을 치료했기 때문에 의약과 농업의 창시자로 추존된다.

 

뜻풀이 : '억석(憶昔)'은 '옛날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영조가 써 준 '입심억석'에서 따 온 말이며, 『한경

지략』의 기록에 따르면 약을 최초로 발명한 신농씨를 생각한다는 의미가 된다. 신농씨의 거룩한 마음을 생각하면서 질병을 치료하는 약을 잘 만들라는 의도를 담고 있는 듯하다.
 

제작 정보 : 이동익이 글씨를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3-h-8 운한문雲漢門

 

위치와 연혁 : 내각 안에 있는 봉모당(奉謨堂)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뜻풀이 : '운한(雲漢)'은 '은하수'라는 뜻이다. 『시경(詩經)』의 「대아(大雅)·역복(?樸)」8) 편에 "크게

밝은 저 은하수여, 하늘에 아름다운 무늬가 되었도다."<원전 5> 「대아(大雅)·운한(雲漢)」 편에 "크게 밝은 저 은하수여, 빛이 하늘을 따라 돌도다." 라는 용례들이 보인다.<원전 6> '운한'에는 '하늘', '임금의 아

름다운 덕'이라는 뜻도 있으며, 특히 '제왕의 필묵'이라는 뜻도 있어 봉모당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3-h-9 봉모당奉謨堂


 

위치와 연혁 : 규장각의 역대 선왕의 유품을 보관하던 전각이다. 1776(정조 즉위)년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하면서 중심 건물인 주합루에 정조 자신의 왕위에 관련된 어진(御眞)·어제(御製)·어필(御筆)·보책(譜冊)·인장(印章) 등을 보관하도록 했다. 이 때 본래 이 곳에 있었던 역대 선왕들의 유품들을 옛 열무정(閱武亭) 건물로 옮기고 이 곳을 봉모당이라고 이름지었다.<원전 7>

봉모당은 다시 1857(철종 8)년 1월에 규장각의 본부인 이문원의 부속 건물 대유재(大酉齋)로 옮겼다. 이는 정조가 죽은 뒤 규장각의 기능이 크게 약화되면서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남은 역대 왕들의 어제 관리를 수월하게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1908년 규장각의 기구가 새로 마련되면서 이 곳의 업무는 전모과(典謨課)에서 관할했다. 1911년 옛 이문원의 대유재와 소유재(小酉齋) 자리에 규장각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봉모당 건물도 일본식으로 지어 보첩류를 제외한 왕실 자료를 보관하였다. 지금의 봉모당은 소유재 자리에 들어선 것이다. 1969년7월 이 건물을 철거하고 장서를 창경궁 장서각(藏書閣)으로 옮겼으며, 1981년에 다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지금의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이관하였다.
 

뜻풀이 : '봉모(奉謨)'는 '모훈(謀訓)의 자료를 받들어 간직한다'는 뜻이다. 모훈이란 '임금과 신하가 함께

국사를 논의하여 적은 글' 또는 '임금이 백성을 가르치고 교화하기 위하여 지은 글'이라는 뜻이다. 『서경(書經)』의 「대우모(大禹謨)」, 「고요모(皐陶謨)」 등의 편명에서 용례를 볼 수 있다.







3-h-10 책고冊庫

 

위치와 연혁 : 봉모당 뒤쪽에 세 채가 있으며 책을 보관하던 곳이다.

 
 

뜻풀이 : '책고(冊庫)'는 '책을 보관하는 창고'라는 뜻으로 '서고(書庫)'라는 말과 같다.


 

 

제작 정보 : 현재의 현판은 최근에 건물을 복원하면서 새롭게 붙인 것이다. <동궐도>에 '책고(冊庫)'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건물의 기능 또는 용도를 기록한 것이지 현판이 곧 '책고'라고 쓰여 있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3-h-11 검서청檢書廳



위치와 연혁 :
규장각의 검서(檢書)들이 입직(당직)을 서던 규장각의 부속 건물이다. 정조가 즉위하던 해인 1776년에 규장각을 처음 만들고 1779년에 규장각에 검서관 4명을 두었는데 이 검서들은 입직을 해야 했다. 이들은 번갈아서 임금의 갑작스런 하문에 대비하고자 밤을 세웠는데 처음에는 적당한 입직실이 없어 규장각의 구석방에서 대기하였다. 그러다가 1783년 여름 규장각의 왼편에 방 2칸, 마루 1칸의 부속채를 짓고 거기서 입직하게 했는데 이 곳이 검서청이다. 현재의 검서청은 규장각의 서쪽에 있으며 순종 때 대유재를 바꾸어 부른 것이다.


 

뜻풀이 : '검서(檢書)'는 '서적을 점검한다'는 뜻이다. 서적을 검토하고 필사하는 일을 가리킨다.

 

 

 

 

──────────────────────────

1) 조선 규장각의 근무 규정 또한 송나라의 용도각, 천장각의 규정을 참고해 만들었다.

2) 근시는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를 말한다.

3) 1866년 대원군이 천주교를 금한 병인박해로 프랑스 선교사가 처형된 것을 보복하고자 프랑스 군이 공격한 사건이다.

4) 청요직은 청환(淸宦)과 요직(要職)을 아울러 가리킨다. 청환은 학식과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만 시키던 벼슬로, 규장각·홍문관·예문관 등이다. 봉록은 낮으나 뒤에 고관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이다.

5) 지제교는 왕의 교서(敎書) 등을 작성하는 일을 담당한 관직이다. 조선 후기에는 홍문관 관원이 내지제교를,규장각 관원이 외지제교를 맡았다.

6) 김진규의 자는 달보(達甫), 호는 죽천(竹泉)이다. 인경왕후의 오빠. 송시열의 문하로 숙종 때 과거에 급제했으나 붕당정치 속에 등용과 파직되기를 여러 번 했다. 문장과 전서·예서, 그림에 뛰어났다.

7) 육예는 고대 중국에서 고급관료의 자제가배우던 6종의 교양는 예용(禮容), 악(樂)은 주악(奏樂), 사(射)는 궁사(弓射), 어(御)는 마술(馬術), 서(書)는 서사(書寫),수(數)는 산수(算數)를 의미한다.

8) 「역복」은 주나라 문왕의 치덕으로 훌륭한 신하들이 모여듦을 비유하여 노래했다.「운한」은 가뭄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임금이 하늘에 간곡히 기도를 올리는 내용이다.

 

 

<원전 1> 『한서』 「이심전」, "玉堂殿在未央宮."

<원전 2 > 정약용(丁若鏞), 『경세유표(經世遺表)』 권1, 「춘관예조·홍문관(春官禮曹·弘文館)」"中國之制, 翰林謂之玉堂, 乃吾東分而二之, 弘文館稱玉堂, 藝文館稱翰林."

<원전 3> 『궁궐지』 "藝文館, 在仁政殿西月廊.英宗十四年戊午, 親臨藝文館, 特書太公史筆四字, 揭于楣. 三十二年丙子, 親書?守古風四字,揭于館中. 純宗十一年辛未, 災古來史籍, 盡入燒燼, 後重建, 一在昌慶宮明政殿, 掌制撰辭命."

<원전 4> 『한경지략』 「내의원(內醫院)」, "命內局所 祭神農氏位板 設欌于大廳 以致敬焉. 又御書入審憶昔四字 揭扁."

<원전 5> 『시경』 「대아·역복」, "倬被雲漢 爲章于天."

<원전 6> 『시경』 「대아·운한」, "倬彼雲漢 昭回于天."

<원전 7> 『정조실록(正祖實錄)』 즉위년 9월 25일(癸巳) 조와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제 1권 「경도(京都)」 편에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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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내각 | 검서청 | 봉모당 | 궁궐 | 궐내각사 | 규장각 | 약방 | 양지당 | 억석루 | 예문관 | 옥당 | 운한문 | 조선왕릉 | 창덕궁 | 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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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Show
7월 28, 2010 | Article Posted By - Bruce, seoul, Korea

 불꽃....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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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불꽃 |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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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선두에는 네명의 선수가 있다
7월 27, 2010 | Article Posted By - Bruce, seoul, Korea

 

[현재 선두에는 레드 불팀의 마크 웨버,세바스찬 베텔과 맥라렌팀의 젠슨 버튼,루이스 해밀턴이 있다.]

 

2010-07-27 앤서니 데이비슨.jpg

앤서니 데이비슨은 2010 시즌에 웨버가 베텔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이유를 분석했다.

F1 드라이버 출신의 BBC 비평가 앤서니 데이비슨(윈쪽 사진)

의 말이다.

 

"내생각으로는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드라이버는 마크웨버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를 저평가해왔다."

데이비슨은 웨버가 이번 시즌 베텔에 비해 향상된 실력을 보여주는 비결이 2010년에 머신의 특성을 잘다루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베텔의 장점 중 하나는 특히 오랫동안 달리면서도 후면이 불안정한 차를 잘 다룬다는 점이다. 예전 방식의 Q3에서 연료량이 늘어난 데 따른 변화에 대한 적응력도 뛰어나다. 지금은 많은 것이 변해다.앞 바퀴의 폭이 좁아지면서 프론트 그립이 떨어졌고, 후면에 더많은 안정성이 생겼다.

게다가 Q3에서도 연료를 최소한만 사용하므로 경주차의 무게 중가에 민감한 베텔의 강점이 빛을 잃고 말았다. 이는 미묘한 변화일지 몰라도 작은 차이를 만들어 마크가 경쟁자와 간격을 좁히는 데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웨버의 스피드가 팀 동료 베텔을 위협할만한 수준일까?

"뜨고 지는 선수들 사이의 경쟁은 선수들의 심리를 좌지우지한다. 예를 들어 기댈 팀원이 있다고 생각하면 다시 기운을 차리 수 있다. 물론 연이어 승리를 휩쓸 선수로 베텔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에게는 뛰어난 경주차가 있고, 매우 빠르기도 하다. 단지 그에게는 변화에 따른 행운이 필요할 뿐이다."

과연 베텔은 레드 불이 편애하는 드라이버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크가 피해의식을 느낄만한 상황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바스찬 베텔은 레드 불 영드라이버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따라서 팀이 그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애드리안 뉴이가 레드 불 드라이버 중 누가 타이틀을 차지할지 신경쓰는 것 같지는 않다"

웨버 스스로는 비교적 걱정이 적을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레드 불에서 2011년 한해를 더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을 수도 있다.

맥라렌에서 젠슨 버튼은 자신보다 어린 팀메이트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만약 경주차가 원활하게 움직이면 젠슨의 진짜 스피드는 루이스와 마찬가지로 놀라운 수준이다. 레이스 당일 누가 경주차의 최대 능력을 이끌어 내는가에 달려 있다. 젠슨과 루이스가 서로를 존중한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두 드라이버는 언젠가 각자 최고의 자리에 오를 날이 있음을 알고 있다."

또한 데이비슨은 맥라렌 듀요가 앞으로도 베텔과 웨버에게 계속해서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드 불이 터키에서 참패한 이유는 루이스 해밀턴 때문이다. 루이스가 레드 불 드라이버들 바로 뒤에 따라붙어 제자리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루이스는 모든 레이스에서 래드 불을 거세게 몰아 붙였고, 이에 따라 마크와 베텔은 흔들렸다. 만약 맥라렌이 출발한지 15초 정도 지났을 때였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은 웨버는 남은 시즌 동안 인상적인 모습이 기대된다.

베텔은 다시 치고 올라올 듯하다. 이에 대은하는 맥라렌은 레드 불에 대한 압박을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2010-02-26 맥라렌팀.jpg

젠스 버튼과 루이스 해밀턴의 맥라렌 라인업은 레드 불의 세바스찬 베텔과 마크 웨버보다 원만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트랙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이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2010-02-26 레드볼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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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레드 불 | 루이스해밀턴 | 마크웨버 | 맥라렌 | 세바스찬 베텔 | 앤서니 데이비슨 | 젠슨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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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ULA 1 GROSSER PREIS SANTANDER VON DEUTSCHLAND 2010
7월 26, 2010 | Article Posted By - Bruce, seoul, Korea

 

2010 FORMULA 1 German Grand prix

2010 F1 Grand Prix 11라운드가 7월 23일부터 25일까지

열린 독일 호켄하임에서 새로운 승자가 나타났다.

2010년 첫번째 1라운드에서 바레인 대회에서우승을 차지하고

11라운드에서 승점 67점을 획득하며우승을 차지한

페르란드 알론소는 같은팀(페라리)동료인 펠리페마사 선수가 2위,

래드블팀의 세바스찬 베텔이 3위를 차지했다.

11라운드를 마친 팀별 순위는 맥라렌팀이 300포인트로 1위

RBP-르노팀이 272포인트 2위,

페라리팀이 208포인트로 3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까지 드라이버 순위는,

157점의 루이스해밀턴이 1위,

143점의 젠스 버튼이 2위,

136점의 마크 웨버가 3위,

136점의 세바스찬 베텔이4위,

123점의 페르란도 알론소가 5위를 지키고 있다.

 

.....Photo    Gallery.....

2010-07-26 펠리페마사(2위),페른란드 알론소(1위),세바스찬 베텔(3위).jpg

펠리페마사(2위),페르란도 알론소(1위),세바스찬 베텔(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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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자의 삼페인 세레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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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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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해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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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슈마허가 팬들 에게 키스 세러모니를 하면서 답례하고 있다.
 하지만 팬들은 그의 화려한 과거 참피언의 모습을 보고 싶은 아쉬움에 목말라하고 있으며
11라운드를 마친 현재 38점으로 선수 랭킹9위에 머물고있다.
 
 
2010-07-26 루벤스 발리첼로(브)윌리엄스,가족과.jpg
윌리엄스팀의 루벤스가 아들과 함께...
 
 
2010-07-26 마리아 리취(올림픽스키참피언).jpg
 올림픽 스키 참피언 마리아 리취가 그의 남성 파트너와 함께... 
 
 
2010-07-26 프란치스카(독)올림픽대표 수영선수.jpg
 독일 국가대표 수영선수 프란치스카
 
 
2010-07-26 TF1 TV와 인터뷰하는 니코.jpg
 TF1 TV아 인터뷰하는 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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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자 페르란도 알론소의 인터뷰
 
 
2010-07-26 페라리팀의 알론소와,페리페마사.jpg
 페르란도 알론소와 팀 동료 펠리페 마사와 나란히 앞,뒤를 지키며 달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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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 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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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 앞서 드라이버들의 퍼레이드
 
 
 
Grid   Gir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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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팀을 응원하는 독일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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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F1 그랑프리 | german | 세바스찬 베텔 | 페르란도 알론소 | 펠리페 마사 | 호켄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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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코리아 그랑프리
7월 23, 2010 | Article Posted By - Bruce, seoul, Korea

F1 Korean Grand Prix

 

2010-04-13 코리아 서킷.jpgF1 코리아 그랑프리(Korean Grand Prix)는 2010년 가을에 개최될 예정인 대한민국의 표뮬러 원 경기이다. 2010년 현재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에 총공사비 2400억원 경기장이 건설중이다.

중앙정부의 사업은 아니며, 전라남도 지자체의 사업이지만, 민주당이 당론으로 한나라당 역시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모두 F1지원법안을 지원해 입 법률이 통과되어 중앙정부의 예산이 지원되어 현재 막바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F1은 전라남도가 지역 관광의 기본적인 틀을 바꾸기 위해 역점적으로 추진되는 서남해안관광레저도시(일명 J프로젝트)개발사업을 이끄는 선도적인 사업이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을 포함해서 19개 국가에서 F1 경기가 열리고 있고 이들 점수를 총합산하여 참피언이 결정된다.

한국은 2010년부터 7년간 그랑프리를 개최할 예정이다. 

 

<공사 개요>

*공사 착공일: 2007년 10월

*공사 완공 예정일:2010년 7월(그러나 공사가 예정보다 늦어져 9월초 완공 예정이다)

*면적: 1.85키로평방미터

*위치: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

*총공사비: 3,400억원

*고용창출: 1만8000명

*생산유발효과: 1조8000억원

*소득유발효과: 4,300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8,600억원

 

 

<참가 하는 팀들>

 

  • 보다폰 맥클라렌 메르세데스(VODAFONE McLAREN MERCEDES / McLAREN MERCEDES) - 영국, Great Britain
  • 메르세데스 그랑프리(MERCEDES GRAND PRIX / MERCEDES) - 독일, Germany
  • 레드 불 레이싱(RED BULL RACING / RBR RENAULT) - 오스트리아, Austria
  • 스쿠데리아 페라리 말보로(SCUDERIA FERRARI MARLBORO / FERRARI) - 이탈리아, Italy
  • AT&T 윌리엄스(AT&T WILLIAMS/ WILLIAMS COSWORTH) - 영국, Great Britain
  • 르노 F1팀(RENAULT F1 TEAM / RENAULT) - 프랑스, France
  • 포스인디아 F1 팀(FORCE INDIA F1 TEAM / FORCE INDIA MERCEDES) - 인도, India
  • 스쿠데리아 토로 로소(SCUDERIA TORO ROSSO/ STR FERRARI) - 이탈리아, Italy
  • 로터스 F1 레이싱(LOTUS F1 RACING / LOTUS COSWORTH) - 말레이시아, Malaysia
  • 히스패니아 레이싱 팀(HRT / HRT COSWORTH) - 스페인, Spain
  • BMW 자우버(BMW SAUBER / FERRARI) - 스위스, Switzerland
  • 버진 레이싱(VIRGIN RACING / VIRGIN COSWORTH) - 영국, Great Britain
  • 한국은 참가하지 않고 개최만 할 예정이다.
  •  

    [F1 그랑프리 나라별 개최 횟수]  

     

    2010-07-23 f1나라별 개최횟수.jpg

     

    [시즌별 참가국 현황]

    1950-1959년                                                                    

    2010-07-23 1959.jpg

     

    1960-1969년

    2010-07-23 09;40;29.jpg

     

    1970-1979년

    2010-07-23 1970-1979.jpg

     

    1980-1989년

    2010-07-23 09;42;19.jpg

     

    1990-1999년

    2010-07-23 1990-1999.jpg

     

    2000-2009년

    2010-07-23 2000-2009.jpg

     

    2010년

    2010-07-23 09;43;44.jpg

     

    2010-03-09 영암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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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그 : F1 그랑프리 | F1 코리아 그랑프리 | 서킷 | 연도별 참가국 | 영암 | 전라남도 | 참가횟수 | KA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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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set timelapse
    7월 22, 2010 | Article Posted By - Bruce, seoul, Korea

    Sunset  timela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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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그 : 노을 | 석양 | sun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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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서 한강으로[3편]
    7월 20, 2010 | Article Posted By - Bruce, seoul, Korea

    걸어서 한강으로 ... [ 편 3]

     

    SNC00418.JPG

    여름이 시작되기 전 어느 일요일 저녁 노을이 물드는 여의도 한강 둔치를 산책했다.

    시민이 모이는 어느곳에서나 볼 수 있듯이

    음악인들이 시민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에 나도 잠시 음악을 즐길수 있는 시간을 갖었다.

    노래 곡목은 모르지만 시민들과 함께 웃으며 잠시 즐거운 시간이었다

    겨울에 한강을 걸으면서 블로깅 후, 처음 찾는 곳이다.

    겨울에는 한강 둔치가 마무리 공사 중이여서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 했지만

    이번에는 깔끔히 정리된 한강 둔치 모습은 많은 시민들이 가족과 또는 연인,친구들이

    찾는 곳이 된것은 확연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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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쌍둥이 빌딩을 뒤로 하고 세워진 조형물은 어린이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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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에 설치된 수변 무대는 공연이 없는 평상시에 커피숍으로 .....

    이 참에 나도 커피 한잔 마실려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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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변 무대에서 바라 본 한강에 떠있는 오색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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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양이 지면서 수변 무대 앞에는 오색 분수가 음악과 함께 형형 색색의 물줄기가 내 뿜고 있다

    무대 앞쪽에는 스탠드가 마련되어 있어 많은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분수대가 내 뿜는 물줄기를 감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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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변 무대앞에는 불빛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한강쪽으로 내려다 보면

    불빛광장은 흐르는물과 조명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불빛을 보여줘야 하는데 오늘은 그 불빛광장이

    빛을 보여주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다음 기회로 미뤘다.

    SNC00448.JPG

     

    SNC00450.JPG  SNC00452.JPG  SNC00451.JPG

    SNC00454.JPG  SNC00455.JPG  SNC00453.JPG

    여의도 공원이 있던 자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장이였던 사실은

    요즘 자라나는 학생들이나 어린이들은 잘모르는 일이다.

    서울시에서 여의도의 비행 역사를 알리기 위해

    여의도 공원에서 한강 둔치로 나가는 나들목 통로에 사진으로나마 홍보를 하는것 같았다.

    나들목 통로를 새단장해서 여의도 비행장 홍보관으로 쓰는 서울시의 지혜가 돋보였다.

    가족들과 걸어서는 힘들고 자전거를 타고 변화된 한강 둔치를 여행해 보시면 어떻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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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그 : 둔치 | 분수대 | 불빛광장 | 불빛카페 | 수변무대 | 한강 |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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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궐 이야기.... 창덕궁_ 인정전 권역
    7월 20, 2010 | Article Posted By - Bruce, seoul, Korea

    궁궐 이야기.... 창덕궁_ 인정전 권역

    2010-07-20창덕궁 인정전.jpg

     








    2-h-1 인정전仁政殿

     

    위치와 연혁 : 창덕궁의 정전(正殿)이다. 임금이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던곳이다. 조정의 각종 의식과 외국 사신의 접견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릴 때에도 이 곳을 이용했다. 또한 왕세자나 세자빈을 정했을 때나 국가의 커다란 경사가 있을 때에도 왕이 인정전으로 나아가 신하들의 축하를 받았다.

    인정전은 1405(태종 5)년에 창덕궁을 세우면서 함께 지었는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다. 1428(태종 18)년에 인정전이 좁다고 해서 다시 짓게 하였으며, 그 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09(광해군 원)년에 중건했다. 1803(순조 3)년에 화재로 불에 타서 이듬해인 1804(순조 4)년에 재건하였고, 1857(철종 8)년에는 낡아서 다시 고쳐 지었다.




     

    뜻풀이 : '인정(仁政)'은 '어진 정치'라는 뜻이다. '인정(仁政)'은 특히 『맹자(孟子)』에서 강조하는 정치 사상이다. 『맹자』에서는 「양혜왕장구상(梁惠王章句上)」1)을 비롯하여 무려 10군데에 걸쳐 '인정'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즉 인정은 바로 맹자가 강조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맹자는 공자가 가장 중요시한 인(仁)에서 비롯하는 예치주의(禮治主義)를 한걸음 발전시켜 덕치(德治)를 왕도정치의 바탕으로 삼았다.






    2-h-2 인정문仁政門


     

    위치와 연혁 :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의 출입문이다. 인정문은 1405(태종 5)년 창덕궁의 창건 때 다른 전각들과 함께 지어졌다. 임진왜란으로 본래의 건물이 불타 없어지자 광해군이 즉위한 해에 창덕궁을 재건하면서 다시 세웠는데,1744(영조 20)년 10월에 인접한 승정원에 불이 났을 때 옮겨 붙어 좌·우 행각과함께 소실되었다가 이듬해인 1745년 3월에 복구되었다. 그 후 1803(순조 3)년 12월에 선정전(宣政殿) 서쪽 행각에서 화재가 나 인정전 등이 소실되어 이듬해 12월에 재건된 일이 있는데, 인정문도 그 때 함께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1910년대에 일제가 인정문과 그 주위 행랑을 왜식(倭式)으로 일부 변형했으나 1988년 현재와 같이 원상을 회복하였다.

    인정문은 국왕의 즉위식이 거행된 장소로 그 의미가 큰 곳이다. 왕세자는 앞 임금이 별세한 궁궐의 빈전(殯殿: 왕의 빈소)에서 옥새를 받고 그 궁궐의 정전이나 정전의 정문에서 즉위하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앞 임금이 창덕궁에서 별세할 경우 다음 임금은 인정전이나 인정문에서 즉위한 것이다. 특히 즉위식은 인정전보다는 주로 인정문에서 치러졌다.


    뜻풀이 : 2-h-1 인정전 참조.






    2-h-3 진선문進善門

     

    위치와 연혁 : 돈화문과 인정문 사이에 위치한다. 진선문 앞에는 금천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1409(태종 9)년부터 진선문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창덕궁이 창건될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908년 탁지부(度支部) 2)에서 인정전 개수 공사를 할 때 헐렸다가 1996년 복원을 착수, 1999년 완공하여 지금에 이른다. 태종대와 영조대에는 이 곳에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하여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었다.


    뜻풀이 :
    '진선(進善)'은 '선한 말을 올린다'는 의미와 '훌륭한 사람을 천거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정전이 임금의 정전(正殿)이므로 진선문을 통하여 바른 말을 올리거나 인재를 천거하여 임금이 바르게 되고 바른 교화[正敎]가 펴지기를 기원하는 이름이다. 전자의 용례로 『후한서』 「채무전(蔡茂傳)」에서는 "교화를 일으킴은 반드시 착한 말을 올리는 데서 연유한다."라고 하였다.<원전 1> 후자의 용례로 한나라 때 반고(班固, 32~92년) 3)가 편찬한 『백호통의(白虎通義)』의 「고출(考黜)」 편에서 "현명한 사람이 많으면 훌륭한 사람을 천거할 수 있고, 훌륭한 사람을 천거하면 악인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원전 2>


     

    제작 정보 : 본래의 현판은 정난종(鄭蘭宗, 1433~1489년) 4)의 글씨인데, 1999년 복원하면서 서예가 정도준이 새로 쓰고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오옥진이 새겼다.






    2-h-4 숙장문肅章門


     

    위치와 연혁 : 인정문 밖 동쪽에 있다. 진선문에서 인정문을 지나 마당을 따라 마주 보이는 문이다. 1475(성종 6)년 문 이름을 지었다. 숙장문과 진선문 사이 남쪽 행각에 내병조(內兵曹), 호위청(扈衛廳), 상서원(尙瑞院) 등이 있어서 이 인정문 뜰과 조정 마당에서 공식적인 궁중 의식이 많이 치러졌다. 이 일대는 일제 때 헐리어 화단으로 꾸며졌다가 최근 모두 복원되었다.

     

    뜻풀이 : 숙장(肅章)'은 '엄숙하고 문채(文彩)난다'는 의미이다. '숙(肅)'은 '엄숙하다', '장(章)'은 '아름답게 빛난다'는 뜻이다.
     

    제작 정보 : 원래 현판은 정난종 글씨였는데 최근 복원하면서 정도준이 새로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동궐도』에는 현판이 바깥에 그려져 있어 지금과 다르다. 이를 두고 화공의 실수라고 하기도 하고 잘 보이도록 일부러 바깥에 그렸다는 논란이 있다.






    2-h-5 광범문光範門
     


    위치와 연혁 :
    인정전 동문이다. 동쪽으로 임금의 경호 업무를 맡은 선전관청(宣傳官廳), 승정원, 내시들의 집무실인 내반원(內班院)과 통한다.

     

    뜻풀이 : '광범(光範)'은 '규범을 빛낸다'는 의미이다.



     

    제작 정보 : 정도준이 글씨를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2-h-6 숭범문崇範門




    위치와 연혁 :
    인정전 서문이다. 서쪽으로 예문관, 내의원과 통한다.


    뜻풀이 :
    '숭범(崇範)'은 '규범을 높인다'는 의미이다.


    제작 정보 : 정도준이 글씨를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2-h-7 향실香室


     

    위치와 연혁 : 인정전 서쪽 행각의 북쪽에 위치한 향청은 의례에 쓰이는 축문과 향을 관리하던 직소이다. 교서관 소속으로 책임직은 충의(忠義)인데, 직급이 높지는 않지만 공신의 자손이 임명되었다. 향관은 참하문관(參下文官)이 맡았고, 이틀에 한 번 숙직하였다. 명종의 신임을 돈독히 받은 상진(尙震,1493~1564년) 5)과 영·정조 때의 문신 박세채(朴世采, 1631~1695년) 6)가 이 곳을 거쳐 정승에까지 오른 일이 유명하다.<원전 3>


    뜻풀이
    :
    '향실(香室)'은 '향을 보관하는 방'이란 의미이다.


    제작 정보
    : 정도준이 글씨를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

    1) 「양혜왕장구」는 맹자가 여러 제후국을 다니며 왕들과 정치에 대해 대화한 내용을 모은 장이다.

    2) 탁지부는 1895년 이후 국가의 재정업무를 총괄하고 지방의 재무를 감독한 중앙부처다.

    3) 반고는 『한서』를 편집한 후한 초의 역사 학자다.

    4) 정난종의 자는 국형(國馨), 호는 허백당(虛白堂)이다. 시호는 익혜(翼惠). 훈구파의 중진으로 성리학에 밝았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5) 상진의 자는 기부(起夫), 호는 송현(松峴)이다. 1519(중종 14)년 사관(史官)이 되었으며, 이후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조선 중기의 명재상으로 후대에 크게 칭송을 받았다.

    6) 박세채는 자 화숙(和叔), 호 현석(玄石)·남계(南溪).소론의 영수로서 좌의정에 올랐지만 탕평론을 강조하여 영·정조대 탕평책 시행의 중요한 기반을 제공하였다.

     

    <원전 1> 『후한서』 「채무전」, "興化致敎, 必由進善."

    <원전 2> 반고, 『백호통의』 「고출」, "多賢乃能進善 進善乃能退惡."

    <원전 3> 『한경지략』, "香室, 在仁政殿西, 掌書各祭享祝文及封香, 其官名忠義, 以功臣子孫爲之, 而香官則以參下文官爲之, 更日直宿. 案, 朴南溪世采, 曾經香室忠義, 尙政丞震, 以香官拜相, 故香室先生中, 今稱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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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그 : 광범문 | 궁궐 | 숙장문 | 숭범문 | 향실 | 인정전 | 조선왕릉 | 진선문 | 창덕궁
    Article Posted By - Bruce, seoul, Korea
    세계인의 "스피드 축제"
    7월 15, 2010 | Article Posted By - Bruce, seoul, Korea

    세계인의 "스피드 축제"

                                                                        

    2010-07-15 13;46;14.jpg10월24일 전남 영암군에서 펼쳐질 "F1 코리아 그랑프리" 결승 레이스가 내일(16일)로 D-100일이 된다. 전 세계이의 이목이 집중되는 만큼 경제적인 효과도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부터 7년간 한국에서 F1 대회가 열릴경우생산 유발효과 6659억여원, 임금유발효과 997억여원 ,고용유발효과 3600여 명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 대회가 국가브랜드 상승과 관광자원 확보,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산업 등에 미치는 효과를 더하면 경제적 효과는 이보다 훨씬 커진다.

    1.대회 준비 얼마나 돼가나?

     2006년 대회를 유치하면서부터 제기됐던 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부족한 숙박 시설과 불편한 경기장 접근성, 취약한 국내 모터스포츠 저변 등 개선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이 때문에 대회 개막이 가까워 오면서 F1 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지고 있다.  13일 오전 영암군 대불산업단지를 지나 대회가 열릴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 건설 현장으로 들어서자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한국 모터스포츠의 메카가 될 이곳은 185만 평방미터규모(축구장 170개 넓이)의 용지에 5.6km의 트랙, 최대 13만5000명을 수용할 수있는 스텐드 등으로 구성되는 매머드급 경기장이다. 2007년 7월 첫 삽을 뜬 경기장 건설 공사는 계획대로라면 6월 말이나 7월 초에 끝나야 했지만 현재 공정은 82%다.

    예상보다 비가 많이 와 공사가 지연됐다는게 F1 한국대회 운영법인 카보(KAVO) 측의 설명이다. 현재 상황이라면 8월은 돼야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회 개막 전에는 완공하겠지만 대회 개막 전 시범경기 성격으로 열 예정인 "에이포스" 대회는 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에이포스 대회를 열지 못한다면 예행연습 없이 바로 F1 대회를 열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2010-07-15 13;50;39.jpg조직위원회는 대회 기간에 관람객을 포함해 하루 최대 숙박인원을 약 7만 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경우 소요되는 객실은 2인 1실 기준으로 3만5000실. 현재 전남 광주 지역의 가용 객실은 섬 지역의 민박이나 여인숙을 제외하면 3만8000여 실이다. 산술적으로는 관람객들이 모두 묵을 수 있지만 3만8000여 실 중에는 외국인이나 가족 단위 관람객이 묵기에는 곤란한 러브호텔이나 시설이 낙후된 여관 등도 포함돼 있다.

    고급 숙박 시설이 절대 부족한 것도 문제다. 광주 전남 지역에는 특급호텔이 2개에 불과하다. F1을 관람하기 위해 외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경제적으로 최상위층인데 대회 관계자들을 이곳에 우선 배정하고 나면 외국인 관광객이 묵을 만한 호텔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F1을 개최하는 말레이시아 세팡 서킷이나 싱가포르 서킷은 결승일에만 10만 명가량이 묵는데 도심 근처라서 특급호텔이 10개 이상 있다. 수도권과 연결되는 교통편이나 주차시설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대회 기간 동안 김포에서 무안공항으로가는 항공편은 이미 예약이 끝났다. 조직위 측은 김포와 인천에서 무안 공항으로 가는 비행편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KAVO 측은 티켓 판매가 저조해 판매 현황조차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티켓이 잘 팔리지 않는 이유는 경기장이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데다 가격도 비싸기 때문. 관람객이 없어 스탠드가 텅 빌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지난해 터키 이스탄불 대회 때는 15만 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을 사흘 동안 찾은 관람객이 총 3만6000명에 불과 했다. 관중석이 80% 이상 차지 않으면 적자 대회는 불가피하다.

    김재호 KAVO 부장은 "대회가 임박하면 대기업 등에서 단체 구매를 할 것으로 기재하고 있다"며 "대회 성공을 위해 국민들의 관심이 절실한 상황" 이라고 말했다.[출저 동아일보 7월15일 판 박승헌 기자,황진영 기자]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

     

    2010-07-15 14;41;59.jpg 스포츠 선수 중 최고의 수입을 올리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와 수입 면에서 경쟁할 수 있는 선수는?

    바로 포뮬러 원(F1)의 황제 미하엘 슈마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10월 "운동선수 최초로 우즈의 수입이 10억 달러(약 1조 2000억원)를 돌파 했고 슈마허는 7억 달러(약 8400억원)로 그 뒤를 쫓고 있다"고 보도 했다. 총 수입은 연봉, 광고, 기타 관련 사업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F1 선수들이 어마어마한 수입을 올리는 이유는 F1에 쏠리는 세계 모터스포츠 팬의 관심은  높은 반면 선수가 아주 적기 때문이다. 올해 F1에 출전하는 선수는 12팀에 소속된 24명에 불과하다.

    F1 코리아 그랑프리 운영법인인 KAVO 관계자는 "F1 머신이 시속 300km로 달릴 때 레이서의 시야는 야구공 정도로 쪼그라들어 운전을 하려면 초인적인 순발력과 체력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F1은 매년 27조 원이 움직이는 거대한 스포츠 시장으로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경기로 불린다. KAVO에 따르면 경기당 평균 입장 관람객은 약 20만 명, 연간 누적 관객은 400만 명에 이른다. 또 세계 188개국으로 대호가 중계되고 연 6억 명이 시청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스폰서 기업은 300여 곳에 이르는데 메인 스폰서가 되려면 3500억 원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중국해방일보는 "중국석화(SINOPEC)가 F1 타이틀 스폰서를 하면서 200개국 5600개 매체에 상표를 노출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보도했다.

    F1은 연간 17~20회가 열리는데 올해는 총 19회로 현재까지 10라운드가 끝났으며 한국은 17번째 경기다. F1의 참피언은 총 경기의 득점 합계로 결정된다. 현재 맥라렌 소속 루이스 해밀턴(영국)이 145점으로 1위, 같은 팀 젠슨버튼(영국) 133점으로 2위다. 레드불 레이싱 소속 마크 웨버(호주)와 세바스찬 베텔(독일)이 각각 128점, 121점으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이들의 연봉은 200억~400억 원에 이른다. 은퇴했다가 3년 만에 복귀한 슈마허는 9위, 일본의 국민스타 고바야시 가무이는 12위다. 한국 대회에도 이 스타들을 포함해 24명이 모두 참가한다.

    결승전이 열리는 10월24일 그랜드 스탠드 입장 가격은 14만6500원에서 75만9000원이다.[출처:동아일보 김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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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 Posted By - Bruce,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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